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29화 (29/90)

秦 29화〉탈출

그 명성만 익히 들어봤지, 막상 그 실물을 보지 못한 명작 영화가 누구나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선 '쇼생크 탈출,이 그러했다.

대충 억울한 누명을 써 감옥에 수감된 주인공이 갖은 고생 끝에 탈옥한다

는 것만 알지. 극의 전개도, 인물 간의 갈등도모르고, 사실 그닥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렵사리 탈옥에 성공해 끝끝내 자유를 쟁취해낸 주인공이, 거세게 쏟아

지는 빗줄기를 몸으로 받아내며 하늘 높이 만세를 부르짖고 있던 그 광경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니까.

혹여나 먼 훗날의 내가 그와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면, 나역시도 저러지

않을까. 무심 코 그런 생 각을 하기 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체험해보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처음 알현실에 감금당한 그 순간, 불길한 안광을 희번덕거리며 내게 달려

드는 성녀님을 봤을 땐, 못해도 하루 정도는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겠

구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이렇다 할 맥락조차 없이, 너무나도 순순히 날 바깥으로 내보내

주겠다는 성녀님의 그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엔, 도탈의 기쁨보다 당혹스러

움이 앞서갈 정도였다.

사춘긴가.

근래 들어 정신 연령이 부쩍 성숙해진 성녀님이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목구멍에 얹힌 찜찜한 가시를 시원스레 삼

켜낼수가없었다.

바깥에서 잠긴 문을 손도 안 갖다 대고 열어젖힌 성녀님의 소행은 이젠 그

리 놀랍지도 않았다.

성녀님의 초월적인 기행에 익숙해진 나 자신이 아주 조금 낯설게 느껴졌

을뿐이었다.

"성녀님. 저진짜나가요?,,

가란다고 진짜 갔다가 피를 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상당히 여

러 차례 그 의중을 재확인 해 봤으나.

나를 알현실 바깥으로 내보내고 싶어 하는 듯한 성녀님의 태도는 유례없

는 강경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뭔가를 밀어내기엔 턱없어 보이는 그 가냘픈 손으로 내 등을 꾹꾹 열심히

떠미는 그 부단한 모습으로부턴,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살짝 상처받기

까지 했다.

"으응〜!,,

"아, 알았어요!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아이의 첫 반항을 마주한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런 주책맞은 상념을 짓씹으며, 등허리를 떠미는 미약한 흐름에 몸을 맡

겼다.

碢碢碢

수어 시간 만에 맛본 된 속세의 맛은 내게 이렇다 할 감흥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애초에 무언가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날 만큼 오랜 기간 갇혀 있던 것도 아

니었던데다, 방에서 빠져나온 직후 보게 된 풍경도 들어왔을 때와 명도만 조

금 달라졌을 뿐인 별 볼 일 없는 경치 였기 에.

그냥, 벌써 밤이네.밤공기가참 차갑구나. 정도가 내가느낀 감상의 전부

였다.

그렇게 조촐한 탈출 소감을 짓씹으며, 터덜한 박자로 내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겨갈무렵.

복도 모퉁이 에서 생 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났다.

아니, 이 경우엔 만났다기보단, 발견했다고 하는 게 보다 마땅한 표현인

지도 모르겠다.

■수녀님?"

처음엔 내가 잘못 본 건 줄 알았다.

야심한 밤. 길거리 에 나뒹 구는 검은 비 닐봉지를 고양이 라고 착각한 어느

행인의 사례처럼.

복도 귀퉁이에서 몸을 웅크린 채, 벽과 동화되어 있는 검은 물체가 내 지인

이라는 걸 깨닫기까진 다소의 시간적 여유가필요했다.

날 알현실에 감금한 장본인이자, 한창 상처받기 쉬운 나이대인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선사한 존재.

이게 영화라면 그녀는 못 해도 중간보스급엔 해당하는 인물이었을 테지

만.

전생 때 숱하고봐온 권선징악계열 영화주인공들처럼, 막감정이 격양된

다거나, 단전에서 분노가솟구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벽에 몸을 기댄 채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잠들어 있는 수녀님의 그

처 량한 자태 는, 그러한 강렬한 감정을 받아내 기 엔 너무나도 위 태 로워 보였

기에.

이를테면, 바람 앞에 등불.금이 간 유리잔. 건드리면 부서질 것만 같다는

건, 그야말로 지금의 수녀님을 수식하기 위해 태어난 말이란 생각이 들 정

도였다.

술이 라도 마신 걸까.

젊은 사제나 수녀들이 저장고의 쟁여둔 포도주를 몰래 빼돌려 마시다가

진득이 취해 나자빠지는 불상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수도원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이른바 연례행사 같은 것이긴 하나.

매사에 금욕적이시던 수녀님께서 그러한 탈선을 저지를 것 같진 않았고,

애초에 몸에서 술 냄새도 나지 않았기 에,그러한 의 혹은 머지 않아 사그라들

었다.

"저기 수녀님 • • • •.이런 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彆 彆 ••."

'O으....

-- E그

it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의식을 각성시켜 보려 했으나, 영 신통치 않아보였

다.

