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32화 잦 만남 (2)
후두두.
바스러진 벽 알갱이들이 우박처럼 바닥을 두들겨 댔고, 내리쬐는 햇살의
장막 안 편에서 분주히 나부끼고 있는 먼지들은 가뜩이나 쾨쾨한 골목에 어
스레한불길함을 더하고 있었다.
"커, 커헉!,,
균열로 얼룩져,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벽에 액자처럼 내걸린
사내 가 야트막한 신음을 게워 냈다.
만일 내가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의 정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
다면, 일의 자초지종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반드시 말해두어야만하는 사안
이 하나 있다.
나는 죄가 없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나쁜 것
이다.
내 가 내 게 주먹을 휘 두르려 한 저 사내를 무심코 집 어던진 것도 맞고, 비 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날아간 그가 벽에 매다 꽂힌 것도 맞으며, 그 막대한
운동 에너 지를 이 기지 못한 벽 이 맥 없이 뭉그러진 것 또한 맞으나.
그 모든 책 임을 나 한 사람에 게 만 부과한다는 건 다소 부당한 처사이 지 않
느냐고, 내 머릿속의 방어기제가허점투성이인 자가 변호를부르짖고 있는
통에 , 질 나쁜 와인을 진탕 들이 키 기 라도 한 것처럼 연신 머리 가 지끈거렸다.
11하아 .... 彆."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요동치는 상념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
를 써봤다.
나름 힘조절한답시고 한 건대.
사내가 내 몸통 크기에 준하는 그 우악스러운 팔을 휘두르며, 내 안면 쪽
을 가격하려 한 바로 그 순간.
천성이 겁쟁이인 내 죄 많은반사신경이 머리의 의중이 개입할새도 없이
몸에 어떠한 명령 신호를 하달하고 말았고.
뒤 이어 들려온 익숙한 파열음 두 구절.
퍼억. 콰직.
그렇게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조심스레 떠보니,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물에
적신 휴지 뭉치처럼 벽에 내쳐진 사내의 초라한 자태였기에.
그 직후, 내 가슴 안쪽에 피어난 상념은 참으로 간단명료했다.
"일 냈다… •."
이게 다 옛 동료들이 시도때도 없이 자행하던 단련이라는 이름의 육체 고
문에 휘말린 탓이었다.
바위를 씹어 으깰 수 있는 강인한 이빨. 강철을 튕겨낼 만큼의 질긴 피부.
그런 흉흉한 부품들을 기본 옵션으로 달고 나오는 마물이 란 족속들과 싸
우기 위해선, 우선 본연의 육체를 그것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단련해
야만한다는 것이 옛 동료들, 아니, 옛 리더의 지론이었으니까.
괴 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에 서 자신마저 괴 물이 되 지 않도록 주의 해
야한다는어느위인의 명언에 대놓고중지를갈기는대책 없는행동 방침이
었으나.
그러한 방식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기엔 그들은 너무나 젊고 혈기 왕
성했으며, 나는 그들이 자아내는 그 거센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강단
있지 못했다.
덕분에 어지간한 저급 마물을 상대로는 내 몸 하나 정돈 보전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을 보유하게 됐으나.
그러한 힘 을 다룰 기 술도 배 짱도 부족한 것이 나란 인간이 다 보니 . 간혹,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평범한 일반인들과 시 비 가 걸리 기 라도 하면, 이 러한
대참사의 발생은 부지기수였다.
일상생활에선 몸과 정신이 긴장할 일이 없다보니, 딱히 문제 될 건 없었으
나,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대놓고 척을 지게 되는 경우엔 그야말로 비상이었
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마물들이 달려들지 몰라, 늘오감을 바짝곤두세우고 있
어 야만 하는 -던전-이 란 위 험지대를 전전하며 살아왔던 우리 였기 에 .
지성체가 자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라 말할수 있는 '적의,엔 싫
어도 몸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 었다.
다행히 이번 경우는, 딱히 생명에 지장이 있어 보이지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닌 듯하니. 기도를 사용해 그를 치료해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아....."
