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 *
그제야 놀란 괴물들이 에우리알레의 눈을 피해 고개를 아래로 깔았다.
스테노도 마찬가지로 VR 선글라스를 벗었다.
“고개를 아래로 깔면 우리가 안 보이잖니, 얘들아.”
황금 날개를 쫙 펴고 낮게 날아간 스테노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크티오켄타우로스의 머리통에 청동 주먹을 날렸다.
꽝!
돌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이크티오켄타우로스가 저 뒤로 날아가 버렸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단단한 머리통이 움푹 팼다.
에우리알레의 공격도 시작되었다.
이크티오켄타우로스들은 고개를 숙인 채 청각에 의존해 단단한 집게발을 휘둘렀지만, 놈들의 공격은 고르고네스 자매 둘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이크티오켄타우로스들은 청동 주먹에 맞아 얼굴이 돌아가 버리거나, 발로 차여 가슴뼈가 내려앉거나,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돌이 되어버렸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네 다리 멀쩡하게 서 있는 이크티오켄타우로스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처음 서 있던 곳으로 돌아온 스테노가 선글라스를 다시 집어서 썼다.
곁으로 다가온 에우리알레가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언니? 다른 차원으로 다시 달아나야 하려나?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으이그. 넌 끼어들지 말라니까.”
“이미 늦었어. 계획이나 말해 봐.”
“계획 같은 건 아직 없는데? 일단 멀리 도망쳐야겠지. 네 말대로 다른 차원으로 달아나자. 이제는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도 없을 테고. 걔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으니까.”
“나는 위험에 빠뜨려도 되고?”
“그래서 너도 달아나라고 했잖아. 네가 안 가놓고는 이제 와서 날 탓하는 거야?”
“아니야. 그나저나 언니가 그렇게 끔찍이도 아끼는 그 친구들이 누군지 궁금하네.”
스테노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있어……. 귀엽고 착한 애들. 이제는 못 만나겠네…….”
“스테노!”
“어?”
느닷없이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자 저 멀리서 김수호가 최수영을 안고 날아오고 있었다.
“에우리알레.”
“응?”
“소개할게. 내 친구들.”
스테노는 저 둘이 반갑기도 하면서 왜 왔나 싶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 * *
저 아래 녹색 뱀 머리칼을 가진 괴물과 보라색 뱀 머리칼을 가진 괴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녹색 뱀 머리가 스테노니까, 보라색이 스테노의 동생이겠군.
주변에는 사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하게 생긴 몬스터 수십 마리가 돌이 되거나 몸이 으깨진 채 쓰러져 있었다.
옆으로 내려서자 스테노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왜 왔어, 여기까지?”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왔지. 역시 무슨 일이 있긴 했나 보네.”
최수영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언니, 어디 다친 덴 없어?”
“수영아, 나 마지막으로 다쳐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
“아, 맞다. 언니 불사신이지.”
“자, 소개할게. 이쪽은 에우리알레. 내 동생. 그리고 이쪽은 김수호랑 최수영. 내 친구들.”
에우리알레와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스테노에게 물었다.
“황금 깃털이 부들부들 떨리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 날아왔어. 무슨 일이야, 이게? 이 몬스터들은 다 뭐고?”
스테노가 애써 웃으며 답했다. 표정이 어찌나 어색한지 대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하하. 몰라. 갑자기 덤비더라고. 별일 아니야. 그런데 너희 안 바빠? 재외공관 설치하는 데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더니 너무 즐거워서 얘랑 같이 좀 여행하다 갈게. 먼저 돌아가.”
최수영이 물었다.
“언니. 뭘 숨기고 있는데, 지금?”
“내가? 아니야. 너희한테 숨길 게 뭐가 있어. 동생을 만나니까 생각보다 너무 반가워서, 그래서 그래. 실컷 돌아다니다가 돌아갈 테니까 너희는 먼저 가 있어. 여행이 너무 재밌으면 어쩌면 안 돌아갈지도 모르고. 하하핫.”
이번엔 에우리알레가 스테노의 어깨를 툭 쳤다.
