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7화 (7/90)

<7화 잦 휴가

휴가.

그울림부터가짜릿한단어에 매료되지 않을 이가누가 있겠냐마는, 적어

도 지금 이 순간 내게 있어선 어둠 속의 광명, 사막의 오아시스라 일컬어도

손색없겠다.

설령 그것이, 불과반나절 만에 사라져버릴 신기루라할지라도.

외출 허가증. 그것은 지금 내 손아귀에서 영롱한 휘광을 등진 채 펄럭이고

있는 성유물의 이름일지니. 여호와의 깃발을 손에 든 잔 다르크가 이런 기분

이었을까.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선연한고양감이 단전에서부터 솟구쳐올

랐다.

필사의 퇴사신청이 반려 당하고, 기억의 봉분 아래 묻어두었던 과거까지

낱낱이 파헤쳐졌을 땐, 그야말로 세상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깟 종이

쪼가리가 대체 뭐라고, 폭풍우속 나룻배처럼 술렁이던 마음이 단번에 평온

해지고, 옛 저녁에 메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신앙심까지 울컥울컥 차오르는

걸까.

아무래도 내 가 요새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근래 들어 상당히 지치신 모양이로군요. 제 권한으로 이번만특별히 단독

외출을 허가해 드릴 테니 . 간만에 마을로 내려가 그간의 피로를 풀고 오시는

게 어떠신지요.'

내 원수이자은인인, 수녀님의 차분한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먹고 떨어져라. 그런 뒤숭숭한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꺼림직한 제안이

긴 했으나, 꿰여있는 미끼가 내게 너무나도 탐스러운 것이었기에, 정신을 차

렸을 땐 이 미 그녀에 게서 외출 허 가증을 건네 받은 뒤 였다.

자유다!

라며, 별안간 우렁찬 함성을 터트린 것도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수녀님 앞

에서 그런 경거망동한행동은 좀 아니지 않았나. 아련한후회가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한때는 나도, 하루라도 집 밖을 나가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던 인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따뜻하고 안락한 내 방의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빈둥빈둥 시간을 허비하

는 즐거움을 왜 알지 못하느냐고, 그들을 어리석음을 오만방자하게 비웃기

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들의 심정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겠고, 뭣

하면 대변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땅한 오락거리 하나 없으며, 시

간을 증발시켜줄 인터넷조차 없는 거주지는 집이 아니다. 그저 밀폐된 공간

일뿐.

그렇기에 그런 불편함만이 들어차 있는 울타리 안에서 탈출을 궁리하는

건, 안락한 삶을 추향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에서 기인한본능이라 해도

무방한 것.

성녀님의 전속으로 임명 당한뒤, 전속수호사제는 성녀님의 반경 수십 미

터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원칙으로 인해, 금욕적인 법도를 준

수해 야만 하는 예배 당에 반쯤 감금당하다시 피 하다 보니 , 자연스레 깨닫게

된 진리였다.

불문에 귀의한중생 같은 삶을 반강제적으로 고수해온 지도 어언 반년. 이

제는 이 예배당의 바깥 풍경이 어떻게 생 겨먹었는지조차도 가물가물할 지

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미궁 속에서 단독 외출이 라는

이름의 자유의 날개를쟁취한 지금의 내 기분은구태여 입 아프게 설명할필

요도 없을 테지.

당장 모르는 사람이 느닷없이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라면 해맑게 웃어넘길 수 있으리라는 근자감마저 들 정도였다.

퍼억

시답잖은 잡념이 화를 부르고 만 것일까. 그 직후였다. 내 정수리 쪽에서

묵직한피격음이 들려온건.

쩌적. 후두두.

단단한 물체 가 쪼개 지 는 불길한 소음과 함께 싸락눈 같은 흙알갱 이 들이

머 리 카락 사이 를 비 집 으며 시 야를 흩트렸다.

■■••••화분?”

내 두상위 에 안착한 낯선 물체의 정체는 아담한 크기의 화분이 었다.

제아무리 온갖 기상천외한 것들이 실존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곤 하나,

이런 인공적인 조형물이 하늘에서 자연 생성되어 떨어졌을 리는 만무할

테고, 아마창틀난간에 장식되어 있던 게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이 아닐까

어림짐 작하고 있자.

"이런 맙소사!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레이지스사제님!"

중학생들의 학예회에서나들어볼법한 누군가의 어색한 연기톤 덕에 사

건의 자초지종은손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로벨 사제님 ••••."

로벨 라이트.

고명한 귀족의 자제라는 축복받은 태생. 훤칠한 외모. 새파랗게 젊은 나

이임에도 어지간한 베테랑 사제들을 가볍게 능가하는 성직자로서의 재능에

이르기까지.

신이 피조물들을 차별대우하고 있다는 가설의 가장 유력한 증거물 같은

인물이자, 난데없이 등장한 나만 아니었더라면, 성녀님의 전속으로 발탁되

었으리 란 것이 유명무실했을 남자.

참고로 난 남들 몰래 라노벨 사제님 이라고 부르고 있다. 무슨 특별한 사연

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감이 찰져서.

"이번에 제가 새로 들인 메이드 중 하나가 청소 연수 도중, 실수로 창가에

있던 화분을 떨어뜨리고 만 모양인데, 하필 그 바로 아래에서 사제님이 서성

이고 계셨었다니! 이것 참, 기막힌 우연도 다 있군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듯한 파들파들한 목소리였

다.

곧이어 내게 닥칠 부조리한 문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지

만, 입장상 겉으로 내색할순 없는 노릇인지라,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겸연

쩍은 미소를 입가에 그려 넣으며 나지막이 화답했다.

"그러게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내 형식적인 대꾸가못마땅했던 걸까.

