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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90화 (190/200)

190화

* * *

곽무진의 검이 허리를 베어 들어왔다.

스윽.

뒤로 가볍게 한 발짝.

놈의 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거리를 다시 좁혀 왔다.

마그네타 검을 들어 올려 곽무진의 어깨를 향했다.

갑자기 끼어든 검에 놈의 검이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물 흐르듯 하던 움직임과는 다른 급박한 움직임.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던 곽무진의 검격이 흐트러지는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다.

푸욱.

마그네타 검이 검을 들고 있는 곽무진의 어깨를 깊이 찌르고 들어갔다.

검 끝을 살짝 긋자 그의 팔이 몸체와 분리되었다.

대단한 검격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무림인으로서 대단하다 느껴지는 것뿐. 곽무진은 결국 나의 단순한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고 팔을 내주고 말았다.

“크윽. 도대체 어떻게…….”

“화려한 검격은 잘 봤습니다. 역시 화산의 검이군요. 하지만 어쨌든 검로는 상대를 찌르고 벨 수 있어야 의미가 있죠.”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이군. 내가 졌소.”

“팔은 다시 붙여드릴 수 있는데.”

“필요 없소이다. 후학을 양성하는 데는 팔 하나로도 충분하니.”

곽무진은 땅에 떨어진 팔에서 검만을 빼낸 채 뒤로 돌았다.

“화산파. 하산한다.”

“존명!”

멍하니 대결 결과를 지켜보고 있던 화산파의 무인들이 곽무진의 뒤를 따랐다.

소림사 방장이 앞으로 나와 합장을 했다.

“멋진 대결 잘 보았습니다. 무림인들은 우물안에 갇힌 개구리였군요. 소림도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협.”

뒤이어 아미파와 무당파도 하산을 시작했다.

아직 내려가지 않고 있던 하병룡 장문인이 물었다.

“김 대협.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천산으로 가서 장로님들에게 알려줄 게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돌아가시기 전에 무당산에 꼭 한번 들러주십시오. 김 대협.”

“그러죠.”

하병룡을 마지막으로 정파 연합의 무인들이 모두 산을 내려갔다. 그제야 십이장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추멸염화 장희철이 물었다.

“천마 교주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이 정말이오?”

“네. 여기랑은 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잘 계십니다.”

“돌아오시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소?”

“아. 살아계시긴 한데 돌아오실 수는 없어요.”

“김 대협은 오셨지 않소.”

“말하자면 복잡해요. 어쨌든 천마 할배는 이곳에 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한테 말을 좀 전해달라 하셨어요.”

처억.

십이장로가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말씀하시오. 교주님의 전언.”

“우선은, 무림인들과 하나가 되어 외부 위협에 대비하라는 명령은 아직 유효합니다.”

“이 대 교주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을 뿐. 그가 사라진 지금, 그건 당연히 우리의 첫 번째 행동 지침이 될 것이오.”

“그리고, 비급과 보물을 숨겨두신 장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셨어요.”

“그 비밀 동굴이라면 이미 알고 있소.”

“아, 장로님이 아시는 그 동굴이 아닐 거예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진짜 비밀 장소가 따로 있대요. 가장 귀한 보물은 모두 거기에 두셨답니다.”

만근염왕 이두복이 물었다.

“그게 어디요?”

“천산의 가장 높은 곳이면서 가장 깊은 곳. 가면서 설명해 드리죠.”

* * *

천산의 삐죽하게 솟은 수백 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

거대한 바위 하나를 가볍게 밀어내자 바위 아래에 사람 너덧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수직 동굴이 나타났다.

흡영흑수 구종석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 곳에 비밀 동굴이라니. 교주님답군.”

“이 밑으로 내려가면 교주님의 비밀 공간이 나타난단 말인가?”

“천마 할배 말로는 그래요. 천산의 가장 깊은 곳까지 구멍을 뚫어 놨다던데요.”

“교주님답군. 교주님다워.”

“내려가 보시죠. 저도 말로만 들어서 밑에 뭘 묻어 놨는지 궁금해요.”

추멸염화 장희철이 먼저 수직 동굴로 몸을 날렸다. 뒤이어 우리 일행과 나머지 장로들도 두셋씩 짝을 이뤄 시커먼 동굴로 뛰어내렸다.

마나를 운용하지 않고 자유낙하로 떨어지는데도 한참을 내려갔다.

천산의 높이는 이미 넘어선 것 같고 이제는 땅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파 놓은 거야, 이 할배는.”

내 허리를 붙잡고 있던 최수영이 답했다.

“어설픈 무림인은 내려가다 죽겠는데?”

“아무튼 독한 할배야.”

그 후로도 한참을 더 떨어지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야명주를 박아놓은 건지, 까맣게 어둡던 동굴 통로와는 달리 주변이 환해졌다.

“맙소사.”

최수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럴 만한 것이 궁궐처럼 넓은 공간 안에 각종 병장기, 보물, 서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단하네.”

추멸염화 장희철이 병장기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神機)에 가까운 보물이군.”

서책을 들춰보던 일해빙장 황중로가 말했다.

“천마신교의 비급뿐이 아닙니다. 다른 문파의 비급들까지 언제 이렇게나 구해 두신 것이지.”

만근염왕 이두복은 보물들을 마구 집어 들며 말했다.

“천마신교의 재산을 다 합친 것보다 여기 있는 보물들의 가치가 더 높겠습니다. 교주님은 도대체…….”

심지어 스테노까지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제우스의 보물 창고도 이보단 못 할 거야.”

