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 *
“수영아! 여기서 지원 사격해 줘. 난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는 놈들 처리하러 갈게.”
“알았어!”
스테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본격적으로 채굴한다며? 그럼 그냥 저기 마물 모여 있는 복판으로 들어가서 다 베어버리는 게 더 빠르지 않아? 전차가 쏜 포탄에 마물들 다 터지기 전에.”
“재외공관 설치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병력 손실을 줄여야 해! 안 그러면 굳이 지구 밖에 나와서 이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스테노와의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짓고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미 제법 많은 마물들이 포격을 뚫고 넘어와 전차와 군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려 우리 쪽으로 넘어온 놈들을 하나씩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틈이 날 때마다 놈들이 뭉쳐있는 곳을 향해 대천흑룡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물의 머릿수도 줄일 겸, 채굴 효율도 올릴 겸이었다.
다른 헌터들도 최전방에서 전차와 군인들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움직임이 빠른 마쿤쿠의 활약이 특히 눈에 띄었다.
푸른빛 검기가 맺혀 있는 마쿤쿠의 검이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것이 보였다.
덕분에 어느 정도 전투 라인이 정리되자 근처까지 온 마물을 베어 넘기는 횟수보다 놈들이 모인 곳으로 대천흑룡을 날리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콰과과과!
대천흑룡이 한번 놈들이 모인 곳을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의 마물이 형태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옆으로 다가온 마쿤쿠가 물었다.
“김 헌터님. 여기가 행성 094 맞지요? 몬스터와 마물이 많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이건 뭐 이 행성 마물이 여기 전부 모여 있는 수준인 것 같은데요.”
“아, 여기서 오늘 무슨 마물 집회라도 하나 보죠?”
“저도 모르겠어요. 이제 전투 라인이 어느 정도 잡힌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 보죠.”
“어떻게요? 계속 화력을 퍼붓지 않으면 금세 다시 아까처럼 이쪽으로 넘어올 텐데요.”
“사령관에게 얘기해서 한쪽 라인만 사격 중단시키고 그쪽으로 다른 헌터들 모두 모여 밀고 올라가세요. 헌터들은 코인을 모아야 하고 전차 부대는 포탄을 아껴야 하니까요.”
“김 헌터님은요?”
“저는 저 가운데로 가보려고요.”
“포탄이 이렇게 쏟아지는데요?”
“상관없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마쿤쿠가 다른 헌터들을 모으러 자리를 떠난 사이, 놈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방향으로 대천흑룡을 크게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빠르게 달려 놈들이 모여 있는 중심으로 들어갔다.
쾅, 쾅!
사방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전차가 쏜 포탄이 터질 때마다 마물들의 몸도 함께 터져 나갔지만,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진영 쪽으로 끝없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귀마왕은 지구에서 천마에게 소멸되었고, 또 다른 지도자가 있었나?
마물들이 워낙 많아 마나의 흐름을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잠시 기감을 넓혀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물들은 쉴 새 없이 내게 달려들다가 마그네타 검에 베이기를 반복했다.
“찾았다.”
해가 지는 쪽 높은 언덕 너머, 이질적인 마기가 느껴졌다.
짙고 강한 마기가 한곳에 유독 모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쪽으로 점프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렸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마물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걸어가며 주변 마물들을 베고 또 베었다.
검기를 길게 빼, 주변 마물들을 싹 다 베어버리면, 금세 또 그 시체를 딛고 다른 마물들이 모여들었다.
완전 채굴 사업장이나 다를 바 없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마물들을 처리하며 이질적인 마기가 느껴지는 언덕을 향해 계속 걸었다.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어느새 만 코인 이상이 채굴되어 있었다.
일반 마물은 인간과 동일하게 한 마리당 10NXT이었으니 어느새 천 마리 넘게 해치운 셈이다.
언덕 위에 올라 강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뭐야, 저게.”
바닥엔 마물들이 쓰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검은 구름 중심에는 발레리나 치마를 입은 마물이 둥둥 떠 있었다. 크기는 마물 중 제법 큰 정도.
그런데 마물은 옷을 입지 않는데?
자세히 보니 치마가 아닌 가시였다. 수백 가닥의 가시가 허리에서 뻗어져 나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나의 흐름을 보니 가시 하나하나가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과 반응하는 것 같았다.
가시와 마법진이 마기로 연결될 때마다 마법진 위에 마물 하나가 생겨났다.
“여왕벌 같은 건가?”
마법진에서 생겨난 마물은 잠시 몸을 삐걱대다가 이내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마법진 주변으로는 열두 마리의 유독 강한 마기를 가진 마물이 빙 둘러서 있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모두 뻥 뚫린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날 빤히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니 마물 생성 의식 중엔 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대충 파악은 끝났고. 일 초에 한 마리씩 마물이 태어나는 장면이라니, 끔찍하네.”
저것들은 그냥 저대로 두고 새로 태어나는 마물을 계속 잡아 채굴을 하면 효율이 끝내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이내 지워버렸다.
어쨌든 지금은 재외공관이 우선이었다. 이곳은 지구인들이 살아야 할 터전.
