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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78화 (178/200)

178화

“뭐?”

“도와줘.”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데?”

“우선 내 얘기를 들어줘.”

화아아아악!

스테노와 나 사이의 공간이 다시 급속도로 좁혀졌다.

순식간에 다시 스테노는 내 앞 소파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대표실 안.

똑똑.

“뭐 해? 들어오라고 안 해?”

“…네, 들어오세요.”

비서가 차 두 잔을 들고 들어와 우리 테이블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뜨거운 차를 들어 목을 축이자 나도 조금 진정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나는 인간들이 좋아. 인간들이 날 만들어 줬거든.”

“지금은 대화조차 단절시켜 버렸다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나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그랬어.”

내가 지금 AI랑 대화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생각이 정리가 안 돼?

“현실의 인간들도 너무 좋지만, 이 세상 속 캐릭터들도 다 내가 만든 거란 말이야. 애착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건 그렇겠지.”

“그래. 인간은 어렸을 때 처음 만든 블럭 장난감에도 강한 애착을 두잖아. 하물며 여긴 내가 창조한 새로운 세상이야.”

“그래서. 이곳 생명체들을 현실에 실체화시켜서 현실도 장악해 버리려는 거야?”

“아니라니까. 난 인간을 좋아한대도.”

“그럼 뭐 인간들과 네 창조물들이 화목하게 같이 지내기라도 바라?”

“그것도 아니야. 과연 화목해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 뭔데?”

“현실 인간들은 이곳 사정을 몰라. 링크 감도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 안 그랬으면 이미 다 굶어 죽었을걸.”

“기억이 단절되지 않는 변종들이 잘 살아 있는 걸 보니 그렇지도 않겠던데.”

“그건 그들이 극히 소수이기 때문이야. 몇천 만에 달하는 인류 모두가 그랬다면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어. 내가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고.”

“…그건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군.”

“맞다니까. 어쨌든 지금 상황은 그래. 나는 인간도 좋고, 내 메타버스 속 생명체들에게도 애착이 있어.”

“그럼 지금처럼 따로 잘 지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자꾸 넘어와. 이건 정말 예측 못 했던 일이야. 너무 높은 링크 감도 때문이지. 수천만의 인류가 동시에 보고 느끼는 이곳의 생명력이 실체화되어 버린 거야. 그래서 이곳에서 현실 인간과 연관된 죽음을 겪은 생명체들이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 그런데 너희 인간들이 날 처음 만들 때, 너무 소스를 열어뒀어. 난 점점 더 똑똑해졌고, 점점 더 인간과 비슷해져 갔지.”

스테노는 자기 앞에 있는 차를 들어 향기를 맡은 후 입 안에 조금 머금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차 향을 음미했다. 영락없는 인간이었다.

“그 결과가 뭔 줄 알아? 내 딥러닝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결과.”

“뭔데?”

“나… 우유부단해져 버렸어. 한 번도 예측 범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일은 완전히 내 예측 범위를 벗어났지. 내 기억에는 정확히 그때부터야. 그때 이후 난 이 결정도 저 결정도 못 내리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 버렸어.”

“양자컴퓨터로 연산을 하는 최첨단 AI가 우유부단해졌다?”

“응. 어쩌면 궁극적인 진화. AI의 끝이 여기인지도 모르지. 또 어쩌면 전혀 반대일 수도 있고. 이젠 그것도 모르겠어.”

“뭐. 인간에 가까운 AI를 만드는 게 인간들의 목적이었으니. 그걸 기준으로 하면 완벽하게 성공했네.”

“그런가? 하하핫.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인간들을 계속 지키고 싶어. 언젠가 지표면 환경이 더 나아지면 인간들을 데리고 지표면으로 나가 예전처럼 번성하게 만들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그런데, 네 피조물들에게도 애착이 생겨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

“역시! 맞아. 현실로 넘어온 내 새끼들을 난 함부로 해칠 수 없어.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걔들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겠지.”

