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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85화 (185/200)

185화

* * *

나는 왼팔에 스테노, 오른팔에 최수영을 끼고 하늘을 날고 있다.

최수영이 이곳저곳에 모여 있는 무림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저기 정말 많이 모이긴 했네.”

감숙, 사천 동쪽의 모든 정파의 정예들이 이곳 섬서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무당산보다 훨씬 깎아지른 지형의 화산. 여기저기 주요 봉우리마다 멀리서 봐도 기세가 보통이 아닌 무림인들이 모여 있었다.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산봉우리 하나에 익숙한 복색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새하얀 도복의 무인들. 무당파 사람들이었다.

“저기 잠깐 내려가 볼까?”

산봉우리에 가깝게 다가가자 세 종류의 복색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얀 도복을 입은 무당파, 정갈한 하늘색 도포를 두른 남궁세가, 무당파와 비슷한 하얀 도복을 입었지만 모두 여성 무인으로 이루어진 아미파.

더 가까이 내려가자 비무대회에서 만났던 하병룡 장문인이 보였다.

그즈음 산봉우리의 무인 일부도 우리의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김수호 대협!”

하병룡이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우리는 하병룡 장문인 앞에 차분히 내려섰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천마신교에 전할 말이 있어서 잠깐 왔는데, 지금 정사대전이 벌어지고 있다고요?”

천마신교를 언급하는 내 목소리에 일순 긴장감이 맴돌았다.

자신의 검에 손을 얹는 아미파의 무인도 있었다.

“대협이 천마신교와 연이 있으시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모두가 우려하는 상황.

장력을 발산해 무당파의 전대 장문인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던 사람.

모두들 내가 천마신교의 편에 서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저는 천마의 뜻대로 천마신교와 무림이 잘 어우러져 지내길 바랄 뿐입니다. 아, 일대 천마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너무 크게 벌어졌습니다. 우리 정파 무림은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이곳 화산에서 천마신교를 막아낼 것입니다.”

“어쨌든 응원합니다. 그런데 천마신교의 주병력은 어디에 있나요?”

그때 산 밑에서 아미파의 무인 한 명이 날듯이 뛰어올라 왔다.

“장문인!”

아미파의 장문인이 답했다.

“확인해 보았느냐.”

아미파의 장문인은 하병룡 장문인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성 무인이었다.

“천마와 그 장로들이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동쪽 봉우리에 도착했을지도 모릅니다!”

“동쪽? 화산과 소림이 지키고 있는 쪽 말이냐?”

“네! 병력을 나누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그쪽으로 대대적으로 진격 중입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병룡이 말했다.

“천마신교답군. 전략 전술 따위는 필요 없다 이건가. 가장 강한 쪽을 확인하고 바로 그쪽으로 진격하는군.”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민이 잠시 발끈했다.

“여긴 아미, 무당, 남궁세가가 모두 모여 있소. 그런데 화산과 소림이 지키고 있는 동쪽이 더 강한 쪽이라는 말씀이시오?”

하병룡이 답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천마신교가 진격할 곳을 정했고 그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미파 장문인이 말을 보탰다.

“맞아요. 놈들의 목적지가 파악된 이상 우리도 서둘러서 움직여야 합니다.”

남궁세가 가주가 말했다.

“놈들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면 어쩌려는 생각이시오.”

이번엔 내가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들이 진짜 천마신교라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듣기로도 천마신교는 패도를 걸을지언정 모략을 펼치는 곳은 아닙니다.”

“그럼 어서 가요! 아미파 전원은 진군을 준비하라!”

“네!”

“무당파도 이동한다!”

“존명!”

“…남궁세가도 이동한다.”

“네! 가주님!”

최수영이 물었다.

“오빠, 우리는?”

“무당파랑 같이 이동해 볼까?”

“그래, 그러자.”

* * *

화산 동쪽 산 중턱.

“이쯤 왔으면 우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터인데. 겁먹어서 얼어붙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구나.”

천마의 비웃음 섞인 말에 추멸염화 장희철이 답했다.

“싸우기 좋은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는 모양입니다.”

“싸우기 좋은 위치? 장희철. 싸우기 좋은 위치라 함은 어디이냐?”

장희철은 백 년 넘게 폐관 수련만을 해온 천마가 병법은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다양합니다. 우선 상대를 잘 볼 수 있는 위쪽이 유리하고, 넓은 곳에서 좁은 곳을 향하는 지형을 등지고 있는 것이 좋…….”

“어이가 없군.”

“예?”

“잘 들어라. 싸우기 좋은 위치는 바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다. 천마신교의 장로 중 으뜸이라는 자가 병법이나 들먹이다니. 실망이군. 싸움은 그저 내가 강하면 되는 것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병법은 하찮은 놈들이 어떻게든 실력 차를 극복해 보려고 만든 것이다.”

“…존명.”

“십이장로.”

“네! 천마.”

“난 이대로 경치나 즐기며 걸어 올라가겠다. 너희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먼저 산을 올라 화산과 소림사 놈들을 모두 죽여라.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존명!”

천마의 명령에 십이장로와 열두 분파 무인들이 순식간에 화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천마신교의 최정예로, 그 수는 삼백 남짓.