“언니. 내가 봐도 어색해, 지금.”
“그, 그래?”
“그냥 솔직히 말해. 그리고 얘 구해 주려다 그런 거라며.”
에우리알레의 청동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나를 구해 주려고 그랬다? 스테노가 나를 구해 준 일이라면…….
“카리브디스 일 때문이구나. 그렇지?”
스테노는 당황해서 또 거짓말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에우리알레가 대신 답했다.
“응. 카리브디스는 포세이돈의 큰딸이야. 널 구하려다가 스테노 언니가 카리브디스를 돌로 만들어버렸다던데? 그래서 포세이돈이 쟤들을 보낸 거야. 아마 이번이 끝은 아닐걸? 더 센 녀석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거야. 어쩌면 포세이돈이 직접 올지도 모르지.”
나는 고개를 돌려 스테노에게 물었다.
“스테노, 사실이야? 포세이돈이 널 쫓는다고?”
스테노가 에우리알레를 나무랐다.
“야! 에우리알레. 다 말해 버리면 어떡해.”
“뭐 어때, 언니. 어차피 인간이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얘들도 알고는 있어야지. 왜 우리가 도망자가 됐는지. 그래야 우리를 기억할 거 아냐. 인간들은 쉽게 잊는다며.”
“그게 아니라…….”
“아, 됐어. 어차피 언니 거짓말 엄청 티 나서 아무도 안 믿겠던데 뭘. 이제 얼른 떠나자. 같이 있다가 언니 친구들까지 휘말리겠어. 얘네는 불사의 몸도 아니잖아.”
“그럼 우리가 도와야지.”
최수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나도 같은 생각.
“당연하지. 도와야지.”
스테노만 한숨을 푹 쉬었다.
“에우리알레, 내가 얘네들 이럴까 봐 말 안 한 거야.”
에우리알레가 말했다.
“너희가 다른 차원에서 와서 잘 모르나 본데, 무슨 영웅이나 거대 괴물한테 쫓기는 게 아니야.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이자 올림포스의 이인자라고. 무슨 말인 줄 알아? 제우스 말고는 아무도 그를 상대할 수 없어. 마음은 알겠는데 어서 돌아가 인간들. 우리 일은 우리 둘이 알아서 할게. 어디 멀리 도망가면 될 거야. 그렇지, 언니?”
“응? 응…….”
“스테노, 다른 행성에서 몇 번 보였던 세이렌도 다 포세이돈이 보낸 거겠네?”
“그땐 아니길 바랐는데, 지금 보니 맞아.”
“그럼 이제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는 거 아니야?”
“결국 찾아내긴 하겠지.”
“그럼 맞서 싸워야지.”
이건 최수영의 말이었다.
그리고 또 나도 같은 생각.
“그래. 힘을 합쳐야지.”
에우리알레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아, 답답하네! 이 인간들. 언니가 워낙 아끼는 친구들이라길래 빨리 보내주려고 했더니. 너희가 뭘 어떻게 돕는다고 그래. 언니 걱정 안 시키게 빨리 멀리 떨어져 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콰과과과과.
나는 멀리 있는 언덕을 향해 대천흑룡을 쏘아 보냈다.
그에 질세라 최수영도 순식간에 폭약을 단 화살 두 개를 반대쪽으로 날렸다.
쾅, 쾅.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
이번엔 최수영과 나의 말이 정확히 겹쳤다.
“찌찌뽕.”
“이 상황에? …뽕찌찌.”
놀란 눈으로 대천흑룡이 지나간 자리와 최수영이 터뜨린 폭발의 흔적을 번갈아 바라보던 에우리알레가 말했다.
“보통 인간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
“자, 그럼 포세이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 보자고.”
* * *
“멀리 도망쳐야 하는 게 맞다니까.”
“다른 행성까지 세이렌을 보내 널 찾았었잖아. 결국은 다시 찾아낼 거야.”
“그럼 또 도망가면 되지.”
