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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200화 (200/200)

200화

* * *

천마에게 두 아이를 맡긴 나와 최수영은 천마신교와 연결해 놓은 마법진을 통해 집으로 돌아와 캡슐에 접속했다.

우리는 메타디펜스 본사가 아닌 강화도 한적한 단독주택에서 일어났다.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며 이곳 메타버스에도 신혼집을 마련했었다.

회사와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었지만 본사 내 숙소에서 지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천마 어르신한테 좀 미안하다, 그치.”

“좀 미안하긴 한데. 뭐 어쩌겠어. 우리 애들을 그럼 누가 봐. 연희는 건물 기둥도 부서뜨리는데.”

“맞아. 그나마 어르신이 애들 참 좋아하셔서 다행이야.”

“좋아하는 건 맞는데. 너무 자주 맡기면 안 되긴 하겠어. 지금도 호시탐탐 탐내고 있다고.”

“제자로 받으려고? 하하핫.”

“당연하지. 나한테 처음 그 말 꺼낼 때 얼마나 눈이 반짝반짝하던지. 어쩌면 자기 생전에 자기를 뛰어넘을 제자를 만들 수도 있겠다나 뭐라나.”

“아무튼 참, 천마 어르신도. 한결같아.”

“준비하고 나가자. 스테노 기다리겠다.”

여기서 씻는다고 현실의 몸이 깨끗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현실에선 여기서처럼 따뜻한 물을 펑펑 쓰며 씻는 건 어려웠다.

우리는 그 즐거운 기분이라도 느껴보고자 메타버스에 오면 목욕부터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한 시간 후.

집 밖으로 나와 차고에 세워둔 마이바흐 S680을 타고 스테노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초지대교 근처에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카페.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리 도착해 있는 스테노가 보였다.

“스테노.”

“어! 왔어? 어서 앉아, 얘들아. 내가 마실 거랑 쿠키는 시켜 놨어.”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왜 이래, 딱딱하게. 일단 앉아. 이제 뭐 바쁜 일도 없잖아.”

최수영이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바쁜 일이 없다니. 언니, 애 두 명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게다가 언니 덕분에 아무도 대신 봐줄 수 없는 애들이 되어 버렸다고.”

“나 덕분에?”

“우리한테 이런 힘이 생긴 것도 다 넥시트코인 때문이잖아. 언니가 만든 거. 그 힘을 애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을 줄 누가 알았겠어.”

스테노가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핫. 그건 나도 몰랐어. 예측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네.”

잠시 잡담을 나누고 있자 음료와 쿠키가 나왔다.

“일단. 오늘은 진짜 중요한 얘기가 있는 거야, 아님 그냥 심심해서 불러낸 거야. 그것부터 얘기해.”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얘깃거리가 있지. 일단은 좀 놀아줘. 이따 얘기해 줄 테니까. 거짓말 안 하고 오늘은 진짜 중요한 얘기야.”

“알았어. 그런데 천마 할배가 애들 보고 있어서 저녁 시간 전에는 돌아가야 돼. 애들 봐주는 대가로 소고기를 내놓으래. 세상에.”

“천마 답네. 걔도 여기 넘어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스테노 네가 방법을 좀 찾아보든가.”

“힘들어. 아무래도 다시 넘어오는 건 불가능해. 여기선 이미 죽은 존재란 말이야.”

한참 동안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니 2032년 메타버스 속 지구와 2132년 현실 지구의 과학 기술 차이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현실 지구의 과학 기술이 훨씬 발달한 건 나도 잘 알지. 뛰어난 과학자들도 많이 살아남았고. 하지만 소행성 충돌 이후 지구는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일부 기술은 이곳보다 훨씬 진보했지만, 실상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여기 메타버스 속 100년 전 지구가 훨씬 많아.”

스테노가 답했다.

“수호 네 말도 맞아. 모든 게 날아가 버린 현실 지구에선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지.”

최수영이 잠시 대화를 끊었다.

“근데 어쩌다가 우리 이런 머리 아픈 얘기까지 흘러간 거야? 이러다 해 넘어가겠어. 천마 어르신 화가 단단히 나고 있을걸.”

“흘러온 게 아니야. 스테노가 끌고 온 거지.”

“응? 뭐라고 오빠?”

스테노가 웃으며 답했다.

