132화
* * *
비무대 위에 오른 무당파 무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제1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무당파에서는 올해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15세)의 나이가 된 장홍욱 제자가 출전할 것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제갈문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이 자식들. 첫 번째 대결부터.”
나는 제갈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일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무당의 제자요. 이미 태청검법(太淸劍法)을 익히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소. 하지만 나이가 저리 어리니 우리 쪽에게서도 또래의 상대를 내보내야겠지. 저건 우리 세가의 미래를 짓밟고 시작하겠다는 뜻이오.”
“어린 제자 아무나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겠죠?”
“당연하오. 상대는 이미 무림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후기지수. 그에 걸맞은 이름값을 가진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오.”
“그 정도 이름값을 가진 후기지수가 제갈세가에도 있습니까?”
제갈문은 대답 대신 근심 가득한 표정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때 오른쪽에서 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된다. 평아.”
이번엔 오늘 새벽에야 겨우 무림맹에서 돌아온 제갈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나가야 합니다. 저쪽에서 장홍욱이 나왔는데 그럼 누가 나갑니까?”
“이건 일반 비무가 아니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갈세가도 명문 세가 아닙니까. 대놓고 저를 지목한 비무인데 누굴 내보낸들 비웃음만 사게 될 일입니다.”
“죽거나 무공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간의 훈련은 오늘 좀 더 멋지게 패배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사실 대안도 없지 않으십니까.”
“시작부터 저렇게 어린 상대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구나…….”
가주 제갈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제갈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제갈세가에서는 저 제갈평이 나가겠습니다!”
반대편 무당파 진영에 앉아 있는 황운걸 장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지. 제갈세가의 떠오르는 용, 제갈평 공자 정도는 나서줘야지. 이거 참 재미있는 대결이 되겠구려.”
두 청년은 대결용 무기 거치대에서 똑같이 생긴 검을 집어 들고 비무대 위에 올랐다.
날을 세우지 않은 검이 아닌 잘 벼른 진검이었다.
장홍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비무 대결엔 좀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올려보내는 게 예의 아닌가?”
“뭐야?”
“하긴. 가주 정도가 나오면 모를까 제갈세가에는 나랑 비슷한 수준의 무사가 없겠구나.”
“입 닥쳐라! 감히 가주님을 입에 올리다니. 그리고 그게 도사로서 할 말이냐?”
“도사? 나는 무술을 배우러 이곳 무당산에 올랐지, 도인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동년배 중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무위를 얻게 되었지.”
“녹림채(산적 집단)에나 어울릴 놈이 무당산에 올랐구나.”
“하하하. 너야말로 더 늦기 전에 글공부나 해서 어디 관직에라도 올라보는 게 어떠냐? 제갈 성씨를 가진 자들은 머리가 그리 비상하다며?”
“머리만 비상한 것이 아님을 오늘 네놈에게 똑똑히 알려주마.”
제갈평이 먼저 자세를 잡았다.
제갈세가는 비도나 판관필 같은 독특한 무기를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검을 든 자세가 제법이었다.
아직도 자세를 잡지 않은 장홍욱이 비아냥거렸다.
“자세는 제법이구나?”
“입 다물고 자세 잡아라.”
장홍욱도 검을 앞으로 세우고 자세를 잡았다.
“타앗!”
장홍욱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몸놀림이긴 했지만 막아 내지 못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제갈평도 차분히 장홍욱의 첫수를 막아냈다.
* * *
장홍욱은 내심 놀랐다.
물론 제갈평이 이번 공격을 막아낸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었다.
우선 기본 초식으로 공격을 들어가긴 했지만 제갈평이 너무 쉽게 막아냈다.
“이것도 막아보아라!”
장홍욱은 오행검(五行劍)의 초식을 펼쳐냈다.
무당파에 입문하면 양의검(兩儀劍)을 완전히 체득한 후에야 익힐 수 있는 검법.
장홍욱은 이 오행검 역시 완전히 체득한 상태. 오랜 기간 수련을 했기에 몸에 가장 익숙한 검법이기도 했다.
또래 제자들 대부분이 아직 양의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나이에 비해 꽤 대단한 성취였다.
갑자기 바뀐 검격에 제갈평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떠냐? 이것이 무당의 오행검이다! 너와 나의 수준 차이를 알겠느냐?”
제갈평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장홍욱의 검을 악착같이 쳐내고 빗겨 내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 보니 무술만 연마하고 마음은 정돈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하.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 무술만 연마하기에도 하루가 짧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오늘 팔이 하나 없어질 테지.”
양과 음 두 가지의 조화와 반발력을 이용한 양의검과는 달리 오행검은 다섯 가지 오행(金木水火土)이 상생상극(相生相剋) 하는 원리를 이용한 검법.
장홍욱의 검이 집요하게 제갈평의 빈틈을 찾아 파고들었다.
빈틈을 찾는다기보다는 앞선 검식이 빈틈을 만들면 뒤이은 검식이 정확히 그곳을 찔러 들어오는 형태였다.
제갈평은 생각보다 장홍욱의 검을 잘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비무대 끝자락까지 몰리고 말았다.
아직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펼쳐 보지 못한 상태였다.
* * *
비무대 끝까지 몰린 제갈평을 보며 최수영이 속삭였다.
“오빠, 제갈평도 열심이긴 한데… 대결이 좀 일방적인데?”
“저 멍청한 자식.”
