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 * *
이틀 후.
몬테넬 왕국 동부 항구 도시.
연합군 제2 군단 통합 사령부 임시 건물.
“그러니까 저 ‘전차’라는 것이 불을 뿜으면 한 번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적군을 해치울 수 있다는 것입니까?”
매튜의 질문에 박현준 대대장이 답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곳의 불사인 기사와 마법사들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매튜가 이번엔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수호? 불사인들과 많이 싸워본 경험으로는, 저 전차가 불사인 기사와 마법사에게도 통할 수 있겠는가?”
“지구에 침공해 왔던 불사인들에게는 충분히 통했습니다. 하지만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강한 실드 마법을 펼쳐낼 줄 아는 상급 기사와 고위 마법사에게는 아마 안 통할 겁니다.”
“흠… 어쨌든 대규모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겠군. 혼전이 펼쳐지기 전 적진에 포격을 퍼부으면 우리 쪽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겠어.”
현대전을 경험해 보지 못한 매튜 남작이지만, 놀랍게도 전차 대대의 활용 방법을 단번에 짚어냈다.
“하지만 문제는, 저 거대한 전차들을 시엠브레 제국의 영토까지 이동시키는 것이군.”
마리노 왕국의 대니스 장군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저런 엄청난 것을 태울 수 있는 배는 채 세 척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들키지 않고 계속 왕복해야 한다는 건데…….”
“마법진을 이용하면 됩니다.”
내 말에 좌중의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마법진? 수호, 안타깝게도 그렇게 큰 마법진을 운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우리 연합군에 남아 있지 않네. 라트니아의 고위 마법사들이 있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두 죽거나 시엠브레에 잡혀갔지. 지금은 겨우 분대나 소대 인원 정도를 워프할 수 있는 마법사가 전부일세.”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매튜 남작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수호 자네가?”
“레온에게 배웠거든요.”
이번엔 조금 전보다 세 배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온? 우리 키르칸 마을의 그 레온 말인가? 그 아이가 살아 있나? 지금 어디에 있지?”
“물론입니다. 지구에서 대마법사 노릇을 하고 있지요.”
“그게 정말인가?”
“네. 지금은 지구에 마법 아카데미를 설립하기 위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아카데미? 어쨌든 다행이군, 다행이야.”
“나중에 여기 전쟁이 끝나고 나면 같이 한번 만나러 가시죠. 레온이 엄청 좋아할 거예요. 마법사가 된 것도 다 매튜 남작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놈이 소질이 있어서 된 것이지. 나는 책 몇 권 사다 준 것밖에 없네.”
나는 사실 저렇게 큰 전차들을 한 번에 워프시킬 대형 마법진을 그려낼 정도의 마법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지구에 있을 때 레온에게 도면을 미리 그려달라고 했고, 그 도면은 휴대폰에 잘 저장되어 있었다.
마법진이야 도면대로 따라 그리면 될 일이고, 마나 운용은 이제 물 마시는 것처럼 쉽고 자연스러우니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이번엔 몬테넬 왕국의 마르코 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시엠브레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첩자를 보내 마법진을 그리기 적당한 위치를 찾아보겠소.”
“그래 주시면 고맙죠.”
마르코 장군은 이번엔 최수영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전서구가 도착했는데, 소피아가 급히 출발했다고 하오.”
“아, 정말요? 고마워요, 마르코 백작님.”
마르코 장군은 이미 최수영과 아는 사이였다.
그는 과거 몬테넬 왕국의 활쏘기 대회에 최수영이 용병으로 참가했던 가문, 콘티넬 가의 가주.
북부 사막에서 험한 일을 겪을 뻔한 최수영을 도와주었고, 최수영과 함께 활쏘기 대회에 참가했던 소피아의 아버지였다.
“그렇소.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것이오. 소피아가 무척 그리워했다오.”
“저도 빨리 다시 만나보고 싶네요.”
“자, 다시 전쟁 얘기로 돌아가서, 오늘 밤에 바로 첩자를 보내 마법진 설치 후보 지역을 추려보겠소. 대규모 병력도 상륙을 해야 하니 배를 댈 수 있는 곳 근처여야겠지.”
매튜 남작이 말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제2 군단 주력 병력은 언제든 출진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매튜 남작이 주변 장군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법진이 준비되는 대로, 제2 군단 주력 병력이 먼저 상륙합니다. 병력이 마법진을 지나쳐 진군하면 그때 지구의 전차 부대를 워프시킵니다. 전차 부대는 우리 병력 바로 뒤에 따라붙습니다. 그러다 적을 만나면 먼저 포격을 퍼부어 주세요.”
박현준 대대장이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전차가 앞서는 게 맞지만, 이곳엔 전차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불사인 기사들이 있다고 하니 매튜 군단장님의 말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포격이 끝나면 바로 전투를 시작합니다. 연합 기사단은 특별히 빠르게 진군에 적군의 불사인 기사들을 담당합니다.”
연합 기사단은 연합군 소속 불사인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몬테넬과 라트니아 출신으로, 시엠브레에서 기사 작위를 받아 불사인이 되었으나 조국의 부름에 응해 연합군의 편에 선 사람들.
시엠브레의 불사인들에 비해선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연합군에 있어선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수호는 우리 연합 기사단과 함께 움직여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큐브가 깨지는 바람에 사무엘 대마법사와 가엘 기사단장과도 끝을 보지 못했었는데요. 이번이야말로 다시 결판을 낼 때인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만만한 자들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와 박현준 대대장님이 도울 테니 이번 전쟁의 목적을 다시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마법사의 탑을 겁박해 숲 복원 마법을 빼 오는 것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테라 행성을 장악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시엠브레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겁니다.”
