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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27화 (27/90)

秦 27화〉자장가

땅거미가드리워 옅은 먹물이라도 풀어헤친 듯 어둑해진 복도는 지독히도

음산했다.

수녀가 홀연히 벽에 몸을 기댔다.

쓰러질 것만 같아서. 아니, 무너질 것만 같아서.

눈두덩이의 혈관이 끓어오르는듯한작열감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지경

이었다.

그 사무치는 통증은 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잇따라 흐릿해지려는 의식

을 다잡아줄 뿐만 아니라, 폐부에 말뚝처럼 내리꽂힌 죄책감 또한 삭혀주고

있었기에.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아니, 아니다.

사실, 이보다 더 나은 방도는 수두룩이 있을 터였다.

성 녀의 정 신 이 온전한 상태 였다면. 그들이 용사파티 만 아니 었더 라면. 수

녀 본인의 혜안이 그들보다 뛰어났더라면.

지불할 대가 없이도, 감내할 손실 없이도, 사태를 무마할 방법 같은 건

차고 넘칠 만큼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사제는 알현실에 당분간 감금해두고, 인상이 특정된 수녀 본인은 이 제도

바깥 나라 어 딘가로 망명해 시 간을 벌어 본다거 나.

용사 파티에게 일련의 사정을 털어놓은 후, 교섭을 통해, 사제의 신변을 완

전히 양도받을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 본다거나.

아니면, 사제 본인에게 그들을 돌려보내게끔 설득을 부탁한다는 방법도

충분히 시도해 볼 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면?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 신묘한 대 안들과는 달리 , 불길한 가정은 그저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검 안쪽에 선연히 피 어오른다.

수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제의 행방을 뒤쫓고 있던 용사 파티가 모종의

술책으로 사제를 발견해내고, 사전 전황상, 그의 신병을 구속하고 있는 장

본인이 라고밖에 볼 수 없는 성녀와 맞닥뜨리기 라도 한다면.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 그들이 사제를 용사 파티에 필히 복귀시켜야만 한

다고 강경히 주장하기라도 한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지금의 성녀가 혹여나 용사에게'

적의,를품게 되기라도한다면.

그야말로 끝. 속된 말로, 파국이었다.

인류의 절망이라고 볼 수 있는 마왕이 세대를 거듭해가면 갈수록 그 힘을

부풀려 가듯, 인류의 희 망이라고 볼 수 있는 성녀 또한 후대 에 다다를수록 이

전보다 강력한 신력을 갖추게 된다는 건 저명한 사실이 었으나.

실질적인 육체가 존재치 않는 마왕과 달리, 성녀에겐 살아있는 육신이 있

는만큼.

신의 힘을 인간의 그릇에 담는 과정 중에 생기는 부작용 또한 세대를 거듭

해가면 갈수록 심화되어 왔다는 건, 교황청에서 공언하는 걸 엄격히 금기시

한 인류의 추악한 민낯이 었다.

제도의 역사에 기록된 역대 성녀 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인 수준의 신력을

자랑하는 현대의 성녀.

웰나 안젤라스 애쉬스.

허나그녀는, 그 강대한 신력을 부여받은 여파로 인해, 사고 능력이 갓난아

이 수준까지 퇴행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불과 몇세대 전까지만하더라도, 용사와 성녀가합을 이뤄 마왕을 무찌르

는 게 용사 파티의 가장 올바른 형태라고 강변하던 왕실이, 용사가 성녀에게

서 사전에 가호를 부여받고 전투에 임하는 편이 보다 안정적이라고 주장을

뒤 집은 것도 이 러한 사태 를 대 비하기 위 함이 었으니.

가호 수여식.

그 이름만 번드르르한 예식의 탄생 비화가 이리도 추잡스럽다는 걸 제도

내의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해 맑게 웃고 있을 순 없으리 라고. 수녀는 그리 여 겼다.

성녀가. 성녀가된 그날.

소녀가. 성녀가 되어버린 그날을. 수녀는 결단코 잊지 못한다.

인격 이 말살당하고, 존재 가 덧씌워 지 며 , 한 개 인이 말끔히 소실되는 그 무

참한 광경을 어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의식이 끝없는 늪에 침수되어 가는 듯한 좌절감. 뼈마디에 스며드는 무

력감. 그리고 물에 푼 물감처럼 서서히 번져가는 그 역겨운 안도감은 밤이

도래 할 때 마다 부표처 럼 떠 오르는.

수녀의 회한이자, 저주이며, 또한낙인이었다.

그 마음의 쓰라림과 비교한다면, 불에 달군 쇠붙이로 살을 지지는 고통 따

윈 그저 우습게 여겨질 따름이 었다.

그날의 실수를 만회 할 수만 있다면, 수녀는 저 자신의 눈을 스스로 도려내

라는 요구에 도 흔쾌 히 응할 자신 이 있을 정 도였으니 까.

"성녀님은.... •.웰나는 내가지킬 거야彆 •••."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그 사제만큼은. 그 남자만큼은 넘겨줄 수 없었다.

지금의 성녀에게서 그를 단 한시도 떨어뜨려 놓아선 안 됐다.

신력을 담아 놓은 그릇. 선망의 옷을 입혀 놓은 인형. 그저 숨 쉬는 주검일

뿐인 존재로 영락하고 만 성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되돌려준 그 사람을 잃

고만다면.

