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26화 잦 죄책감
불에 달군 인두와 급이 낮은 성수 여러 병.
숙련된 의사가 진료 기구를 늘어놓듯, 눈앞의 도구를 무심히 정돈하고 있
는 수녀를 향해, 견습 수녀 마리 안느가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자매님.꼭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신 건가요?,,
그 구슬픈 물음에 애 처로운 심 려 가 배 어 있단 건 의 심할 여지 가 없었다.
잘 익은 단풍잎처럼 붉게 물든 인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그 푸른 눈동
자의 주인은, 지금 절대 아물지 않은흉터를 저 자신의 얼굴에 새기려 하고
있었기에.
인두로 한 차례 피부를 지진 뒤 , 그것을 질 낮은 성수로 아물게끔 한다.
이러한공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족히 수십 년은 돼 보이는 화상 자국을
단번에 몸에 새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그녀의 을망한 입술에서 처음 새어나
왔을 땐, 마리안느는 충격으로 한동안몸져눕기까지 했다.
"얼굴을 숨기 기 위한 술책 이라면 가면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 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彆 • •.더욱이 용사님께서 이곳을방문해올것이란게 아직 확정이
난 것도 아니고요 • • • • . 그럼에도 구태여 얼굴에 흉을 내 야 한다면. 하, 한 차
례•• ••.한차례 정도로도충분하잖습니까.•••.수녀님도잘아시다시피,기
도나 성수로 치유할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뿐. 아문
상처로부터 비롯된 흉은 어찌할방도가. •••."
마리안느가 말을 멈추었다.
수녀 가 조심스레 마리 안느를 끌어 안으며 , 말과 함께 쏟아져 나온 그녀의
억한 감정을 나긋이 다독여주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최고위 성직자들이 두루 모여 있는수도원에서 충분히 치유할수 있는수
준의 상처를 버젓이 남겨두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건 도리 어의심을살위험
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기만해야하는 이들은온갖종류의 상흔과그걸
치유하는 다양한 방책들을 숱하게 보아왔을 역전의 영웅들이니. 어설픈 변
장은 간파당할 게 분명합니 다.,,
"하, 하지만.…!,,
"전 괜찮습니다. 마리안느 자매님.,,
괜찮을 리 없다. 괜찮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신께 순결의 맹세한 몸이라곤하나. 여성이. 더욱이 얼굴에.
두 번 다시 지울 수 없는 흉을 세긴 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건, 언
제 발화 할지 모를 아픔과 후회를 죽을 때까지 끌어 안고 있겠다고 말하고 있
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흐, 흐윽! 자매님 !"
볼썽사나운 눈물로 헝클어지려는 시야를 마리 안느는 애써 바로잡았다.
어쩌면 지금 이때가 그녀의 이 아름다운 미소를 눈에 담을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에.
누구보다 괴로운 건 바로 당신일 텐데도, 다정스레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오히려 이쪽을 굽어살피는 그 성모와 같은 자애로움에 하마터면 속에 깃든
울컥 임을 전부 토해낼 뻔하였지 만.
두 주먹을 불끈 쥐 어 가며 , 끝끝내 곡읍을 깨물어 낸 마리 안느가 힘 겹 게 자
아낸 미소와 함께 말을 수놓았다.
"신이 당신께 미소 짓기를.,,
갸륵히 눈물을 그친 마리 안느가 외 마디 축복과 함께 그 자리 를 떠 났고.
이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화답한 수녀가 그녀를 배웅했다.
굳게 닫힌 방 너머로부턴, 비명이나 신음과 같은 사람의 목소리는 단 한 음
절도 찾아 들을 수 없었다.
치이익. 치이익.
그저 불에 달궈 진 쇠붙이 가 살가죽에 눌어붙는 소리 가 간헐적으로
들려올뿐이었다.
碢碢碢
사람의 마음을 가장확실히 얽어맬 수 있는 수단은 과연 무엇일까.
감성적인 식견의 소유자라면 우정, 혹은, 사랑이라 말을 할 테고. 현실적인
식견의 소유자라면 물질적인 대가 이외에 누군가 의 지를 농반할 방법은 전
무하다고 답사할지도 모르겠으나.
비좁고 어슴푸레한 참회실 안에서 스스로를 죄 인이라 지칭하는 이들을
수두룩이 마주해본 전적이 있는 수녀로선, 자신만의 확고한 답을 이미 옛 저
녁에 찾아낸 지 오래였다.
죄책감.
그것은 이성이라는 자물쇠에 꾀인 가장 크고 무거운 사슬의 이름이자, 정
도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매 순간시험에 들게 하는십자가의 무게.
죄 책감에 허덕이는 인간만큼 불안정한 존재는 없다.
그들은 지금 내딛고 서 있는 발판이, 나아가고 있는 길이, 자신이 자행하는
일련의 모든 행동이 타당한 것인지조차늘의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저지른 죄의 질이 극심하면 할수록. 발목을 깨물고 있는 족쇄의 무게가 무
거우면 무거울수록.
죄인의 혼탁한눈동자는 감히 빛을 담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서 비굴
히 바닥을 향하기 마련이다.
그래. 가령지금처럼.
"이걸로만족하시나요?,,
태연스레 건네진 수녀의 물음에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쉬이 입을 땔 수 없었
다.
