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18화 잦한편 그 시각용사 파티는 (3)
"거절하겠습니다!,,
어째서 인족들이 다부진 거부의사를표명할때 ,단칼에 거절,이란표현을
사용하는지 절절히 통감한 아피스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아피스가 제게 그런 바보 같은 제안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
라도 다치신 겁니까!"
"다른 놈이면 모를까. 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 ••••."
상당히 뜬금없는, 자칫 불쾌하게도들릴 수 있는 아피스의 퇴직 권고에 해
맑은 미소로 화답한 용사였으나, 그 천진한 피막 아래엔 격양된 감정이 곤두
서 있다는 건 명백해 보였다.
현 파티 에 서의 용사의 위 치는 팀의 주축이 자, 기 둥이 자, 구심 점 이 란 사실
을 가장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본인이었기에.
그런 용사에게 있어 파티에서 나가달란 아피스의 제안은 멀쩡한 검의 날
을 분지르란 망언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 었다.
"아예 꺼지라는 게 아니라, 한한 달정도 차분히 머리 좀식히고오란소리
다. 앞뒤 안 가리고 마수 무리 한복판에 얼굴 들이밀고 다닌 누구 씨 덕분에
당분간은 우리끼리도 충분히 해 처먹을 수도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까.,,
"오오! 그렇군요! 요컨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란 말이로군요!"
"아니,그런 뜻도 있긴 한데,요점은 그게 아니라 彆 •• 彆 ."
"그렇다면 더더욱 거절하겠습니다! 제가 검을 내려놓은 사이 마수들의 엄
니가또 어떤 평화로운 마을을 향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애
당초 제게 휴식 같은 건 불필요합니다! 전 용사니까요!"
"하아. • • •.그러니까,내 말은그게 아니라彆 彆 ••."
용사니까.
그 사내 가 사라진 이 후, 용사는 늘 이런 식 이 었다.
사내의 부재가 파티에 전술적인 부문에 끼친 영향은 빈말로라도 지대하
다곤 볼 순 없었다.
그가 지 닌 사제로서의 역 량은 하루에 단 한 번 사용하는 게 고작인 '치유
의 기적,이 사실상전부였으니.
검 한 자루, 방어구 하나에도 쩔쩔매던 파티 설립 초기였다면 또 모를까.
재 정 적 인 여유를 충분히 갖춘 지 금이 라면, 최 상급 성수와 포션 만으로도 그
의 빈자리는 너끈히 충당하고도 남았다.
오히려 걸리적 거리는 존재가 없어진 덕에 감수할 수 있는 위험과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이 크게 증가하기까지 했다.
포션은 구태여 지켜줄 필요성도 없거니와 전시 중에 기절하지도 않으니까
•
당시에는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던, 사내가틈날 때마다웅변해댄 '자신
을 파티에서 탈퇴시켰을 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익,에 대한 넋두리들이 마
냥 헛소리이기만 했던 게 아니었단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사내가 자신의 무쓸모성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마다, 용사가 '진정한 영웅
은 어떠한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동료는 버리지 않는다, 라며, 그의
탈퇴 선언에 번번이 퇴짜를 놓는, 그 일련의 하찮은 공방은 어느샌가 파티의
연례행사로서 취급될 정도였다.
가족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숲에 사는 엘프족답지 않은 현실적인 식견의 소유자인 아피스조차도, 그
시시껄렁한 잡담에 휘말릴 때마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품곤 했었다.
피와 살점이 휘몰아치는 전란의 파도 속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이 온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는 던전 한 가운데에서.
사내를 중심으로 시연되는 그 삼류 일상극으로 인해 모처럼 굳세게 동여
매 놓은 긴장의 끈이 허망이 풀려버리는 건 다소 아니꼬웠지만.
이따금 어긋난 방향으로 기울어지 려 한 투쟁과 일상 사이의 조율을 바로
잡아준 건, 그러한 시시콜콜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이름 모를 편안함 덕분이
었단 사실을 파티원 중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고, 구태여 부정하려 하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어쩌면 던전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던전. 세상의 이치와 온전히 순환하던 지맥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이유
로 특정 장소에 응집되어 나타난 이형의 공간.
폐의 안 껍질에 달라붙는 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정체불명의 무언가
가 몸을 위 에 서부터 짓누르고 있는 듯한 매스꺼 운 위 압감. 그 불길한 전운
속에 몸을 은닉한 채 멍청한 먹 잇감이 빈틈을 보이 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흉
측한 마수 무리 에 이 르기 까지 .
장래에 모험가가 되 어 미등록 던전을 탐험하겠다고 호언하는 몇몇 젊은
이들이 제도에서 희대의 불효자 취급받는 가장 근본적인 원흉이 바로 이
것들 때문이었다.
미등록 던전에 입성한 모험가가 몸 멀쩡히 살아 돌아올 확률은 아무리 좋
게 쳐줘도고작해야 1할.
그 1할조차도 던전을 빠져나올 무렵엔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나올 게
뻔하니, 멀쩡히 살아돌아온 것이라표현하기 엔 다소 어폐가 있었다.
그렇기에 사전 등록된 던전 15개. 미등록 던전을 무려 32개나 공략해 냈
음에도 몸과 정신에 그 어떤 이상 현상도 발견되지 않은 어느 기적과도 같은
파티가,용사파티,라는명예로운 이명을하사받게 되는건 지극히 당연한수
순이었다.
'여러분! 오늘부터 저를 호명할땐! 용사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들며, 맘에 쏙 든 장난감이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천진
난만이 웃어 보이 던 용사의 그 명랑한 얼굴은 향후 몇백년이 지 난다고 하더
라도 아피스는 생생히 떠올려낼 자신이 있었다.
