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 *
나는 잠시 흥분한 스테노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았다.
“스테노. 이 사람들은 이 근처 작은 마을 사람들인 것 같은데. 멀고 가까움의 기준이 우리랑 다르겠지. 어쨌든 지금 우리가 나온 곳이 그리스 서쪽은 맞는 것 같으니 네 말대로 황금사과 동산까지 그렇게 멀진 않을 거야.”
“그렇지? 다른 행성에 떨어진 거면 몰라도, 여기 온 이상 빨리 에우리알레에게 가봐야겠어. 이 VR선글라스를 씌워줘야지. 수호야, 수영아. 같이 가자. 내가 지내던 동산도 구경시켜 줄게.”
“나는 당장은 같이 갈 수 없어. 이 행성에도 재외공관이 잘 설치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잖아.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빨리 가서 에우리알레를 데리고 너한테 다시 오면 되겠다.”
최수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언니, 그랬다가 우리 못 찾으면 어쩌려고요? 언니도 여기 지리를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우린 어디로 갈지도 아직 모르는데.”
“아… 그런가? 그럼 어쩌지. 기왕 고향 행성에 온 김에 에우리알레에게도 빨리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너희랑 헤어질 순 없고.”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스테노가 손뼉을 짝! 쳤다.
“아! 이거면 되겠다.”
갑자기 스테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찰랑이던 녹색 머리칼이 수백 마리의 뱀으로 변해 갔고, 여신 조각상 같던 하얀 얼굴이 사자 코와 쭉 찢어진 입을 가진 괴물로 변했다.
조금 전 스테노와 대화를 하던 마을 사람들이 기겁하고 달아났다.
스테노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다시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신을 마쳤다.
“아, 옷 벗고 변신할걸. 원피스 등 뒤에 또 찢어졌겠다. 수영아, 좀 봐봐. 등 찢어졌어?”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변했지만 목소리와 말투는 우리가 아는 스테노 그대로였다.
스테노는 자신의 등을 최수영 쪽으로 돌려 보이며 아끼는 원피스를 걱정했다.
“응, 언니. 버려야겠다, 그건.”
“에이. 이거 좋아하는 원피스인데.”
스테노의 등 뒤에서 돋아난 황금 날개 때문에 원피스 등 부위가 다 찢어져 있었다.
스테노가 거친 청동 손을 뒤로 뻗어 자기 황금 날개에서 가장 큰 황금 깃털 하나를 쑥 뽑았다.
“아얏!”
깃털이 뽑힌 자리가 아픈지 등을 연신 꼼지락대더니 만족한 눈으로 커다란 황금 깃털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내밀었다.
“자, 수호. 이거 줄게.”
“뭐야? 이별 선물이야?”
스테노가 깜짝 놀라 두 팔을 앞으로 내 뻗어 휘저으며 소리쳤다.
“이별 선물이라니! 나 너희랑 안 떨어질 거라니까!”
“농담이야. 근데 이건 갑자기 왜?”
“이걸 들고 있으면, 네가 어디 있든 내가 찾아올 수 있어. 그 게이트인가 그걸 넘어가 버리면 어떻게 될진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어.”
최수영이 다가와 황금 깃털을 빼앗아 들며 말했다.
“와, 신기하다. 언니 몸의 일부라서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는 거야?”
“응. 그리고 거꾸로 너희도 내가 어딨는지 찾을 수 있어.”
“그건 어떻게?”
“깃털을 손바닥 위에 올린 다음, 눈 감고 나를 떠올리면 돼. 지금 해봐.”
최수영이 손바닥 위에 깃털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손바닥 위의 깃털이 빙글 돌더니 스테노 쪽을 가리켰다.
눈을 뜬 최수영이 신기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되네?”
“그리고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깃털의 황금빛이 회색빛으로 바뀔 거야. 이건 뭐, 그냥 참고용으로 알아 둬. 나는 불멸의 스테노니까.”
“에이,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게 뭐 있겠어. 여기 이 지구의 영웅 김수호 헌터님의 마그네타 검으로도 못 벤 게 언니 몸인걸.”
“으, 그때 그 검에 몸 잘린 느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소름 돋아. 아무튼 난 빨리 갔다 올게. 열심히 날아가면 하루 이틀이면 될 거야.”
“에우리알레 만나고 바로 올 거지?”
“응. 걔가 따라나선다면 데리고 올 거고, 아니면 뭐 나 혼자라도 너희한테 돌아올 거야. 그런데 에우리알레도 아마 따라나서고 싶을걸? 여행에 목말라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정령의 마법 주머니에서 스테노의 캐리어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 캐리어 맞지? VR선글라스랑 충전 장비 들어 있는 거.”
“응, 그거 맞아. 그럼 빨리 다녀올게. 너희는 재외공관 설치 그거 잘 하고 있어. 아! 수호, 너 좀 세졌다고 여기선 너무 설치고 다니면 안 된다. 알았지? 올림푸스의 신이라도 만나면 까불지 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잘못한 게 없어도? 초면인데 갑자기 잘못했다고 빌면 그 신도 황당해하지 않을까?”
“그래도 일단 빌고 시작해.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래, 뭐 알았어. 스테노도 몸 조심히 빨리 다녀와.”
펄럭.
황금 날개를 움직이며 스테노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응, 갔다 올게.”
인사를 마친 뒤 스테노가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최수영에게서 다시 받은 스테노의 황금 깃털을 재킷 안주머니에 잘 넣었다.