자초지 종을 물어보는 건 고사하고, 이 대로 업 어 가도 모르리 란 생 각이 들

정도였다.

혹여나 바깥에서도 이러고 돌아다니는 건 아닐는지. 불긴한 오지랖이란

건 자각하고있으나,한사람의 성직자로서,그녀의 위기의식 수준이 걱정되

고 마는 건 별수 없는 일이 었다.

"아니,이손은 또어쩌다가 그러셨대 ••••.나원 참•• • •."

이 와중에 어딜 또 다치기까지 했다.

평소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이따금저지르는소소히 실수가매력 포인트로

서 작용하기도 한다는 걸 어디서 들어본 기억은 있다만.

그 사람한테 실수를 지적받는 게 일상인 입장에서 이야기해 보자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억울한 감정만 들지. 딱히 매력 이 느껴 지진 않았다.

수녀님의 새하얀손을 조심스레 내 손 위에 올려놓으며, 그 상태를 살폈다

환부에 묻은 혈흔의 양과 그 깊이로부터 추측해 보건대, 아무래도 도처에

있는 튀 어나온 못이 나, 나뭇조각과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라도 베 인 모양인

듯했다.

'어디 한군데 꿰뚫리는 정도의 중상이 아니라면 절대로본인한테도, 타인

한테도사용해선 안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언젠 가 그녀 에 게 들었던 따끔한 말 한 구절 이 뇌 리를 스쳤

다.

당시의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듯했던 냉 엄한 인물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허술하기 그지없는, 가히 빈틈투성이라고 칭해도 손색없는 지금의 수녀님

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상념 구석에서 매캐한 연기와도 같은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게 선연히 체감됐다.

안 들키면 그만이 지.

가슴팍에 있던 로자리오를꺼내 손에 쥔 채, 그녀가 깨지 않게끔조용히

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인애와 자비와 같은 고상한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이 아닌, 하지 말라

는 건 구태여 더 하고 싶어지는 반발심에 보다 가까웠다.

"주신이시여.저는 당신의 손가락. 한낱 어린양. 당신의 권능 아래 이 땅의

모든 것에게 안식을 안겨줄지니. 그 영광은 모두 당신에게 바치겠나이다.,,

내 손아귀에 모인 신성의 빛무리가 맞잡은 손 너머로 모두 옮겨갈 무렵, 수

녀님의 상처는 별 탈 없이 전부 아물었다.

너무늦지 않게 상처를발견해낸 게 다행이었다.

기도로 치유해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뿐. 이미 아

문 상처로부터 비롯된 흉은 나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까.

상처 가 훈장이 라는 건 어 디 까지 나 모험 가나 전사들에 게 나 국한된 이 야기

여성의 몸에 지울 수 없는 흉이 새 겨진다는 게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는

지나가는 개도 알고 있을 만큼 당연한 이치니 말이다.

딸깍.

바로 그때였다. 수녀님의 눈두덩이에 얹혀 있던 가면이 중심을 잃고 기울

어 졌다.

그러 자, 그녀 가 왜 갑자기 가면을 쓰기 시 작한 건지 에 대 한 타당한 의 구심

이 구멍 난 나룻배에 새어 들어오는물처럼, 사고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코 짧지 않은 고심 끝에 결국 다래끼나 여드름 때문일 거라고, 나름대로

논리적 인 결론을 도출해내 긴 했다만.

눈앞에 답안지가 있는 지금 이 순간,호기심의 동물인 인간으로서,그걸 들

춰 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 자는 사람 얼굴에서 안경 같은 걸 치워주는 건 오히려 신사적인 행

위 지 . 아니 면, 손을 치료해준 것에 대한 합당한 대 가라고 생 각하자.

그런 구차한 핑계들을 대의 명분 삼아, 결국 수녀님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

겨냈다.

르.

■■

이쁘네.

그 흔한 잡티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상함

을 자랑하고 있었다.

태 양의 조력 없인 찬연함을 드날릴 수 없는 달빛과는 달리, 저 스스로 숭고

한 빛을 발하고 있는 백옥 같은 피부는 지그시 감긴 두 눈의 신비로움이 어우

러져, 하나의 예술품을 보고 있는 것이란 아둔한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직장 상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유능함이 아니라, 다소의 무능

함도 용인할 수 있는 빼어난 외모인 게 아닐까.

이쁜 사람만 보면 화가 절로 누그러지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다시금 재

확인 하게 된 씁쓸한 순간이었다.

도대체 가면은왜 쓰고 다니셨던 거지.혹시 그냥 패션이었던 건가.

....

..

"김새게 이게 뭐에요."

"므으으••••.-

그렇게 수녀님의 말랑한 뺨을 꼬집어 늘리며, 상념 안에 뭉게뭉게 피어

오른 허 실 함을 어 찌 저 찌 달래 고 있을 무렵 이 었다.

"응?,,

예고 없는 변화에 의 식 이 잠깐 소란했다.

내 손바닥쪽에 있던 새겨져 있던, 성녀님이 내게 새긴 무수한문양중하나

가물에 닿은 물감처럼 스멀스멀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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