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 *
콰과과과.
대천흑룡이 마른하늘을 갈랐다.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빠르게 몸을 선회하며 내 공격을 피해 냈다.
거대한 날개에 머리 셋 달린 용, 히드라.
처음 행성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한 마리를 상대하기도 벅차서 가지고 있는 모든 코인을 신체 강화에 퍼붓게 만들었던 몬스터.
지구에선 아직도 최상 등급인 8등급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
그런 히드라가 떼로 나타나 우리를 공격했다.
“스테노! 포세이돈의 부하면 모두 바다에 사는 놈들인 거 아니었어?”
“꼭 그렇지만도 않아!”
“이 많은 히드라가 다 어디에 흩어져 있다가 모여든 거야?”
“포세이돈 성격상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우리한테 마구 보내고 있을 거고, 이 히드라들은 워낙 하늘을 빨리 날 수 있으니 금방 모여든 걸 거야!”
“한 놈만 있어도 거뜬히 도시 하나를 무너뜨린다는 놈들이 이렇게 뭉쳐서 오는 건 반칙 아니야?”
“나도 신기하던 참이야. 얘네들 인간 이상의 자아도 있고 자존심도 엄청나게 센 녀석들인데. 동시에 나타났다는 건 어디 모여 있다가 한번에 온 거라는 거잖아?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포세이돈한테 협박이라도 당했나?”
“그럴 수도 있지.”
고작 사흘 만에 벌써 다섯 차례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히드라 떼의 공격.
다섯 번의 전투 동안 대부분의 공격은 내가 했으나, 어쨌든 스테노 에우리알레 자매와 함께 싸우면 좋은 점은 확실히 있었다.
그건 바로 상대가 모두 눈뜬장님이 된다는 것.
지금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적들과 싸우고 있지만 놈들은 이쪽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으니 히드라가 떼로 몰려왔다 한들 생각보다는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놈들이 무찌르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우리 중 놈들의 두꺼운 비늘과 가죽을 뚫고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가장 강력한 폭약과 함께 쏘아 보낸 최수영의 화살도 놈들의 비늘에 그을음조차 내지 못했으며, 마나를 잔뜩 실어 날린 화살만이 겨우 비늘을 뚫고 가죽에 푹 박힐 뿐이었다.
하지만 화살이 너무 작은 탓에 그 정도의 공격은 놈들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도 처음엔 몇 번 공격을 시도하다가 터무니없는 히드라의 방어력에 혀를 내두르고는 지금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놈들의 시선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실수로 그녀들과 눈을 마주친 히드라 세 마리가 그대로 돌이 된 채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검에 베어진 놈들이 여섯.
이제 네 마리만 더 처리하면 말도 안 되는 이번 전투도 끝이었다.
콰아아아.
공중에 떠 있는 히드라 한 놈의 세 머리통이 동시에 브레스를 내뿜었다.
나는 공중에 실드 마법을 그물 모양으로 펼쳐 놈의 브레스를 막아냈다. 그리고는 커다란 마법구를 여러 개 날려 응수했다.
그러는 사이 뒤쪽에 있는 히드라 한 놈이 또 브레스를 뿜어냈다.
이번엔 실드를 펼치지 않고 놈에게 날아들며 마그네타 검을 앞으로 뻗었다.
검에는 내력도, 마나도 밀어 넣지 않았다. 그냥 원래의 검 그대로.
슈우욱.
검 주변까지 온 히드라의 브레스가 그대로 마그네타 검에 빨려 들어갔다.
정확히는 마그네타 검이 아닌, 마그네타 검 주변에 진하게 둘려있는 귀자마모의 검은 구름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그네타 검에서 귀자마모의 검은 구름을 뽑아내는 법을 알아낸 건 이틀 전 푸른빛의 초고온 불을 내뿜는 몬스터들을 만났을 때였다.
급한 마음에 한 녀석의 불 공격을 베어버리기 위해 마그네타 검을 휘둘렀는데, 검에 검은 구름이 둘리더니 놈의 공격을 그대로 흡수해 없애버렸다.
그 뒤로 몇 차례 실험을 해본 결과, 검에 내력이나 마나를 불어넣지 않은 채 적들이 쏘아낸 공격을 향해 뻗으면 검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나며 그 공격을 흡수해 버렸다.
귀자마모의 검은 구름에 내 대천흑룡과 묵빛 검기가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과 같은 원리였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마족의 힘이라더니, 이 검은 구름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은 히드라의 거대 브레스를 모조리 흡수해 없애버린 상황.
물론 귀자마모의 것이 그랬던 것처럼, 이 검은 구름은 물리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이 막아선 것이 마나 공격이 아닌 물리 공격이라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마그네타 검에 닿는 물체는 무엇이든 반으로 갈라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이제 이 마그네타 검은 모든 종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검이 된 것이다.
놈의 브레스를 모두 흡수해 버린 후, 그대로 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나를 향해 맹렬히 쏟아내던 브레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제 쩍 벌린 놈의 입과 마그네타 검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마그네타 검은 이미 브레스를 흡수하는 동안 정확히 놈의 머리통을 향해 있는 상태.
놈에게 향해있는 검에서 묵빛 검기가 쏘아져 나가 가장 왼쪽 머리통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촤아악.
그대로 검을 오른쪽으로 크게 휘둘러 세 개의 머리를 모두 목과 분리시켰다.
남은 히드라는 셋.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놈들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날아다니는 사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N캡슐 하나를 꺼냈다.
사실 혼자서 히드라 일곱을 베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거의 모든 체력과 내력을 소진한 상태.
