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14화 잦원숭이의손
지구로 귀 환한 우주 비행 사들이 다시금 땅을 밟는 순간 바닥에 풀썩 주저
앉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트램펄린 위에서 방방 뛰놀다, 그 직후, 평지에서 점프를 반복한 순간
느껴 지는 위 화감을 수천 배로 비대화 시 킨 듯한 메스꺼 움 탓에 좀처 럼 다리
에 힘을 실을 수가 없었다.
맡은 바 책무를 다해냈다는 성취감과 긴장이 풀린 육신에 서서히 스며드
는 희끄무레 한 탈력 감.
그 중간 사이 어딘가에서 의식이 유영하고 있는 듯한 이 피로한 감각은 술
병난 날 장거리 마라톤이 라도 뛰 지 않는다면 결코 재 현해낼 수 없으리 란 생
각이 들 정도로 고단하고 힘 겨웠다.
"사제님!,,
알현실이란 이름의 차원의 틈에서 간신히 탈출한 나를 가장 먼저 환대해
준 건, 최고급 양모 이불을 가볍게 웃도는 푹신한 감촉과 그 위편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수녀님의 근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괜찮으십니까! 사제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심신이 넝마가 된 상태 임에도 안면을 대 어 안는 그 보드라운 감촉만큼은
어떻게든 선연히 느끼려 하는 내 안의 남성성이 다소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의 내게 이 고혹적인 편안함으로부터 저항할 여력이 남아 있을 리 만무
하였기에 결국 본의 아니게 몸을 내맡기게 됐다.
"••••수,수녀님?,,
"휴우.... •.다행히 의식은온전하신 모양이로군요彆 •••."
이 사람.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 이 었구나.
뜻밖의 위대한 발견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던 와중, 늘 냉정 •침착하시
던 수녀님의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부산스러운 거동을 보고 있으니,
아직 사후 보고를 하지 않았단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 메마른 입술을 황급히
달싹였다.
"아• •••.성녀님의 설득건은•• • •.아무쪼록잘마무리됐습니다• •••."
철근같이 무겁게 느껴지는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려, 바들바들, 엄지를 치켜
세우는 것으로 폭탄을 성공적으로 해제했단 사실을 나지막이 고지했다.
"하아… •.네, 그러시겠죠."
신물이 난다는 듯한 한숨과 책망의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혹시 , 내 가 또 무언가 실수라도 저 지른 건가 싶어 , 녹이 스며든 것처럼 삐걱
거리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 수녀님의 낯빛을 살폈다.
"사제님은 여전하시네요… •."
무언가를 회상하고 있는 듯한 수녀님의 눈빛엔 처연한 우수가 어른거
리고 있었다.
견습 사제 시절부터 가늘고 긴 인연을 유지해오긴 했다만, 서로 이름과 얼
굴만 대충 익히고 있는, 이른바 데면데면한관계였던 우리 사이에 저렇게까
지 절절한 표정을 자아낼만한 추억 거리 가 과연 있었을까, 라는 지 당한 의 문
이 사고를 스쳐 지나갔지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해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게 뻔한의문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마땅했다.
"수녀님 • • • •. 제가 지금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러는데 • • • •. 로벨
사제님이 계신 곳까지 저 좀부축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彆 彆 ••.문제없습니다••••.
fI
이따금 손가락의 첨단 부분을 바들거리는 게 고작인 내 왼손을 수녀님께
보여드리며, 그녀에게 조력을 구했다.
밭에서 무라도 뽑아 들어 올리듯, 바닥에 눌어붙은 내 몸을 번쩍 들어 올
려, 너무나수월히 자기 목에 내 팔을 걸치는수녀님의 듬직한모습에 남자로
서의 자긍심에 작은생채기가났으나.
나보다 강한 여성에게 유전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건, 여태껏 예방접종
을 趁차, 륽차까지 꾸준히 맞아온 덕에 그 흉이 가슴에 오래 남는 멍울로까지
번지는 일은 없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 •.보아하니 치유의 기적도본인
에게 한번 사용하신 것같은데 ••••."
"자세한이야기는 가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
말이 부축이지, 수녀님에게 완전히 몸을 내맡긴 채,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
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동물 다큐에서 봤던, 등에 산호를 이고 살아가는 영특한 게에 대한
이 야기 가 불현듯 떠 올랐다.
게 가 본래 라면 그 자리 에 서 움직 이 지 못할 산호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온갖위협으로부터 산호를 보호해주는 대신, 산호는 게에게 몸을 은닉할 거
처와 먹이가 되는 점액을 제공하는, 이른바 공생 관계라고 하던데.
제공할 거처도 점액도 없는 주제에 얌체같이 몸만 올려놓고 있는 지금의
내 상태는공생이라기보단 기생에 가깝지 않을까. 내 살다살다산호에게 열
등감을 느껴보기는 또 처음이네 .
그렇게.
정신에 가해진 충격이 아직 아물지 않은 탓인지, 자꾸 헛도는 두뇌가쓰잘
머 리 없는 생 각으로 뇌 용량을 낭비 하고 있을 무렵 이 었다.