“응? 뭐 그렇게까지 말해. 무당파가 원래 무공이 더 세다며. 쟤도 나름 열심히 수련한다고 한 걸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럼?”
“저놈 지금 뭔가를 노리고 있는 거 같아. 무리하지 말고 팔이나 한쪽 내주고 내려오라니까.”
“그래? 뭘 노리고 있는 걸까?”
“몰라. 분명 몇 번이고 반격할 기회가 있었어. 근데 계속 밀려나는 척하고 있잖아. 어차피 자기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알고 있는 것 같고, 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해.”
제갈평은 어느새 비무대 끝자락에 겨우 버티고 서서 장홍욱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장홍욱은 제갈평을 저기까지 밀고 가면서 중간중간 팔이나 다리를 베어버리기 위한 공격을 여러 번 시도했다.
하지만 제갈평은 그 공격들을 특히 더 악착같이 막거나 피해 냈다.
마치 아직은 절대로 팔이나 다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팔다리를 내어주고 내려오라는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린 모양이었다.
장홍욱이 소리쳤다.
“제법 요리조리 잘 막아 내는구나! 하지만 이제 끝이다! 죽어라!”
약이 잔뜩 올랐는지 아까와는 달리 평정심을 잃은 목소리였다.
또래 중에 최고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결국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제갈평의 몸에 짙은 상처를 내보려던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기운의 공격이 펼쳐졌다.
살초(殺招)였다.
가주를 비롯해 비무를 보고 있던 제갈세가의 몇몇 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제갈문도 마찬가지였다.
푸욱.
장홍욱의 검이 제갈평의 심장과 어깨 사이를 찌르고 들어갔다.
장홍욱의 검 끝은 정확히 심장을 향해 있었지만, 제갈평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급소에 검이 들어오는 건 피해 냈다.
“크헉!”
제갈평의 얼굴에 선홍빛 핏물이 뿌려졌다. 장홍욱의 입에서 터져 나온 피였다.
“어… 어떻게. 네가… 나를…….”
제갈평의 검은 장홍욱의 복부를 지나 그의 등 뒤로 삐져나와 있었다. 등을 뚫고 나온 검 끝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모든 게 장홍욱 네놈의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당의 검법은 잘 보았다. 하지만 내가 이겼군. 크헉!”
상처가 깊었는지 제갈평의 입에서도 선혈이 튀어나왔다.
그제야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앞다투어 비무대로 올라가 양측의 어린 후기지수들을 챙겨 진영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처음 비무 시작을 알렸던 무인이 다시 비무대로 올랐다.
“첫 번째 비무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무승부라니. 누가 보아도 더 치명상을 입은 건 장홍욱 쪽이었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다만 비무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아까보다 한층 뜨거워졌을 뿐이었다.
제갈평 저 소년이 제갈세가 무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내려온 모양이었다.
반대로 무당파 진영 사람들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특히 장문인은 이 먼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양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최수영이 물었다.
“제갈평 고쳐줘야 하지 않을까?”
“아직 보는 눈이 많아. 치료는 비무 대결 끝나자마자 몰아서 하자.”
“두 번째 대결은 무당파의 유기문 장로께서 나오시겠습니다. 지구인 중 한 명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내가 나가겠다!”
우리 뒤쪽에 앉아 있던 엘리엇이 벌떡 일어났다.
콩고 헌터 마쿤쿠가 걸어 나가는 엘리엇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엘리엇 헌터님! 꼭 승리하십시오!”
엘리엇은 마쿤쿠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저런 노인한테 질 만큼 나약하지 않습니다.”
두 대결 상대가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벽안의 무인. 또 만났군. 겁을 먹고 달아났을 줄 알았는데.”
“누가 할 소리. 내 검에 베인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비무 대결에 나왔구나.”
엘리엇의 말을 들은 무당파 진영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기문은 헛기침을 크게 하며 가늘고 긴 검을 뽑아 들었다.
엘리엇은 각종 무기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직접 고른 크고 두꺼운 양날 검을 선택했다.
“산적 놈들이나 들 법한 무기를 골랐구나.”
엘리엇이 거대한 검을 한 손으로 붕붕 돌리며 대답했다.
“뭐든 큰 게 익숙해서 말이지.”
“과유불급이란 말을 아는지 모르겠군.”
“Dieu est du côté des gros bataillons. 신은 강자의 편이다.”
엘리엇이 먼저 몸을 날렸다.
자기 몸통만큼 두꺼운 강철검을 나뭇잎 휘두르듯 하는 엘리엇의 모습에 무당파 사람들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반면 유기문은 가만히 서서 빠르게 쇄도하는 엘리엇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부웅.
엘리엇의 거대한 검이 유기문의 몸을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유기문이 손목을 부드럽게 놀리며 검과 검을 맞대었다.
스윽.
엘리엇의 대검에 자석처럼 달라붙은 유기문의 가는 검은 대검의 검로를 부드럽게 전환시켰다.
검을 휘두르던 힘을 이기지 못한 엘리엇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발걸음으로 유기문 장로를 한참 지나쳐 가서야 멈추어 섰다.
“요사스러운 검술을 사용하는구나.”
“흐르는 구름처럼 부드럽다 하여 이름 붙여진 유운검(流雲劍)이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으니 전력을 다해 보거라. 다시는 무림인에게 그런 건방진 표정을 짓지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건방진!”
엘리엇이 조금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유기문에게 달려들었다.
속도와 위세는 올라갔지만, 공격 방식은 조금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유기문 장로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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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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