“이 할배 무(武) 외에는 아무 관심 없는 척하더니. 완전 욕심쟁이었네.”

“이걸 다 여기 두고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해주고 죽었으니 오빠한테 이런 부탁을 할 만도 하네.”

천보익비 제갈평이 최수영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네? 교주님은 잘 살아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네. 살아는 계세요.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치죠.”

“뭐. 교주님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천마 할배의 전언을 말씀드릴게요.”

내 말에 열두 장로가 보물 창고 구경을 그만두고 곁으로 모여들었다.

“천마 할배의 말을 그대로 전할게요. 다 구경했으면 그대로 두고 모두 꺼지거라. 여기 있는 것들에 손을 대는 놈이 있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돌아와 손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것이다.”

“뭐요? 교주님이 그리 말씀하셨단 말이오?”

“네. 손대면 가만 안 둔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던데요.”

“그럼 도대체 왜 여길 우리에게 알려주신 겁니까.”

“그냥 약 올리려고 알려주셨대요.”

“하.”

장로들이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신 천마신교가 멸망할 위험에 처하거나, 무림 전체가 큰 위협에 빠져 회생 불가능해질 것 같을 때 꺼내다가 이걸로 후일을 도모하라고 하셨습니다.”

황당해하던 추멸염화 장희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교주님다우시군.”

다른 장로들도 이내 유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제 올라갑시다.”

한참을 껄껄대던 만근염왕 이두복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런데 어떻게 올라갑니까? 나는 경공은 영 약한데.”

추멸염화 장희철이 답했다.

“그럼 네놈은 여기 살아라. 저기 벽곡단도 있지 않으냐.”

“젠장. 그러지 말고 누가 나 좀 데리고 올라가쇼.”

“네놈이 몇 근이 나가는 줄 알고는 하는 소리냐. 널 어떻게 매달고 올라 가냐.”

불길한 느낌.

만근염왕 이두복이 이번엔 나를 바라보았다.

“김 대협. 부탁 좀 드리리다.”

그때였다.

동굴 천장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이내 캄캄한 땅속에 파묻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묻힌 게 아니라 공간을 접어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10초도 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수직 동굴 위로 올라섰다.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김 대협이 한 것이오? 그 마법이라는 것인가?”

“아니요. 여기 스테노가 해준 거예요.”

“예사롭지 않은 처자라고 생각은 했지만… 대단하군. 공간이 접힌 느낌이었소.”

“맞아요. 공간을 접은 거.”

“무림인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소림사 방장의 말이 떠오르는군.”

“스테노에 비하면 저도 우물 안 개구리예요.”

“김 대협이 말씀이시오?”

“그렇죠. 적어도 이쪽 세계에서는.”

장로들이 새삼 스테노를 다시 바라보았다.

스테노가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배고파.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수호.”

“그래. 오늘 바빴네. 엄청.”

천보익비 제갈평이 말했다.

“함께 내려가시죠. 근사한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장로들과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스테노가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고, 지구에 도착해서는 강화도까지 공간을 접어 손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나와 최수영은 각자 안전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 * *

현실 지구. C-197 구역.

캡슐에서 나와 휴게실로 향하자 천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왔느냐. 꽤 오래 걸렸구나.”

“천마신교가 저지른 짓을 좀 수습하고 오느라요.”

“저지른 짓?”

“무림에 가보니 정사대전이 벌어졌더라고요. 천마신교 대 무림 정파.”

천마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뭐? 십이장로 이놈들이 내 말을 거역하고 전쟁을 벌였단 말이냐?”

“이 대 천마라는 자가 나타났더라고요.”

“이 대 천마? 감히 어떤 놈이?”

“네. 천마 할배 자식이라던데요? 폐관 수련을 백 년 넘게 했다고.”

“아… 그놈인가.”

“그래도 기억은 하시는 모양이네요. 이 대 천마가 천마 할배를 죽이려고 백 년 넘게 수련했는데, 막상 할배가 죽었다고 하니 그냥 무림이나 쳐들어가기로 한 모양이더라고요.”

“그놈이라면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강하더라고요. 천마 할배 만큼이나.”

“그러니 동굴에서 나왔겠지. 네놈이 죽였느냐.”

“좀 몰아붙이긴 했는데, 제가 죽인 건 아니에요. 다 같이 죽으려고 들더라고요.”

천마의 입에 비웃음의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왠지 두 눈에서는 쓸쓸한 안광이 느껴졌다.

“변함이 없는 녀석이군. 하긴, 동굴 안에서 혼자 백 년을 넘게 살았으니 성격이 변했을 리가 없겠지.”

“어쨌든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고, 장로님들한테는 할배가 전하라는 대로 잘 전했어요.”

“고생했다.”

“아들이 죽었다는데 별 감흥은 없네요?”

“이미 오래전 마음에서 떠나보낸 녀석이다. 그리고 그런 놈보다는 천마신교와 무림의 안위가 더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 걱정도 하시고. 변했네요, 천마 할배.”

“그러냐? 죽었다가 살아나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그 보물 창고를 십이장로가 정말 가만히 둘까요? 눈들이 반짝반짝하던데.”

“상관없다.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할 곳. 이제 그놈들의 것이나 다름없지.”

“그런데 왜 손대면 가만 안 둔다고 엄포를 놓으셨어요?”

“거기 있는 것들 중 무림에 나오면 피바람을 불러올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놈들이 조금이라도 조심스럽게 대하겠지.”

“그렇네요.”

그때.

삐이, 삐이.

붉은 조명이 들어오며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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