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11화 (11/90)

秦 11화 잦 거짓말

이번 생 최초로보게 된 시청각 자료의 퀄리티를 한 마디로, 간결하게 표현

하자면 이러했다.

처참했다.

로벨 라이트라는한사내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스킵 없이, 딱히 궁금하지

도 않고, 보고 싶지 않은 장면까지도 구태 여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멋대로 훔쳐보고 있는 듯한 거북한 기분이 들어 다소

불쾌하기까지 했다.

이 조잡한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겸임한 인물이 자신을 '신,이라고 지칭하

는 수상쩍 은 작자만 아니 었더 라면, 사자가 얼룩말 도륙 내는 유익 한 동물 다

큐쪽으로 채 널을 돌리 기 위해 무심코 리모컨을 찾아 헤 맸을지도 모를 일이

었다.

영상이 끝난 직후, 스멀스멀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엔 감독, 기획, 촬영, 편

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부문에 '신,이라는 꺼림직한글귀가도배되어 있

었고.

암전된 화면 너머로부터 아렴풋이 들려오는 후시녹음 된 청중의 환호성

과박수 소리는그저 귀에 거슬릴 뿐이었다.

[어때.]

어떻긴 뭘어때.

손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건, 이전 생에도 이번 생에도 이골이 날 만큼

해왔는지 라, 어느덧 내 주특기 중 하나라고까지 자부할 수 있겠으나, 그 상

대 가 신내 림 받은 브라운관 티비 정도쯤 되 니, 적당한 맞장구를 떠 올리는 것

조차도 힘에 부쳤다.

"자, 잘만드셨네요…•.

II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일단, 외마디의 찬사를 던져봤다.

미소와 칭찬은 만국 공통.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사용하든, 절반 이상은 먹

고 들어 가는 훌륭한 의 사소통 수단이 기 에.

[그치?]

궁여지책 으로 적당히 내 던진 말이 생 각보다 괜찮은 성과를 거둔 모양인

듯했다.

대화를 주고받을 때, 저런 식으로 상대방이 말꼬리를 넘겨준다는 건, 적

어도 저쪽은 나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픈 의사가 있다는 걸 의미했고, 그

건 내 가 그에 게 어 느 정도는 호감을 사고 있다는 방증이 기 도 했으니 까.

하지만.

첫 대면임에도 다분히 호의적인 저 태도가오히려 내 경계심에 불을 지폈

다.

이 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호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득실, 혹은, 자기만족.

사람이 누군가를 돕거나, 호의를 베푸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

이고, 더 군다나, 그 상대 가 정체 와 목적 이 불분명 한 수괴 한 존재 라면, 굳세

게 붙들고 있는 의심은 끈은 더더욱 놓아선 안 됐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도대체 뭐하시는분이신지 좀 여쭈어도 괜찮을까

요••••?"

[말했잖아. 신이라고.]

''그••••.신이라고하면••••.무언가를 상징하는 표현이라던가••••.아

니면, 어떠한단체명을의미한다던가그런 • 彆 ••?"

[아니. 신. 그냥 신.]

"그, 그럼 하다못해 무엇을 관장하는 신인지라도 좀 알려주셨으면 하는데

••• • • 11

[이것저것 관장하지. 이것저것.]

"아. . • •.네•• • •."

그렇게.

차라리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게 마음 편하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답 없는

대화를 주고받기를 한참.

[궁금한건 해결됐어?]

자칭 '신,인 티비가말했다. 너의 물음은해결됐느냐고.

그러고보니, 저 티비가 뜬금없이 라노벨 사제를 주인공으로한관찰예능

을 틀어 재낀 건, 내가 라노벨 사제와성녀님 사이에 오고 갔던 일의 경위를

궁금해한 직후였다.

덕분에 일련의 자초지종에 대한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됐다만, 그로 인해,

더 큰 궁금증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말았으니, 마음이 개운해지 기는

커녕, 안개 낀 것처럼 자욱한느낌만 가득했다.

"네…•.덕분에…•."

내뱉은 말을 미처 매듭짓지 못했다.

눈 깜빡임 한 번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찰나의 순간, 나타난 순간보다도

고요히, 일말의 잔영조차도남기지 않고서 사라져 버린 티비.그불가사의한

기화에 지각이 농락당했기 때문이었다.

I

'대체 뭐였던 거지••••.

II

몽롱해진 의식을 재점등하기 위해 일단, 뺨이라도 한 번 꼬집어볼까 싶었

으나, 이내 그만뒀다.

fI

으 으으. • • • .

II

---- o

이제 막잠에서 깬 모양인지, 내 품 안에서 나릿나릿 몸을뒤채기 시작하는

성녀님의 투정. 맞닿는 부드러운 살갗. 따뜻한 체온이 가져다주는 현실감이

내가 여태껏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고히 해주

고 있었으니까.