“역시 수호. 예리해. 맞아. 내가 대화를 이쪽으로 끌고 왔어. 그런데 말이야. 2132년의 지구엔 여기보다 훨씬 많은 탐사선과 위성이 발사되어 있었지.”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는 거야?”

“응. 그중엔 목성까지 날려 보낸 전파 망원경도 있었거든. 지금 여기 메타버스 지구의 제임스웹 망원경보다 몇 단계는 진보한 전파 망원경이야.”

“그 정도 떨어져 있었으면 소행성 충돌에서 무사했겠네?”

“당연하지. 하지만 지구의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니 그동안 교신할 길이 없었지.”

“그런데?”

“얼마 전 인간들이 복구한 위성 수신기를 내가 좀 손보다가, 그 망원경과 교신이 닿았어. 완전히 망가져 버린 지구에서 버림을 받고서도 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더라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설마 같은 기계라 연민 같은 걸 느낀 거야 너?”

“어? 어떻게 알았어? 나도 느끼고 깜짝 놀란 감정인데. 아무튼.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AI가 다른 기계를 보고 연민의 감정을 품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이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게 뭐란 말인가.

“…뭐, 나한텐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도대체 뭔데 그래.”

“전파 망원경은 천체를 관찰하는 일 외에도, 외계의 신호를 받는 역할도 하거든. 그런데 최근 십 년간 주기적으로 전파 폭발이 감지됐어. 망원경이 혼자 다 기록해 두고 있었더라고.”

“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동안 탐지된 전파 폭발은 그동안 정확하게 273일 간격으로 관측됐어. 그리고 그 거리도 일정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어.”

이거 뭔가 심각한 얘기라는 직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 거리라는 게 얼마나 되는데?”

“내일이 또 273일째거든. 내일 또 전파 폭발이 관측되고, 지구와의 거리도 내 계산대로라면…….”

“계산대로라면?”

“이 다음번 주기. 그러니까 오늘부터 274일 후. 일부러 주기적으로 외계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 물체가 지구 근처에 도착해. 지금은 이걸 확인해 볼 다른 수단이 하나도 없어서 나도 지구에 다가오고 있는 물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다만 확실한 건.”

“확실한 건?”

“일반적인 행성의 움직임은 아니야.”

미치겠네. 메타버스에, 현실 지구에. 이제 좀 적응해서 지낼 만 하니까. 뭐?

“지금 설마 외계인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지.”

“산 넘어 산이구만. 대비책은?”

“나도 몰라.”

“몰라?”

“응.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너 양자컴퓨터라며.”

“그래도 모르는 건 몰라.”

* * *

스테노의 경고는 경고였지만 사실 뭐 딱히 대비할 수 있는 게 없긴 했다.

차라리 예전 같으면 핵미사일이라도 준비하겠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무기라고 하면 불사인과 전쟁을 치를 때 만들었던 그 중장비 정도가 다인 상황.

그렇게 그냥 지구인들은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물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 수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었고, 레온은 이제 야외에서도 자랄 수 있는 구황작물 확보에 성공했다.

온실 밖의 비교적 비옥한 땅에 대대적인 농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는 사이 연희는 이제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고, 연호는 제멋대로 아무 데나 점프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누나가 했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중이었다. 천만다행인 건 두 녀석 다 어지간해서는 다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 * *

스테노가 경고했던 날이 되었다.

처음 스테노에게 전파 망원경이니 전파 폭발이니 하는 얘기를 들은 지 정확히 274일째.

해가 뜨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만 일부 사람들은 다가올 재앙이 두렵다며 일주일 전 다시 지하 벙커로 돌아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오후 한 시. 오랜만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나는 최수영과 함께 천마신교에 와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만약의 사태엔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천마까지 같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이곳엔 연희와 연호를 봐줄 수 있는 빤짝이 삼촌들이 있었으니까.

천마가 입을 열었다.

“뭐가 오는군.”

나도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을 덮으며 이곳 뉴시티에 내리쬐는 햇볕을 모두 가려버렸다.

저건 분명히 소행성 같은 건 아니었다. 스테노의 말이 맞았다.

지구의 기계와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비행 물체가 뉴시티 위를 완전히 덮었다.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죠?”

“그래야 할 것 같구나. 가엘!”

“예!”

천마의 뒤에 서 있던 가엘이 힘차게 대답했다.