포세이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스테노는 결단코 우리와 헤어져 멀리 떠나겠다고 하는 중이었고, 에우리알레 역시 절대로 포세이돈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도망만 친다고? 영원의 세월 동안? 그러다 잡히면?”
“그땐 뭐… 어쩔 수 없지.”
최수영이 물었다.
“사과한다거나 뭐 그런 건 소용 없겠지?”
에우리알레가 답했다.
“포세이돈은 자식들을 아끼기로 유명해. 성질이 급한 데다가 집요하기로도 유명하고. 사과하러 찾아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삼지창에 꿰뚫릴걸?”
나는 스테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려줬으면 카리브디스를 건드리지 않았을 거 아니야.”
“좀 찝찝하긴 했지만, 다른 차원 행성이었으니 포세이돈이 모를 줄 알았지. 뭐. 그리고 난 분명히 건드리지 말고 가자고 말했었다!”
“휴, 그래. 그때 분명히 그냥 두자고 했었지. 내 잘못이네. 어쨌든 바닷속에 들어가 포세이돈하고 싸울 순 없고, 여기 가만히 있으면 직접 오려나?”
스테노와 에우리알레가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로 싸울 생각이야? 올림포스의 신이랑?”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러면 스테노가 위험한데.”
“진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져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날 구해 주려다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모른 척하겠어.”
에우리알레가 스테노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언니, 말이 좀 안 통하긴 하지만 그래도 멋진 친구들을 만났네.”
“그래서 내가 반했지.”
최수영이 스테노에게 눈을 흘겼다.
“소용없어, 언니. 오빠는 내 거야.”
스테노가 밝게 웃었다.
“누가 뭐래? 수영이 네 거야 그래.”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일단 주둔지로 돌아가자. 가서 제5 부대장한테 사정 얘기를 하고, 시간을 한 달만 달라고 하는 거야. 한 달만 여기 머물다가 다음 행성으로 출발하자고. 그리고 우리는 그 한 달 동안 포세이돈을 무찌르거나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다 보면 누군가 방법을 알지도 모르잖아.”
스테노가 말했다.
“그럼 약속 하나만 해.”
“뭐?”
“나랑 에우리알레는 어차피 불사의 몸이야. 하지만 너희 둘은 아니잖아. 정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너희 둘은 몸을 피해. 수호 너라면 수영이 데리고 몸을 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알았어. 그렇게 할 테니까, 일단 포세이돈을 무찌를 방법을 찾아보자. 어디부터 가 보면 될까?”
에우리알레가 말했다.
“아무래도 포세이돈과 대척하고 있는 신이나 영웅들을 찾아가 봐야겠지?”
“그것도 좋고, 일단 포세이돈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해. 그래야 약점도 찾고, 하다못해 최후엔 인질극이라도 벌여 포세이돈을 설득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인질극?”
“응. 마지막 수단이지 뭐. 포세이돈이 아끼는 존재를 붙잡고, 스테노 널 용서해 주는 대가로 풀어주는 거지. 그래도 신인데 약속을 받아내면 그건 지킬 거 아니야.”
에우리알레가 스테노에게 말했다.
“처음에 무작정 우릴 돕겠다고 버틸 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포세이돈을 찾아가겠다는 건 줄 알았더니, 제법 머리가 돌아가네? 어쨌든 막무가내로 부딪치겠다는 건 아닌가 봐?”
“그래서 반했다니까.”
최수영이 소리쳤다.
“언니!”
“농담이야, 농담. 안 뺏을게 걱정하지 마.”
“흥, 뺏는다면 누가 뺏길 줄 알고?”
“자, 그럼 이제 같이 주둔지로 가자. 가서 말 전하고, 바로 길을 떠나보자고.”
최수영이 물었다.
“만약에 한 달 안에 해결 못 하면 어떡해?”
“그땐 뭐, 제5 부대 먼저 테라 행성으로 출발하라고 해야지. 다른 헌터들도 동행하니까 괜찮을 거야. 어쨌든 스테노를 이렇게 두고 우리만 갈 순 없으니까.”
“그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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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08,30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395조 6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