잠에서 깬 성녀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내 상반신을 온몸으로 끌어 안은 채, 이따금 눈만 끔뻑끔뻑 감았다 뜨며,

어미품 안의 새끼 코알라처럼 도무지 내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이따금 내가 내 몸에서 성녀님을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거나, 자리

에서 일어 나 다른 장소로 이 동하려는 의 중을 조금이 라도 내 비치 면, 히끅히

끅, 구슬픈 울음을 예열하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없이 협박을 해대는 통에 몸

을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다는 부분만큼은 상당히 고달팠다.

"성녀님 … • . 제가 지금 몸에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 … • . 진

짜 잠깐만, 딱 한순간만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체조 한 번만 하고 다시

안아드릴 • • ••.

"우으으. • • •

안된단다.

fI

II

대답 대신 돌아온 건, 내 웃옷에 제 얼굴을 파묻으며 내쉬는 울적한 투정

뿐.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 의중을 온전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그 일련의

행동에서 저며오는 의 지는 절박하고 선연했다.

어린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늘거칠고 원시적이다.

성녀님의 이제까지의 모습은 그런 철부지 같은 어린아이의 전형이었다.

해달라는 걸 해주지 않으면 토라지고, 원하는 걸 내놓을 때까지 떼를 쓰며

,거슬리는 존재에겐 주저없이 해를 가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성녀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묘했다.

평소의 성녀님이 었다면, 눈을 뜬 직후, 상반신을 내던지듯 내게 달려들어

무작정 입술부터 들이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장애물에 부딪힌 오픈 월드 게임의 NPC 처럼, 설사 그 진격이 무언가에

가로막힌다 하더라도, 낮빛 하나 바뀌지 않고서, 내쪽을 향해 무대포로 돌진

해오던 것이 바로 내가 여태껏 보고 듣고 체험해온 그녀였으니까.

일련의 모든 행동에 광기를 실어 흩뿌리는 듯했던 그녀의 거동에 익숙해

져 있던 나로선, 지금과 같은 퇴영적인 성녀님의 모습은 다소 낯설고 생소하

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안온다고•••• 해•••• 써••••.다,다시는•••• 아,안••… 온다고•••.

해써 ••••."

끅끅, 말에 뭍은 울음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듯한 애달픈 목소리가귓전을

스쳤다.

말을 했다기 보단, 토해 낸 울음에 말이 딸려 나왔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란 생 각이 들 만큼 애 처로운 울림 이 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단어들로 유추해보건대 .

성녀님께선 아마, 라노벨 사제가 떠들어댄 이제부터 자신이 새로운 전속

이 되 겠다는 군소리 를 내 가 다시는 성 녀 님을 보러 오지 않는다는 의 미쯤으

로 확대해석해 버린 모양인 듯했다.

다소의 비 약이 있는 추론이 긴 했으나, 그 추론이 도달한 종착지는 의외 로

이야기의 정답에 근접해 있었다.

퇴직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성녀님의 전속이 된 이후, 항상 입에 달고 다니 던 말임과 동시

에, 언젠가 꼭 이루리라 맹세한 내 비원이 기도 했으니까.

”제제가성녀님을두고 어딜 가겠어요? 자,봐요.오늘도 이렇게 성녀님

보려고 찾아 왔잖아요. 그 사제분이 장난을 되게 좋아하시는 분이신데, 성녀

님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좀 심하게 치셨나 봐요. 저도 그 사제분이랑

굉장히 친한 사이인데, 평소에 제게도 그런 짓궂은 장난을 너무 많이 하시는

바람에 저랑도 늘 다툴 정도라니까요."

아주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최대한 성녀님이 듣고 싶어할 법한 말

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물론, 그 중간중간 라노벨 사제에 대한 변호를 끼워 넣는 것도 빼먹지 않

았다.

내키지 않지만, 결단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곳에 그 인간을 살

리 러 온 것이 나 다름없었기 에 . 기회 가 되 는 틈틈히 성 녀님 이 끌어 안고 있는

그 인간에 대한 좋지 못한 인상들을 조금씩 이라도 덜어내 야 했다.

"지, 진짜아. •••?"

"네. 그럼요.,,

"어, 어디.. •.안가....?"

"약속드릴게요.성녀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성녀님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

고요. 전성녀님의 전속수호사제이니까요.,,

• • • •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성녀님의 울적했던 마

음도 다소는 누그러진 모양인 듯했다.

내 몸을 꽉동여맨 팔의 힘의 세기는그대로였으나, 물끄럼히 나를 올려다

보는 그 적색 눈망울엔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찬연한 색의 빛이 어른거리

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놓칠 내가아니었다.

”저기,그래서 말인데요.성녀님.제가사실 그친구한테 급한볼일이 있어

서 그런데, 실례가 안된다면 그 친구 얼려 놓으신 거 다시 원래대로좀되돌

려놔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바로 지금.

"응? 오빠가 이렇게 부탁할게. 웰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각도로 들어간 신의 한 수.

그 직후 들려온 성녀님의 회답은 이러했다.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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