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21화 (21/90)

<21화 잦 귀빈

’수녀님?"

그 목소리가 평상시와 사뭇 다른 음울한 선율을 자아내고 있던 탓일까.

순간적으로 누구인가 싶었지만, 본연의 성문이란 게 그리 쉬이 바뀌는 것

이 아니기도 하고, 변동된 음역도 그 정체를몰라볼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러고 계세요?,,

늘보던 얼굴에 못보던 게 얹어져 있으니, 머릿속에 의문부호가떠오르는

건 별수 없는 일이 었다.

안대. 아니,크기만보면 거의 가면에 가까웠다.

입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부위를 가리고 있는 저것과 비슷한 형태의 눈 가

리개를 전생 때 어떤 게임에서 본 적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뭣 이 냐. 무슨 소울 어 쩌 구에 나오는 호박녀 였나.

아무튼 그 캐 릭 터 가 쓰고 있는 것과 똑 닮은 형태의 눈 가리 개로 얼굴의

태반을 가리고 있는 수녀님의 모습은 그녀의 수려한 맨얼굴에 익숙해져 있

던 나로선 다소 생소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패션에 대해 남자가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건 그리 좋지 못한 행위

란 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 변화는 오히려 언급하지 않는 쪽

이 결례인 게 아닐까 싶어, 결국 고민 끝에 입을 움직이기로했다.

"혹시 무슨 유행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은 얼굴을 가리고 있을 예정입니다.그런 줄 아세요

왜화나 있으시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눈 가리개 탓에 표정으로부터 감정을 읽는 건 불가능

했지만, 저렇게까지 대놓고툴툴거리며 빡친 티를 팍팍 내니, 그녀가 내게 모

종의 불만이 있다는 건 모르려 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내 최근 행적 중에서 수녀님이 언짢다고 느낄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서, 때아닌 고민에 빠져 있자.

"수녀님.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레이지스 사제님은 지금

저랑 먼저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어떤 덕음이 오고 가고 있었을지 모를

두 사람 사이에 일말의 예고 없이 날붙이를 들이민 것도 모자라, 대화의 주체

를 빼앗아 가기까지 하다니 , 다소 지나치 게 무례하다곤 생 각하지 않으신가

요?"

의식 속에서 잠시 제쳐두고 있었던 로즈벨트 영애가 앙칼지게 목을 울리

며 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결례를 가슴 깊이 사죄드립니다. 로즈벨트 영애님."

이에 따른 수녀님의 대처는 지극히 신속하고 적절했다.

다소곳이 한쪽 무릎을 꿇어 자신의 품을 낮추고선, 성심성의를 담은 사죄

를 읊조리는 그 일련의 동장은 흐르는 물과 같이 유려했다.

'■흥, 과오를 깨달으셨다면 그걸로 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무법한

행위는 삼가시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들어가보도록 하세요."

"자비로운 처사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사태 가 어느 정도 호전되고 있음을 직감한 내 가 기회는 이때다 싶

어 수녀님이 식탁에 내리꽂은포크를조심스레 뽑아들곤, 접시 위에 남아있

는 음식물을 허겁지겁 입 안에 쑤셔 넣으며 이 자리를 뜰 명분을 촉급이 만들

어 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지 만 레 이 지스 사제님의 신변은 이쪽으로 넘겨주셔야 할 것 같습니 다

만...

..뭣!..

I

■큽!"

이제 막 사그라지려 한불씨에 기름을 던져 넣는 수녀님의 행실에 하마터

면 입 안의 내용물을 전부 뿜어버릴 뻔했다.

"제, 제 가 잘못 들은 건가요? 혹시 ?"

"바로 들으셨습니다. 레이지스 사제님은 이쪽으로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네가 감히!?

지금 당장이라도 위와 같은 틀에 박힌 말을 내지를 기세인 로즈벨트 영애

가모멸감으로 인해 추하게 일그러지려는 자신의 입가를 황급히 손으로 가

렸다.

반면 수녀님 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한 쪽을 무릎을 꿇은 채

지그시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경건한자세로 태연스레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외 람된 말씀일지도 모르나, 곧 성녀님의 식사 시 간이고, 성녀님을 보필하

는 업무는 오로지 성녀님의 전속 수호사제에게만 허락된 거룩한 행위이기

에 레이지스 사제님은 지금 당장 저와 함께 성녀님의 알현하기 위한 채비를

해 야만 하는 의 무와 책 임 이 있습니 다."

"하! 그것참 이 상하군요! 제 가 듣기론 성 녀님의 식 사 시 간은 앞으로 한 시

간이나 남아 있는 걸로 압니다만!,,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인해 기존의 일정을 오늘 하루만 한 시간씩 앞당기

기로 하였습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뭐, 뭣! 지금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건가요!?,,

어느 쪽을 편들기도 애 매하고,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지금의

이 답 없는 국면은 친구 집 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친구 엄마랑 싸우는 광경

을 직면한 순간을 가벼이 능가하는 껄끄러운 공기를 내 주변에 흩뿌리고 있

었다.

그녀들 사이를 중재하기는커녕,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도 혹여나

거슬리는 소음이 될까, 그녀들의 눈치를 살펴야 할 판이었다.

"무례하군요! 너무나도 무례해요! 어찌 이리도 무례하실 수가 있는 거죠?