성년기에 접어든 인족이 노년기의 부모를 극진히 공양하려 하는 습성이
있단 건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던 아피스였기에.
용사가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동료들에게 그간 고생해온 만큼의 성대한
대접을 해줄 수 있단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상태 였단 걸, 지금까지의 용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온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소녀가 용사가된 그날.
파티원들 모두가 환히 웃고 떠들던 경사스러운 그날.
사내의 겸연쩍은 미소 아래에 은닉되 어 있던 감정을 사전에 눈치채는 것
이 가능할 만큼, 아피스는 인족의 감정에 대해 그렇게까지 빠삭하진 못했고,
그 사내 개인에 대한 것도 잘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그 사내가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이후, 파티의 명도
는 눈에 띄게 탁해져 갔다.
원체 과묵한데다가, 자신의 누이인 용사를 제외하곤, 여성과 대화를 나눈
다는 행위 그 자체에 아예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숫기가 없는 빅팀은, 유일한 남자 동료를 잃어버린 탓에 던전 바깥에서 보내
는 시 간 전부를 잠에 투자하기 시 작했고.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앙숙 관계 인 아피스와 다우너는 성 격적으로도, 태
생 적으로도 상성 이 맞질 않았기 에 그 사이를 중재해줄 인물이 부재중인 지
금으로선, 간단한 의 사소통마저도 격한 싸움으로 번지 기 일쑤였다.
용사가 용사라는 이명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 였다.
마치 타륜이 조금 어긋나 있는 배에 몸을 싣고 있는 듯한 불안감.
파티원들 모두가 은연중에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혹여나 현실이 되 어버릴
까, 구순 끝에서 깨물고만 있던 그 좋지 못한 예감은 날이 갈수록 그 몸집을
서서히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던전 공략은 당분간 우리 끼 리 알아서 해 볼 테 니 까. 용사 너는 한시 라도
빨리 그 새끼 찾아서 이쪽으로 다시 데리고 와."
파티원 중 유독 강단 있는 성격인 아피스가 가장 빨리 결단을 끝마쳤다.
사실 인족과 엘프족의 월등한수명 차이로부터 비롯된 시간 감각의 고저
차 덕분이었다.
엘프족인 아피스에게 있어 고작해야 6개월은 부재는 반나절의 가출 정
도나 다름없었으니 까.
"어.…?"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그
표정 그대 로 몸과 사고가 정 지해 버 린 용사.
마치 그러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번에 처음 깨달은 사람처
럼,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리멍덩한 얼굴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고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데 급급한 듯한 그 모습은 꿀 먹은 벙어리 그 자체 였다.
'■그 새 끼 다시 데리고 오라고. 그 녀석이 없으니 까 파티 가 굴러 가질 않잖
아. 네 동생 하루종일 퍼자고 있는 것도 슬슬 거슬리고, 다우나랑 말 틀 일 있
을 때마다 입씨름해야 하는 것도 지겨워 죽겠으니까. 되도록 빨리 데리고 와.
"하, 하지만!
"뭐.,,
"하지만! 그건!,,
"그러니까 뭐.,,
다시 데리고 온다라. 그런 수단이 있었구나. 하지만, 과연 그래도 되는 것
일까.
너무나도 지 당한 의 구심 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용사가 한참을, 그야말로
한참 동안 다음 말을 고민하고 있자, 그 잠깐의 주저함조차도 못마땅하다는
듯이 아피스가 말했다.
"찾기 싫어? 너는 그 녀석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없지 않습니까!,,
"찾으러 가고 싶은 거지?"
"무, 물론입니다!,,
"찾으러 가고 싶잖아. 그럼 찾으러 가."
■■하, 하지만 신부님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을 지 모를 일일 테
고.... •.무엇보다편지를 통해 다시는 찾지 말아달란뜻을 명확히 하신 분을
무단으로 쫒는 건 다소 몰상식한행위인 게 彆 彆 ••.
II
"몰상식 ? 몰상식이란 말은 그따구로 일방적으로 글 하나 찍 써 갈기고서
사라지는 새끼가 들어 처먹어야 하는 말이야. 그런 놈들은 뒤 좀 밟혀도 싸."
• • • .그런가?
전장에서의 머리 회전은 제법 비상한편이었으나,그 이외의 분야에선 다
소 어벙한 기색이 다분한용사가 아피스의 감언이설에 서서히 넘어올 무렵이
었다.
"크, 큰일! 큰일 났네! 이보게들!,,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다우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다우나? 무슨일입니까?,,
"아! 진짜 나 지금 용사랑중요한 이야기 하는 거 안보여!?,,
"지,지금그게 중요한게 아니란말일세!,,
다우나가 그녀들 앞에 들어 올린 건 다우나가 독자적으로 고안해낸 탐지
마법 술식이 새겨진 수정체형 마도구였다.
추적하고자 하는 대상의 모습을 정령을 통해 가시화하는 고등 기술이
접목된 마도구였으나, 어째서인지 그 사내를 찾으려 할 때만 되면 먹통이 되
던 물건.
다우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장이 난 게 분명하다며, 머릿속에서 지
워버리고 있던 물건이었다.
■■지, 지금까지 먹통이었던 마법이 갑자기 원활히 시동이 됐네! 정체 모를
새하얀 기운이 마법의 기동을 훼방놓는 통에 좀처럼 발동하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인지 지금은 정상적으로 작동 됐단 말일세 !"
다우나가 수정구에 마력을 보다 강하게 불어넣으며, 비젼의 화질을 드높
였다.
"이걸 보게一!"
그 직후, 아피스와용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럴만도 했다. 수정구 안에는.
누군가에게 목줄이 꿰어진 채 어딘가를 향해 질질 끌려가고 있는, 상당히
낯 익은 사내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나 있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