인간의 겁을 쓰고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수녀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면
서까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순전히 그들이 그녀를 향해
쏘아붙인 의 혹의 화살들을 피 하기 위 함이 었으니 까.
자신들의 의심은 부당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애꿎은 사람이 마음에 상처
를 입 었을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도 절로 마음이 숙연해지는 상황일진데.
더욱이 그들은 전 국민의 추앙을 등에 짊어진 영웅의 일각들.
그 순간, 그들의 상념을 덮친 죄 책감의 파도는 범인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비대함을 자랑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상처는. …."
■■흉한 꼴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실 유년 시절, 노예 상인들에게 붙
잡혔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던 터라.....
II
용사가 어렵사리 말문을 뗐고, 그 말본으로부터 역력한 동요의 기색을 눈
치챈 수녀가 계책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갔음을 직감하며, 거짓을 흘렸다.
신의 어전 앞이나 다름없는 알현실의 그늘목 아래, 한치의 망설임 없이 거
짓을 늘어놓고 있는 자신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고 여긴 수녀였
으나.
.
...
한낱 인간인 자신이 눈앞의 초월자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방도는 이런 구
차한 수단뿐이 었기 에 .
수녀 또한 그들에 게 결코 뒤 지 지 않을 크기의 죄 책 감을 꾹꾹 눌러 담아가
며, 고단히 말을 이어 나가고 있긴 매한가지 였다.
”어떤가요? 용사님이 찾고 계신다던 그 파렴치한수녀님에게도 이런 흉
한 상흔이 존재하던가요?,,
침묵은 길었다.
수녀 가 가면을 벗은 이후, 추심하는 자와 추심 받는 자의 위 치 관계는 완
전히 역전된 상태라고봐도무방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꿀 먹은 벙어리가된 용사. 마땅한사죄의 말이 떠오르질 않아그저 우왕
좌왕하고 있을 뿐인 다우나. 여전히 졸고 있는 빅팀.
결국, 혼란에 빠진 동료들을 대신해, 파티의 최 연장자인 아피스가 무거운
입술을 천천히 움직일 무렵이 었다.
"미, 미안. 彆 彆 •.아무래도 우리가오해한모양....."
"그럴 리가 없습니다一!,,
낭랑한 고성이 적막을 찢어발기며, 방 안에 메아리쳤다.
”냄 새 가! 분명히 냄새 가 났단 말입 니 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 가 신부님
의 냄 새를 몰라볼 리 없습니 다! 도중부터 뒤 섞 인 또 다른 냄 새 때문에 그 행
방까진 알 수 없지 만! 신부님 이 이분과 장시 간 함께 있었단 것 ! 그것 하나만
큼은 분명합니다!"
"요, 용사! 진정해 !,,
드물게 격양된 기세로, 한눈에 봐도 절박한 감정이 선히 깃든 고성을 내
지르는 용사를 아피스가 황급히 제지했다.
용사가 거듭 언급하는, 도중에 뒤섞인 또 다른 냄새의 정체를 수녀는 어렵
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로즈벨트 영애와의 접촉.
늘 코가 삐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농도의 향수를 몸에 두르고 다니는 그
녀와 함께 보낸 잠깐의 시간이, 레이지스 사제의 행방을 묘연하게끔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천운. 이것이 누군가의 계산으로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면, 그야말로
신이 도왔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기적.
그렇게 . 쐐기 를 박아야만 하는 건 바로 지 금이 라고 절절히 직 감한 수녀 가
없던 혼신의 용기를 쥐 어짜 말을 읊조렸다.
”죄송합니다彆 • • • .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저도 생각을 하나 보탬 해보
자면 •• ••. 이곳 수도원은 성녀님의 알현실이 안치된 만큼, 제도 각국의 사제
들이 오고 가는 이른바 교황청의 심 장과도 같은 장소인지 라, 용사님 이
말씀하시는 그 사제님과 제가 어쩌면 우연히 접촉한 전적이 있어서 냄새가
밴건지도모를… •."
바로 그때였다.
"용사!"
"안되네! 용사!,,
변화를 체감할 일말의 유예 없이, 무언가를 직감할 겨를조차 없이.
갑자기 시야 전방에 나타난 서슬 퍼런 금속의 정체를 수녀는 한동안 온전
히 인식해내지 못했다.
바늘로 전신의 피막을들쑤시는듯한살기에 몸의 관절이, 정신의 마디가,
매서운 냉기라도 스며든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흐으. • • .j흐으. • •
눈물 한 방울을 보았고, 거친 호흡이 들렸다.
용사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수녀가 깨달은 건, 그 직후였
다.
아피스의 활도, 다우나의 마법도, 용사의 날렵한 검격을 따라가지 못했지
만, 시야 바깥쪽에서 튀 어나온 누군가의 억센 손이 그녀의 검신을 제때 붙잡
아준 덕에 검의 날이 수녀의 몸에 맞닿는 비극은 도래하지 않았다.
"누나. 진정해.,,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꾸벅꾸벅 졸기 바빴던 빅팀이 영원히 뜨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을 게슴츠레 개안한 채, 용사를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도, 돌려••••,흐극!돌!흑!돌려•…!흑!돌려••••줘••••!"
검의 날은 장애물에 가로막혀 그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허 나 그 역 할을 대 신이 라도 하겠 다는 듯이 흩뿌려진 , 용사의 그 토막 난
말의 파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