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12화 (12/90)

秦 12화〉히히 못가

환청일 게 분명했다.

불안감이 부풀어 올라 작은 소음이 망상이 되 어버리는 경우는 허다하니

까.

성정이 소심한 이들이 이따금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누군

가의 발소리 라고 오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 라고 여 겼다.

실제로 성녀님의 조그마한 입술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과 내

심장을 꿰뚫은 그 말이 생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으스스한 전운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점이 앞서 언급한 가설에 설득력을 불

어 넣어 주고 있었다.

"성녀님•…?"

성녀님의 표정을 살피려 했으나, 그 잠깐 사이에 쏜살같이 내 목 둔덕에 얼

굴을 파묻은 그녀의 영민한 대처로 인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직후.

까득.

■윽!..

쇄골을 깨물렸다.

마치 치사량의 독이라도 주입 당한 것처럼 얼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졌

다. 이 건 성녀님 이 화가 단단히 났을 때의 행동이 란 걸 머 리 가 아니 라 몸이 기

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떠오르는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칼에 찔렸던 순간의 기억.

살과 뼈를 짓이 기고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얼음장같이 차갑기 만 했던

쇠 붙이 가 누가 담금질 이 라도 하고 있는 것처 럼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 지 더

니, 곧이어, 몸의 내장이 그 열원 쪽으로 몽땅 빨려 들어 가는 듯한 그 끔찍한

감각을도대체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던가.

발가락 끝에서부터 무릎, 단전, 허리 순으로 힘이 끊어져 버리고, 물에 빠

진 것처럼 먹먹해지는주변 소음에 사고가 마비되어갈무렵, 격랑 같은 격통

속에서 도연히 내 눈두덩이를 무겁게 만드는 유혹적인 졸음을 체감했을 땐.

아, 이거 살긴 글렀구나.

그런 보잘것없는 감상밖엔 떠오르지 않았었다.

힘의 세기만 다를 뿐, 느낌은 그때와 한없이 유사했다.

내 살결을 짓누르며 뼈대에까지 다다르려 하는 성녀님의 새하얀 치아가

내 몸 깊숙한 곳에 매몰되어 있던 끔찍한 악몽을 낱낱이 파헤쳐 올리고 있었

다.

"거짓말.... •.거짓말' 彆 彆 •.

II

내 심장에 내리꽂힌 말의 정체가 구명됐다.

환청은 아닌 듯했으나, 음성 또한 아니 었다.

이를테 면 파동. 소리 없이 , 그 의 미만이 직접 전도되는 듯한 뒤숭숭한 울림

이 내 머릿속에서 쉼 없이 메아리치고있었다.

"거짓말 싫어. 거짓말 나빠. 가지 마. 여기 있어. 나랑 있어. 나랑 있자.,,

하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다음 말이 연거푸 겹쳐지니, 의미를온전

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거, 거짓말이라뇨! 아니에요! 성녀님! 전 정말로' .... 윽!,,

구차한 변명 따위는 듣지 않겠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 몸의 첨 단에 서부터 심 장까지 눈 깜짝할 사이 에

기 어 올라온 하얀 전류는 내 게 그리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체내에서 체류하고 있는 모든 혈흔이 한 차례 냉각되고서 비등 되는 공정

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듯한 이 감각을, 나는 이전에 경험해본 바 있었다.

성녀의 가호.

신이 한 줌의 신실한 소녀들에게만 의탁했다고 일컬어지는 지고의 권능

이자, 성녀님 이 라노벨 사제를 그 지경으로 만들 때 사용한 수단의 원류로도

추정되는힘.

자욱한 안개와 같았던 불온한 의혹이 점점 구체적 인 형상을 갖춰 가는 듯

한 공포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성녀님 .... •.설마. •...

"못가…•."

라노벨 사제의 추레한 몰골이 떠올랐다.

혼을 잃어버린 인간.누군가가줄을 매달아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홀로 걸

을 수조차 없는 한낱 인형 같던 그 모습이, 내 사고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

속시 켰다.

