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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193화 (193/200)

193화

부장이 가엘 기사단장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뭐야? 여길?”

“네. 그렇습니다.”

“여전하군. 나가서 기다려라.”

“네.”

가엘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정찰대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기사단별로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고 있도록.”

“네!”

밖으로 나온 가엘이 부장의 안내에 따라 으슥한 건물 뒤로 돌아 들어갔다.

“오랜만이군.”

“그 번쩍번쩍한 얼굴이 반가울지는 또 몰랐네.”

한쪽 벽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건물의 2층 끝에 김수호가 서 있었다.

마침 바닥에 서 있는 기사단장 가엘과 눈높이가 딱 맞았다.

“정찰대를 만난 것이냐?”

“그러니까 여기까지 널 찾아왔지. 자폭 부대 제1 기사단의 반역을 도우려고.”

기사단장 가엘의 미간에 주름 세 개가 깊게 팼다.

“제1 기사단은 자폭 부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반역이 아니다. 반역은 나라를 배반하는 것. 우리는 그저 무단으로 불사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저 마법사 놈들을 치워버리려는 것이다.”

“알았어, 알았어. 성질은 여전하네.”

“그런데 정찰대를 만났다면서 여기까진 왜 온 것이냐.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을.”

“나도 정찰을 온 것뿐이야. 그런데 오면서 생각해 보니 지구인을 몰살시키려는 대마법사의 계획이 너무 괘씸하단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잠시 말을 멈추자 가엘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설마…….”

“응. 그냥 여기서 마법사들을 다 죽일까? 너희 기사단과 함께 말이야.”

“지구인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하는군.”

“혹시 몰라서. 대마법사 놈이 무슨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미안하지만 쉽지 않다. 너는 저 건물을 모르는 것이냐?”

가엘이 손가락을 들어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빌딩을 가리켰다.

내가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분명 마법사들이 모여 있을 거라고 추측했던 그 기형적인 빌딩이었다.

아래는 좁고 위쪽은 넓게 퍼져있는 거대한 빌딩.

“나도 저 빌딩은 처음 보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지? 마법사 놈들 저기 모여 있지? 너희 행성 마법사들은 높은 곳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지구인인 네놈도 저 건물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가엘은 내가 있던 지구와 이곳이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있던 메타버스 지구에는 아직 저런 건물을 지을 기술은 없다.

“처음 본다니까. 안 무너지는 게 신기하다는 것밖에는 모르겠다.”

“사무엘이 어떻게 지구인의 건물을 가동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건물에 마법사들이 있는 한 우리는 놈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사무엘이 저 건물의 방어 모드라는 걸 가동했는데, 건물에 위협이 감지되면 엄청난 마법 공격이 쏟아져 나온다. 처음엔 이 도시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줄 알았지. 아니, 사무엘이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면 저 건물만 남고 나머진 모두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지구인들을 마법을 못 쓴다더니 거짓말이더군.”

흠.

아마 저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공격이 마법 공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100년 후 지구의 기술이 집약된 방어 시스템이겠지.

가엘이 마법 공격으로 오해한 걸 보니 총알이나 미사일 같은 물리 공격을 가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레이저 같은 걸 발사하는 모양이다.

저 건물의 원래 용도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평범한 건물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군사 시설인가.

“용케도 저런 빌딩을 차지했군.”

“예전 마법사의 탑처럼 저 건물 안팎을 마법진으로 연결해 놔서 우린 안으로 들어갈 방법조차 없다.”

“그런 걸 알고 저 건물로 들어간 것도 아닐 텐데. 운도 좋은 녀석이네.”

“결국 기회는 지구인들을 치러 갈 때뿐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그 땅굴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사무엘도 분명히 함께 나설 테니까.”

“가엘 너도 몰라? 대마법사가 우리 벙커를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나도 모른다. 마법사 놈들을 몇 명 떠보긴 했는데 놈들도 모르는 눈치다. 고위 마법사들만 알고 있겠지.”