살짝 미간을 찡그렸으나, 머지 않아 본래의 말끔한 표정으로 되 돌아온 라

노벨 사제님께서 내게 말했다.

"어이쿠! 설마, 화나신 건 아니죠?,,

꼽냐?

순간, 그런 환청이 들린 것만 같았다.

성녀님의 전속으로 임명 당한 이후로, 성녀님을 추종하는 다른 사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직면하는 건 어느덧 내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으

나, 눈앞의 라노벨 사제님께서 내게 품으신 앙금은 다른 사제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 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내 온갖 일거수일투족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대는 건 예사요. 신에게 부

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게 본분인 성식자 신분으로 지금처럼 내게 작정하

고 악행을 사주하는 별종은 이 양반이 유일무이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머리에 화분을 내던지다니. 즉사하지 만 않는

다면 치유의 권능으로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으리라는 젊은 사제들 특유의

대책 없는 안일함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인 것 같다만.

나였으니 망정이지, 너 이거 살인미수야. 인마.

”헛! 죄송합니다! 성녀님의 전속으로 친히 임명받으신 고귀한분이 고작

머리에 화분이 떨어진 일 정도로 누군가를 책망하실 리 없으실 텐데! 제가 이

런 실수를! 그것도! 감히 ! 성녀님의 전속 수호사제분께!,,

또 눈 돌아갔네. 저거.

잔뜩 충혈된 눈으로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된 혼잣말을 펼치는 그의 거동

은 범상치 않은 섬뜩함을 자아냈다.

자신 이 받아 마땅한 명 예 로운 직 책 을 웬 근본 없는 시 정 잡배 낙하산에 게

NTR 당한 그 참담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긴 한다만, 낙하산에게도 낙

하산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 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가 과연 알까.

마음 같아선 그에게 전속 자리를 양도하고서, 막중한 책임을짊어질 일없

는 한적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향유하고 싶었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교황

청에서 그런 허술한 행실을 용납할 리 없단 걸 잘 알고 있기에, 불현듯 떠오

른 낙관적 인 가정은 고이 접 어두기로 했다.

■■• • • • 전 괜찮습니다. 부디 고개를 들어주세요. 로벨 사제님. 실수하신 메

이드 분에 게도 이번 일은 구태 여 마음에 두실 필요 없다고 전해주시고요

••• • • 11

도연히 두통이 일었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화분 때문이 아니라, 존재하는지조차도 불분명한 메

이드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스스로의 처지가 우습기 그지없어서.

"아아, 자비로우셔라! 역시 성녀님의 전속수호사제라는 칭호는 장식이 아

니로군요! 사제님의 그 넓디넓으신 아량에는 늘 탄복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

11하하. • • •."

비꼼이 길어질 것 같아서, 대충한귀로듣고 한귀로흘리기로했다.

경험상, 이럴 땐 대략 한 시간 정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제풀에 지쳐 떠나

가니까.

"아, 참! 그러고보니, 이번에 외출 신청을하셨다면서요!"

"네? 아, 네, 그렇긴 한데 • • • • . 그걸 사제님이 어떻게 彆 彆 ••?"

"사제님이 부재중이신 동안, 잠시 공백이 된 성녀님의 호위역을 대신 맡아

줄 수 없겠느냐고, 수녀님께서 제게 친히 부탁하셨었거든요! 하핫! 그 수녀

님이! 다른누구에게도 아닌! 바로 제게 말이죠!"

"아아,네…•."

과연,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군.

성격엔 다소 하자가 있을지 모르나, 성식자로서의 실력만큼은 확실한 그

니까. 날 대신할 인재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임인 인물을 고르

라면 모두가그의 이름을 호명할테지.오히려 지금의 이 역할관계가 이전보

다 갑절은 더 안정적으로 느껴 질 정도니 말 다 했지 뭐.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사제님의 빈자리는 이 제가! 이 노벨 라이트가 사

력을 다해 수행해낼 테니까요! 그러니 마음 편히 먹으시고 마음껏 외출을 즐

겨주세요! 가급적 느긋이〜 되도록 길게요〜!"

"아. . • • . 네 •• • •

언젠가 봤던 건수 잡은 폰팔이의 눈빛을 보는 듯했다. 마음은 알겠다만,

명색히 성직자라는 양반이 자신의 음흉한 속내를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 내 고 있는 모습은 빈 말로라도 보기 좋은 광경 은 아니 었다.

수녀님이 내게 허한외출 시간은 기껏해야 반나절. 그 찰나의 유예 시간

동안, 전속 수호사제의 자리를 잠깐이 나마 만끽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기쁜 것

인지,아니면,그잠깐사이에 전속의 자리를내게서 강탈해갈모종의 비책이

라도 있는것인지.

내 가 독심술을 쓸 수 없는 이 상, 그 꿍꿍이 속을 알 방도는 없으나, 만약 후

자라면, 진심으로 응원할 테니, 부디 그 뜻을 이루어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졌네요. 그럼 믿고 맡기

겠습니다. 노벨 사제님.,,

"아뇨! 오히려 감사 인사를드려야하는 건 오히려 제 쪽이죠! 레이지스 사

제님! 하하하!"

마치 세상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 티 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날 배웅해주는

라노벨 사제의 거동이 다소나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반년만의 허락된 외

출의 감격에 비할 바는 당연히 아니 었기에, 머리카락에 묻은 흙무더기를 무

거운 상념과 함께 훌훌 털어내고서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설마, 무슨 일이 있기야하겠어?

위 기의식이 결여된 무사태평한 사고회로가 그런 나의 등을 무던히 떠밀

었고.

내가 라노벨 사제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약 書시간 정도 뒤

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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