인제 보니, 내 사제복위편이 죄다찢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주먹을 휘두르던 그 자세 그대로 내동댕 이쳐졌을 때, 오갈 데를
잃어버린 사내의 주먹이 허공에서 휘적이다 내 옷깃을 붙잡아버려 이렇게 된
듯싶었다.
나원. 이래서 난싸움이 싫다.
맞는 것도 불쾌하고, 때리는 것도 고까운, 이겨도 져도 앙금만 남는 이 상
처뿐인 행위엔 호정이 들려야 들 수가 없었다.
유년 시절 신세 졌던 고아원의 어느 원로하신 목사님께서 내게 이따금 당
부 하시 던 참언 하나가 불현듯 떠 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때려도 되는 경우는, 그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놈이 거나, 남
의 여자를 탐하는 놈이 거나, 물건을 되 파는 금수만도 못한 놈일 때 말곤 없
다고.
역시 옛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
심 어린 감탄이 새어 나왔다.
"도,도와주셔서 정말감사드립니다彆 … ! 사제님 ••••!"
"별말씀을요. 마땅히 해야할 일을했을뿐입니다."
다친 몸을 이끌면서까지 내게 감사 의사를 표하려는 행인의 거동을 손으
로 제지해 가로막았다.
마음은 잘 알겠다만, 상반신을 가리고 있던 천을 모두 잃어버린 지금의 난,
남들에게 못보여줄 만한것들이 몸에 너무 많이 새겨져 있는지라,누군가의
시선이 바짝 내게 달라붙는다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오른팔에 새겨진 문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턱 바로 아래 에서부터 쇄골
부근에 이르기까지, 무슨 지뢰처럼 매몰된 이 남사스러운 자국들만큼은 죽
어도 세상밖에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명 색 이 사제 라는 작자가 마을 대로변에 서 여성과 시 시 덕 거 렸다고밖엔 볼
수 없는 흔적들을 목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다닐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한손으로 목을 가린 채, 난데없이 상의를 잃어버린 지금의 이 난
처한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를 한창 고민하고 있을 무렵.
"저, 저기! 실례지만 사제님!,,
내가 구한 그 낯선 행인이 놀고 있던 내 반대쪽 손을 서슴없이 움켜쥐 더니,
유리구슬과도 같은 초롱초롱한 눈매를 번뜩거리며 돌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도움받은 입 장으로서 배은망덕한 소리 란 것은 자각하고 있으나! 혹여 ,
실례가 안 된다면 저의 청을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불과조금 전까지 흠씬 두들겨 맞고 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다
부진 모습이었다.
흙과 먼지에 더럽혀지긴 했지만, 걸치고 있는 옷은 나름 고급스러운 것들
이 었고, 손가락과 귀 에 매 달아 놓은 한눈에 봐도 값비 싸 보이는 장신구들로
부턴, 그의 넉넉한 살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부유한 상인댁의 아드님께서 호위도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금품
을 노린 강도에게 봉변이라도 당한 것일까.
그렇게 앞뒤 상황을 대략적으로 넘겨 짓고 있자, 내 손을 붙들고 있던 그
의 양 손아귀 가 갑작스레 그 힘을 부풀렸다.
'■사실 제 가 이 근방에서 획 기 적인 사업 하나를 추진중에 있습니 다만! 그
사업에 걸맞은 인재들은 늘 턱없이 모자란 탓에 항상골머리를 앓고 있었습
니다! 사장인 제가직접 발로뛰며 인재 등용에 힘써야할정도로요!"
"아,네… •."
아, 이거 잘못 걸렸다.
난 예전부터 순탄하던 여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지기 직전 닥쳐오는,
그 특유의 불길함을 직감하는 능력만큼은 뛰 어난 편이 었다. 그걸 피할 능력
이 없어서 문제지.
'■그리고 한눈에 보고 깨달았습니 다! 사제님 이 야말로 제 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세기의 인재
라는걸요!"
"저기,알겠으니까彆 彆 • •.이 손놓고이야기해주시면 안될까요.... •."
스카우트인가.
뭐 , 대충 그럴 것이라곤 예상하곤 있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칼과 마법이 아닌, 돈과 지혜로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한
상인들에겐, 자신들을 지켜줄 든든한 뒷배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니까.
