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25화〉가면
남자. 여자. 목줄.
위에 언급한세 단어를 듣고서 야시시한망상을 조금 하고 말뿐일 현대인
들과 달리.
인간을 사고파는 문화가 암암리에 존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사람이 사람의 목에 줄을 매다는 행위는, 상황에 따라선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심도 깊은 무게감을 갖추기도 한다.
전장으로 떠 나보낸 연인이 적국의 포로로 붙잡혀, 불행히도 노예로 전락
하고 말았다는 슬픈 서사는, 삼류 소설가들이 결코 손에서 놓지 못하는 틀에
박힌 비극이자, 극의 감칠맛을 첨가하는 데 있어 가장 안성맞춤인 조미료니
까.
그렇기에.
"이건 납치일세 !,,
일행 중 제일가는 독서가이자, 제도의 여러 문화에도 조예가 깊은 다우나
가 목에 줄을 매단 채 어딘가로 끌려가는 옛 동료의 경악스러운 몰골을 보고
서, 별안간 호들갑스러운 비명을 내지른 것도 무리는 아니 었다.
.
........
"근래 들어 교황청의 고위 사제들이나수녀들이 성적인 회포를 풀기 위한
성노예를 몰래 들이기도 한다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네 ! 필시 그도 윗관리들
에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모종의 약점을 잡혀 강제로 징용당했음이 틀림없
네!,,
머리에 잔뜩 열이 들어찬상태로 내뱉은 비약투성이인 논리.
하지만.
가당찮은 억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다우나의 그 감정적인 이론에 반론
을 제 기할 수 있었던 건, 애 석하게도 그 자리 에선 그녀와 앙숙 관계 인 아피스
뿐이었다.
'■아직 그렇다고 결론이 난 것도 아니잖아! 더군다나 적령기의 처녀도 아
니고, 혼기를 넘겨도 한참 넘긴 아재비를 따먹겠답시고 군돈질 할 미친 여자
가세상천지 어디 있겠어! 일단진정하고! 생각좀하고말해!,,
"진정? 어찌 진정할 수 있겠는가! 동료가 노예로 끌려간 건지도 모를 일이
란 말일세! 아피스! 자네가 피도 눈물도 없는 박정한 엘프란 건 잘 알고 있었
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실망일세!"
"뭐 이 새끼야!?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인 줄 알아!?,,
겉으론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아피스도 사실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
다.
성 직 자들이 혼전순결을 준수해 야만 한다는 교리는 시대 착오적 인 발상으
로부터 비롯된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관점이 근래 인족들 사이에서 유행하
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던데다.
로벨 라이트라고 하는 어느 젊은 성직자가 무려
17명에 달하는
약혼녀들과 혼인을 발표했다는 소문이 결정타가 되 어, 성직 자들이 순결하
다는 건, 인족들의 기준에선 이젠 옛말이라고 치부될 만큼 케케묵은 속설이
라는 것도 설핏 들어본 바가 있었기 에.
그녀 또한구멍 뚫린 나룻배에 물이 들어차듯, 끝없이 솟아오르는 불길한
의 혹과의 사투에 서 완전히 자유롭다곤 할 순 없는 상태 였다.
그럼에도 아피스는 평소 때와 비교한다면 대충 구색만 갖춘 수준인 그 허
울뿐인 평 정 만이 라도 유지 해 야 했다.
"용사!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드, 등신아! 뭐 하는 거야! 지금 용사한테 말 걸면!,,
"놔보게! 아피스! 지금의 사태에 대한용사의 견해를彆 •••."
쨍그랑!
바로 그때. 눈 앞에 펼쳐진 살벌한 광경에 다우나는 내뱉은 말을 미처 매
듭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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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彆.후우... 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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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설 때, 정례적으로 무기를 손질할 때를 제외한다면, 평상시엔 손에
올려놓는 일조차 드물었던 애검을 위 엄스레 뽑아 든 채, 내면의 우악스러운
감정을 호흡으로 다스리고 있는 듯한 용사의 그 모습이.
지금 당장이 라도 용암을 뿜어낼 기세의 화산. 모든 것을 녺여 없앨 홍염을
사방에 게워내 버리기 직전의 사룡을보고있는듯했기에.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조차도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이성이 아닌, 본
능의 경종으로부터 입거한 처세였다.
"요. .... 용사. •..."
"용사... •.진정하고. 일단 그 칼부터 내려놔... •."
사제의 행방을 뒤쫓는데 있어 유용할 단서가되어줄수정구가그녀의 기
백에 의해 깨져버렸다는 비운이 뒷전이 되어버릴 만큼, 용사가매 순간 내뿜
는 그 진득한 살기는 유례 없는 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년간 동고동락해오며 , 갖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해쳐온 아피스와 다
우나도, 저렇게까지 선연히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용사의 모습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마땅하리 라.
언제나 해맑은 미소로 주위에 선한 기운을 흩뿌리며, 조물주가 어진 감정
들만을 담아 빗어낸 공상의 호인. 누구 하나 미워하는 법 없었고, 그 누구에
게도 미움 사지 않는 다정다감한 인간.
이것이 바로 여태껏 그녀들이 보고, 듣고, 느낀, 그간의 경험으로부터 귀결
한용사의 천성이었으니까.
"헛!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무심코 칼을 빼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황급히 칼을
검집에 집어넣은 용사가 부산스러운 사죄를 짓씹었다.
그 엉거주춤한 거동과 친숙한 말투로부터, 눈앞의 존재가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 용사가 맞다는 걸 다시금 재 확인한 그녀들이 잠잠해 진 주변공기 에
안도하며,한껏 들이 마셨던 숨을 그제서 야 토해 냈다.