“자, 이번 행성엔 또 어디다 재외공관을 설치해야 하려나.”
“그러게. 아까 도망간 그 마을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여기가 에페이로스 왕국인가 봐? 우선 여기 왕국 사람들하고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 봐야겠지? 사령부에 가서 얘기하자. 혹시 제갈세가 때처럼 얘기가 잘 돼서 이것저것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지. 특히…….”
“음식 말이지?”
“응.”
* * *
에페이로스 왕궁.
“마케도니아와의 동맹 건은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라.”
“예, 전하.”
“연맹 국가를 통일하는 것으로 대업이 끝이 아니었구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구나. 다른 안건이 또 있느냐?”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알현을 요청해 왔습니다.”
“로마나 마케도니아의 귀족도 아니고? 그런 떠돌이들이 알현을 요청한다고 내가 만나줘야 하는가? 그런 일은 이제 좀 경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그리하려 했으나 그자들의 복색이 워낙 특이하고 또 번쩍이는 특이한 마차를 타고 나타난지라 궁금해하실까 하여 아뢰었습니다. 그냥 돌아가라 전하겠습니다.”
“번쩍이는 특이한 마차? 혹시 말이 끌지 않는 마차를 말하는 것이냐?”
“예, 전하.”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에페이로스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1세 몰로소스 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관을 들라 하라.”
잠시 후,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신관이 궁정 회의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베일로. 그 우리 에페이로스의 몰락을 막아줄 손님에 대한 신탁을 다시 말해 보거라.”
“다시 한번 신탁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몰로소스 전하께서는 여러 지역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실 것이나 반드시 강물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신탁에 의하면 그 강물 때문에 전하의 시대는 끝이 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후엔…….”
고위 의원 한 명이 신관을 향해 소리쳤다.
“신전도 아닌 궁정 회의실에서 그게 무슨 불경한 말씀이오! 연방국들을 통일하고 우리 에페이로스가 가장 부강해진 이때!”
몰로소스 왕이 소리친 의원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이미 다 들었던 내용이니 괜찮다.”
몰로소스는 다시 신관에게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관이 다시 신탁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후엔 결국 2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에페이로스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신탁은 우리에게 조심해야 할 일들과 그것을 헤쳐나갈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 뿐, 완전히 정해진 미래를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관이 천천히 얼굴을 들어 몰로소스 왕을 바라보았다.
“신탁에 의하면, 오직 몰로소스 전하께서만 이 미래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도움을 줄 손님이 왕국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몰로소스가 입을 열었다.
“소나 말이 끌지 않아도 되는 마차를 타고 나타난다지?”
“…네, 그렇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그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손님들은 한 시간 후 알현실로 데리고 오도록 해라. 내가 직접 만나보겠다.”
“예, 전하.”
* * *
무려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왕이 기다린다는 알현실로 갈 수 있었다.
마침내 알현실 앞에 도착하자 거대하고 두꺼운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열렸다.
알현실 안은 커다란 쇼핑센터 같은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었고, 왕좌로 향하는 길에는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다.
카펫 좌우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석제 기둥이 천장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벽 높은 곳엔 커다란 창이 여러 개 뚫려 있어 알현실 안으로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붉은 카펫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왕좌로 향하는 계단 아래 있던 기사들이 멈추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들 뒤로는 열 개의 계단 위에 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왕좌가 놓여 있었다.
왕좌에는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중년 나이의 왕이 앉아 있었다.
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알현을 요청한 자들인가.”
이곳에서의 총사령관을 맡게 된 제4 부대장 올리버 중령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여기저기 발생하는 차원 이동문에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넘어온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날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지?”
“지구인들을 위한 작은 마을을 하나 만들고자 합니다. 차원 이동문으로 불시에 이곳에 떨어질 수 있는 지구인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작은 마을이라.
다른 부대장들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화법이었다. 나름 부드럽고 좋은데?
“지금 우리 왕국에 망명 신청을 하는 것인가?”
“망명이라고까지 하기엔 뭐하고, 그저 크지 않은 땅을 허락해 주시면 그 안에서 지구인들끼리 잘 지내보고자 합니다.”
“다른 마음을 품은 건지 어떻게 알고 우리가 도와주지?”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다른 지역을 찾아가 볼 수밖에요.”
아깐 작은 마을 어쩌고 하면서 부드럽게 말하더니 이제는 또 도와주지 않으면 그냥 가버리겠다고 한다.
부드럽지만 굽힘은 없는 화법.
순간 왕의 얼굴에 당혹감이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몰로소스가 이끄는 에페이로스는 그리 매정한 왕국이 아니다. 그 정도 도움을 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서로의 신뢰가 먼저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심지어 그대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닌가.”
“신뢰라… 그럼 제가 지금 명령 한마디를 하면 이 왕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런 건방진!”
갑자기?
같은 일행인 나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는 올리버 중령이었다.
당연히 몰로소스 왕의 미간이 강하게 찌푸려졌다.
우리 앞에 선 기사들은 이미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상태였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주변국과 마찰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참으로 건방진 인물이로구나.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올리버 중령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이 행성에 머물 지구인들의 사령관입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네가 돌아가 우리 왕국을 멸망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내 말 한마디면 여기 모여 있는 너희들 모두를 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올리버 중령이 몰로소스 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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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08,30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395조 6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