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 *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여기 메타버스 속에서 활동하다가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면 졸음이 쏟아진단 말이야?”
“역시 똑똑해.”
“그럼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자는 건가? 이곳의 내가 잘 땐 현실의 내가 깨어나는 거고. 현실의 내가 잘 땐 이곳의 내가 깨어나는 거고?”
“서로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 둘 다 너니까.”
“어쨌든. 네가 말한 100년 후 현실의 내가 캡슐 속에서 잘 때 여기의 나는 활동을 하는 거고. 여기의 내가 잘 때는 그 반대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어. 현실은 100년 후가 아니야. 서로 과거나 미래가 아니란 거지. 같은 시간이야. 여긴 다만 100년 전의 지구를 재현해 놓은 것일 뿐이야. 2126년의 지구는 너무 암울하니까.”
이쯤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있다.
“여기가 메타버스, 즉 내가 가짜인 거고 네가 말하는 현실 속 내가 진짜라는 거지?”
“지금의 넌 듣기 거북하겠지만, 그건 사실이야.”
“자꾸 나, 나 하니까 헷갈린다. 지금부터 이곳의 내가 ‘나’고 2126년 현실 속 나는 ‘현실 김수호’인 걸로 통일하자.”
“좋을 대로.”
“그럼 이제 중요한 질문. 나는 현실 김수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그럼 현실 김수호는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
“없어.”
“없어?”
“응.”
“현실 김수호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다니는지 하나도 모른다고? 내가 현실 김수호를 모르는 것처럼?”
“응. 그 캡슐 게임 수준으로는 부족했으니까. AI는 링크 감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링크가 해제되는 순간 메타버스 속의 기억은 모두 잃게 했어.”
“그럼 현실 김수호는 그냥 캡슐에서 푹 자고 일어나면 밥도 먹고 운동도 한 효과를 본다는 거지? 아무런 기억도 없이.”
“응.”
제기랄. 머리가 저릿저릿 울려오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럼 이곳의 ‘나’는 그냥 도구일 뿐이구나. 현실 김수호의 생명 유지를 위한.”
“꼭 그렇지만은 않아.”
“뭐가 아니야. 내가 여기서 뭔 난리를 피우고 세상을 구하느니 마느니 하든 상관없이 그냥 난 현실 김수호의 생명 유지 장치라는 거잖아! 환자에게 씌워 놓은 인공호흡기 같은.”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알고 있는 내 평생의 삶이 그저 식량난에 허덕이는 현실 김수호란 놈의 생명 유지 장치에 불과한 것이었다니.
“그렇지 않다니까. 네가 바로 현실 김수호고 현실 김수호가 바로 너야.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너의 삶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야. 번갈아 가며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건 메타버스 속 김수호이기도 하고 현실의 김수호이기도 하다고. 다만 두 삶의 기억이 단절되어 있을 뿐이야.”
말은 번지르르하군. 하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긴 했다. 번갈아 가면서 사는 두 개의 삶이라.
근데 허염환 이놈이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어쨌든, 두 번째 중요한 질문.
“그럼 넌? 넌 중2 때부터 메타버스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해댔어. 그럼 넌 저쪽 현실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거야?”
“응. 백만 분의 일 정도의 확률이야. 나 같은 변종이 나올 확률. 링크 감도가 떨어져서 두 세계의 기억이 단절되지 않았지. 지금까지 파악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한 60명쯤 돼. 파악 안 된 사람들도 좀 더 있을 거야.”
소주병을 들어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는 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넌 그렇게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어.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이따위 가상 현실 같은 데는 관심이 없었던 거네. 너에겐 현실의 삶이 있으니까. 나 같은 미천한 아바타 따위한테는 없는 진짜 현실의 삶 말이야.”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
“흥분? 내 33년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했는데 안 그러게 생겼어?”
“미안한데 수호야…….”
“또 뭐?”
“정확히는 19년이야.”
“뭐가.”