그리고 떠올려 버리고야 말았다.

언젠가 봤던, 부모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던 아이의 거

동이 지금의 성녀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평생.. ••.평생여기 있어.….

fI

일그러진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듯한, 흐트러진 말.

허리 아래쪽의 감각이 전부 사라져버렸단 걸 깨달은 건, 바로 그 말을 들은

직후였다.

크흑!,,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에도 성녀님의 전신이 내 몸에 바짝 밀착된 상태라는 점은 변함없었

다.

맞닿은 살결 너머로 전해져 오는 음험한 열기. 비강을 스치는 아찔한 체향.

내 거친 숨이 일렁이는 결을 따라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가느다란 속눈썹에

이르기까지.

생사존망이 걸려 있는지도 모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의식은 그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답고, 고귀하며, 거룩한 존재였기에.

칼에 찔렸었던 때가 차라리 나았었단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못생긴 쇠붙

이는 적 어도 쳐 내 거 나, 뽑아내 거 나, 부숴 버 릴 수 있었으니 까.

여기까진가.

그렇게 흐려지는의식을 다잡아야한다는, 어쩌면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을지 모를 한 줌의 갈망마저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서서히 사그라들 무

렵이었다.

'신부님!,

상념 속에 울린 귀에 익은 목소리와 함께 문득, ■그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라는, 시답잖은 가정 하나가뇌리를 스쳤다.

매 사에 지나치 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 이고, 저돌적이 며, 불의를 보면

결단코 참지 않았던.

'정의 , 라는 두 글자가 옷을 입고서 걸어 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던 그녀 였

다면.

만일, 헤쳐나갈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직면하고 말았다 한들, 과연 지금의

나처럼 한심하고 볼품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편해지려 했을까.

푸흡.

도연히, 웃음이 새었다.

제 입으로 말해놓고도, 참으로 황당무계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리 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늘이 두쪽 난다하더라도, 설령, 이 세상 전부가 한치 앞도보이지 않는

어둠에 휩싸인다고 하더라도, 그녀만큼은, 오직 그녀만큼은, 빛을 바라보며

걷는 미 련한 행위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 지.

"웰나. . . .. 이거 놔. . . . J'

... .싫어.

fI

흐릿해지려는 의식을 입안을 짓씹어 억지로 각성시켰다.

평소의 나였다면, 고되고, 꼴사납다고 여겨, 절대 고르지 않았을 선택지.

이른바, 최후의 발악.

못다 한 미 련 같은 게 남아 있어서 가 아니 었다. 여타 창작물 속의 주인공들

처 럼 위 기 를 코앞에 두고 출처를 알 수 없는 힘 과 용기 가 갑자기 샘 솟아서도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이따금 내게 보여줬던 위용을 모방해보고픈, 궁상맞은 동경

심으로부터 비롯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오빠는 놓으라고 했어••••."

"시, 싫어… •."

"좋은 말로 할때 놔.,,

"어, 어어•• • •?"

나. 레이지스로우빌.29세.

이번 생애 처음으로 아이를혼내보려 한다.

碢碢碢

어딜 둘러봐도목가적인 풍경 일색인 지소한 지역 도시에선, 영웅의 행렬

과 그 뒤를 잇따르는 시민들의 환호성만큼, 어린아이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볼거리는 드물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형형색색의

꽃잎들은 그늘진 잿빛 거리에 색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어쩌면 차갑게 식어

버렸을지 모를 동심에도 아침 해와 같은 열을 부여하기에.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벅찬 삶을 근근이 이 어가고 있는 소시 민들조차, 이

순간만큼은 제 할 일을 내팽 개치고서 행렬을 관람하러 뛰쳐나가는 아이들

의 철없음을 꾸짖지 못한다.

하지만 가중된 성원과 열기는 이따금 예기치 못한 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

"꺄아악!"

굉음과 비명이 열화와 같던 시민들의 함성을 베어 갈랐다.