"햐응!"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깜찍한 비 명 이 들린 직후, 잘 운반되 고 있던
내 몸이 갑작스럽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직 몸의 감각이 한창 돌아오고 있는 와중이 라, 체 감한 아픔은 그리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일말의 예고조차 없이 180° 반전된 시야는 순간적으로 천지
가뒤집어진 게 아닐까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11죄, 죄죄죄, 죄 송합니 다. 사제 님! 괘, 괜찮으신 가요!"
수녀님이 드물게 당황한 모습으로 내게로다급히 거리를 좁히셨다.
자신의 옷맵시를, 특히나, 가슴께 부근을 각별히 끌어안은 채, 잘 익은 토
마토를 연상케 할 정도의 벌게진 얼굴로 내 몸에 성한곳이 없는지를 허겁지
겁 살피는 그 모습은, 내 상념 안에 불길한 풍랑을 휘몰아치게끔 하기에
충분하고 남을 위력을 걸머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왼손중지의 첨단부분에서 지극히 희미하게,그잔향만이 아주
조금 느껴 지는, 무언가 부드러운 것에 닿았을 때 특유의 아련한 촉감이 그
불길함의 풍랑 안에 불씨를 집어 던졌다.
"저기요. 彆 彆 •.수녀님 .... •.설마,제가혹시 ••••."
'■말하지 마세요! 고, 고의로 그러신 게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보다 사, 상처! 상처 확인해야죠! 사제님 오늘 분의 기도를 이미 사용하신 상
태 이 니, 가뜩이 나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혹여나 또 큰 상처를 입 기 라도 하
"수녀님…•.혹시 제가…•."
"마, 말하지 마시라고요! 일단 어디 부러진 곳은 다행히 없으신 것 같지만!
그래 도 혹시 모르니 까, 사제 님의 담당의 나 손이 남는 다른 사제 분을 용무가
끝나는그즉시 호출하도록••••."
"제 손이 혹시 수녀님의 흉부쪽에라도• •••."
"말하지 말라고했잖아一!!!,,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을 순식간에 벗어던져, 내 얼굴 쪽을 향해 내던진 수
녀님이 맺힌 감정을 발산하듯, 별안간 억센 호통을 내 지르셨다.
씨익씨익.
호흡이 아니라 감정을 가다듬고 있는듯한기식이었다.
붉게 물든 얼굴과 연염한 대비를 이루는 하늘색 머리카락은 상천에 풀어
놓으면 그대로 녺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투명함을 만전하에 과시하고 있
었고, 이쪽을 쏘아보는 표독스러운 청색 눈매와그 언저리에 살포시 맺힌 눈
물한방울은그녀의 냉철함 안에 내재 된 가련함을은연중에 서사하기 위한
미술적인 장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갸륵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두건 너머로 목도한 수녀님의 지금의 이 흐트러진 모
습을 다른 사제들과의 술자리에서 거론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날의 주역이
되리란 건 따놓은 당상일 테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어렵사리 건진 내 목숨이
또다시 바닥이 보이지 않는무저갱 속으로수몰될 위험이 다분하니, 눈치 없
이 달싹이려는 아랫입술을 단호히 깨물어야만 했다.
"자!쓸데없는소리 그만하시고,다시 손주시죠! 레이지스수호사제님!,,
"네 ••••."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 인다면, 입을 찢어버리 겠다고 눈으로 겁
박을 해대는 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녀님의 고결한 희생을 수반한 부축을 받으며 라노벨 사제를 향
해 가고 있던 도중, 아직 마취 가 덜 풀린 내 죄 많은 손이 두어번 정도 더 그녀
의 흉부를 더듬는 죄악을 저지른듯싶었으나.
'흐급! 흣! 흐으…•.
fI
아무래도 내색을 안 하면 내 가 모를 것이 라고 생 각한 모양인지 , 터져 나오
려는 신음을 가까스로 깨물어 삼키며, 태연한 척 걷고 있는 수녀님의 부단하
고 부질없는 노력을 지근거리 에서 모른 척하고 있는다는 건 상당한 고역이
었다.
바로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이 왼손 덕분에 위 기를 모면할 수 있겄건만, 몸에
칼이 찔려가면서까지 주인을 구원한 목숨값을 이런 식으로 충당이라도 하
려는 것일까.
소유자의 소원을 뒤틀린 형태로 이루어준다는 ■원숭이의 손,에 대한 이야
기는 들어봤어도, 주인의 의사를 개무시하고, 지 꼴리는 대로 욕망을 쟁취하
려 하는 원숭이 새끼 같은손,에 대한 이야기는들어보질 못했는데.
언젠가봤던, 사람의 손에 기생하는 외계 종족에 관련된 만화에서조차도
이것보단 형편이 나았었다.
거 기 선 그래도 최 소한의 의 사소통은 가능했었으니 까.
신이치. 가슴만질래.그러지마.
매일 같이 드나들어 눈에 익을 만큼 익은 이 복도가 어쩐지 평소보다수십
배는 더 길게끔느껴지는 건, 비단, 몸의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머 릿속을 스쳐 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