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82화 (182/200)

182화

【 결전 】

“네?”

“여기가 진짜 세상이냐 물었다. 내가 살던 가짜 세상 말고 말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느낌이 다르다고 했지 않느냐. 이놈은 가만 보면 아직도 나를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야.”

자신이 살던 세상과 이곳이 다름을 깨닫고, 바로 여기가 현실이고 그곳이 가상 현실이었음을 눈치챈 천마. 자신이 평생을 몸담아 온 무림이 가짜였음을 인지하고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인 것이냐, 아니면 저 마귀 놈들 처럼 허울뿐인 존재인 것이냐.”

의자를 가지고 와 옆에 앉은 허염환이 입을 열었다.

“제가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보아라.”

허염환은 이곳 지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자기들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넥시트라는 인공지능의 존재. 그리고 가상 현실 세계까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물론 천마는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의 강인한 정신과 패도의 길을 걸으면서도 도인과 같은 삶을 살아온 데서 나오는 너른 포용력은 핵심을 짚어내기엔 충분했다.

“나는 가짜였는데 진짜가 된 것이군.”

진짜가 되었다고 단정 짓는 저 긍정적인 마음가짐까지. 감탄이 절로 나오긴 했다.

“제일 가짜 같은 이 김수호 놈은 처음부터 진짜였고.”

이번엔 내가 천마의 잔에 술을 채워 주며 대답했다.

“그런 셈이긴 해요. 어쨌든 술은 부족하긴 하지만 진짜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해요. 천마 할배.”

“역시 오래 살다 볼 일이구나. 아니군. 이미 한 번 죽었군.”

양주 한 병은 금세 다 비워졌다.

술은 더 없었지만 우리는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천마는 허염환이 급히 마련해 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했고, 최수영과 나는 캡슐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 * *

다시 한동안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천마는 생각보다 벙커 생활에 잘 적응했으며, 레온의 연구는 점점 결실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C-197 구역 지하 농장.

“레온아.”

“수호 형! 왔어요? 빨리 와서 이것 좀 봐요.”

“이야, 진짜 대단하네.”

지하 농장은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농작물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최수영이 먹음직스러운 새빨간 과일을 가리키며 물었다.

“레온아, 이건 뭐야?”

분명 나무에 열리는 과일의 모양인데, 호박이 열리는 넝쿨 같은 줄기 위에 자라나 있었다.

“글쎄요, 아직 이름은 안 정했어요. 체리랑 사과랑 호박이랑 토마토를 섞었거든요?”

“뭐야, 레온이. 무슨 유전자 공학자야?”

“마법의 힘이죠. 하하. 지금 환경에서 최대한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는 작물을 연구한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낸 레온이였다.

나는 허염환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지하 농장 CCTV 영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저장해 놨지?”

“응. 레온이 온 그 날부터 지금까지 모두.”

“이제 빠른 재생으로 편집해서 하나 넘겨 줘. 내가 뉴플랜트 사에 전달할게. 지상에 있는 하우스에도 이것들을 적용해야지.”

“알았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보내줄게.”

이번엔 레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잘했어. 우리 레온이. 아무튼 진짜 대단해. 지상에서도 잘 부탁한다.”

“거긴 또 거기 환경에 맞춰서 마법을 연구해 봐야죠.”

“너만 믿는다.”

* * *

메타버스 지구, 중국.

육즙이 가득 담긴 만두를 한입에 넣고 한참을 씹던 스테노가 꿀꺽하고 삼켰다.

“여기 애들이 말하는 건 좀 시끄러워도 음식은 참 잘한단 말이야. 다양하고.”

언제부턴가 스테노는 나와 최수영이 메타버스에 올 때면 자연스럽게 동행하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스테노의 모습도 점차 적응되어 갔다.

스테노의 맨얼굴이 익숙해질 만큼 동행이 반복되자 어느새 스테노의 정체를 알기 전처럼 편하게 대하게 되었다.

“스테노 언니가 지구에 처음 넘어온 게 여기 중국이지?”

“응. 하얼빈이었어.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

“에우리알레랑 같이 황금 사과 정원에 있었는데 갑자기 게이트가 생겼다고 했었잖아. 나는 손을 집어넣어 봤다가 쑥 빨려 들어왔고.”

스테노가 말하려는 비밀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주작이지?”

“주작?”

“응. 갑자기 거기 게이트가 생겨난 게 아니라 스테노 네가 만든 거잖아.”

“하하핫. 딩동댕. 어떻게 알았대?”

“뻔하지 뭐.”

“그런데 언니, 왜 중국이었어요?”

“아, 그건 내가 고른 거 아니야. 그냥 지구로 연결된 게이트를 하나 만든 거야. 어디로 떨어질지는 나도 몰랐어.”

나는 아직 뜨거운 찜기 위에 있는 갈비 만두 하나를 내 앞접시에 옮기며 물었다.

“그런데 스테노, 그건 시뮬레이션 좀 해봤어? 레온이랑 천마 말이야.”

“캡슐에 들어가서 여기로 넘어올 방법이 없냐고?”

“응.”

“없어. 캡슐 안에서 메타버스랑 링크가 연결될 수 있는 건 실제 지구에 사는 사람들뿐이야. 너희들! 혹시라도 시도도 할 생각 하지 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몰라. 레온이나 천마 같은 존재는 캡슐을 이용하려고 했다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멸해 버릴 수도 있어.”

“그래도 다 네가 만든 거니 방법이 없나 찾아봐 달라는 거지.”

“수호 네가 전에 부탁해서 나도 잘 생각해 봤지. 시뮬레이션도 돌려 봤고. 그런데 안 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나도 알 수 없어. 확실한 건, 너희처럼 이렇게 여기로 넘어올 수는 없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별수 없지. 자꾸 수영이랑 나만 이렇게 휴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래.”