'자, 잘못본거겠지?,
아피스와 다우나의 의중이 일말의 오차 없이 정확히 일치한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碢碢碢
"그 가면. 벗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잘못본 게 아니었다.
으스스한 기시감에 사로잡힌 아피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의식을 다잡
았고, 무심코 한쪽 팔로 저 몸을 끌어안은 다우나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
아보였다.
"냄새가.신부님의 냄새가났습니다.비록,제가기존에 알던 냄새와아주
조금 인상이 달라지시긴 한데다가, 도중부터 뒤섞인 진한 향수 냄새로 인해
당초의 갈피를 잃고 말았지 만. 신부님 이 한순간이 나마 수녀님 당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확언할 수 있습니 다.,,
강경하고, 차분한 말투였다.
자고로 용사란 늘 밝고 명 랑한 얼굴로 주위 사람들을 안심 시 키 는 존재 가
되 어 야 한다는 용사 본인의 지론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화법 이 었으나.
그자리의 어느 누구도 용사의 그러한 부조리한행실을 면책하지 못했다.
허 나 그 순간, 아피스가 용사의 어깨를 붙들었다.
원래 라면, 행방불명된 파티원 하나를 도로 붙잡아 오기 위 해 , 용사 혼자
만을 추노역으로 보낼 생각을 하던 아피스.
그랬던 그녀가 파티원 전원이 힘을 합쳐 한시라도 빨리 그를 찾아내야 한
다며, 당초의 계획을 전면 수정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순간을 대비하기 위함
이었다.
행방불명됐다고 여겼던 파티원이 웬 수녀한테 목줄이 내걸린 채 끌려가
고 있는 광경을 동료 전원이 목격하게 된 그날 이후로.
용사의 거동이 아무래도심상치 않아 보였으니.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용사가그릇된 판단을 저지르려 할
때, 그녀를 억제할 대비책은 한 사람이라도 많아야 한다는 것이 아피스의 판
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심 안은 상당히 정확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피스. 다우나. 빅 팀.
이 셋이 합을 맞춰 죽을힘을 다해 대적하는 것 이외에.
지금의 용사를 제지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는 적어도 이 제도 내에선
존재치 않았으니까.
”괜찮습니다! 아피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지금 지극히 냉정합니
다!,,
"그, 그래…彆."
아피스의 염려에 온화한 미소로 화답한 용사였으나. 그 미소에서 무언가
가결여되어있는 것 같다는 불온한 느낌을 아피스는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
다.
■■저희는 현재 옛 동료를 물건 취급하며 하대하는! 어느 파렴치한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용사가 낭랑히 말을 내뱉을수록, 어째서인지 방 안의 체감 온도는 서서히
낮아져 갔고.
그로 인해, 용사의 맞은편에 앉는 수녀의 거동은 성에가 쌓인 유리창처럼
점차 뻣뻣해져 갔다.
바들거리 는 주먹. 점점 이 아래를 향하는 시선. 가빠지는 호흡.
그 일련의 거동은 죄를 선고받고 있는 죄 인의 비루한 몰골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 인물은 저보다 한 뼘 정도 큰 키 ! 하늘색 머리카락!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상당히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수녀라고합니다!,,
-••••■■
두근두근.
살벌한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에 형편없는 연주처럼 울려 퍼지는 누군가
의 심음은 점차그 볼룸이 거세져 갔다.
■■딱히 수녀님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정확한증거도 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건 나쁜 행위니까요! 하지만! 지금 현재 성녀님의 몸에선 제 옛
동료의 채취가 나고 있다는! 의심을 품지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니 ! 그 가면
을 벗으시는 것으로 본인의 결백을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군요.…."
"아! 참고로 이건 부탁이 아닌 경고입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어렵사리 내뱉은 수녀의 대답에 티끌 없이 해맑은
미소로 최후통접을 가하는 용사의 모습은, 멀리서 본다면 퍽 평화로워 보였
을지도 모르나.
당장 용사의 기백을 체 감할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한 이들에 겐, 지금 그녀 가
가슴 안쪽에서 끓어오르는 이름 모를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힙겹게 말
을 짓씹고 있단 건,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좋습니다彆 • • • . 그런 사정이 있으시다면 별수 없지요•• ••. 제 하잘것없는
민낯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저의 결백을 증명할수 있다면야 • •••."
"협조 감사드립니다!"
탈칵.
그렇게 수녀가 바들거리는 손을 얼굴 쪽으로 천천히 가져다 대자.
아피스와 다우나가 의 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수녀를 향해 흘겼다.
■뭐 야? 진짜 벗잖아? 좀 더 잡아뗀다거나, 애걸복걸하며 용서를 구할 줄
알았는데. 자포자기한 건가? 아니면, 진짜 결백했던 거였나?,
■내가볼 때도 용사의 촉이 딱히 틀린 것 같지 않다만. 용사의 기백에 잔뜩
겁을 먹은 와중에도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군다는 건. 뭔가 미심쩍구먼그래.,
그렇게 수녀가 자신의 표정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떠듬떠듬 전부 탈착해
낸 직후.
"이걸로만족하시나요?,,
수녀의 얼굴 쪽으로 자연스럽게 응집된 시선들이 크고 작은 경악으로 일
그러지며,그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동결됐다.
가면 너머로부터, 그녀들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범인의 파렴치한 몽타주
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수녀의 얼굴 윗편에선 사람의 인상을 확인할 수 있는
멀쩡한 부품을 그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
이었다.
한눈에 봐도 지독한 화상자국으로 얼룩져 있는 수녀의 얼굴 윗편에서 그
나마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부위는.
게슴츠레하게 뜨여진 채, 눈앞의 만무방들을 지그시 주시하며 힐난하고
있는 창연한 색의 눈동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