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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79화 (179/200)

179화

* * *

마티아스의 몸을 두르고 있던 검기가 점차 날카로워지며 하나의 검처럼 변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수영이 말했다.

“천 년 동안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하면서 검술만 수련했으니 저런 기술을 쓰는 것도 이해가 되네.”

“응. 결국 자기 자신이 검 그 자체가 된 것 같다. 저거야말로 그거네. 신검합일(身劍合一).”

푸른빛 거대한 검기가 나에게 쏘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마티아스의 형태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눈앞에는 거대한 푸른 검 하나가 떠 있을 뿐이었다.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푸른 검이 내 허리를 베어 들어왔다. 피하기 어려운 변초도, 엄청난 기세도 없었다.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검의 움직임.

극의.

이 움직임이야말로 검술의 극의에 다다른 검로였다.

천마와 장로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저것이야말로 검의 끝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피해도 베어지고 막아도 베어진다. 검로를 틀어 흘려보낼 수도 없다.

무당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힘을 합친다 한들 저 검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천마신교의 장로들도 어려울 것이다.

천마 정도는 돼야 겨우 막아볼 수 있으려나.

그 정도의 공격이었다.

마티아스의 천년 검술을 모두 집약시킨 한 수. 자신이 검 자체가 되어 방어 따위에는 일말의 기운도 배분하지 않은 순수한 공격 그 자체.

“이 정도로 모든 걸 쏟은 공격이면 나도 제대로 받아줘야겠지.”

적당히 몇 번 피하다가 빈틈을 노릴 계획이었지만, 마티아스의 결의에 찬 공격을 제대로 받아주기로 했다.

내력을 있는 대로 왼팔에 모은 후 마티아스의 검. 아니, 마티아스 그 자체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콰앙!

충격에 다리가 주르륵 뒤로 밀렸다. 오랜만에 뒤로 밀려보는 기분.

바로 이어 다시 공격이 들어왔다.

“제법이네.”

이번엔 가만히 받아주지만은 않았다. 내력을 한껏 밀어 넣은 주먹을 뻗어 검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아앙!

콰직!

푸른빛 검기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주먹도 얼얼했다.

다시 한번.

콰앙!

콰지직!

마티아스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검기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쪼개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방.

콰앙!

콰지직, 펑!

푸른빛 검기가 산산이 쪼개지며 그 안에 있던 마티아스의 몸도 여러 갈래로 찢겨 나갔다. 신검합일을 이루고 검로의 극의를 보여주었던 마티아스는 그렇게 더 강한 상대를 만나 맥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멀리 떨어져 있던 최수영이 다가왔다.

“끝났네.”

“응. 그래도 마지막 몇 합은 대단했어.”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강함을 추구하는 걸까, 저 사람은.”

“모르지 뭐. 이미 천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다르게 살 수도 없겠지?”

“하긴.”

“아무튼 끝났다. 들어가자.”

* * *

이후 한동안 몬스터 브레이크, 괴생명체의 대규모 출현은 발생하지 않았다. 간간이 괴생명체가 나타났지만 크게 위협적인 상황은 없었다. 대부분 방위군 선에서 해결을 하거나, 그게 어려울 땐 내가 나서서 처리했다.

한 번씩 지상에 나가 한 바퀴 둘러보면 불사인 마법사가 나타나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놈들을 베어 넘겼지만 수시로 장소를 바꿔가며 나타나 소환진이라는 걸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 밖에서 24시간 놈들을 감시할 수도 없는 일. 방위군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좀처럼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랜만에 현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무런 번호가 없는 문자가 왔다.

[할 말 있음. 이쪽으로 건너와. 스테노.]

“저 캡슐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요즘 너 뭐 하고 다니는 거니? 듣기로는 벙커 외부로 매일 나간다며? 그 각성 능력이 왜 생긴 건지는 정말 말 안 해줄 거니? 각성은 각성이고, 안전하게 벙커 안에 있으라니까. 뭘 꾸미고 다니는 거야?”

