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20화 잦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이런 한창식사중이셨군요! 이것 참실례를••••."
알면 앉지 마.
도대체 언제부터 '실례,라는 말이 '피해를끼쳐드려 죄송합니다,에서 '이제
부터 피해 좀 끼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변질되고 만 것일까.
도연히 모락거리는 회의감으로 인해,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던 상념이 점
점이 어두워져 갔다.
내 식탁 맞은편 자리에 다소곳이 앉은초대받지 못한손님의 정체는 어디
여성향 웹소설 표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틀에 박힌 용모의 영애였다.
고데기 없이 어떻게 세팅한 건지 의구심을 품지 아니할 수 없는 나선형 머
리 스타일 하며, 사용인들이 밑단을 잡아주지 않으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닐
게 분명한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드레스 하며.
저 상태 에 서 부채로 입 가리고 웃기 만 한다면 마스터피 스란 생 각이 들 정
도로 정 형화의 극치를 달리는 케 케묵은 외 견은 오히 려 신선미 가 느껴 질 정
도였다.
"반갑습니다. 로.... 彆 로즈벨트 영애님.,,
"어머! 제 이름을 기억해주셨을줄이야! 영광이에요!"
댁 뒤에 서 있는당신네 사용인들이 립싱크로 알려줬으니까.모르는 게 이
상하지.
사람이 저렇게 나 절박한 감정을 담은 호소를 한 데 모여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 었다.
내 가 그녀의 이 름을 전해 받은 내 용 그대로 오보 없이 발음해 내 자, 자국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의 훌리 건처럼 소리 없이 환호를 부르짖는 사용인들
의 모습으로부터, 내가그녀의 이름을 맞히지 못했을 시 벌어졌을 참극은 그
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윗대 가리 가부리는패 악질에 죄 없는아랫물이 피해를보는 건 어디를가
나 마찬가지 로구나.
지위와 그 형태만 다를 뿐, 나도 극성맞은 누군가의 수발을 드는 삶을 살
아가고 있는 한낱 아랫물로서 그들의 느끼고 있을 애환과 고통은 절절히 통
감할수 있었다.
우리힘내요.
"그날이후좀처럼 담소를나눌만한기회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는데, 이렇
게 만나뵙게 되니 정말뛸 뜻이 기쁘네요! 사제님도그러신가요!"
"네.물론이죠. 아니, 오히려 로즈벨트 영애님 같은 아름다운 미녀분과 말
섞는 걸 마다할사내분이 과연 몇이나될는지, 그쪽이 더 궁금해질 정돈데요.
"어머, 사제님도 참.,,
두 손으로 내 손을 거의 낚아채듯이 붙잡고선, 상완근으로 자기 가슴 부
위를 부자연스럽게 강조하며 거리를 좁혀오는 로즈벨트 영애의 저돌적인
모습은, 흡사 맹진하는 황소를 보고 있는 듯했다.
필요 예절 기준치를 적절히 준수함과 동시에 그녀의 호감 수치도 덜어낼
수 있으리라 여긴 느끼한 멘트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언젠가의 연회에서 한눈에 봐도급높은귀족들이 자행하던 걸 어깨너머
로 보고 배워 동료들한테 보여줬을 땐, 용사님을 제외한 모두에게서 때아닌
박장대소를 자아내게 할 만큼의 파괴력을 보유한 멘트였거늘.
아무래도 진짜배기 귀족에 겐 이 남사스러운 말의 집합이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밖엔 들리 지 않는 모양이 다.
'■로벨에게서 레이지스 사제님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어요! 항상 청
렴결백하시고,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아시며, 맡은 바 임무에도
늘 최 선을 다하시는 그야말로 성직 자의 귀 감 같으신 분이 라고 하시 더 라고
요!"
"하하.....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彆 •••."
향수에 흠뻑 적신 파스를 누가콧잔등에 붙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내게 몸을 밀착하면 할수록 진해지는, 뇌의 직접 전도되는 듯한 지독한 냄새
때문에 평 소와는 다른 의 미로 머 리 가 지 끈거 렸다.
내가 라노벨 사제를 살려낸 이후, 그의 약혼녀 무리 중 몇 명이 내게 지대
한 관심 을 보이 긴 했다만, 그중 가장 직 접 적 이 고 집요한 인물을 하나 꼽으라
면, 이 로즈벨트 영애를 따라올 만한 재목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아마, 앞서 라노벨 사제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내 직위와능력을 눈여겨
보고서 다른 사람이 손 대기 전에 미리 침을 발라두려는 심산일 테지만.
명색이 누군가의 약혼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대놓고 다른 남자한테 치근
덕거리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내 안의 유교 소울이 비명을 내지르
는 통에 간신히 만들어낸 접객용 미소가 자꾸 지끄러지려는 걸 참아내는 건
상당한 고역 이 었다.
'■로벨이 그러더라고요. 앞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평생은, 분에 넘치는
자리를 탐하려 한 어리석은 자신을 친히 꾸짖어주신 성녀님과본래라면 죽음
으로도 결코 씻어낼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신에게 친히 두 번째 기회를 하사하
신 레이지스 사제님께 헌신하겠다고요."
"아,예… •."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던 머리 카락을 각오를 표명한답시고 삭발해버렸을
땐, 저를 포함한 모두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개중에는 나의 로벨은 이
렇지 않다며 엉엉 울던 아이도 있어서 ••••.
fI
"아, 저런… •."
로즈벨트가 영애가 내게 말해준 그 일련의 결의문과 사연은 그날 이후, 라
노벨 사제가 내게 그야말로 질리도록 늘어놓던 말들이었던 터라, 애석하게
도 지금에 이르러선 그저 지겹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이를테 면, 귀 에 딱지 가 앉게 들었던 교육용 음성 자료를 다른 성우가 녹
음한 버전으로 스킵 없이, 처음부터 다시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지긋지긋한 기
분.
