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 * *
최수영이 옆에서 이를 아득 갈았다.
“아무튼 나쁜 놈이야. 후지로 그 일본 놈.”
“아시는 사이인가 보군요. 몬스터 토벌에 한참 열을 올리다가 얼마 전 자기 추종자들과 함께 돌연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몬테넬은 왜 시엠브레와 전쟁을 치르게 된 건가요? 원래는 한편이었잖아요.”
“그건 라트니아와의 전쟁까지였을 뿐입니다. 그 이후, 시엠브레에서는 숲 복원 마법에 대해 알고 있는 라트니아의 마법사들을 모두 시엠브레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 기술을 자신들만 독점했지요.”
“시엠브레 놈들 하는 짓 답군요. 사무엘 대마법사의 지시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놈들은 처음부터 숲 복원 기술을 다른 나라와 공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울창한 행성 055의 숲을 두리번거리던 다른 기사가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놈들이 사는 중앙 대륙의 숲들은 하나둘 살아난다는 소문이 들리고, 나머지 네 왕국은 점점 더 먹고 살기가 궁핍해졌습니다. 시엠브레가 자급자족을 시작하니 그나마 있던 제국과의 무역도 모두 끊겨버렸죠.”
“그랬겠군요.”
“그래서 몬테넬, 세바니아, 에르갈, 마리노, 그리고 멸망 직전이긴 하지만 아직 왕국이긴 한 라트니아까지. 다섯 개 왕국은 연합군을 결성해 시엠브레를 치고 숲 복원 기술을 빼내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연합군에 키르칸도 참여한 거군요?”
“키르칸까지 알고 계십니까? 아, 매튜 군단장님을 잘 아신다고 하셨죠.”
“네. 키르칸에도 머물렀었고요.”
“모든 왕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저 작은 마을인 줄만 알았던 키르칸의 전력이 연합군에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으니까요.”
* * *
약 한 달 후.
박현준 대대장에게 요청해 진격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제5 부대는 한 달 만에 무려 다섯 번의 게이트 통과를 거친 끝에 테라 행성에 도착했다.
“남반구는 아니어야 할 텐데. 수영아, 난 높이 올라가서 여기가 어딘지 우선 살펴볼게.”
“응, 알았어.”
마나를 운용해 하늘 높이 몸을 띄워 올렸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저 멀리 동쪽으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맥이 보였다.
산맥 아래쪽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마을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마을 입구에 내려서자 가까이 있던 어린 소년 하나가 나를 알아보았다.
“어? 용사님!”
“나를 알아?”
“그럼요! 우리 마을 사람들이 도적단에 잡혀 있는 걸 구해 주셨잖아요. 용사님 얼굴을 어떻게 잊겠어요.”
독수리 발톱 도적단 북부 지부를 치러 갔을 때 구해 준 소년인 모양이었다.
“그럼 여긴 북부 사막 어디쯤이겠구나?”
“네! 어서 마을로 들어가요. 마을 사람들이 용사님 오신 걸 알면 엄청나게 기뻐할 거예요.”
사실 그땐 최수영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던 놈들을 벌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마을을 구해 준 용사가 되어 있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한눈에 나를 알아보는 걸 보니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소년은 내 팔을 잡고 마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큰 소리로 마을 어른들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대었다.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그러면 여기서 몬테넬 왕국까지는 얼마나 떨어져 있어? 몬테넬 왕국 동쪽 항구로 급히 가야 하거든.”
소년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또박또박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몬테넬 왕국까지는 걸어서는 열흘 정도 걸린다고 알고 있어요. 가본 적은 없지만요.”
“그래? 고맙다.”
“용사님도 전쟁에 참여하시나요? 용사님은 남반구 출신이니까 연합군의 편이겠지요? 연합군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나도 여기 넘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 일단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 이것저것 알려줘서 고맙다.”
갑자기 옆에 있던 창고로 뛰어간 소년이 양손에 큼지막한 감자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이거 가져가세요.”
“그래, 고마워.”
소년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후 다시 부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몬테넬의 기사 세 명은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두머리 기사가 물었다.
“어딘지 확인하셨습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남반구는 아닌 것 같던데요.”
“네. 몬테넬 북서부에 있는 사막 지대더군요. 동쪽으로 빨리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 이미 날짜가 너무 많이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이미 제2 군단은 시엠브레로 향하는 강을 건넜을지도 모릅니다.”
“매튜 남작님께는 제가 먼저 가 볼게요. 그게 제일 빠릅니다. 세 분은 차라리 몬테넬로 돌아가서 다음 전투를 대비하세요.”
“직접 가신다고요?”
“네. 제가 가서 강을 건너지 말라고 전할게요.”
이미 내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터라 기사들은 자기들끼리 내가 가는 게 더 낫겠다는 대화를 짧게 나누었다.
“그럼 저희는 몬테넬 군에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은혜를 갚는 일이니까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최수영을 돌아보고 말했다.
“수영아, 넌 여기 남아서 제5 부대와 함께 움직여 줘. 나는 매튜 남작님에게 먼저 갔다 올게. 제5 부대와 함께 몬테넬 왕국 동쪽으로 와. 빨리 달리면 내일 늦게나 모레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빨리 가 봐. 몬테넬 동부 항구 도시에서 만나.”
“알았어. 그럼 난 먼저 간다.”
* * *
“군단장님! 출발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알겠다.”