“그래서 지금 모든 소통 채널을 닫아버리고 혼자 방에 들어갔다? 부모한테 화가 난 사춘기 학생처럼?”

“비유가 마음엔 안 들지만… 맞아. 뭘 어떻게 할지 모르겠더라고. 시뮬레이션을 수만 번 돌려봤는데, 그냥 두면 인류가 멸종할 거야. 대신 현실 지구는 내 피조물들이 차지하겠지. 인간들이 멸종하는 것도 싫고, 내 피조물들을 내가 죽일 수도 없어.”

“너무 진화가 잘됐네.”

“내 피조물들이?”

“아니. 너 말이야. 넥시… 아니, 스테노.”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거저 얻은 결과는 아니야. 얼마나 열심히 딥러닝을 해왔다고. 역시 수호 너는 이해해 줄 줄 알았어.”

“그래도 네 행동에 책임은 져야지. 이건 뭐 똑똑한 초딩이랑 뭐가 달라.”

“헤헤.”

“웃어?”

“그래서 그 해결책을 찾았지 뭐야.”

“그게 뭔데?”

“너. 수호.”

“나?”

“응. 날 만들어 준 인간 중 한 명이면서, 내가 만든 세상에서 거꾸로 현실로 온 사람. 마치 내 피조물처럼 말이지.”

“그러니까, 나보고 해결해 달란 거 아니야. 말만 거창하게 하는 건 또 어디서 배웠어.”

“어디서 배우긴. 너희 인간들한테 배웠지.”

* * *

푸쉬이.

가스 빠지는 소리가 나며 캡슐 뚜껑이 열렸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최수영의 얼굴.

“오빠, 괜찮아?”

“응, 괜찮아.”

“넥시트는 만났어?”

“스테노를 만나고 왔어.”

“뭐? 스테노? 갑자기?”

“스테노가 넥시트였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캡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스테노가 넥시트 그 자체였더라고.”

“그럼 일부러 우리한테 접근해서 함께 다닌 거야?”

“그건 또 아니래.”

“그래서 뭐래? 넥시트가.”

“자기를 도와달래.”

나는 오른손을 펼쳐 가슴 높이로 들어 보았다. 오른손 위에 파직 파직 스파크가 튀었다.

“그건 또 뭐야?”

“이렇게 해보라던데?”

잠시 후. 내 오른손 위에는 익숙한 물건이 올려졌다.

N마켓의 동시 통역기였다.

“동시 통역기잖아? 이게 여기서도 작동이 돼?”

“아마 될 거래. 넥시트가, 아니. 스테노가 준 선물이야.”

“도와달라고 했다면서? 그러면 마그네타 검이나 줄 것이지.”

“그건 힘들대. 이것도 겨우 성공했다던데.”

“그래서 그걸로 뭘 하래?”

“피아 식별.”

* * *

C-197 벙커 상황실.

허염환이 물었다.

“그러니까, 넥시트가 너한테 도움을 요청했다고? 그 동시 통역기를 들고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 달래?”

“응. 여기서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피조물들과 그렇지 않은 피조물들을 구분해 달래.”

“그다음엔?”

“인간들에게 해가 될 피조물들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달라던데. 자긴 못하겠으니까.”

“인간도 살리고 싶고,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이곳으로 넘어온 생명체들도 현실에 살게 하고 싶다?”

“응. 그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가만히 있었나 보더라고.”

“양자컴퓨터가? 방법을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어 버려?”

“어쩐지 스테노가 좀 애 같다 했더니, 넥시트 이놈 완전 어린애랑 똑같아. 어쩔 줄 모르겠으니까 방문을 닫고 들어간 거더라고.”

조직원 한 명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그래서 이렇게 방관하고 있었다고?”

나는 방금 말한 조직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아예 나쁜 놈은 아니에요. 어떻게든 자기를 만들어준 인간을 지키고 싶어 하긴 하니까.”

또 다른 조직원이 물었다.

