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 *
“언제까지 그 야비한 기술만 부릴 것이냐!”
엘리엇의 어깨가 크게 오르고 내렸다. 어지간히 숨이 찬 모양이었다.
비무대 중앙에 꼿꼿이 서 있는 유기문이 답했다.
“야비한 기술이라니. 무당의 당당한 검법이다. 그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는가?”
“뭐?”
“그 건방진 태도와 내 몸에 남긴 상처. 죽음으로도 속죄하기 어려운 일이나 무림인도 아니고 하니 내 특별히 선처를 내리겠다. 두 개만 고르거라.”
“뭘 고르란 말이냐!”
“목, 왼팔, 오른팔, 왼 다리, 오른 다리. 그중 평생 없이 살 두 개를 골라보란 말이다.”
“헛소리!”
엘리엇이 검을 고쳐 쥐고 다시 유기문에게 달려들었다.
스윽.
유기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유기문의 검에서 새하얗게 눈부신 검기가 쏘아져 나왔다.
텅, 터엉.
엘리엇의 대검이 비무장 바닥에 떨어지며 쇠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대검 손잡이에는 여전히 엘리엇의 손이 꼭 쥐어져 있었다.
“으아악!”
오른팔이 날아간 엘리엇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못 고르기에 내가 하나 골라주었다. 자, 다음은 어디로 하겠느냐.”
더는 안 되겠군.
나는 유기문을 말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제갈문이 내 오른 팔목을 붙잡았다.
“김 소협. 아직 대결이 끝나지 않았소. 지금 비무대에 난입하면 무당파 전체를 상대해야 할 거요.”
“저게요? 이미 끝났잖아요. 검 든 손이 잘려 나갔는데.”
“두 팔이 잘리면 입으로라도 검을 물고 싸우는 것이 우리 무림인의 정신이오.”
제갈문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나중에 다 치료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너무 일방적인 대결이었으니 아마 죽이진 않을 것이오.”
어쨌든 이 일이 정리되고 나면 나는 떠날 몸. 여기 남을 지구인들을 위해 무당파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유기문이 천천히 엘리엇에게 다가갔다.
“벌써 전의를 상실한 것이냐?”
“내… 내가 졌다.”
“아니. 아직 안 졌다. 왼손과 두 다리가 남지 않았느냐. 다시 검을 들어라.”
“졌다니까!”
“아니라니까.”
촤악.
유기문의 검이 다시 한번 번쩍 빛났다.
“크아악!”
엘리엇의 남은 한쪽 팔도 잘려 나갔다.
“미리 고르라고 했잖느냐. 팔 하나 다리 하나 남겼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을.”
유기문이 뒤로 돌아 무당파 진영을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장문인이 짧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수고하셨소. 유 장로.”
그제야 군인들이 올라가 엘리엇을 데리고 비무대 밖으로 내려왔다.
우리 앞을 지나던 엘리엇이 최수영에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큰 소리는 나오지 않고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겨우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서, 어서 치료해 줘. 고통이 너무 심해.”
최수영이 냉정히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요. 저쪽에 심장 바로 위에 검이 박힌 소년도 참고 기다리잖아요.”
마쿤쿠도 말을 보탰다.
“맞습니다. 지금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줘 버리면 다음 비무에 올라갈 무림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제… 제기랄. 저런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날 고쳐주란 말이야!”
퍽.
내 손날이 엘리엇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엘리엇의 고개가 푹 꺾였다.
“오빠! 죽였어?”
“안 죽였어. 조용히 시킨 것뿐이야.”
엘리엇을 부축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말했다.
“어서 저쪽으로 데리고 가서 응급 처치부터 해주세요. 이따가 다 치료해 줄 거니까 걱정 말고요. 깨어나면 또 소동을 부릴지도 모르니 진통제도 팍팍 놔주세요.”
“네!”
비무 진행자가 다시 비무대 위에 올랐다.
“다음 대결은 제갈세가에서 먼저 한 분 나서시면 무당파에서 비슷한 수준의 무인을 출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나서겠소!”
며칠 전 손이 잘렸다가 다시 붙은 제갈혁이었다. 제갈세가 내 무공 서열 3위의 인물.
앞으로 나서기 전, 제갈혁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제갈혁도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무기 거치대로 가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늘고 긴 검을 고른 제갈혁이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무당파 진영에서 황운걸 장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북에 명성이 자자한 제갈혁 님께서 벌써 나오시는 것이오? 재미있구려. 하하하. 우리도 구색을 갖춰드려야지. 천 장로! 나서시게.”
백발이 성성하지만 제갈혁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은 덩치를 가진 노인이 일어섰다.
엘리엇과 유기문 장로의 충돌이 있었을 때 본 적이 있는 노인이었다.
가장 뒤편에서 내내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노인.
노인 역시 제갈혁과 같은 무기를 들고 비무대 위에 섰다.
“천호원이라 하오. 잘 부탁하오.”
“노 선배님의 존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갈혁이라 합니다. 선배님께 한 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뭘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않소.”
“천 선배님 같으신 분과 검을 맞대보는 자체가 영광이지요. 저 같은 놈과의 대결에 직접 나서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야 뭐 일개 장로에 불과하니 장문인이 하라면 해야 하지 않겠소. 먼저 들어오시오.”
“선공 양보 감사드립니다.”
콰앙.
얇고 가는 검 둘이 부딪치는데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정도 충격이라면 두 검 모두 박살이 났어야 정상일 텐데 두 사람의 검은 멀쩡했다.
둘 다 검 표면에 검기가 서려 있었다.