“말씀드려도 이해하기 힘드실 거라니까요. 가볼게요. 급한 일인가 봐요.”

걱정과 의문을 늘어놓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간단히 대답했다.

“가보거라. 수호 네가 뭐 나쁜 일을 하고 다니지는 않겠지.”

“여보! 수호가 어떤 위험한 일에 휘말릴 줄 알고요.”

“뉴스 보니 뭐 별로 위험할 일도 없겠더만 뭘 그래. 엄청난 몬스터도 맨주먹으로 때려눕히던데? 왜 각성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 엄청나더구나.”

“하하, 맞아요. 걱정하실 거 없어요. 어지간해선 저한테 해를 끼칠 괴생명체는 없을 거예요.”

“그래, 가 보거라.”

“여보!”

걱정을 한가득 품은 어머니를 뒤로한 채 집 밖으로 나와 최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오빠.

“메타버스 가자. 스테노가 할 말 있다고 넘어오래.”

- 나도 같이?

“따로 그런 말은 없었는데. 뭐 어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 그래, 알았어. 그럼 지금 캡슐실로 갈게.

“응, 나도 캡슐실로 가고 있어.”

- 응, 회사에서 봐.

엘리베이터를 타고 캡슐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빈 캡슐을 찾아 들어가 눕자 자동으로 뚜껑이 닫히며 잠이 들었다.

바로 눈을 뜨자 메타디펜스의 숙소 안. 숙소 문을 열고 나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

복도 저편에서 원피스를 입은 스테노가 걸어왔다. 여전히 VR 선글라스는 벗어둔 채였다.

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누구도 돌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복도를 지나던 직원들이 스테노를 보고 인사했다. 스테노도 환한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테노. 무슨 일이야?”

“해줄 말이 있어서 불렀지. 수영이도 같이 왔네?”

“모르는 게 없군.”

잠시 후 문이 하나 열리며 최수영이 걸어 나왔다.

“수영! 오랜만이네.”

“어? 어, 스테노 언니. 안경 벗으니 어색하네.”

“하하핫. 어때, 예쁘지?”

“어, 어. 예쁘긴 하다.”

“수호, 수영!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거기 어때? 뉴욕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 우리 같이 뉴욕 여러 번 갔었잖아.”

아무래도 예전처럼 스테노를 살갑게 대할 수는 없었다.

“급한 일은 아닌가 보네?”

“급한 일이긴 한데. 뭐 몇 시간도 같이 시간을 못 보낼 만큼 급한 건 아니니까. 너희 둘은 내 유일한 친구잖아?”

“뭐, 그래. 워프실로 가자.”

레온이 만든 마법진이 즐비해 있는 워프실. 그 중엔 뉴욕으로 연결된 마법진도 있었다.

스테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워프실? 그런 데 갈 필요는 없어.”

“꺅!”

최수영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복도 한쪽 공간이 우리 쪽으로 쭈우욱 당겨져 들어왔다.

쭈욱 당겨져 들어온 공간은 곧 메타디펜스 건물 바깥이 되었고, 서울이 되었고, 동해안을 지나 태평양이 되었다.

순식간이었다.

쭉 당겨진 공간 뒤편은 여전히 메타디펜스의 복도. 하지만 정면엔 광활한 태평양이 펼쳐졌다. 빠르게 당겨져 들어오던 태평양도 잠시, 곧 미국 서부 해안이 보였다.

그대로 미 대륙을 가로로 가로질러 곧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 맨해튼의 익숙한 풍경이 전면에 펼쳐지자, 그제야 양옆과 뒤쪽 공간이 쭉 밀려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복도가 사라지고 우리는 온전히 맨해튼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와우.”

“어, 언니. 이런 걸 할 수 있으면서 여태까지 우릴 따라다닌 거야?”

“더한 것도 할 수 있지. 여긴 내 세상이니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어쨌든 우리한테 정체를 밝히기 전까진 스테노로서 이 세상의 일원이 되어 행동했던 거잖아?”

“응. 스테노로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럼 그땐 어쩌려고 했어? 포세이돈을 만났을 때.”

