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13화 잦 훈육
아이를 함부로 혼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부모는 더러 있을지 모르나, 아이
를 절대로 혼내선 안된다고 말하는 부모는 아마 없지 않을까. 혹여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혼을 내 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잘잘못을 다그쳐줄 보호자 없이 자유분방한 유년기를 보내온 아이가 마
땅한 조치 없이 사회 에 풀려 났을 시 주위 에 어떠 한 재 앙을 초래하는지 는 초
록색 새끼 공룡이 손가락으로 초능력 쓰는 애니메이션만 봐도 간단히 알수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훈육은 보호자의 권리가 아닌 의무다.
이는, 얼마 전에 불태워버린 서적.《육아의 정석.툭하면 떼쓰는 아이 흔들
리지 않고 키우기》의 저자도 장장 10페이지를 할애해 가며까지 거듭 강조
하던 주장이었다.
"좋은 말로 할때 이거 놔. 웰나.,,
"어,어어.. ..?"
도무지 믿기 힘든,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라도 직면한 것처럼, 떠듬떠듬,
내게로부터 거리를 벌리는 성녀님.
나조차도 내 입에서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
울 따름인데, 성녀님은 오죽했을까.
평소에 화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 이따금 표출하는 분노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은 나도 익히 들어본 바 있으나, 그 유사 이론의 신뢰도를 나 자신
으로 입증하게 되 리 라곤 꿈에도 생 각 못 했다.
물론, 진짜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늉에 불과하니까.
훈육이라는 행위를 하기에 앞서,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 가면을 급조해서 뒤
집어쓴 것뿐.
애초에 마지막으로 화를 내본 게 도대체 언제 인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
로 무기력하고 무기능한 삶을 고수해온 나였기에.
종종 화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을 보는 것 같다던, 나의 물렁한 천성을
꼬집던 주변인들의 논평에 여태껏 마땅한 반론 하나 내놓지 못했고, 내놓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자, 이제 어떡한다.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무작정 내던진 요행수. 어쩌면
최 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을지도 모를 도박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간 건, 가히 천운이 따라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나.
문제는 그다음 수. 평생을 분노라는 감정과 담을 쌓아왔던 내가, 이대로
얼굴을 찡그린 채 목소리를 내리까는 것 이외에 누군가를 다그칠 수 있을 만
큼의 진중한 분위 기를 연출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기에 .
솔직히, 거듭된 고뇌로 인해 얼굴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미숙한 연기 마저도 실패로 돌아갔을 판국이 었다.
■우, 우으으••••.
fI
근데 이게 또 먹혔다.
내 안에 내재 된 대배우로서의 재능이 뒤늦게라도발현된 것일까. 아니면,
나의 이런 허점투성이의 연희에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성녀님의 견식이
무딘 것일까.
참으로 안타깝게도, 어느 쪽이 정확한 답인지, 느긋하게 답안지 채점하고
있을 심적 여유는 없었다.
이런 조잡한분노라도 일단은 먹혀들어 가긴 한단 걸 확인한 이상, 지금은
이 이점을 활용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으니까.
”웰나.우선 내 몸에 걸어 놓은 이거 지금 당장풀어.그리고, 앞서 여기 오
셨던 사제님 얼려 놓은 것도 빠른 시일 내로 되돌려 놓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
서오빠랑 약속해."
I
■우, 우읏…•.
II
■웰나."
"시, 시러… •."
"웰나!
II
"시, 시흣! 시러어…
….시러어어••••."
내 단호한 어조에 흠칫흠칫 놀라면서도, 양손으로 내 옷깃을 굳세게 부여
잡으며,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견지하려는 성녀님의 모습은 퍽 안쓰러워 보
이긴 했으나.
웃어른들에게 머리를쥐어박히던 일이 비일비재 했던,몸에 각인된 청소
년기의 뼈아픈 기 억들이, 쐐기를 브후아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내게 고
지해준 덕에 당초의 결심이 그무러지는 일은 없었다.
체벌.
말 안 듣는 아이 에 겐 매 가 약이 라는 구시 대 적 인 발상으로부터 비 롯된 지
질구질한 행위 이긴 하나, 이것만큼 직접적인 피드백이 돌아오는 육아 기법
은 몇 없기 에 그 어 떤 인자한 부모라 하더 라도 한 번쯤은 회 초리를 들게 만드
는 이른바 마성의 수단.
나도 가급적 이런 거친 행위까진 동원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내 어깨엔
한 사람의 소중한 목숨. 내 목숨.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의 목숨. 라노벨
사제의 목숨. 도합 1.5 인분 정도의 명운이 얹어져 있었기에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 었다.
가호의 침범으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몸의 감각이 서서히 마모되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 상반신만큼은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단 것이 내 사활을 갈랐
다.
철컥.
목에 걸고 있던 로자리오를 잡아 뜯어, 그 안에 감추고 있던 칼날을 발리
송 나이프의 날을 피듯 꺼내 들었다.
암기가 내장된 로자리오를 사용하는 건, 수도 출신 사제들끼리는 은연중
에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야만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제도 내에 널
리 퍼져 있으나, 나처럼 모험가 출신 사제들의 대다수는 이렇게 여차할 때
호신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암기 형 로자리 오를 선호하고 애용하고 있다.
전장에서 무기의 유무는 생사를 가른다.
설령, 그것이 고작해야 손바닥만 한 나이프란 한들, 없는 것보단 단연코
낫다는 건, 이 제도 바깥에선 어린애도 알고 있는 상식 중에서도 상식이다.
11 彆 彆 ••/
O"
느닷없이 품에서 칼을 빼든 나를 보고, 옅은 당황과 의구심을 눈망울에
꽃피운 성녀님이 느릿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이었다.
