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 * *
진무광의 검이 비무대를 하얗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검식이었다.
겨우 검에 베이고 찔리지만 않고 있을 뿐, 마쿤쿠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태청검법의 검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무광의 태청검법은 마쿤쿠를 점점 사지로 몰아갔다.
마쿤쿠의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점점 커지던 진무광의 빈틈이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데다가, 공격은 점점 복잡하고 드세져 이젠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하하. 어떠냐, 이제 좀 네놈과 나의 격차를 느끼느냐?”
“실력을 숨기고 계셨군요. 하지만 아직 해볼 만합니다!”
계속 뒤로 밀려나며 피했다면 금방 비무대 끝에 몰렸을 텐데, 마쿤쿠는 영리하게 틈이 생길 때마다 방향을 잘 틀어가며 진무광의 검을 피했다.
‘다행히 비무대가 생각보다 넓다. 한 번.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빈틈만 찾아내면 된다.’
비무대 전체를 종횡무진 날뛰던 마쿤쿠의 눈에 드디어 태청검법의 빈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찔러 들어오는 진무광의 검을 가볍게 피하며 마쿤쿠가 앞으로 빠르게 한 발 내디뎠다.
마쿤쿠의 검이 순식간에 진무광의 가슴팍을 찔러 들어갔다.
“그걸 노리고 있는 걸 모를 줄 알았느냐!”
진무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검을 회수하여 마쿤쿠의 검 중간을 베어냈다.
검기가 발현된 진무광의 검과 부딪힌 마쿤쿠의 검이 힘없이 잘려 나갔다.
한 뼘만 더 나아갔으면 진무광의 가슴을 찌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때, 마쿤쿠가 허리를 낮게 숙이고 빠르게 앞으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
검 손잡이를 놔버린 마쿤쿠의 손바닥이 잘린 검날 앞부분으로 향했다.
반으로 잘린 검이 아직 공중에 떠 있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마쿤쿠의 손이 잘린 검날을 부여잡았다.
파앗.
맨손으로 검날을 잡은 마쿤쿠가 그대로 반쪽짜리 검날을 휘둘렀다.
마쿤쿠의 검날은 진무광의 가슴팍에 깊은 상처를 내며 지나갔다.
진무광의 가슴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촤악.
그대로 마쿤쿠는 잔뜩 웅크린 몸을 한 바퀴 더 회전시키며 진무광의 옆구리를 베었다.
촤악.
다음은 허벅지.
촤악.
다음은 발목.
땡그랑.
그제야 마쿤쿠가 놓았던 검의 손잡이 부분이 땅에 떨어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쿤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몸을 회전시키며 진무광을 네 번이나 베어냈다.
당황한 진무광이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네 곳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나 진무광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날카로운 검날을 꽉 잡고 있는 마쿤쿠의 손에서도 선홍빛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진무광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다.
“그 손으로 반 토막짜리 검을 다시 휘두를 수나 있겠느냐?”
“그쪽은 더 움직일 수나 있고?”
“이제 승부를 보자.”
진무광이 검을 고쳐잡았다.
예상외의 접전에 양측 진영 사람들 모두가 숨죽이고 둘을 바라보았다.
* * *
“무림인이 비장의 수를 아껴두고 있었던 게 맞네, 오빠. 그래도 마쿤쿠 헌터도 대단하다.”
“응. 아마 다들 놀라고 있을 거야.”
“마쿤쿠가 거의 다 이긴 거 아니야? 저 무림인은 피가 저렇게 철철 나는데?”
“모르지. 마쿤쿠는 검이 부러져 버렸으니까. 무림인이 저 상처를 가지고 얼마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네.”
“와, 더 움직이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저 피 봐.”
남들 귀엔 안 들리겠지만, 반대편 무당파 진영에서 속삭이는 대화가 마나 파동을 타고 내 귀로 들어왔다.
“장문인, 비긴 것으로 하고 비무를 중단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싸우게 했다간 진무광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약한 소리 마시오. 지구인에게 지거나 비기다니, 우리 무당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혹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온전히 대결에 나선 자의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인 것이오.”
“저 지구인의 움직임을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중 누구도 저렇게 빠르게 검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겁니다.”
황운걸 장문인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졌다.
“그래서, 지금 저 지구인이 우리 무당파 무인들보다 낫다는 말이오? 천 장로가 나서도 저 지구인에게 이길 자신이 없소?”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나름 요직에 있는 진무광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필요는…….”
“듣기 싫소. 태청검법을 펼쳤음에도 검까지 부러진 상대에게 역습을 당한 건 명백히 진무광의 잘못이오.”
“저 지구인이 너무 빨랐습니다. 잘린 검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듣기 싫다고 하지 않았소!”
뒷 대화는 비무대를 넘어 우리 쪽 진영 사람들에게도 모두 들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둘의 대화를 들은 진무광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진무광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검을 비무대 바닥에 쾅 꽂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 무당파의 진무광은 태청검법을 펼쳤음에도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지구인에게 큰 상처를 입었소이다. 이에 나 진무광은…….”
돌 바닥에 꽂았던 검을 다시 뽑아 든 진무광은 마쿤쿠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지금부터 저 지구인과 생사결을 펼칠 것임을 여러 선후배님 앞에서 명확히 밝히는 바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나는 이 비무대를 내려가지 않을 것이오.”
최수영이 놀란 눈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오빠! 뭐라는 거야,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렇게까지.”
옆에 있던 제갈문이 대신 답해 주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든지, 무당파에 폐를 끼치기 싫었든지. 둘 중 어느 쪽이어도 저자에겐 충분히 저럴 만한 이유가 된다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 마쿤쿠가 큰 소리로 화답했다.