한쪽 바퀴가 탈선된 채 반파된 마차. 그 바로 사선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

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연령대로 추정되는 여자아이. 대충 흘겨보더라도,

마차가 갑작스레 나타난 아이를 피하려 한 결과물이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는 현장이 었다.

"이 썩을꼬맹이가!,,

행렬을 지휘하고 있던 어느 군병의 호령을 필두로 청중들의 낯빛이 급격

하게 어두워졌다. 아니, 창백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마땅할까.

맹수를 목전에 둔 토끼처럼 바들바들 몸을 떨어대고 있는 아이를 향해, 군

병이 치켜든 건 서슬 퍼런 칼날이었다.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는 인간이 라면 연민의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는 안

쓰러운 광경이 긴 하였다만, 그 자리에 어느 누구도, 곤경에 처한 가여운 아이

를 두둔할 용기는 차마 끄집어내지 못했다.

■■용사님의 거룩한 행진에 훼방을 놓은 것도 모자라! 감히 용사님의 동상

이 실린 마차에 위해를 가하다니! 그 추악한 죄질! 목숨으로 사죄할 각오 정

도는되어있겠지!,,

"흐, 흐긋!"

군병의 성량이 드높아질수록, 아이의 표정은 옅은 먹물이라도 풀어헤쳐

놓은 것처럼 점점이 어두워져 갔다.

아직 사고하는 능력 이 채 무르익 지도 않은 아이로선, 무언가 잘못되 어 가

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체 감하는 게 고작이 었기 에.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공포심에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려 봤으나, 그

러한 보잘 것 없는 대처로 저 거대한 칼날을 도리가 없단 건, 아이 본인을 제

외한 그곳에 있는 모두가 깨닫고 있는 비극적인 사실이었다.

"미아!"

바로 그때였다. 아이의 오누이로 추정되는 소년이 군병의 앞을 가로막은

건.

"죄,죄송합니다! 병사님! 제 여동생이 범한결례! 진심으로사죄드립니다!

가족이 끼친 피해는 제 가 평생을 일해서라도 갚아낼 테 니 ! 부, 부디 ! 부디 자

비를 베풀어주시길!,,

허름한 옷차림과 꾀죄죄한 얼굴.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바닥에 납작 엎

드린 그 비굴한 행색으로부터 소년의 빈곤한 신분을 넘 겨 짐 작한 군병 이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또 한번 언성을 높였다.

''하! 평생을 들여 갚겠다고? 그래! 부서진 게 마차뿐이었다면 그걸로

충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테지! 하지만, 마차에 실려 있던, 네 녀석의 동생

년이 훼손한 동상은 용사님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왕실에서 직접

제작한 특주품! 네까짓 평민의 평생으론 변상은커녕, 발가락 하나의 보탬이

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물건이 란 말이 다!"

"커헉! 죄,죄송.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멱살을 붙들린 소년이 필사적으로 게워낸 사죄의 말들은 오히려 군병의

화를 돋굴뿐이 었다.

아는 것 없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의 호소는 이토록 볼품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그저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어쩌 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누군가를 손을 내뻗 어줄지도 모른

다고.

소년 스스로도 알량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 흐릿한 희 망에 매달리는 것 말

곤, 하나뿐인 누이 동생을 지켜낼 방도는 없으리 라 여겼기에 , 소년은 그 누구

도 귀 담아 듣지 않는 꼴사나운 기도를 반복하고 거듭했다.

■■이 모든 건 전부! 전부! 혈육의 관리를 소홀히 한 제 잘못입니다! 용사님

의 위 상을 더 럽힌 죄 는 제 목숨으로 사죄 드릴 테 니 ! 그러 니 ! 부디 제 동생 만

큼은!"

"시끄럽다! 감히 평민 주제에 내게 의견을 제시하려 하다니!,,

그런 소년의 간원을 남김없이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군병이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들 무렵이었다.

"처형이다!,,

fI

눈을 질끈 감아버린 탓에 시각 정보가 차단되 어 버린 소년의 귀에 울려 퍼

진 건 누군가의 용맹하고, 아름다운 기합 소리 였다.

"용사 펀치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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