제갈혁의 검기는 평범한 푸른빛이었는데, 천호원의 검기는 조금 전 유기문의 것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당파 전승 내공심법이 하얀빛 검기를 발현케 하는 모양이었다.
스테노가 말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시합을 하네. 둘 다 당장 우리 고향에 데려가도 영웅 칭호를 받기 부족하지 않겠어.”
두 무인은 검을 강렬히 부딪치기도 하고 서로의 공격을 빗겨 흘려내기도 하며 공방을 계속했다.
천호원이 제갈혁의 검을 받아내며 말했다.
“생각 이상의 실력이시구려. 오늘의 비무가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인데. 안타깝구려.”
천호원이 제갈혁의 검을 흘려보내자 다시 두 사람 간의 거리가 벌어졌다.
제갈혁이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미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하겠소. 이 대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지 않소.”
“내일 죽더라도 오늘 무공 증진을 위해 힘쓰는 게 무인 아니겠습니까.”
“껄껄껄. 제갈세가에도 이런 호걸이 있었다니. 내 미처 몰랐소. 이제 무당의 태극혜검(太極慧劍)을 펼칠 것이니 잘 받아내 보시오. 너무 과하게 휘두르진 않을 테니.”
천호원의 검이 비무대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검식이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었고, 아름다운 검로 끝에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진짜 비무.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진짜 비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당파 장문인 황운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 장로. 길게 끌지 말고 어서 끝내시오. 곧 검도 못 들게 될 자에게 가르침을 주어 무엇하겠소.”
장문인의 외침 후, 천호원의 태극혜검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제갈혁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제갈혁은 비무대 끝까지 내몰렸다.
“팔 한쪽만 가져가겠소. 이해하시오.”
촤악.
천호원의 검이 제갈혁의 오른팔을 베었다.
천호원이 잠시 뒤로 물러난 사이, 제갈혁은 왼손으로 다시 검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오른쪽 어깨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둘은 잠시 그대로 서로를 응시하고 서 있었다.
미세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전음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혁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천호원이 제갈혁의 검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돌부리를 타고 흐르는 냇물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서걱.
검을 쥔 제갈혁의 손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제갈혁의 검이 땅에 떨어졌다.
검 옆에는 잘린 엄지손가락도 함께 떨어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잘랐으니 다시 검을 쥐지는 못할 것이오. 그래도 숟가락 정도는 들 수 있겠지.”
더 이상 검을 집어 올릴 수 없는 제갈혁을 뒤로하고 천호원이 천천히 무당파의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황운걸 장문인이 천호원을 탓했다.
“너무 손속에 사정을 두신 것 아니오.”
“다신 검을 들 수 없게 되었으니 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그건 그렇지. 알겠소. 수고하셨소.”
비무대가 정리되고 다시 진행자가 올라섰다.
그의 안내에 따라 두 경기가 더 치러졌다.
대결은 일방적이었다. 제갈세가의 두 무인 모두 검을 들 수 없을 때까지 신체가 훼손되고서야 비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다음은 마쿤쿠의 차례였다.
“김수호 헌터님, 다녀오겠습니다.”
“네. 꼭 이기고 돌아오세요. 혹시라도 상대가 안 되겠다 싶으면, 아시죠?”
나는 손날로 내 팔을 긋는 흉내를 내보였다.
마쿤쿠도 웃으며 내 동작을 한 차례 따라 하고는 무기를 집어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당파에서는 앞선 장로들보다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중년인이 나섰다.
“진무광이라 한다.”
“콩고에서 온 마쿤쿠입니다.”
진무광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검을 차분히 막아 내던 마쿤쿠가 물었다.
“검기 같은 건 안 쓰십니까?”
“왜, 바로 죽여주랴?”
“하하. 죽여달라는 건 아니고. 검기 상대하는 연습을 좀 했습니다.”
“오냐, 어디 상대해 보아라.”
진무광의 검에 검기가 맺혔다.
하얗게 빛나는 진무광의 검이 사방에서 마쿤쿠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마쿤쿠는 이리저리 그의 검을 피하며 비무대 위를 빙빙 돌았다.
“원숭이 같은 놈!”
진무광의 검 끝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결을 열심히 지켜보던 최수영이 물었다.
“오빠, 저 콩고 헌터 제법이네? 오빠랑 특훈해서 그런가?”
“워낙 동물적인 감각이 좋아. 스피드도 대단하고.”
“하긴. 꽝이 앞발을 그렇게 피해 내다니. 대단했어. 어때, 오빠? 누가 이길 것 같아?”
“저 무림인이 비장의 수를 아껴둔 게 아니라면 마쿤쿠가 이길 거야. 빈틈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거든.”
* * *
‘김수호 헌터와 훈련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 검을 다 피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쿤쿠는 진무광의 검을 요리조리 피하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지친 건지, 흥분한 건지 조금씩 빈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해볼 만하겠어.’
…반면 진무광은 애가 타고 있었다.
앞선 지구인의 비무를 보고 손쉽게 이길 것이라 자신했었는데, 막상 붙어보니 공격을 한 차례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지구인이 호시탐탐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마냥 방심할 수도 없는 상황.
더는 무리였다.
‘제길. 묵 장로와 내기를 단단히 했는데.’
진무광은 비무대에 오르기 전, 묵 장로와 내기를 했었다.
오행검 이상의 상승 검법을 사용하지 않고 이 지구인의 사지를 모두 잘라내는 것.
하지만 이대로는 내기에서 이기긴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구인에게 반격을 허용할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내기는 포기하고 일단 해치우고 보자.’
진무광의 왼발이 반호를 그리며 앞으로 나왔다.
태청검법(太淸劍法) 제1 식의 첫 번째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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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2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61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