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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76화 (176/200)

176화

【 재회 】

방호복을 챙겨입고 벙커 밖으로 나섰다.

멕시코 칸쿤의 푸른 하늘과 대조되는 붉은빛 하늘이 나를 반겼다.

몇 년이 지나면서 많은 먼지가 지상으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하늘은 뿌연 붉은빛이었다.

소행성 충돌과 동시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바다가 말라버려 지구는 새로운 대륙 모습을 갖게 되었다.

굳이 위치를 논하자면 생존 지구인의 벙커가 밀집된 이곳은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 사이 어디쯤이었다.

가시거리가 워낙 짧아 높이 올라간다고 멀리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불사인 마법사를 찾기 위해서는 마나의 흐름에 좀 더 의지할 필요가 있었다.

마나 감응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변의 마나 흐름을 유심히 느끼며 천천히 공중을 비행했다.

벙커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얼마쯤 날았을까.

“찾았다.”

미세하지만 마나의 흐름이 틀어진 곳이 느껴졌다. 그쪽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흠칫.

마나가 틀어진 곳을 향해 몸을 날리던 나는 순간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아깐 한군데서밖에 느껴지지 않아 당연히 지상으로 달아난 마법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쪽으로 빠르게 몸을 날리다 보니 그 뒤편에서 여러 개의 마나 틀어짐이 감지되었다.

그건 듬성듬성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설마 한 놈이 아닌가?

일단 가장 가까운 곳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시야에 번쩍이는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불사인의 금속 신체였다.

콰앙.

거칠게 땅에 내려섬과 동시에 허공섭물로 놈의 목을 틀어쥐었다.

깜짝 놀란 놈은 컥컥거리며 몸을 바둥거렸다.

“이곳엔 뭐 하러 넘어온 것이냐.”

물론 놈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곳엔 N마켓의 동시 통역기가 없기 때문이다.

“Wlapus! qixus mas kobufau!”

어차피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놈의 목을 풀어주고는 등 뒤에 차고 있던 쇠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얼마 전 철판을 돌돌 말아 만든 쇠몽둥이였다.

촤악, 촥!

뭉툭한 쇠몽둥이에서 뻗어져 나온 날카로운 검기가 놈의 몸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놈은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이대로면 스스로 재생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최소한 30분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길바닥에 불사인 조각을 버려둔 채 나는 또 다른 놈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예상대로 그곳에도 이미 불사인 한 놈이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놈들, 벌써 몇 놈이나 넘어온 거야? 여기 드문드문 모여서 뭘 하는 거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놈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죽이는 것보단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는 게 더 급선무였다.

처음에 베어 넘긴 놈을 포함해 세 명의 불사인을 빠르게 해치운 후 놈들의 상체를 허공섭물로 꽉 움켜쥔 뒤 다시 C-197 구역으로 날아갔다.

쾅쾅쾅!

철제 출입문을 몇 차례 두드리고 시간이 지나자 스피커에서 허염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벌써 생포해 온 거야? 그런데 한 놈이 아니네?”

“한 놈이 아닌 정도가 아니야. 이미 쫙 깔렸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빨리 알아내야 해. 화물 입구 열어 줘. 이놈들 데리고 들어가게.”

“어, 알았다. 잠깐만 기다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뒤편 땅이 드드드 흔들리며 바닥에 마련된 화물용 출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불사인 셋의 상체를 그쪽으로 툭 집어던지고 나도 화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 *

레온이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던 거죠?”

꽁꽁 묶인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불사인 중 하나가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테라 행성에서 온 인간이냐?”

“네, 맞아요. 여기서 지구인을 돕고 있어요. 어서 제 질문에 대답하세요.”

“놀랍군……. 이미 이곳에 넘어와 있는 테라 행성인이 있었다니. 너는 언제 죽은 것이지? 이곳엔 어떻게 넘어온 것이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여기 인간들은 오래 기다리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곧 고문이 시작될 거예요.”

또 다른 불사인이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행성을 배신한 주제에 우리에게 뭘 말하라는 것이냐! 배신자 놈. 네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으니 시엠브레의 불사인 부대가 이쪽으로 넘어오는 날 네놈부터 찾아서 죽여버릴 것이다.”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아, 답답하네. 지금 협박을 하는 건 그쪽이 아니라 저라고요.”

레온의 반응을 보고 있던 허염환이 옆에 준비된 버튼을 눌렀다.

파직! 파지직!

전기 고문이었다.

“크악!”

“으아악!”

잠시 후 허염환이 버튼에서 손을 뗐다.

온몸이 금속으로 되어 있어도 전기 고문은 통하는 모양이었다.

금속은 전기 저항이 적어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냈던 다른 요원을 돌아보며 허염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레온이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총 이십사 단계의 강도로 전기를 흘려보낼 건데, 지금이 일 단계예요.”

“이런 미친…….”

알아들을 순 없지만 대충 뉘앙스로 그들의 대화를 파악한 허염환이 다시 버튼을 눌렀다.

파지직.

“크아악!”

허염환은 손을 들어 레오에게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물론 Victory의 V는 아니었다.

허염환의 손짓을 본 레오가 말했다.

“이번이 2단계예요. 아직 스물두 단계가 더 남았다고요. 괜히 고생하지 말고 어서 말씀하세요.”