“흠… 돌아가서 기다리는 게 최선인가.”

“나는 이제 출동 전까지 우리 계획에 동참할 기사단을 추릴 것이다. 출발 전에는 우리도 완벽한 계획을 세워야 하니.”

“좋아. 그럼 나도 이대로 돌아간다. 나중에 보자구. 한 달 후쯤이 되려나.”

“아마 그보다 조금 늦을 것이다. 하지만 많이 늦진 않겠지. 정찰대가 도착하는 대로 바로 출병이다.”

나는 가볍게 손바닥을 들었다.

“그럼 그때 보자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군.”

“하하, 우리가 그런 인사를 나눌 사이인가.”

“최소한 이제 적은 아니니까. 그리고 난 이제 네놈을 상대해 볼 마음도 없다. 일대일은커녕 제1 기사단 전체가 달려들어도 될까 말까일 테니.”

“틀렸어.”

“뭐?”

“전체가 달려들어도 안 돼.”

“건방진 놈. 가라, 이제.”

“알았다. 간다.”

* * *

가엘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놈들의 주둔지를 빠져나왔다.

멀리서 다시 뒤돌아보니 방어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는 거대한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벙커 밖으로 나와 살만한 환경이 되면 여기 와서 정착하면 되려나. 아니지, 다른 곳도 좀 미리 찾아봐야겠다. 지상 생활을 대비해 인류가 정착할 새로운 문명 발상지를…….

다시 C-197 구역으로 돌아가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허염환이 나를 보자마자 정찰 결과를 알려달라고 보챘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꼬박 닷새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돼. 자고 나서 얘기하자. 급할 것도 없어.”

나는 허염환을 뒤로하고 샤워실로 가 대충 씻고 캡슐로 들어갔다.

당연히 날 기다리고 있던 최수영도 함께 옆 캡슐로 따라 들어왔다.

* * *

쾅!

메타디펜스의 내 숙소 방문이 거침없이 열렸다.

메타버스로 넘어온 내가 눈을 완전히 뜨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 숙소 방문을 이렇게 벌컥벌컥 열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놀러 오는 거 아니야? 메타버스에 오지 않은 지 오 일이나 지났어.”

그중 한 명, 스테노였다.

분명 피곤에 찌들어서 캡슐로 들어갔는데, 이곳에 오니 거짓말처럼 몸이 쌩쌩하다. 현실 지구의 내 몸은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겠지.

“말도 마. 오 일 동안 잠 한숨도 못 자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네가 만든 그 캡슐 때문에 현실 지구의 나는 캡슐 없이는 잠도 못 자는 몸이 되어버렸다고.”

“어머, 몰랐어? 그게 내가 인간들에게 이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서 경고했던 유일한 부작용인데. 너무 오래돼서 까먹었구나?”

“그랬어? 그것까진 기억 안 난다. 십오 년 전일 테니까. 난 중학생에 불과했고.”

쾅!

자동으로 닫혔던 숙소 문이 다시 거칠게 열렸다.

마음대로 문을 열 수 있는 나머지 한 명. 최수영이었다.

“오빠, 어? 스테노 언니는 벌써 와 있었어?”

“닷새 동안이나 안 나타나는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뭐야. 메타버스 조물주 언니, 아직도 수호 오빠 좋아하는 건 아니지?”

“싫어한 적은 없지.”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이쪽저쪽에서의 생활을 반복하며 메타버스에 들어왔을 땐 완전히 예전과 같아져 버린 우리 셋이었다.

그러면서 한동안 사라졌던 최수영의 질투도 다시 시작되었다.

“싸우지 마. 나가자. 방도 좁은데 여기 다 들어와서는.”

“그래, 나가자. 오늘은 뭐 먹으러 갈 거야, 수호?”

“왠지 오늘은 귀찮은데. 그냥 근처에서 먹자. 아니 그냥 구내식당으로 갈까?”