제가로즈벨트가의 영애라는 걸 모르실 리 없으실 분이 제게 이런 몰상식한

처사를 겪게끔 해도 괜찮은 건가요!?"

”죄송합니다. 지금의 무례에 대한 성의는 이후에 반드시 충당할 터이니.

지금은 우선 레이지스 사제님의 신변을 이쪽으로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하!"

그렇게 용암과 바다가 부딪히고 있는 듯한 설전이 오간 지 약 수어 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레이지스사제님!,,

기 어코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 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이따금 일어나는 갈등의 판결을 가장 가까운 어른한테

죄다 일임하는 것처럼.

자신의 눈가 주변의 화장이 뭉개진 것조차도 깨닫지 못할 만큼 흥분한

기색인 로즈벨트 영애는 이 재판의 승패 여부를 결정지어줄 판사봉을 느닷

없이 내게 떠넘겨 댔다.

'■후훗! 그래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건 어떤가요! 저와의 담소를

계속 이 어 나갈지! 아니 면, 수녀님을 따라갈지! 레 이 지 스 사제 님이 결정하시

게끔하는 거예요!,,

아니, 누구 맘대로.

득의 양양하게 웃어 보이 며 내 게 음흉한 눈빛 사인을 보내고 있는 로즈벨

트 영애의 저 자신만만한 거동으로부터 미루어 보건대, 아무래도 그녀는 내

가 이 승부에서 자기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마음속에서 이미 확답을 내린 모

양인 듯했다.

"로즈벨트 영애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성녀님이 간택한수호사제가 성녀

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는 건, 저희 교단이 창설됐을 당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숭고한 규율로부터 의 거한 신성한 책무입니 다. 그러한 책무를

노름판의 내기처럼 함부로 말저울에 올리시는행위는彆 彆 ••."

"후훗! 아무래도 선택받을 자신이 없으신가 보군요!"

어, 지금 한숨 참았다.

그 표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아주 잠깐 들썩거린 어깨의 움

직임. 더욱이 본연의 차분함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정전기처럼 지직거리는

짜증을 미처 떨쳐내지 못한 말투.

수녀님 쪽도 만만치 않게 역정이 난상태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수녀님이 짜증을 낸다라. 이건 좀 신선하네.

그렇게 좀처럼 보기 드문진귀한광경에 정신이 팔린 탓이었을까.

■■자! 골라주시죠! 어느 쪽을 고르실 건가요! 레이지스 사제님! 물론 저를

'아, 저는 수녀님이요.

척수 반사가 일어나듯, 내 입에서 용수철 튀어나온 말에 나조차도놀라 자

빠질 만큼 당황했는데, 그녀들은 오죽했을까.

'예?,,

어?

아.,

그 직후, 꿀 먹은 벙어리 가 된 나와 그녀들 사이 에 한겨울 바람보다도 매서

운침묵이 내려앉은 건구태여 말할필요도 없으리라고 사료된다.

碢碢碢

"하아. 彆 彆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신 겁니까彆 •• •."

"아니, 저도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

복도에서 열린 작은 반성회. 나도 수녀님도 차마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 입에서 실언이 미끄러진 그 직후, 괴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노발대발 날

뛰기 시작한로즈벨트 영애께선 '두고 보세요!, 라면서, 말문단 마지막에 찍

는 온점마저도 틀에 박힌 어휘를 구사하며 부리나케 자취를 감췄고.

덕분에 라노벨 사제와로즈벨트 영애 사이에 나라고 하는 객원 식구가 끼

어들게 되는 끔찍한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으나, 이로 인해, 또 다른 재앙의

도화선에 불이 붙고 말았으니 , 결국 말짱 도루묵에 불과했다.

"거기서 그렇게 딱 잘라서 단언해버리시면 어떡합니까.하다못해 잠시 고

민하는 시늉을 한다거 나, 대 답을 보류한다거 나, 상황을 원 만하게 끝낼 방법

이 널리고 널려 있는데.,,

"죄송합니다.그뭣이냐. • • •.향수냄새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 •."

"전 이제 모릅니다. 안그래도뛰어난 인재만보면,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

하고서 일단 제 것으로 삼으려 들 만큼 드센 성격으로 악명 높으신 분이신데 ,

그런 분에게 이렇게 대놓고 원한을 사고 말았으니, 당분간 햇빛이 닿지 않

는곳에선 걷지 못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명심해 두세요.

■네••••.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그런 위험천만하신 분께 먼저 이니쉬 건 건 수녀님 아니셨나요.

또다시 부주의하게 실언을 엎지르려 한 이 죄 많은 입을 이번엔 너무 늦지

않게 틀어막을 수 있었다.

아니, 근데 본인도 막상 내가그 말 막 내뱉었을 땐, 윗입술 아랫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은 채로 대놓고 웃음 참고 있었으면서 .

거참 너무하네 진짜.

■■저기 근데, 기존의 일정들을 한시간 일찍 앞당기게끔 했다는그 피치 못

할 사정이란 게 대체 뭡니까? 보아하니, 상황을 모면하려고 적당히 뱉은 말

은또 아니신 것 같던데."

■■그 건에 대한 건 사제님이 굳이 관여하실 이유도, 궁금해하실 권한도 없

으니,조속히 신경 꺼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저 귀빈 몇 분이 느닷없이

이곳을 방문하신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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