“네가 이곳에서 실제로 살아온 삶. 그 이전 기억은 만들어진 거야.”
“하……. 19년이면 언제야. 열다섯 살 때부터인가?”
“응.”
“너랑 나랑 만났을 때네.”
“응.”
“그러니까. 이 가상 세계에 열다섯 살의 김수호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져서 그걸 현실 김수호가 플레이한 거네? 캡슐에 누워 자면서.”
“맞아.”
“그건 현실 김수호가 열다섯 살이었기 때문이야?”
“응. 이 메타버스는 그때부터 시작됐어. 모든 사용자는 자기와 똑같은 나이 똑같은 모습으로 메타버스에 들어갔지.”
“그럼 현실의 너와 나는 이곳에서처럼 동갑이고?”
“응.”
가만.
중요한 사실을 하나 놓치고 있었다.
“내 가족들은? 수영이! 최수영은?”
“최수영은 현실에 있어.”
“최수영은 현실에 있다?”
“응.”
“그럼 내 가족들은?”
“가상의 인물이야.”
뭐 이런 개 같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나한테 다 해주는 이유가 뭐야? 그 이유나 좀 알자.”
술기운이 좀 가셨는지 얼굴색이 돌아온 허염환이 자기 잔에도 소주를 한 잔 따랐다.
그리고는 마치 나를 따라 하듯 한입에 털어 넣었다.
“켁, 켁.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아무나 하는 건데 네가 못 하는 거야.”
“20년 전 소행성 충돌 이후, 지구인의 0.5퍼센트만이 살아남았어. 99.5퍼센트의 지구인이 한 달 안에 다 죽었지.”
“그럼 몇 명이야? 생존자가.”
“4천만 명 정도. 이곳 대한민국 인구보다 조금 안 돼.”
“잠깐만. 그럼 이 메타버스 지구에 사는 사람 중에…….”
“맞아. 대부분이 가상의 인물이고, 그사이에 너나 최수영 같은 진짜가 섞여 있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또 누가 진짜야? 너랑 최수영 말고.”
“굳이 알려고 하지 마. 다만 말해 줄 수 있는 건, 대충 확률로 계산해 보면 답이 보일 거라는 거야.”
“내 주변 인물 중 99.5퍼센트가 가짜다? …그럼 너랑 최수영 말고 또 누가 있기는 있냐? 내가 아는 실제 사람 말이야.”
“있긴 있어. 네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메타디펜스 직원만 해도 지금 몇백 명이잖아.”
“그럼 다른 행성에도 실제 사람이 있어? 행성 073이니 하는 곳들 말이야.”
“아니. 거긴 완전 가상 세계일 뿐이야. 처음부터 실제 사람은 지구에만 있었어.”
“그럼 갑자기 2022년에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지구랑 연결시킨 이유는 뭐야?”
“AI는 이렇게 외부 자극을 주며 인간들을 성장시키면, 수십 년 안에 메타버스 속 지구인은 소행성 충돌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인류가 될 거라고 했지.”
“어차피 메타버스라며. 소행성은 그냥 충돌 안 시키면 되는 거 아니야.”
“AI는 현실과 완벽히 똑같은 메타버스를 추구했어. 100년 전 현실과 최대한 근접한 메타버스.”
“이 넓은 우주의 소행성 하나하나까지 재현한다고? 무슨 슈퍼 양자컴퓨터라도 돼?”
“응. 양자컴퓨터야.”
“하……. 근데 뭐 하러.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AI는 그래야 링크 감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래야만 지구가 원래 모습을 찾을 때까지 인류가 이 환경과 식량난을 버틸 수 있다고 했지.”
그런데 아까부터 AI에 대해 말하는 허염환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인류의 생존을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말투.
“그런데 지금은 현실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구나?”
“4천만 인류의 뇌파로 연결된 메타버스와 현실의 링크 감도가 너무 높아졌어. 여기 시간으로 2022년 이후 급속히.”