* * *

불사인 세 놈을 허염환과 레온에게 맡겨두었으니 이제 나머지 놈들은 애써 생포할 필요가 없었다.

촤악.

길게 뻗어져 나온 검기가 여덟 번째 불사인 마법사의 목을 베어냈다.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

검기를 단 한 차례라도 막아내는 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준이 높은 마법사들은 아니었다.

가만.

놈들이 서 있는 위치가 조금 규칙적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백 미터씩 떨어져 있었지만 거리가 대부분 비슷했던 느낌.

다음 놈은 뭘 하는지 좀 지켜봐야겠군.

나는 최대한 기운을 숨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마침 마법사가 등지고 있는 곳에 작은 돌 언덕이 하나 있었다.

기척을 숨긴 채 그 뒤에 숨어 뭘 하는지 지켜보았다.

불사인 마법사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동시 통역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놈의 주문이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신 놈 주변의 마나가 천천히 휘돌며 이동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계속 마나가 휘돌기만 할 뿐 내 지식으로는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돌아가서 레온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돌 언덕 밖으로 몸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마법사가 내 쪽으로 지팡이를 뻗으려는 순간, 이미 놈의 상체와 하체는 두 개로 분리되고 말았다. 놈은 내 검기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놈이 다시 재생하지 못할 만큼 토막을 낸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총 열일곱. C-197 벙커로 잡아간 세 놈을 빼고 열일곱의 마법사를 처리했다. 그 세 놈까지 합하면 스무 명의 마법사가 이곳에 넘어와 수작을 부리고 있던 것이었다.

우선은 작전 본부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 * *

“스무 명의 마법사가 일정 간격으로 서 있고, 뭐라고 주문을 외는데 마나가 빙빙 회오리친다…….”

내 말을 곱씹던 레온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글쎄요. 수호 형의 설명만으로는 그 마법사들이 뭘 꾸미고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법진을 그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건 확실할 텐데. 한꺼번에 불사인들을 다 끌고 넘어오려는 수작 같은 거겠지?”

“아마도요. 붙잡혀 온 세 마법사도 같은 말을 했어요. 이쪽으로 한 번에 넘어오기 위함이라고요.”

허염환이 말했다.

“레온이 없었으면 아무리 고문을 해도 알아낼 수 없었을 텐데. 레온이 그들과 말이 통해서 다행이었어.”

“놈들이 순순히 불었어?”

“말도 마. 전기 고문을 얼마나 잘 버티는지. 거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한 놈이 털어놓기 시작하더라고. 근데 웃긴 게, 한 놈이 털어놓기 시작하니 갑자기 나머지 두 놈도 질세라 털어놓더군.”

“그래서 뭐야. 이리로 동시에 넘어오기 위해 자기들이 선발대로 왔다는 말이지?”

“응. 수호 네가 저 밖의 마법사들을 다 없애고 다녀도 소용없대. 마법사들은 계속 넘어올 거고, 결국 …그 뭐랬지, 레온?”

“소환진이요.”

“그래, 소환진. 그걸 완성할 거래. 그리고는 수호 네 말대로 자기들이 우리 벙커 위 땅을 점령할 거라고 하더라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레온이 손뼉을 한차례 마주치며 말했다.

“아, 수호 형이 틀린 것도 있어요.”

“틀린 거?”

“네. 형은 놈들이 우리를 지하에 가두고 말려 죽일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니래요.”

“바로 다 죽일 거래?”

“맞아요. 그걸 대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했어요.”

“따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냥 평범한 전투로 우릴 죽일 계획은 아니라는 거군.”

“네. 자기들은 계급이 높지 않아 그 방법까진 모른대요. 다만 엄청난 마법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만 안대요.”

허염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싸워도 불사인들이 이길 것 같은데… 더 확실한 방법으로 지하에 있는 우리 인류를 한 방에 처리할 방법을 연구했다는 거네. 뭔지 몰라도 아찔하군.”

“맞아.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는 위험한 놈들이야. 특히 사무엘 대마법사 그놈은.”

“소행성 충돌만 없었어도. 인류가 그따위 놈들에게 위협을 받았을 리가 없는데.”

“소행성 충돌이 없었으면 넥시트가 그런 가상 세계를 만들 필요도 없었겠지.”

“그건 그렇군.”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하고 넘어올 모양이니 우리도 대비가 필요했다.

“염환이 넌 여기서 놈들이 제대로 못 넘어오게 할 방법을 좀 더 찾아봐. 저 마법사 놈들을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서라도 말이야.”

“알았어.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전부 뽑아내야지. 수호 너는?”

“나는 방위군 사령부에 좀 다녀올게. 아무래도 놈들과의 전쟁에 대비하려면, 방위군이 지상에서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쉽지 않을 거야. 그들을 설득하는 건. 당장 불사인들이 지상에 나타나 살림을 차리고 있다고 해도 어지간해선 지상으로 안 올라가려고 할걸. 아직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상이 지옥으로 남아 있으니까.”

“내가 나가보니 지옥까진 아니던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지. 하지만 여기 남은 인류의 머릿속엔 소행성 충돌 직후 이곳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니까. 그 끔찍했던 지구 말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언제까지 지하 벙커에 틀어박혀 있을 순 없잖아? 시엠브레 마법사들이 벙커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에.”

“그래, 잘 설득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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