스테노가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 보고 반할 정도의 화사한 미소였다.

“내가 만든 세상을 이렇게 좋아해 줘서 고마워.”

“누가 또 그렇게나 좋대? 여기가 거기보단 조금 낫다는 거지.”

이번엔 스테노가 우리에게 질문했다.

“그건 잘 돼가? 숲 복원 마법 연구.”

“잘 돼가. 레온이가 아주 대단해. 이제 곧 뉴플랜트 사에 얘기해서 지상에도 시도해 보려고.”

“마침 또 수호 네가 뉴플랜트의 직원이잖아. 잘됐다. 빨리 인간들의 식량이 해결되면 좋을 텐데.”

“그럼 좋겠어?”

“당연하지. 나 인간들을 좋아한다니까?”

“그럼 네 캡슐도, 이 메타버스 세상도 필요가 없어질 텐데?”

스테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내저었다.

“하하핫. 아니야. 절대 없어지지 않아. 인간들은 식량문제가 해결돼도 계속 이곳에 머물게 될 거야.”

“확신해?”

“당연하지. 어차피 자는 시간이잖아. 식량 문제가 해결되든 말든 자고 일어나면 영양분이 보충되고 몸이 건강해지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어.”

최수영이 거들었다.

“그건 또 언니 말이 맞네. 그냥 자는 것보단 캡슐에서 자는 게 나을 수 있겠어.”

난 반대였다.

“근데 그럼 지금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거 아니야. 메타버스의 생명체가 현실에 실체화되는 일 같은 거. 나중엔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이번 일도 네가 예측 못 했던 거잖아.”

스테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또 수호 네 말이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나 큰마음을 먹은 게 있어.”

“뭔데?”

“이번 일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나면, 게이트를 모두 닫을까 해.”

“여섯 개 행성의 게이트 모두?”

“응. 이곳의 지구인들은 이제 충분히 외부의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을 테고. 지금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들이 다 게이트 때문이기도 하고.”

“스테노로서 조금 참여하는 것 말고는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수호 네 말처럼 자꾸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 나는 인간들과 함께 잘 지내고 싶을 뿐이라고.”

“네 피조물들은?”

“여기 있는 게 더 어울리지 뭐. 긴 시간을 두고 각각 어떻게 변해 갈지도 궁금하고 말이야.”

“그 결과는 너도 몰라?”

“당연하지. 연산해 본 적도 없어. 메타버스 세상을 최대한 현실과 가깝게 세팅하는 것까지가 내 일이야.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놔둬야 하지. 내가 자꾸 개입하면 여긴 실제 세상처럼 굴러갈 수 없게 돼.”

“그래 놓고 공간을 막 접어서 중국에 만두 먹으러 1분 만에 와?”

“에이, 그 정도는 뭐 괜찮지 않겠어? 하하핫. 아 참. 나 부탁이 있어, 수호.”

“뭔데?”

스테노가 상체를 숙여 나와 최수영 쪽으로 다가왔다.

“나 너희 회사에 취직시켜 줘. 메타디펜스.”

“갑자기?”

“뭐가 갑자기야. 전부터 너희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었잖아.”

“그땐 그때고. 지금은 왜?”

“나도 소속감 같은 걸 느껴보고 싶어서. 내 주변엔 에우리알레밖에 없었잖아. 지금은 아예 아무도 없고. 너희들은 여기 자주 오지도 않고.”

“…참 가지가지 한다 너도.”

“시켜줄 거지? 응? 어차피 너랑 수영이는 이제 회사 일 별로 신경도 안 쓰잖아.”

“전에도 말했지만, 나랑 수영이가 저쪽 현실의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것뿐이지, 이 회사를 없애거나 할 생각은 없다고 했어.”

“누가 뭐래? 내가 없앤대? 그냥 취직이나 좀 시켜달라고.”

“알았어. 뭘로 취직시켜 주면 되는데?”

“사장.”

“뭐?”

“사장. CEO. 몰라?”

“이제 나를 밀어내려고?”

“너는 회장 해, 그럼.”

“미친.”

“그렇게 해줄 거지?”

“사장은 안 돼.”

“아, 왜!”

* * *

2126년의 현실 지구도, 넥시트가 만든 메타버스도 아닌 어딘가.

그 누구도 어딘지 알 수 없는 곳.

거대한 원구 모양의 밝은 빛이 외부와 이곳을 가로막고 있고, 그 빛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

서 있지만 발밑에는 땅이 없고, 입을 열어 말을 해도 소리를 전달해 줄 매개체조차 없는 곳.

하지만 이곳의 불사인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테라 행성에 있을 때보다 훨씬 쉽고 직관적이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저 뜻을 전할 상대를 정하고, 뜻을 전하면 그뿐이었다.

이 알 수 없는 공간에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시도해 보았지만, 그들과는 통하지 않았다. 오직 테라 행성의 인간이었던 자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었다. 마치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얼마 전까지 극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견제했던 마족들도 아마 같은 방법으로 자기들끼리 소통했으리라.

마족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지금, 시엠브레의 불사인들은 이곳에 온 이후 어느 때보다 바쁘게 소통하고 있었다.

대마법사 사무엘이 마법사의 탑 2인자인 데클란을 비롯한 주요 마법사들에게 동시에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 지구인들의 벙커에서 충분히 먼 곳에 만들기 시작한 소환진이 거의 완성되었다. 이제 우리가 지구로 넘어갈 시간이다. 테라 행성에서의 치욕을 되갚아 주고, 놈들의 행성을 우리가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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