이 번에 야말로 성 녀는 무너 지 고 말 것이 기 에 .

과거의 자신이 놓쳐버린 탓에 어둠 속에 수몰되어 버린 그 가엾은 손을 붙

잡을 자격이 있고, 해가 닿는 길목에까지 끌어올릴 힘을 갖춘 그 유일한존재

를 사수해내는 것만이 자신의 죄를 속죄할 유일한 길이라고, 사명이라고, 수

녀는 진심으로 그리 여기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있었다.

그래. 무슨짓이든.

누군가의 버팀목이었을지 모를 인물을 강탈하는 것도, 청렴결백이 삶아

온 삶을 거 짓으로 점철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 라고, 다짐하고 또 결의했

다.

다행히 그 결사의 각오가 헛된 바람으로 사그라드는 일은 없었다.

수녀가 각본과 주연을 도맡은 일련의 연극으로 인해, 용사 파티의 머릿속

에서 이 수도원을 의심한다는 사고는 완벽히 소실됐을 것이 분명할 테니.

마음에 빚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의 시야는 어둡고 비좁다.

그 막막한 심정은 수녀도 몸소 체험해본 바 있었다.

아무리 여러 현실적인 정황들이 이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들, 그들의 마

음에 수녀를 향한 죄스러움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 지침은 머

지않아흐지부지될 게 분명했다.

힘으로도 지혜로도 대적할 수 없는 상대에 겐 바짝 엎드려 동정심을 부추

기는 게 가장 탁월한 선택이란 건, 길거리의 부랑자들도 알고 있을 만큼 당연

한사실이기에.

I

%"

정전기라도 인 것일까.

손바닥에 서부터 튀 어 오른 원인 모를 감각에 수녀가 미간을 찡그렸다.

"피....?"

수녀가 벽을 딛고 있던 자신의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새하얀 스케 치북에 붉은색 물감을 발라놓기 라도 한 것처 럼 손바닥을 가

로지른 그 선명한 자상은 환부에 맺힌 핏물이 촉촉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생

긴 지 얼마되지 않은상처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용사가 부순 테 이블 조각에 라도 스친 것일까.

당시엔 그들이 내뿜는 거센 기백에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차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 듯했다.

■돌려줘!,

수녀가도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흔들려선 안된다.

다른 이의 마음을 굽어살필 여력과 여유 같은 건, 진작에 재 가 되 어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외 면해 야 한다. 외 면할 수 있었다.

독선적 이고, 이 기적 이며, 구저분한 자신은 충분히 그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그녀를위해. 성녀를위해.

자신의 심신이 쾨쾨한 오물로 범벅이 된다 한들 뭐 어떻단 말인가.

그녀가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울고, 화내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 그것 하

나만으로도 수녀는 기꺼이 더러워질 수 있었다.

"웰 • • … 나 彆 •••."

긴장이 풀린 탓일까. 어쩌면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수녀의 의식이 점점이 흐려졌다.

메 마른 입술이 달싹이 며 자아낸 그 구슬픈 울림 에 눅눅한 그리움이 녹아

들어 있다는 건 일목요연해 보였다.

차디찬 밤공기 가 수녀의 뺨을 어루만졌고, 구름 사이로 투사된 월광이 그

녀 곁으로도래하여 분주히 저 자신의 찬연함을 뽐내고 있었지만.

수녀는 스르르 감긴 눈꺼풀 너머의 추억을 쫓느라 바쁜 모양인지, 야심한

밤이 연주하는 그 아름다운 소야곡을 끝끝내 지 각하지 못했다.

'벨테인언니!,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더랬지.

다른 이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수녀,가 아닌, '벨테인,이었던 시절이.

벨테인 안젤라스 애쉬스.

이젠 그런 식으로 불리는 편이 더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낯선 호칭이

지만.

오직 단 한 사람. 세 상에 서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만큼은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불러줬으면 했기에. 수녀는 그 호칭에 대한 헛된 미련을 완전히 끊어

내지 못했다.

일찍이 수녀에겐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래. 있었다.

"저기 수녀님 • • • •. 이런 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彆 彆 ••."

바로 그때였다.

이를테 면 호수에 떨 어진 이슬 한 방울처럼 , 흐릿해져 가는 의 식 한 가운데

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떨어져 내려왔다.

"아니,이손은 또어쩌다가 그러셨대 ••••.나원 참•• 彆 彆."

그 직후 느껴 진 건 아늑한 부유감이 었다.

이제는 그 윤곽만 어렴풋이 보이는 유년 시절의 기억. 놀다 지쳐 쓰러진

자신을 아버지 가 침대 까지 옮겨다 주었던 순간, 그 마음이 내 려앉는 듯한 포

근한 온기 가 서서히 상기됐다.

"주신이시여.저는 당신의 손가락. 한낱 어린양. 당신의 권능 아래 이 땅의

모든 것에게 안식을 안겨줄지니. 그 영광은 모두 당신에게 바치겠나이다.,,

자장가처 럼 귓 가를 간드르는 그 조곤조곤한 목소리 를 끝으로, 수녀의 의

식은 황홀히 어두워져 갔다.

오늘은 어쩐지 실로 오랜만에 악몽을 꾸지 않을 것만 같다고, 수녀는 그리

느꼈다.

확증은 없었다. 그저 그런 느낌 이 들었을 뿐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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