최수영이 답했다.

“구내식당 지금 하는 시간도 아니거든요. 뭐, 대표님이 갑자기 간다고 하면 뭐라도 차려주긴 하겠지만.”

“그럼 그냥 나가자. 근처로. 오랜만에 거기 갈까? 돼지갈빗집.”

“라울이랑 박 상사님이랑 자주 갔던 데? 그러고 보니 거기 안 간지 참 오래됐다.”

“라울까지 그렇게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갔지 뭐. 오늘 가보자.”

고깃집에 도착한 우리를 주인아주머니가 여전히 반겨주었다.

구석에 자리 잡고 앉자 기본 찬들이 나오고 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돼지갈비가 테이블 위에 잔뜩 올라왔다.

“그래서? 닷새 동안 잠도 안 자고 뭐 했어?”

“불사인들 주둔지에 다녀왔어. 잠을 안 자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도대체 캡슐 없이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이제 캡슐 밖에선 못 잔다니까. 그게 부작용이야.”

“몰랐지. 그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거기까지 안 갔지.”

찬으로 나온 샐러드를 집어 먹던 최수영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만났어? 나도 궁금하다. 나한테도 말 안 해주고 캡슐로 들어가 버렸잖아.”

“어, 주둔지도 찾고 기사단장도 만났어.”

“대마법사는?”

“아니, 무슨 철옹성 같은 빌딩에 들어가서 만나기가 쉽지 않겠더라고. 그냥 제일 높은 건물에 찾아 들어간 거 같은데 제대로 얻어걸렸어.”

“철옹성 같은 빌딩?”

“응. 기사단장 말로는 방어 시스템 화력이 말도 못 한대. 그걸 마법으로 어떻게 가동을 시킨 모양이야. 뭐 누가 가까이 다가오면 레이저라도 쏘아대나 봐. 어쩌면 더 강력한 걸 수도 있고.”

“그거야말로 과학과 마법의 조화네?”

“그러게. 어떻게 했는진 모르지만, 나중에 레온이한테도 말해 줘야겠어. 레온이라면 대마법사가 쓴 그 방법을 찾아낼지도 몰라.”

“거긴 무슨 중요한 시설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건물이면 우리 기억에도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기억이 안 나.”

“소행성이 충돌한 게 우리 열다섯 살 때니까. 세계에 무슨 유명한 건물들이 있는지 다 알 때는 아니지.”

대화를 듣던 스테노가 무심하게 물었다. 입에는 돼지갈비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데? 혹시 아래는 좁은데 상층부는 엄청 넓게 펼쳐져 있는 버섯 같은 모양이야?”

“어, 맞아. 스테노 너는 알아? 뭐야, 그 건물? 미국 국방성이라도 돼?”

“알지. 인공위성을 수십 수백만 개를 띄운 회사가 만든 건물이야. 우주 쓰레기 문제로 더 이상 민간 인공위성을 못 날리게 막으니까 정부 및 국제기구와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며 만든 시설이야, 거기. 그 중심에 있는 관제탑이 수호 네가 본 건물일 거야. 실제로 무력 행사를 나선 군대와 맞붙은 적도 있어.”

누군가 떠오르는 스테노의 설명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시설에 얻어걸려 들어갔네, 불사인 놈들.”

“그 대마법사가 마법으로 그 시스템을 가동한 게 맞다면, 수호 너라도 거길 어떻게 하긴 힘들 거야.”

“그래서 일단 그냥 돌아왔어. 놈들이 먼저 그 시설 밖으로 나오게 해야지 뭐.”

“잘했어. 그 시설 부수면 안 돼.”

“왜? 다른 이유가 또 있어?”

“거기가 내가 지구인들 지상으로 이전할 첫 번째 구역으로 꼽은 데거든.”

“스테노 네가?”

“응. 언제까지 날 만들어 준 인간들이 지하 벙커에서 살게 할 순 없으니까. 나도 고민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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