산 중턱에는 이대 천마와 그의 직속부대인 파천단(破天團)만이 남았다.

산을 오르던 일해빙장 황중로가 추멸염화 장희철에게 물었다.

“장 장로. 이게 맞습니까? 무림 일통은 우리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분명 천마. 아니, 일대 천마는 구파일방과 힘을 합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무림을 지켜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장희철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어쩔 수 없지 않소. 지금은 저분이 천마신교의 하늘이고, 그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만근염왕 이두복이 그 육중한 몸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빨리 무림 일통을 해버립시다.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일대 천마님의 마지막 명령을 이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힘을 합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무림을 보호하라.”

“그래.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빨리 끝내버리는 것도 방법이겠지.”

“사실상 이번 전투가 분기점 아닙니까. 화산과 소림의 정예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늘 전투가 끝나면 구파일방 힘의 절반이 날아간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동안 어느새 산봉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깎아지른 절벽이 양옆으로 높게 솟아 있는 지형을 지나고 있었다.

대형을 가늘고 길게 바꾼 후 협곡을 지나는데 저 앞에 커다란 지팡이를 든 승려들이 보였다.

추멸염화 장희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작이군.”

잠시 후 소림의 승려들과 천마신교의 장로들이 오십 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소승은 유 자 배를 쓰고 있는 문이라고 합니다. 속세에선 유문대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유문대사. 소림 백팔나한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소림 무공의 정수를 깨우친 인물. 무공 수위로는 소림사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승려였다.

추멸염화 장희철이 앞으로 나서려는데 만근염왕 이두복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다.

급히 내디딘 발걸음에 온몸에 두껍게 둘려 있는 지방이 출렁였다.

“유문대사의 위명은 저 멀리 천산에까지 퍼져 있소. 나는 천마신교의 십이장로 중 하나인 이두복이라 하오.”

“그 유명한 십이장로이시군요. 한 분 한 분이 거대 문파의 수장이 되실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지요. 소승, 한 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만근염왕 이두복의 이름이나 무명을 알고 있을 법도 한데 십이장로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유문대사였다.

이두복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일부러 협곡을 막고 서서 기다리셨으면서 뭐 더 말이 필요하겠소. 들어오시오.”

유문대사의 지팡이가 잠깐 흐릿해지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반면 이두복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퍼억!

유문대사의 지팡이가 크게 회전하며 이두복의 몸통을 강타했다.

출렁.

온몸을 두껍게 둘러싸고 있는 이두복의 살들은 충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며 출렁였다.

“이게 다라면 소림의 미래라는 백팔나한의 수준도 알만하구려.”

“뭣이?”

이번엔 이두복의 차례였다.

자신의 두꺼운 살에 푹 파묻혀 있는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붙잡은 후 왼손으로 유문대사의 가슴팍을 밀어쳤다.

콰앙!

손바닥으로 사람을 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커다란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크헉!”

유문대사는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입에서는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후우. 천마신교의 장로는 역시 그냥 붙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니로군.”

유문대사가 입가의 피를 팔로 쓱 닦은 후 팔을 크게 휘휘 돌리기 시작했다.

몸 내외의 힘과 강도를 크게 증가시키는 소림의 심법, 역근경(易筋經)이었다.

만근염왕 이두복은 유문대사의 심법이 운용되는 동안 가만히 서서 기다려 주었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날 넘어설 수는 없다는 자신감.

이두복 뒤에 서 있는 나머지 장로들의 얼굴에서도 일말의 긴장감을 느낄 순 없었다. 심지어 그 뒤에 서 있는 열두 분파의 일반 무인들도 마찬가지.

심법을 마친 유문대사가 다시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타앗!”

이번엔 이두복도 함께 몸을 날렸다. 이백 킬로그램도 넘어 보이는 이두복이었지만 그 몸놀림은 유문대사보다도 더 빨랐다.

* * *

“이 위가 화산과 소림이 자리 잡고 있는 봉우리라는 거죠?”

하병룡 장문인이 답했다.

“맞습니다, 대협.”

“아래쪽은 조용한 걸 보니 이미 천마신교는 봉우리에 도착한 걸 수도 있겠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얼마나 올라갔을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기운이 마나의 흐름을 타고 느껴져 왔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대협?”

“멀지 않은 곳에 천마신교의 병력이 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늦지 않은 모양입니다.”

남궁세가 가주가 팔을 들어 진격을 멈추게 했다.

“그럼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소이까. 화산, 소림과 충돌했을 때 바로 뒤에서 들이쳐야지요. 여기서 우리만 천마신교를 마주한다면 합공의 효과를 가져오기 힘들 거요. 이러다 각개 격파당하기 딱 좋을 수 있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병룡의 의견은 달랐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놈들을 도발해 싸움을 일으키면, 산 위에서 화산과 소림이 몰아쳐 내려오겠지요. 그게 더 효과가 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우리 쪽의 피해가 너무 커지는 것 아니오. 이곳에 와있는 무인들은 모두 최정예요. 여기서 큰 피해를 입게 되면 정사대전 이후 회복이 힘들어질 수 있소.”

여전히 남궁세가 가주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그 속엔 내심 자기 가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마음이 짙게 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산 위쪽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이들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가 결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협.”

“이대 천마라는 자가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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