콰직.
칼날이 살가죽에 내리꽂히는 소름 돋는 울림과 함께 붉은 선혈이 낭자했
다.
"....어어?"
성녀님이 입에서 허실한숨이 새어 나왔다.
부릅 떠진 동공. 가빠지는 호흡. 파르르 떨리는 작은 입술.
그 일련의 동작들이 서사하고 있는 감정은 명확했다.
경악. 어쩌면 공포.
그럴 만도 했다.
성녀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러한 거무스름한 감정들을 초래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당위 성을 갖추고 있었으니 까.
내가 내 손으로 내 손등에 칼날을 내 리꽂았다.
그래, 언젠가성녀님이 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碢碢碢
꿀밤. 회초리. 생각하는 의자.
이 세상엔 다양한종류의 체벌이 존재할 테지만그중에서 성녀님에게 유
효타가될 만한 체벌을 떠올려낸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순순히 입술을 내놓지 않았다는 시 답잖은 이유만으로 자기 손이 넝마가
될 때까지 찌르고 쑤시는 인간을 겁먹게 할수 있을 만한 체벌을 베르세르크
도 잔인해서 중도 하차한 나 같은 소인배가 안출해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
가.
더욱이 , 제 아무리 교육을 위 해 서라고 한들, 성 녀님의 안전을 최 우선으로
생 각해 야 하는 수호사제 가 성 녀 님 의 옥체 에 해 를 끼 칠 방안을 모색 한다는
그 발상부터가 이미 불경죄에 해당하니, 고통을 수반하는 체벌은 이내
포기해야만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녀님 본인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면, 성녀님이 소중히 여기는 다른 무언가
를 인질로삼는 건 어떨까. 라는생각.
처음 그 발상을 떠올렸을 당시에는, 성녀님의 소중히 여길만한 물건을 종
잡지 못했었던 데다, 가뜩이나 정서가 불안정한 성녀님에게 그런 거친 수단
을 동원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라는, 우려 때문에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
했었다만.
지금이라면.
성녀님께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 데다, 이런 거친 수
단을 동원하는 것 말곤, 사태를 해결할 마땅한 방도가 없는 지금이라면.
내 사악한계획을 실행에 옮겨도되지 않을까.
'후우••••.
II
가호의 침범으로 인해, 정신과 감각이 무너지고 있는 여파일까.
뇌리에 해괴망측한논리와 개념들이 질서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이따금 떠오르는 사고의 파편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조차도 힘
에 부칠 지경이었다.
손등의 고통은 생각했던 것보다 견딜 만했다.오히려 별 볼 일 없기까지 했
다.
이를테면, 의식은 깨어나 있는데 몸은 마취 상태인 듯한 기묘한 기분.
꿈과 현실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살결을 꿰뚫고서 뼈를 건드리고 있는 낯선
쇠붙이의 어슴푸레한 존재감만이 나라고 하는 존재가 아직 원형을 유
지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찌르길 참 잘했다.
자해 자체는 계획된 행동이 맞긴 하였다만, 당초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칼
을 빼 들고 찌르는 시늉만 하는 것이 었기 에 , 다짜고짜 손등에 칼침을 박아
넣는 건 엄밀히 따지 자면 사고로 분류해 야 마땅했다.
하지만 여태껏 수십, 수백 개의 생사경을 함께 헤쳐온 내 직감이 말하길,
지금 이 순간, 손에 바람구멍이 뚫리는 정도의 자극을 생성하지 않는다면, 내
정신이 형태 없는무언가에 완전히 잠식될 것이라고하기에.
마치 척수 반사가 일어나듯,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 오른손은 내 왼손등
에 칼날을 박아넣고 있었다.
■■아이쿠彆 . • •.손이 이 모양이 되어버렸으니,더 이상웰나에게 아앙을
해줄수도, 머리를쓰다듬어줄수도 없겠는 걸• • • •. 이걸 어쩐다••••."
뇌에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그직후 성녀님은 일말의 미동 없이, 단한
번의 눈 깜박임조차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 내 왼손에서
흘러내 리는 핏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칼날을 타고 흐르는 미 지근한 핏방울이 , 한 방울, 두 방울, 차례 대로 바닥
에 몸을 내던지며, 이 새하얀세상에 검붉은 오점을 남기고 있기를 한참.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흐릿해지는 통증. 칼을 쑤셔 넣은 왼손 이외에 몸
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목 윗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단 것을 뒤늦게 깨달
은 직후.
결국, 내게 마지막 남은 수단을 꺼내 들기로 했다.
내 손바닥을 뚫고 튀 어나와 있는 칼날을 그대로 내 목에 가져다 댔다.
어릴 적 본 어느히어로무비에서 손에서 칼 나오는주인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는데 .
내가하니, 이리도 볼품없을 수가 있나.
역시 히어로는 아무나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웰나彆 彆 • •.마지막경고야彆 • • •.당장이거 풀고사제님도멀쩡히 고쳐
놔. • • •."
그 말을 뱉은 직후, 이미 내 정신은 어둠 속에 반쯤수몰된 상태였다. 성녀
님이 그 말에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어떤 답변을 건네실지조차 알 방도가 없
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섭섭함에 눈물 흘리실까. 배신감에 화를 내실까.
어쩌면 저 자신의 목숨을 경솔히 저울대에 올려놓은 내 간사한 태도에
실망감을 표출하실지도 모른다.
나름의 각오를 다지며, 당장이 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의식을 간신히, 그야
말로 간신히 붙들고 있던 차였다.
귀에 익지만,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애처로운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자, 잘못. . . ..흐긋! 자, 잘못해써요. . . 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