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숲 전쟁 】
“폴! 그 얘기는 우리 키르칸 사람들만의 비밀이잖아!”
“뭐 어때, 에릭.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호인데.”
“하긴 뭐.”
“이야, 키르칸이 다시 왕국이 되는구나. 나 없는 사이에 뭐가 많이 변했나 보네.”
“다 수호 덕분이에요. 그 몬스터 가죽을 시작으로 무역량과 종류를 늘려 마을이 부자가 되었다고요. 먹을 게 항상 부족한 건 똑같지만… 그것도 이번 전쟁에 승리하고 나면 해결이 될 거잖아요? 게다가 수호가 우리 편이라니! 이번 전쟁도 반드시 승리할 거예요. 그럼 우리 마을이 진짜 왕국이 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키르칸의 왕족은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초대 왕은 국민 투표로 뽑을 거예요. 뭐, 해보나 마나 매튜 남작님이 뽑히겠지만요.”
“왕을 투표로 뽑는다고?”
“네!”
“대단하네.”
에릭이 물었다.
“수호가 매튜 남작님에게 말해 줬다면서요? 수호가 있는 곳에서는 투표로 왕을 뽑는다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해주긴 했지.”
“매튜 남작님은 키르칸 왕국의 부활을 고민할 때 수호와 했던 대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했어요. 더 나누고 싶은 대화가 많다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이번 전쟁이 끝나면 가능하겠군요.”
“그래. 지금은 이 전쟁이 우선이니까. 길게 끌수록 식량이 부족한 연합군이 불리하잖아.”
“맞아요. 숲을 되살릴 수 있는 기술을 자기들만 독점하다니. 시엠브레 제국 사람들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내 생각엔 불사의 몸을 얻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본인들만 영원히 누리고 살면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속국에 대해선, 결핍이 있어야 영원히 기어오를 생각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매튜 남작님은 불사인의 몸이 된 게 저주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남작님에겐 저주일지 몰라도, 덕분에 키르칸을 잘 지켜오셨잖아. 불사의 몸을 얻고도 천 년 동안 자기 배를 불릴 생각밖에 안 하는 놈들이 문제지.”
* * *
시엠브레 제국, 마법사의 탑.
대마법사 사무엘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기사단장 가엘에게 물었다.
“놈들이 이틀 전 갑자기 배를 돌려서 돌아갔다는 말이지? 그러고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계속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걸 봐서는 곧 다시 강을 건너긴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기습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아낸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쪽 대륙의 연합군이 그러고 있는 덕분에 동쪽 전선 연합군들만 우스운 꼴이 되었습니다. 물러서지도 진격하지도 못하고 계속 병력만 갉아먹고 있습니다.”
“제2 군단장 매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터. 그런데도 저러고 있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참에 우리 쪽에서 먼저 기사단을 끌고 강을 건너 놈들을 완전히 격파해 버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말했다시피 그럴 필요 없다. 제풀에 무너지거나, 이곳 마법사의 탑을 향해 자살하러 달려들거나. 놈들의 선택지는 이 두 가지뿐이야. 그리고 두 가지 결과 모두 놈들에 대한 통치를 더욱 강하게 펼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그렇군요. 그럼 기사단은 그대로 강변에 주둔시켜 두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연합군 제2 군단 통합 사령부 임시 건물.
“상륙 예상 지점마다 기사단이 지키고 있어 대형 마법진을 설치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마법진이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라면 주력 병력이 강을 건너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부하들을 시켜 마법진 설치 지역을 찾아보겠다던 마르코 장군이 썩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왔다.
매튜 남작이 입을 열었다.
“놈들도 우리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머지않은 시기에 다시 강을 건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대니스 장군도 말을 보탰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작전이 틀어졌다간 동부전선의 피해가 더욱 막심해질 겁니다.”
“그렇소. 강을 건너긴 건너야겠지. 수호, 그 대형 마법진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그렇게 크고 복잡한 마법진을 틀린 부분 없이 제대로 그리려면…….
“넉넉히 30분 정도요?”
“그것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제가 좀 빠르거든요.”
마르코 장군이 앞에 있는 테이블을 ‘탁’ 쳤다.
“그렇다면 우리 연합군의 기사단을 함께 보내 마법진을 그릴 시간을 확보하면 되겠군요.”
“맞습니다. 지금처럼 강변을 시엠브레의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이상 어차피 주력 병력의 상륙도 쉽지 않습니다. 기사단을 먼저 보내고, 마법진으로 전차 부대를 이동시킨 후 주 병력이 상륙하는 순서로 작전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매튜 남작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마르코 장군과 대니스 장군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이대로 계속 작전이 미뤄져서는 우리만 더 불리해질 뿐이니.”
대화를 듣고 있던 박현준 대대장이 강물 사정에 가장 빠삭한 대니스 장군에게 물었다.
“상류 쪽으로 가면 수심이 좀 얕아지지 않습니까?”
“그건 물론입니다만, 강 규모가 워낙 커 한참을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박현준 대대장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김 대표님, 부교 시설이 없어 깊은 강은 건널 수 없지만 우리 K-2 흑표는 깊이 4.1미터의 강까지는 도하가 가능합니다.”
“상류로 가면 전차가 자력으로 강을 건널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K-9 자주포는 강을 건널 필요도 없이 이쪽에서도 사격 지원이 가능하고요.”
이번엔 내가 대니스 장군에게 물었다.
“어떤가요, 대니스 장군님? 상류로 가면 우리가 있는 이 건물이 겨우 잠길 만한 깊이가 있을까요?”