마리노 왕국의 대니스 장군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쪽 말만 믿고 무턱대고 전면전을 펼칠 수는 없는 일이오. 그랬다가 실패하면 그 뒷감당은 누구의 몫이란 말이오.”
“실패할 리 없습니다.”
“매튜 남작님도 인정한 실력자라는 건 알겠으나, 당신의 말만 믿고 수만의 기사와 병사들을 사지로 몰 수는 없는 일이오.”
“그 마음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거 뭐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연합군 제2 군단과 우리 전력만으로도 시엠브레를 무너뜨리는 것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제1, 제3 군단 없이도 말입니까?”
“뭐, 그 두 부대는 지금처럼 동부 전선을 괴롭혀 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매튜 남작이 입을 열었다.
“우리 다섯 왕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일세. 자칫 잘못했다간 시엠브레에게 모두 멸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수호 자네가 이해해 주게.”
“물론 이해합니다.”
“그럼 오랜만에 나와 대련을 한번 펼쳐보는 것이 어떤가? 그 모습을 보면 장군들도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이네.”
“좋습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그럼 매튜 군단장님과 저의 대련도 보시고, 내친김에 전차의 화력도 한번 보시죠.”
마르코 장군이 화답했다.
“안 그래도 전쟁의 방향을 바꾼다니 긴가민가하던 차였는데 그렇게 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저 전차라는 무기의 화력도 무척 궁금하군요.”
대니스 장군도 답했다.
“좋습니다. 그 후에 전쟁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논의를 해보도록 하죠.”
“그러죠. 지금 바로 진행할까요?”
* * *
콰앙!
K-2 흑표가 쏜 직사포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바위산을 타격했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K-2 흑표의 화력을 지켜보았다.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
박현준 대대장의 말과 함께 이번엔 K-9 자주포의 포신이 하늘을 향했다.
퍼엉!
피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된 155밀리미터 곡사포탄이 공기를 찢으며 하늘 높이 날아갔다.
잠시 후.
콰아앙!
수십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산 정상에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타격 충격으로 인한 진동이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지켜보던 사령부 장군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내 차례였다.
넓은 마당에 매튜 남작과 마주하고 섰다.
“수호. 기운이 너무 깊고 넓어져 이제 그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게 되었군.”
“그동안 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검기는 충분히 다룰 수 있게 되었겠지?”
“그것뿐이겠습니까?”
양 손바닥을 위로 펼치자 순식간에 사람 머리통만 한 마법구 열댓 개가 생성되어 내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헙.”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몇몇 마법사 출신 장교들이 헛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자, 매튜. 받아보세요.”
내 손짓에 따라 마법구들이 시간 차를 두고 매튜에게 날아갔다.
매튜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맺히더니 마법구를 쳐내기 시작했다.
쾅, 콰앙!
매튜의 검기와 마법구가 부딪칠 때마다 조금 전 전차 포격 시범에서 들려왔던 정도의 충격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법진도 다룰 수 있다더니, 아예 마법사로 전직을 한 것인가?”
“아니요.”
나는 마그네타 검을 꺼내 들었다.
마그네타 검에서 묵빛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대단한 기운이군.”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딱 매튜의 검과 닿을 거리까지. 그만큼만 길어진 묵빛 검기가 매튜를 배어들어 갔다.
매튜가 검을 들어 내 검기를 막아내려 했다.
피하는 게 좋을 텐데. 하지만 매튜의 몸에 닿지는 않게 검기의 길이를 조절했으니 상관은 없었다.
콰직!
제법 짙은 검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매튜의 검기와 검이 맥없이 잘려 나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내 검기 끝을 바라보았고, 그중 가장 놀란 눈을 한 사람은 매튜 남작이었다.
“이, 이게 무슨.”
“내친김에 하나 더 보여드리죠.”
콰과과과!
대천흑룡이 매튜 옆을 지나 저 멀리 들판을 헤집고 지나갔다.
대천흑룡이 지나간 자리엔 둥그런 골이 파였다.
“자, 이제 다시 전쟁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볼까요?”
* * *
오후 회의를 마치고 숙소에 누워 있는데 예의도 없이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렉스!”
문밖엔 예의는 잠시 접어두고 반가움을 표현할 만한 사람 둘이 서 있었다.
“폴! 에릭!”
“정말 돌아왔군요! 렉스가 돌아오다니!”
“너희들 보러 다시 온다고 했잖아. 하하. 그리고 이제 신분을 숨기거나 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다시 수호라고 불러줄래?”
“알겠어요, 수호. 매튜 남작님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아니, 도대체 언제 온 거예요? 그리고는 나타나자마자 제2 군단의 뱃머리를 돌리라고 소리쳤다면서요? 그리고 아깐 매튜 남작님과 대련도 했다던데?”
예전과 다름없이 말을 속사포로 쏟아내는 폴이었다.
목소리와 말투는 그대로였는데 안 본 사이 몸은 제법 다부지게 변해 있었다.
키도 꽤 자랐고, 온몸의 근육에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게 훈련을 열심히 한 것 같았다.
전보다 훨씬 다부져 있는 건 에릭도 마찬가지였다.
“너희 둘, 꽤 강해졌네? 연합군에 소속되어 제법 성과를 내고 있다며?”
“그럼요! 우리는 이번 전쟁이 끝나면 키르칸의 기사단이 될 예정이라고요!”
“기사단? 어느 왕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을 계획인데?”
“키르칸이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매튜 남작님께서 키르칸을 다시 왕국으로 선포하실 계획이라고 하셨어요.”
* * *
6월 30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17,6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788조 1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