N캡슐을 하나 까서 입에 던져넣자 거칠게 오르내리던 양어깨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다시 체력이 처음 상태로 돌아왔고, N캡슐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우두둑, 우두둑.
목을 좌우로 크게 꺾고 어깨를 뒤로 두어 번 빙빙 돌린 후, 개운해진 몸으로 놈들에게 날아올랐다.
아홉 개의 머리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오고 단단하고 거대한 세 개의 꼬리가 위협적으로 휘둘러졌지만, 체력까지 완전히 회복된 마당에 남은 세 놈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놈들을 다 처리하고 땅에 내려서자 에우리알레가 스테노에게 말했다.
“언니는 도대체 무슨 친구를 사귀어 온 거야? 쟤 혼자 히드라 열세 마리를 해치웠어.”
“정확히 말하면 세 마리는 우리랑 눈이 마주쳐서 돌이 되었지.”
“그것도 쟤 공격 피하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헤라클레스인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헤라클레스도 조카를 데려가서 불로 지져가며 겨우 히드라 한 마리를 해치웠을 뿐인걸?”
“그렇지, 참. 아무튼 말도 안 돼. 세상에 이런 인간이 있다니.”
이번엔 최수영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행성에 처음 와서 히드라 한 마리 겨우 해치웠던 게 3년 전쯤 아닌가? 그사이에 말도 안 되게 세졌네, 내 남친.”
“같이 세져 놓고 뭘 그래.”
“오빠랑 나랑 같아? 나는 아직 히드라 한 마리도 못 죽이는데?”
“나 없이 제대로 붙으면 한 마리 정도는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어쨌든.”
나는 N캡슐을 먹어서 그 어느 때보다 쌩쌩했지만, 나머지 세 여인은 꽤 지쳐있었던 터라 오늘은 이 근처에서 야영하고 내일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이미 해도 뉘엿뉘엿 산 너머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불을 피우고 간단히 식사 준비를 하며 스테노에게 물었다.
“파르테논 신전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스테노가 대답했다.
“우리 속도면 이틀 정도면 아테네에 도착하겠지만, 지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포세이돈이 보낸 몬스터의 공격을 받다가는 며칠 더 걸리겠지?”
“부디 파르테논의 그 젊은 신관이 우리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벌써 세 도시의 가장 유명하다는 신관과 점술가한테 물어봤는데 모두 대답이 같았잖아. 하나같이 그 젊은 신관을 찾아가 보라고. 이름이 뭐랬더라?”
“클레버.”
“그래, 클레버.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신들과 가장 가깝게 교감을 한다는 신관이라니까, 그라면 분명 뭔가 해결책을 알려줄 거야.”
“그래.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뭐 도움될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있겠지.”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 날아갔다.
“오늘은 오전이 다 가도록 별다른 공격이 없네?”
“다행이지 뭐. 어쨌든 빨리 이동하자고.”
그때, 나에게 매달려 있는 최수영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저기 누가 있는데?”
최수영의 말에 고개를 내려보자 금발 머리를 한 소년 한 명이 오르토스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르토스는 거대한 개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머리엔 뱀의 머리가 둘 달린 몬스터였다.
“오르토스잖아?”
“쟤네 히드라를 항상 따라다니는 그 개 아니야?”
“맞아. 히드라가 사는 곳 주위엔 항상 오르토스들이 지키고 있었지.”
“저 사람, 구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 갈 길도 바쁘긴 한데.”
그때 스테노가 옆으로 날아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를 잡으러 온 히드라 중 한 놈을 따라나선 오르토스들인 것 같아. 히드라의 속도를 못 따라가고 뒤늦게 오는 길인 게 아닐까?”
최수영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쨌든 우리 때문에 저런 상황이 벌어진 거잖아? 저 사람 한 명 구해 주고 가는 데 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은데. 구해 주고 가자, 오빠.”
“뭐, 듣고 보니 그렇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런 숲길에 오르토스가 나타날 일도 없었겠지. 얼른 도와주고 가자.”
방향을 틀어 오르토스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소년에게로 내려갔다.
소년은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 별로 단단해 보이지도 않는 나무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오르토스들은 마치 다 잡은 사냥감이라는 듯 느긋하게 소년을 에워싸고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소년과 오르토스들 사이에 사뿐히 내려섰다.
스테노와 에우리알레는 아예 땅에 내려오지도 않고 하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르토스 열댓 마리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리고 나와 최수영은 하늘에 떠 있는 두 자매의 기대에 정확히 부응해 주었다.
주변의 오르토스가 모두 깨갱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몸통은 개지만 분명 머리는 뱀의 것인데 깨갱 소리를 내는 것이 옛날부터 영 적응되지 않는 몬스터였다.
놀란 눈으로 최수영과 나를 바라보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야. 아무래도 우리 때문에 네가 위험에 처한 것 같아 도와준 거야.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아닙니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저는 이대로 저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최수영이 웃으며 말했다.
“예의가 바른 소년이네.”
“아! 예의! 맞다! 제 소개를 먼저 할게요. 제 이름은 디아스입니다. 이 숲 북쪽 마을에 살고 있어요.”
“그래. 나는 김수호고, 이쪽은 최수영이라고 해. 저 오르토스들이 이 주변에 더 나타날지 모르니 어서 마을로 돌아가.”
“…마을로 돌아갈 순 없어요. 저는 지금 아테네에 가는 길이거든요.”
“너 혼자? 여기서 꽤 먼데?”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의 신전에 꼭 가야 할 일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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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210,60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1,411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