“AI가 다른 행성들을 지구와 연결시킨 이후?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렇지? 수호 너라면 역시 금방 알아챌 줄 알았어. 아무래도 AI가 좀 수상해.”
“계속 얘기해 봐.”
“정확히는 여섯 개의 행성과 연결된 게이트가 생긴 이후부터야. 여섯 개 메타버스의 과도한 상호작용과 그걸 온몸으로 고스란히 느끼는 4천만 인류의 링크 감도로 인해…….”
불길한 예감이다.
“…지구를 제외한 다섯 개 메타버스 속 가상의 생명체들이 실제가 되어 현실로 넘어오기 시작했어.”
“현실로 넘어와?”
“응. 처음엔 무시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생명체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어.”
“AI인가 그놈은 뭐하고?”
“방관. 이제는 인류와의 대화도 거부한 채 철저히 방관하고 있어.”
“이미 그 AI인가 양자컴퓨터를 꺼버리거나 할 수는 없는 상황이겠지?”
“그렇지. 그랬다간 우린 다 굶어 죽을 테니까.”
“끌 수는 있고?”
“몰라. 아마 불가능할 거야.”
“인류는 이미 그놈한테 완전히 장악당한 거구나.”
“응. 그리고 그놈이 아니라 넥시트야. 그 AI 이름.”
“넥시트? 네가 준 코인? 그게 AI 이름에서 따온 거였어?”
“응. 소행성 충돌 이후 인류의 다음 출구를 찾아보자 하는 뜻에서 인간들이 지어준 이름이야. 너도 알잖아. NEXT + EXIT.”
후.
엄청난 내용이군.
정리를 한번 할 필요가 있었다.
“자, 내가 어디까지 이해한 건지 잠깐 정리해 보자. 그 넥시트란 놈이 식량난을 해결하겠답시고 남은 인류 전체를 캡슐에 넣었어. 자기가 만든 메타버스와 연결되는 캡슐.”
“맞아.”
“그리고는 링크 감도를 높여야 한다고 인간들을 설득해서 100년 전 지구와 똑같은 메타버스를 창조하고, 추가로 다섯 개의 새로운 메타버스를 더 창조해서 서로 섞었어.”
“그래. 네 말대로 ‘창조’가 맞겠지. 양자컴퓨터의 엄청난 연산 속도로 새로운 우주를 여섯 개나 만들어 버렸으니까.”
“인류는 넥시트의 말을 믿었는데, 그 결과 넥시트가 만든 메타버스 속 가상의 생명체들이 실제가 되어 현실로 넘어오기 시작했어.”
“맞아. 인류와의 대화가 단절되기 전까지 넥시트는 그건 자기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변명했어.”
변명? AI가 변명을 해?
넥시트 그놈. 이미 내가 생각하고 있는 AI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겠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넥시트란 놈이 만든 가상현실이 이제 진짜 현실이 되어 버렸네?”
“그렇지.”
“그리고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방관한다는 건…….”
“애초부터 노렸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이제 와서 자기 창조물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거나.”
“4천만 명 남은 인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렇지?”
“맞아.”
“난 넥시트 그놈이 이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냈다고 보는데. 현실 속 사람들 생각은 어때?”
“우리 조직 내 의견은 비슷해.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기억이 없는 대다수 사람은 아직 넥시트를 신처럼 신봉하고 있지.”
“너희 조직이라는 건, 그 링크 감도가 낮은 변종들의 모임이겠네.”
“맞아.”
“인류는 자기를 신처럼 신봉하고. 자기 창조물들은 자꾸 실제가 되어 현실에 나타나고. 아주 신났겠네, 넥시트 그놈. 아니지. 신난 게 아니라 신(神) 났네.”
“그래……. 넥시트가 소행성 충돌 이후 새로운 지구의 신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런 말들을 나에게 늘어놓는 걸까.
“그런데 현실 김수호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며? 나도 마찬가지로 네가 말하는 현실에는 가본 적도 없고. 나 같은 아바타한테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해주는 이유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