양손으로 마그네타 검을 움켜쥐고 마물이 태어나고 있는 거대 마법진을 향해 대천흑룡을 발사했다.
콰과과과!
검은 용이 맹렬한 기세로 쏘아져 내려갔다.
그때, 공중에 떠 있는 발레리나 마물 주변의 검은 구름이 순식간에 움직여 대천흑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아아.
대천흑룡은 검은 구름으로 빨려 들어갔고, 잠시 후 마법진이 그려진 땅이 파괴되며 들려야 할 굉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천흑룡은 검은 구름을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뭐야, 대천흑룡을 막아냈어? 아무 충격도 없이?”
빨아들인 건지, 기운을 흩어버린 건지 알 수도 없었다.
검은 구름 안쪽에서는 어떠한 마나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익숙한 공간감인데…….
마나가 없이 텅 빈 느낌. 랜덤박스 아이템이었던 ‘정령의 마법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을 때 느껴졌던 공간감과 흡사했다.
공중에 떠 있던 마물이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마물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꽂혀 들어왔다.
“인간.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구나.”
질 수 없지.
나도 목소리에 내력을 실어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일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네 검은 구름도 대단한데? 그런데 마물은 언제까지 새로 만들 예정이야? 어차피 내가 다 베어버릴 건데.”
“상관없다.”
“상관없어? 그럼 뭐 하러 만드는데?”
“알 것 없다.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면 나도 방해하지 않겠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방해하지 않겠다고? 내가 이 마물들을 다 베어버려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럼 쟤네들은?”
마법진을 빙 둘러 서 있는 열둘의 마물 중 하나에게 커다란 마법구를 만들어 날려보았다.
예상대로 검은 구름이 움직여 마법구의 앞을 막아냈다.
검은 구름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내가 노렸던 마물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법구는 앞선 대천흑룡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공중에 떠 있는 마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의식을 방해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대천흑룡과 검기가 이 정도로 허무하게 먹히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군.
그런데 내가 뭘 하든 저 의식만 건드리지 않으면 방해하지 않겠다니. 애써 만든 마물을 다 베어버려도 상관없단 말인가?
이러는 와중에도 마법진에서는 계속해서 각양각색의 마물이 생겨나고 있었다.
크기도, 생김새도, 느껴지는 마기도 모두 달랐다.
가만, 마기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어이, 발레리나.”
“내 이름은 귀자마모. 마물들의 어머니이다.”
“귀자마모? 귀마왕하고 비슷한 이름이네.”
“귀마왕을 만나보았는가?”
“두 번이나 만났지.”
“네놈이 내 남편을 죽인 모양이군.”
“그렇진 않아.”
“귀마왕이 자신을 두 번이나 만난 인간을 살려뒀을 리가 없을 텐데.”
천마가 살아 있었다면, 여기서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섭섭해 했겠지.
“‘천마’라고,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이 죽였다.”
일부러 천마 두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때, 할배. 뿌듯하지?
“그랬군. 어쨌든 관심 없다. 귀마왕이야 새로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
점점 내 추측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귀자마모. 너 지금 귀마왕 뽑기 하는 중인 거지?”
“뽑기?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 랜덤으로 귀마왕이 될 만한 놈이 나올 때까지 계속 마물을 태어나게 하고 있는 거 아니야?”
“…….”
마물도 당황이라는 걸 하나?
귀자마모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야. 그래도 마물들의 어머니라며. 얘네들이 다 귀마왕 감은 아니더라도 내가 죽이든 말든 상관도 안 한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수만의 평범한 마물보다는 하나의 귀마왕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지금 귀마왕 뽑기 하는 게 맞다는 거네?”
“…….”
“그럼 그걸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지.”
다시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저 검은 구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대로 둘 수도 없는 일.
사방에서 수많은 마물이 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놈들은 나에게 채굴 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귀자마모가 마물 생성 의식을 포기했는지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허리를 빙 둘러 뻗어 있는 가시들도 아래로 축 처졌고, 더 이상 마법진과 반응하지 않았다.
“의식을 방해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인간. 가라! 십이호마(十二護魔)!”
귀자마모의 외침에 마법진 주변에 있던 남다른 마기의 열두 마물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한 놈 한 놈은 귀마왕에 비해 크게 부족해 보였지만, 그래도 열둘이 동시에 다가오니 마기와 위압감이 제법이었다.
게다가 놈들을 보호하려는 듯 검은 구름이 옅게 퍼져 놈들을 감쌌다.
나는 허공섭물로 바닥의 돌을 하나 들어 구름 속으로 던져보았다.
다행히 돌이 없어져 버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기나 마법 같은 것들만 흡수되어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근접 물리 공격으로 놈들을 해치워야 한다는 건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냐. 원래 그게 더 전문인데.”
편리함에 검기나 마법구를 사용했던 것이지, 사실 이 마그네타 검의 물리 공격이야말로 가장 사기스러운 공격이었다.
베려는 마음을 먹은 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마그네타 검.
오랜만에 한번 예전으로 돌아가서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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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2,51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50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