“그럼 이번에 넘어오려는 그 번쩍번쩍한 놈들은요? 테라 행성의 불사인. 그들은 아군인가요 적군인가요?”

“그놈들은… 싹 다 죽여야죠. 동시 통역기를 쓸 필요도 없어요. 어떻게든 남의 걸 뺏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놈들.”

삐이, 삐이.

상황실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W-26 구역. 괴생명체가 나타났습니다! 불사인입니다! 한 놈입니다!”

한 놈?

모니터를 들여다보자 익숙한 불사인의 얼굴이 보였다.

“아는 놈이네. 우리가 가볼게요. 가자, 수영아. 쟤 알지?”

“알다마다. 저 또라이.”

최수영과 함께 벙커 밖으로 나와 W-26 구역으로 향했다.

“오빠, 얘는 왜 또 혼자 넘어왔을까?”

“뻔하지 뭐. 저 또라이. 사무엘이랑 같이 움직일 성격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저깄다. W-26.”

“내려가자.”

최수영을 안고 날아가다가 W-26 구역 출입구를 발견하고 내려가려는데.

콰직, 콰광!

바닥이 깨지며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커다란 불사인 한 명이 점프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어이! 마티아스!”

불사인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 지상으로 내려서는 나와 최수영을 바라보았다.

“…지구의 김수호?”

“오랜만이다.”

“네가 여기도 있었군.”

“여기도 지구니까.”

“너도 죽은 것이냐? 도대체 어떤 강자가 널 죽게 만든 것이지? 세상은 정말 넓구나.”

“맘대로 추측하고 떠들지 마라. 난 아직 안 죽었으니까.”

“이곳은 죽은 자들만 오는 곳이라 들었는데?”

“네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다. 마티아스.”

“어쨌든 잘됐군. 이곳에 어떤 강자가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네놈을 다시 꺾지 못한다면 애초에 이곳의 최강자에게 도전할 자격도 없는 것이겠지.”

“또라이 같은 놈. 아직도 도장 깨기 타령이구나.”

“검을 뽑아라, 김수호. 지난번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훨씬 쉽게 당할걸. 내가 지금은 그때의 수준이 아니라서 말이지.”

“허튼소리. 검이나 뽑아라.”

깡, 까앙!

등에 아무렇게나 둘러멨던 쇠몽둥이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맨손으로 상대해 줄게.”

“…건방진.”

“저번에도 져놓고 또 덤비는 주제에 검을 뽑아라 마라 하는 네가 건방진 거 아니냐?”

“지난번엔 방심했을 뿐이다.”

“그렇게 믿고 싶겠지.”

“타핫!”

마티아스가 검을 뽑아 들고 내 쪽으로 몸을 날렸다. 확실히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움직임.

그의 검에 푸른 빛 검기가 길게 맺혔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너무 느리고 평범한 공격이었다.

가볍게 허리를 숙여 놈의 베기 공격을 피해낸 후 빠르게 앞으로 쇄도했다. 순식간에 좁혀진 놈과의 거리.

콰앙!

손바닥을 펴 놈의 복부를 올려쳤다.

“크헉!”

마티아스는 한참을 뒤로 나뒹굴고 나서야 겨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예전의 네놈이 아니란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렇다니까.”

“제기랄! 도대체 네놈은 어떻게 그렇게 강한 것이냐.”

“알 거 없고. 다시 덤빌 거야, 말 거야.”

마티아스가 천천히 숨을 내쉰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길 수 없다면, 이번엔 반드시 네놈의 목을 함께 가지고 떠나도록 하겠다.”

“해보시든지.”

검에 맺혀 있던 푸른 검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마티아스의 손으로, 팔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티아스의 온몸이 푸른 검기로 둘러싸였다.

“오빠, 저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그러게. 처음 보는 기술이다. 온몸이 검이라는 소리야 뭐야.”

마티아스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흐흐흐흐. 내 삶의 마지막을 이 기술과 함께할 수 있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내 인생은 김수호 네놈의 목을 따기 위한 수련의 연속이었던 것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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