“하하하. 재밌군요, 재밌어. 좋습니다! 이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이 대결이 끝나는 겁니다!”
이번엔 스테노가 물었다.
“아니, 저 지구인은 또 왜 저래?”
스테노의 물음엔 내가 답해 주었다.
“마쿤쿠가 가슴이 좀 뜨거운 남자이긴 하더라고. 그리고 진무광이라는 무림인이 저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한 이상 그를 죽이지 않으면 비무대를 내려올 수도 없겠지.”
내 대답에 스테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밌네. 비무 대결.”
마쿤쿠가 왼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손잡이 부분을 집어 들었다.
검날이 조금 긴 앞부분은 마쿤쿠의 오른손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었고, 왼손의 검 손잡이 부분은 남은 검날이 너무 짧은 상태였다.
진무광은 몇 군데 혈도를 짚어 피를 멈추게 한 후 다시 검식을 펼칠 준비를 했다.
“간다!”
진무광의 공격이 먼저 시작되었다.
네 군데나 입은 깊은 상처가 무색한 움직임이었다.
마쿤쿠는 이번에도 반격을 노리며 진무광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 냈다.
찰나의 빈틈을 노리고 마쿤쿠의 검날이 휘둘러졌다.
맨손으로 잡은 검날에 순간적으로 푸른빛이 서리다 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진무광의 검이 바로 길을 막아섰고, 마쿤쿠는 검날을 다시 뒤로 빼냈다.
“검기를 완전히 익히고 올라갔으면 좀 수월했을 텐데.”
내 혼잣말을 들은 최수영이 물었다.
“마쿤쿠한테 검기 발현하는 것도 가르쳐 줬어?”
“응. 한다고 해봤는데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어. 잘 안되더라고.”
“그러게. 아쉽다. 그럼 저 무림인 상대할 만했을 텐데.”
* * *
깊은 상처를 입은 진무광의 검 끝이 조금씩 둔해지고 있었다.
진무광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 반격을 허용하더라도 서둘러 승부를 봐야 한다.’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저 지구인에게 더 늦기 전에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다소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진무광은 공세를 더 높이면서 마쿤쿠를 끌어들이기 위해 큰 빈틈을 몇 차례 만들어 보였다.
갑자기 생겨난 커다란 빈틈에 망설이던 마쿤쿠가 결국 빈틈을 파고들어 왔다.
‘되었다!’
진무광은 자신을 찔러 들어오는 마쿤쿠의 검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격필살의 검식을 펼쳐냈다.
이미 너무 가까워져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
진무광은 마쿤쿠가 들고 있는 저 짧은 검날이 자신을 찌르기 시작할 때쯤, 상대의 몸은 반토막이 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콰앙.
마쿤쿠의 왼손에 들려있던 반쪽만 남은 검이 검기가 서려 있는 진무광의 검을 막아내었다.
진무광의 검을 막아선 마쿤쿠의 반쪽짜리 검에도 푸른빛의 검기가 맺혀 있었다.
진무광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가, 갑자기 어떻게?”
“덕분입니다. 조금 전부터 되더라고요.”
푸욱.
이번엔 마쿤쿠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칼날이 진무광의 가슴팍을 깊이 찔렀다. 오른손의 칼날에도 푸른빛 검기가 맺혀 있었다.
“이 한 수를 위해 아껴둔 것인가…….”
“정답입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이미 목숨을 걸고 승부를 겨루고 있는 상황. 마쿤쿠의 손속엔 망설임이 없었다.
마쿤쿠는 검날을 쥐고 있던 손을 펴고 손바닥으로 검날 뒤쪽을 쭉 밀어 진무광의 가슴을 완전히 뚫어내었다.
“크헉.”
진무광의 몸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이번 대결은 지구인의 승리였다.
* * *
칼날을 쥐고 있던 오른손이 너덜너덜해진 마쿤쿠가 비무대를 내려왔다.
진무광은 비무대 위에서 그대로 숨을 거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너덜너덜한 손을 들어 보이며 씨익 웃어 보이는 마쿤쿠를 제외하곤 이곳 오룡궁 양측 진영 분위기가 모두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음은 제갈문의 차례였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제갈문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
상대 진영에서는 다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왔다.
“묵광운이라 하오.”
“제갈문입니다. 새로운 기문진법을 개발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를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장본인이지요.”
“알고 있소.”
“손속에 사정을 두실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생각도 없었소.”
둘의 사이가 순식간에 좁혀지더니 검을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스테노가 물었다.
“비무 대결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네? 한 명 죽어 나가서 그런가?”
“그렇겠지. 게다가 지금 제갈문은 쉽게 비무대를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이번엔 최수영이 물었다.
“이기려고 올라갔다고? 벌써 조금 밀리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아마 죽으러 올라간 것 같아.”
“죽으러?”
“제갈세가를 벌하기 위한 비무 대결에서 거꾸로 무당파 무인이 죽어버렸으니. 제갈문은 아마 여기서 자기가 죽지 않으면 세가에 후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다른 제갈세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최수영이 문득 옆을 둘러보았다. 나도 최수영을 따라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제갈세가 진영의 모든 사람이 각진 턱을 하고 굳은 표정으로 비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턱 주변의 근육이 두드려져 있는 걸 보니 이를 꽉 깨물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제갈문의 몸에 검상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무공을 모르는 이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는 대결이었다.
무당의 묵광운 장로는 봐주지도, 그렇다고 급하지도 않은 검식으로 제갈문을 서서히 몰아붙였다.
콰앙.
기운이 잔뜩 실린 묵광운의 검을 받아낸 제갈문이 뒤로 한참을 밀려났다.
묵광운은 전광석화처럼 제갈문에게 날아들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흰색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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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9,2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61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