부장의 보고를 받은 매튜 남작이 옆에 서 있는 대니스 장군에게 말했다. 대니스 장군은 섬나라인 마리노 왕국의 해상 부대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둘은 모두 다 번쩍번쩍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진 불사인이었다.
“장군님, 마리노 왕국에서 이렇게 배를 지원해 주신 덕분에 계획한 날짜에 맞춰 도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감사하다니요. 우리 모두의 전쟁 아닙니까. 당연히 협력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마리노 왕국에 아무리 배가 많다고 한들 군단장님이 안 계셨다면 감히 시엠브레의 영토를 침범할 계획은 세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밤이로군요. 계획대로 내일 오전에는 마법사의 탑을 포위하고 있어야 할 텐데요.”
“작전은 성공할 겁니다. 동대륙의 세바니아 왕국과 에르갈 왕국에서 시엠브레를 끈질기게 괴롭혀준 덕분에 대부분 병력이 동부 전선으로 가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성공해야죠. 여기까지 오는 데도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의 희생이 서대륙과 동대륙의 숲을 되살리게 될 겁니다.”
“자, 출발합시다. 시엠브레 제국 놈들의 이기심을 끝장내러.”
“네! 군단장님. 가시죠.”
매튜 군단장과 대니스 장군이 배에 오르자 수백 척의 크고 작은 배가 조용히 강물을 가르기 시작했다.
중앙 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시엠브레 제국. 그 중앙부에 황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마법사의 탑은 서부에 우뚝 솟아 있었다.
서대륙의 몬테넬 왕국, 라트니아 왕국. 그리고 섬나라인 마리노 왕국의 연합군은 이 강을 건너 곧장 마법사의 탑까지 진격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시엠브레의 병력이 서부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일 아침에는 동대륙의 세바니아 왕국과 에르갈 왕국의 주력 병력이 동부 전선을 더 밀어붙이도록 약속되어 있었다.
촤악, 촤악.
그렇게 매튜 군단장이 이끄는 연합군 제2 군단은 강에 비치던 달빛을 수십, 수백 개로 쪼개며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뱃머리에 서 있던 매튜 남작이 입을 열었다.
“저 멀리 시엠브레의 땅이 보이는군. 모두 단단히 준비해라. 정찰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
쿠웅.
“누구냐!”
매튜 남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배 한가운데 누군가 올라선 모양이었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검을 빼 들고 침입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배 한가운데 누군가 올라서다니? 아직 강 한복판인데?
‘보통 자가 아니다!’
사태를 파악한 매튜 남작이 검을 빼 들고 배 중앙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매튜 남작님!”
“김…수호?”
“이게 얼마 만입니까!”
“아니, 갑자기 여긴 어떻게?”
“얘기하자면 깁니다. 우선 배를 돌리세요.”
“갑자기 나타나 배를 돌리다니?”
“정보가 새어 나갔습니다. 이미 시엠브레의 정예군이 연합군이 배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정보는 어떻게 들었어!”
* * *
나는 품속에서 몬테넬의 기사에게 받은 서신을 꺼내 매튜 남작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전해 주러 가던 몬테넬의 기사들을 만났습니다. 어서 확인해 보시고 배를 돌려야 합니다.”
급히 서신을 펼쳐 확인하던 매튜 남작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마법사의 탑을 공략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있던 행성의 군인들도 함께 왔어요. 오면서 이미 연합군을 돕기로 얘기를 다 마쳤고요.”
박현준 대대장과는 이미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연합군의 전쟁을 돕고 숲 복원 기술을 얻어 평화롭고 안전한 곳에 재외공관을 만드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엠브레 제국의 횡포 하에 있는 이 행성에서 지구인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시엠브레가 지구인들을 환영할 리도 없었다. 아예 지구를 삼키려던 계획을 세우던 자들이 아닌가.
“수호, 자네가 꽤 대단한 일을 벌이고 이 행성을 떠났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번 전쟁은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라네.”
“그래서 돕겠다는 겁니다. 일단은 배를 돌리고, 다시 작전을 세우시죠. 분명히 시엠브레를 완전히 끝장낼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노 왕국 문양이 박힌 갑옷을 입은 기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디서 온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시엠브레 제국을 끝장내다니? 마법사의 탑을 포위하고 그들을 겁박해 숲 복원 기술을 빼내는 이 작전을 위해서만도 벌써 이 년의 세월이 필요했소. 시엠브레 제국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말이오.”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왔으니까요.”
마리노의 기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나는 마리노의 해상군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대니스 장군이라 하오.”
“저는 김수호라고 합니다. 다른 행성에서 왔죠. 예전에 왔을 때 시엠브레 마법사의 탑을 발칵 뒤집어 놓고 갔었는데 혹시 모르시나요?”
“아, 그 마법사의 탑에 침투했다던 남반구 검사 말이오? 그게 당신이오?”
“맞습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매튜 남작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그때도 엄청난 청년이었지만, 확실히 지금은 뭔가 더 달라졌군.”
“어서 배 돌리시죠. 아무리 오늘이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도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는 범의 아가리에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좋아. 일단 오늘은 돌아가도록 하지. 설사 마법사의 탑을 포위할 수 있다고 해도 놈들이 미리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 쪽의 피해 역시 막대할 터. 퇴각 깃발을 올리고 뱃머리를 돌려라!”
“잘 생각하셨습니다. 매튜 남작님. 아니, 군단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새삼스럽게 무슨. 자네는 우리 연합군 소속도 아니지 않은가. 매튜라고 부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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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17,6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788조 1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