“그땐 수호 네가 포세이돈을 쫓아줬잖아.”

“아니, 내가 졌거나, 아님 나서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글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근데 너희랑 다니는 게 워낙 재밌었으니까, 포세이돈이 정 그걸 막겠다고 하면 그놈을 죽여버리지 않았을까? 그냥 없애버리거나.”

“그러니까, 제우스도 포세이돈도 너한텐 전혀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던 거지?”

“장난해? 위협은 무슨. 내가 만든 애들인데.”

“근데 그렇게 겁먹은 표정을 하고 나한테 다 맡기고 뒤에 서 있었단 말이지. 나는 목숨 걸고 포세이돈이랑 대결을 펼쳤는데.”

“응. 하하핫. 그래도 수호 네가 이겼잖아.”

“어휴, 말을 말지. 근데 스테이크 하우스 어디? 예약 안 해서 가기 힘들걸.”

“예약? 무슨 예약. 뉴욕까지 한걸음에 넘어와 놓고. 가면 우리 자리 다 준비되어 있어. 고기도 굽기 시작했을걸?”

최수영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야, 지금 조물주랑 같이 다니는 거야?”

“그런 셈이지.”

스테노가 양팔을 뻗어 손바닥을 휘저었다.

“그냥 편하게 해. 우리 함께 여행하던 때처럼.”

스테노가 최수영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수영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렵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 고깃집 어디야, 언니. 배고프다.”

“응. 우리 갔던 데. 저 건물이었던 거 같은데?”

“맞아, 저기.”

“들어가자!”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지배인이 이름도 묻지 않은 채 우리를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터하우스와 안심스테이크, 프렌치렉, 샐러드가 차려져 나왔다.

잘 익혀진 고기를 하나 집어 들어 최수영의 앞 접시에 옮겨주었다.

“그래서, 할 말은 뭔데?”

“미리 경고해 줄 일이 있어서.”

“경고? 불사인들이 소환진인가 하는 걸 완성했어?”

“그건 아직. 하지만 곧 완성하긴 할 거야. 그런데 오늘 경고해줄 건 불사인에 관련된 게 아니야.”

“그럼 뭔데?”

“수호, 나는 넥시트이기도 하지만 스테노이기도 해.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줄 수 없어? 예전처럼.”

“그게 되겠냐?”

“그래 줬으면 좋겠는데.”

샐러드를 한 움큼 집어 자기 접시로 옮긴 최수영이 말했다.

“뭐 어때, 스테노 언니가 해달라는 대로 해줘. 우리 셋한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잖아. 그게 오빠가 세상을 보는 방식 아니야?”

듣고 보니 최수영의 말이 맞긴 맞았다.

안 그러면 이 메타버스 속의 모든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까. 그럼 허염환이나 다를 게 없었다.

처음부터 양쪽의 기억을 갖고 있던 허염환과는 달리, 나는 이곳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왔다.

메타버스니 가상현실이니 해도 이곳에서의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좋아. 노력해 볼게.”

스테노가 박수를 짝짝짝 치며 환하게 웃었다.

“좋아. 이제야 수호랑 수영이 답네.”

“언니, 나는 처음부터 그대로 대했다고.”

“맞아. 하하핫. 수영이가 낫네.”

매니저가 주문한 와인을 가지고 와 앞에 놓인 잔에 따라주었다.

“우리 셋이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짠 하자. 짠.”

스테노의 권유에 최수영도 와인 잔을 높게 들었고, 나도 마지못해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짠.”

“자, 이제 경고해 줄 게 뭔지 말해 줘.”

“아, 그거…….”

잠시 뜸을 들이며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스테노가 말을 이었다.

“하나로 뭉쳐서 현실로 넘어가고 있는 무리가 시엠브레의 불사인 뿐이 아니야.”

“그럼?”

“귀마왕이랑 귀자마모.”

“뭐?”

“귀마왕이랑 귀자마모가 마물들을 하나로 모았어. 곧 넘어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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