매튜 남작을 포함한 키가 큰 불사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위해 통합 사령부 임시 건물은 꽤 높은 층고로 지어져 있었다. 대략 4미터 정도.
“있긴 합니다만, 그럼 대신 그쪽으로는 우리의 대형 선박이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럼 됐어요. 양동 작전으로 가시죠.”
“병력을 나눈다는 말씀이십니까? 위험합니다. 시엠브레 불사인 기사단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본 병력은 그대로 유지하시고, 연합 기사단 병력의 사 분의 일 정도만 저희 쪽으로 배치해 주세요. 우리가 먼저 강 상류를 건너 이목을 집중시키겠습니다. 그곳에서 충분히 소란을 피울 테니, 시엠브레 기사단이 상류 쪽으로 이동하면 그때 연합군 본 병력은 강을 건너주세요.”
매튜 남작이 말했다.
“그래서 마법사의 탑에서 만난다는 작전이군. 하지만 그건 지구인 부대에게 너무 위험한 작전일세. 기사단에 마법사들까지 그쪽으로 몰려가면 아무리 전차 부대라 한들 쉽지 않을 것이야.”
“우리 쪽엔 전차 부대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가볍게 손바닥을 펴내 가슴을 두어 번 톡톡 쳤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매튜 남작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수호 자네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혼자보다 여럿이 낫지요.”
* * *
K-2 흑표 전차와 해병수륙양용장갑차로 이루어진 부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북쪽을 향해 내달렸다.
박현준 대대장은 K-9 중대와 함께 몬테넬 항구 도시에 남았고, 이쪽 상륙 작전 부대의 지휘는 작전장교가 맡았다.
“소령님. 이 정도면 꽤 상류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요?”
“네, 김 대표님. 이쯤에서 수심을 한번 측정해 보겠습니다.”
수륙양용장갑차가 강을 건너며 수심을 측정했다. 강 건너편에 도착한 장갑차에서 무전이 왔다.
- K-2 흑표 도하 가능. 깊이 확인 완료. 이상.
“양호. 이상.”
전차가 줄지어 강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물 깊이는 포신 끝이 겨우 보일 만한 상태.
나는 공중으로 몸을 띄워 강 건너편 상황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엔 시엠브레의 기사단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땅으로 내려선 후 불사인 스무 명 정도가 들어갈 크기의 마법진을 바닥에 그렸다.
우리 쪽에 배정된 연합 기사단 소속 불사인 스무 명을 강 건너로 워프시키기 위함이었다.
강 서쪽에 하나, 강 동쪽에 하나. 두 개의 마법진을 완성한 후 기사들을 강 동쪽으로 워프시켰다.
그즈음 전차들도 대부분 강을 건너왔다.
전차 열 대, 장갑차 다섯 대.
연합 기사단 불사인 스무 명.
나, 최수영.
이렇게 구성된 부대의 시엠브레 북부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다.
저 멀리 남쪽에 혼자 우뚝 솟은 마법사의 탑이 보였다.
“자, 목표는 저기 저 탑입니다. 거침없이 내려가면서 최대한 요란하게 전투를 벌이는 게 우리 임무입니다. 출발하시죠.”
“전원, 출발.”
작전장교의 지시와 함께 전차들이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사막화된 테라 행성의 공기가 어찌나 건조한지 방금 강을 건너온 전차의 표면이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두두두두.
천 년 넘게 테라 행성의 패권을 쥐고 있는 시엠브레의 영토에 한 번도 들려온 적 없던 전차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차와 장갑차의 강철 궤도는 메마른 시엠브레의 땅을 마음껏 휘저으며 앞으로 나갔다.
- 전방 2킬로미터 지점 적 진지 발견. 불사인 부대로 보인다. 이상.
- 사거리 내에 들어오는 대로 바로 포격하라. 이상.
가장 앞서 달리던 전차 한 대가 좌측으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일렬로 이동하던 전차들이 삽시간에 산개하며 흩어졌다.
퍼엉! 펑!
전차의 포신에서 불꽃이 튀며 격발음이 대지를 울렸다.
콰앙! 쾅!
곧이어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흙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전차를 따라오던 우리 쪽 불사인들이 멍하니 멈춰 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몇몇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제법 많은 수가 모여 있던 기사단 진영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포격을 버텨내지 못한 불사인들은 몸 여기저기가 절단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 방패나 실드로 포격을 막아낸 불사인 기사들이 다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김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그냥 놔두세요, 소령님. 우리는 이대로 천천히 계속 남하합니다. 도망가는 놈들은 그냥 두세요. 그래야 근처 병력을 이리로 더 끌고 올 테니까요.”
작전장교가 무전기에 대고 명령을 하달했다.
“다시 진형 갖추고 이동. 전차장은 기관총을 잡고 타격 지점을 지나며 확인 사살 실시. 이상.”
전차 부대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어 번의 진지 타격을 더 진행하며 남하하자 저 멀리 거대한 금속 말을 탄 불사인 기사단이 흙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앞선 전차의 포신이 불을 뿜으며 기사단을 공격했지만 이번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꽤 하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왔네.”
잠시 주춤하던 기사단은 다시 말을 달려 우리 쪽을 향했다.
전차 포신에 앉아 있던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자,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철컹. 스릉.
연합 기사단의 불사인들이 제각기 무기를 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마그네타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최수영도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앞으로 꺼내 들었다.
“자, 그럼 돌격!”
* * *
7월 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17,620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788조 1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