아무리 부부는 닮는다곤 하나, 이제 막 약혼한사이인데, 이런 넌덜머리 나
는 부분까지도 닮아버리 면 그들의 趁세는 얼마나 끔찍한 키메 라로 탄생하게
될것이란말인가.
먼 미래에 닥칠 마왕의 싹의 탄생에 벌써부터 마음속에서 선연한공포가
휘몰아쳤다.
지금 당장 이곳에 서 내빼고 싶은 마음이 야 굴뚝같았지 만, 식 기 가 없는 탓
에 식사를 마무리 짓고도망친다는 건 지금으로선 고를수 없는 선택지였고,
한 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기 시작하면 그 말문을 잘라낼 수 있는 날을
결코 상대방 쪽에 쥐 여주지 않는 게 신분 높은 여성 이라는 족속들이기 에.
지금은그저 마음을공허히 한채, 이 환난이 지나가기만을 신께 기도하는
것 말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아참! 레이지스사제님! 혹시 체스좋아하시나요?,,
■■예? 체스요? 글쎄요. 룰은 그런대로 숙지하고 있지만, 좋아지거나 싫어
질 정도로 누구랑 둬 본 경험 자체 가 손에 꼽는지 라 ••••."
"그럼 언제 한 번 저와 겨뤄 보지 않으시겠어요?,,
"하하. 그래 주신다면야저야 영광이죠."
살려줘.
야. 라노벨. 뭐하고 있어. 포크 가지고 온다며. 돌아와. 빨리와.
내 맞은편 자리에서 어느덧 내 바로 옆자리로까지 넘어온 그녀가 자기 가
슴을 내 어깨에 이따금 노골적으로 갖다 댈 때마다, 차분히 포커페이스를 유
지 중인 안면 쪽사정과달리, 마음속에선 이 맹수를사회에 풀어놓은 라노벨
사제에 대한원망과 애원이 쉼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홀라당 넘어가 버렸을 게 뻔한 허니트랩의 연격에
도, 이렇듯, 음심은커녕 불안과 짜증 비슷한 감정들만이 솟구치는 이유는 다
름이 아니었다.
우선, 본인은 내 가 눈치채지 못하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 지만, 몸을 밀착
시킬 때마다, 내 표정을 힐끔힐끔 살피는 그녀의 눈동자속에서 명멸하고 있
는 음흉한 열이 내게서 긍정적인 감정을 자아내기엔 다소 지나치게 노골적
이었고.
솔직히 성녀님과 보내온 그간의 아찔한 나날들과 비교를 해보자면, 로즈
벨트 영애가 내게 던지고 있는 추파는 시골 미용실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총각은 몸이 참 실하다며 몸을 더듬는 정도의 자극과 엇비슷한 수준에 불과
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거 혹시 아시나요? 레이지스사제님? 이 제도바깥의 어느 이름
모를 나라에선 상대방의 말을 뺏어올 수 있는 특이한룰을 가진 체스도 있다
는 사실 말이에요."
".... •오오. 그게 정말인가요. 그것참신기하네요.,,
”후훗, 뺏은 말은 그대로 상대방의 말이 되어버린다는 건 얼핏 비열해 보
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참 짜릿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남
의 것이라고, 넘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게 사실 내 것이 될 수도 있
다는 거잖아요••••?"
■■하하. • • •.식견이 좁은저로선 감히 떠올려내지도못할법한흥미로운
관점이군요....."
내 손에 은근슬쩍 깍지를 끼려 하는 그녀의 어스레한 손놀림을 주먹을 거
세게 말아쥐어 황급히 저지했다.
안돼요.싫어요.하지 마세요.제 몸을 만지지 마세요.
나쁜 사람들물리쳐 준다는 마법의 말들도 속으로 몇차례나되뇌어 봤지
만 영 신통치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서, 그녀의 사용인들을 향해, 그녀
를 좀 말려 달라는 애 달픈 눈빛 신호를 전송해 봤으나.
조금 전까지 나와 영혼의 팀플레이를 펼쳐낸 그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
지, 내 허망한 시선의 종착지엔 자신들의 눈을 가린 채, 그녀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그저 묵인하고 있는 비겁한 배신자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로즈벨트 영애님. 사실 제가 지금 급한볼일이 있어서 ••••."
"후훗, 레이지스사제님은 거짓말이 참서투시네요.성녀님의 식사시간까
진 아직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있잖아요."
"아니, 사실은 제 가 주방에 포크를 놔두고 놓고 와서 • • - ."
'■아이 참,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시는데,후훗,은근 귀여우신 면이 있으
시네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한 내 몸을 위에서부터 뒤덮으려는 듯이, 로
즈벨트 영애 가 갑작스레 나를 끌어안았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거칠게 뿌리쳐내려한 스스로의 반사신경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어떻게든 원만히, 지금의 이 답 없는 사태를 진화해낼 방도를 찾기
위 해 , 삐걱 거 리는 사고 회 로를 억 지로 작동시 키 려 할 무렵 이 었다.
"찾으시는포크 여기 있습니다."
콰직!
마치, 낙뢰에서 떨어져나온 섬광이 소리를 제쳐두듯.
그 생 자의 말이 라곤 생 각되 지 않을 만큼 서늘한 목소리 는 시 야 바깥에 서
튀어나온 은색 섬화가나와로즈벨트 영애 사이를 가로지르고 나서야 우리
들 곁에 고고히 도래하였다.
문득, 기시감이 드는 광경이 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식사는끝마치셨나요? 레이지스 사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