“천마신교를 지킬 최소 인원만 남기고 나를 따라라. 저 이상한 물체에서 뭐가 튀어나오는지 직접 보러 간다.”

“존명!”

최수영이 급히 가엘에게 다가가 연희와 연호를 내밀었다.

“여기 남을 기사분들에게 이 아이들 좀 잠시 맡아달라고 해주세요.”

천마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수영. 네가 남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내가 기사단을 싹 데리고 갈 테고, 여기 김수호 놈도 갈 테니 너는 여기 있거라. 아이들을 돌봐야지.”

“그래, 수영아. 여기 있어. 처음부터 애들 맡기고 너랑 같이 싸우러 나가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너까지 안전하게 있으라고 여기로 온 거지.”

“오빠…….”

“금방 갔다 올게. 별일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여기서 연희, 연호랑 잘 있어. 어쨌든 뉴시티에선 메인 타워 다음으로 여기가 안전하니까.”

“…그래, 알았어. 몸조심해.”

* * *

나와 천마신교의 기사들은 거대 비행물체의 정중앙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뉴시티의 중심, 메인 타워가 있는 곳이었다.

잠시 후.

지이잉.

어디가 열리거나 포문이 나오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비행 물체 어딘가에서 강력한 에너지파가 방출되었다.

쏟아져 내린 에너지파는 그대로 메인 타워를 때렸고, 최고의 방어 시스템을 자랑하던 메인 타워는 에너지파 공격 한 방에 절반이 날아가고 말았다.

“젠장! 역시 전쟁이군요.”

“저렇게 음침하게 생긴 걸 타고 오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그사이 방위군도 속속 우리 근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비행물체의 옆면이 갑자기 열리더니 불사인들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외계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백 미터 높이에서 마구잡이로 뛰어내린 놈들은 지면에 닿기 직전 발바닥에서 불을 뿜으며 충격을 줄여 착지했다.

“천마신교는 들어라. 훈련의 성과를 확인할 때가 왔다. 지금 하늘에서 내려온 놈들을 한 놈도 빠뜨리지 말고 도륙하라!”

“존명!”

불사인 기사들이 각자 검을 빼 들고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마법사의 버프를 받았을 때보다도 훨씬 빠르고 민첩한 몸놀림.

게다가 검기에서 뻗어져 나오는 기운도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 역시 검을 빼 들고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외계인의 키는 불사인만 하고, 몸은 우리 같은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팔다리가 달린 건 인간과 비슷했는데 얼굴엔 눈 외에 다른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날 발견한 외계인 한 놈이 급히 기다란 총을 들어 나에게 조준했다.

놈이 든 총에서는 아까 메인 타워를 날려버렸던 에너지파와 유사한 공격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주변 마나의 흐름으로 놈의 공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가볍게 몸을 돌려 에너지파를 피해 낸 후 검기를 길게 뽑아내 놈의 목을 베어버렸다.

촤악.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상대할 만하다!’

하늘에선 아직도 외계인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뉴시티 전체를 덮을 만한 비행 물체이니 저런 외계인들이 도대체 몇 마리가 타고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저 비행 물체에서 갑자기 언제 어떤 공격을 퍼부을지 모르니 저쪽도 신경 써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비행 물체가 지구 근처에 몇 대가 와있는지는 지금 알 수조차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천마에게 고된 훈련을 받은 불사인 기사들이 외계인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고 있었다.

‘그래. 할 만하다!’

나도 더 빠르게 몸을 놀려 외계인들을 베어 나갔다.

한참 놈들을 베어 내자 이제 위에서 더 떨어지는 외계인은 없었다.

지상에는 불사인 기사의 시체도 있었지만 그보단 외계인 시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위군의 화력도 이 전투를 빨리 끝내 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우리 쪽의 승리인 것 같다.

하지만 놈들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계획으로 우릴 침략해 들어올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 공격이 바로 내일 이어질지, 몇 년 후에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린 계속 싸울 거라는 사실이다.

인류는 절대로 지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내가 실패한다면, 그 뒤엔 연희와 연호 세대가 있다.

지구인들의 과학과 기술도 빠른 속도로 소행성 충돌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침공을 잘 막아내고 있듯, 우리 인류는 언제까지고 어떤 위협에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 위협의 대상이 다른 메타버스든, 외계인이든, 평행우주든.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켜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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