은퇴한 모험 가가 이름 있는 상가의 호위 역으로 재취 직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닐 정도고.
아마, 건장한 체격의 불량배를 가뿐히 날려버린 나를 값싼노동력 정도로
눈여겨보고서 이러는 걸 테지.
그렇다면, 아까그 불량배와의 다툼도, 그러한 인재 등용 과정 중에 생긴
예기치 못한사고였던 걸까.
그렇게 현 상황의 순리를 차츰차츰 짜 맞춰 가고 있을 무렵.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호명했다.
"사제님!,,
"저기,죄송합니다만.저는신께 헌신해야하는몸이라彆 •••."
• ••
...
"혹시! 남창이 되어보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그 직후, 무심코 힘이 들어가 버린 주먹을 이성으로 하여금 가까스로 다
스렸다.
이 작자가 대체 어디서 무슨 사업을 벌이는 인간인지는 지금으로선 불명
이었으나.
일단, 왜 처맞고 있었는진 대충 알 것 같았다.
碢碢碢
착잡하고 심 란했다.
스스로의 이름을 '렌겔1이라고 밝힌 그 청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
라며 내게 여벌 옷을 넘겨준 덕분에, 상반신을 헐벗은 상태로 수도원에 귀가
하게 된다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수 있었으나.
그가 내게 옷을 넘겨주면서, 넌지시 건넨 그 해맑은 말들이, 머릿속에 다트
처럼 내리꽂힌 채 좀처럼 뽑히질 않았다.
여성의 경계심을 허무는 데 특화된 순박한 외견. 너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야무진 근육. 조숙한 여성들이 껌뻑 죽는다는 성직자 신분에 이르기까
지.
순진한 여자를 글러 먹게 만드는 전형적 인 인간상. 그야말로 남창이 란
책무를수행하기 위해 신이 빗어낸 존재.
그의 얼굴에 한 치의 악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순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지
않았더 라면, 나는 그 말들을 나를 향한 모욕 내 지는, 결투의 신호로 받아들
였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목에 차고 있던 로자리오의 칼날을 두어 차례 정도 접었다 펴기까
지 했다.
주먹이 운다.
자존심 에 뇌 를 지 배 당한 이들이 종종 입 에 올리는 그 낯간지 러운 말을, 그
한순간만큼은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I
'후우••••.
II
만일 그럴 의향이 있다면, 가까운 시일 내로 자신을 찾아와달라며 그가
내게 건넨,그의 가게 위치가명시된 메모지는진작에 내다갖다버렸다.
마음 같아선 그에게 받은 이 짝퉁 사제복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으
나. 그건 참기로 했다. 참아내 야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짝퉁 사제복은 직원이 손님을 대접할 때 입는 이른바
'이벤트용,.
여성의 힘으로도 쉽게 찢어버릴 수 있고, 물에 젖으면 내용물이 다 비치는
참으로 화끈한 물건인지라, 취급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주의 받았을 정도다.
수치심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 물을 흘린 순 없었다. 옷이 젖으
면안되니까.
"책 한권 집어 들고,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울자• • 彆 •."
방금 입에서 나온 것이 숨이 아닌, 검은 매연이었던 게 아닐까E 싶었을 정도
로 탁한 호흡이 었다.
오늘은 거참, 되는 일이 없네.
그러한 질척한 상념을 짓씹으며, 평소 애용하던 낡은 서점 문을 떠듬떠듬
열어젖힌, 바로 그 순간이 었다.
쿵.
미 약한 충돌이 었다.
마음이 다소울적했던 탓이었을까. 서점에서 이제 막 나오려 하는누군가
를 인식하지 못해, 그와몸이 부딪히고 말았다.
"앗, 미, 미안…•."
"아,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 ••••."
목소리 가 들려온 방향으로 자연스레 시 야가 미끄러 졌고, 그 직 후, 탁한 상
념으로 얼룩져 있던 내 비루한 눈동자에 불이 깃들었다.
가을에 익어버린 단풍잎의 불씨가 머지않아 숲 전체로 번지고 번져 자아
낸 은혜로운 홍색을 보고 있는 듯한, 안온하면서도, 그 안에 뜨거운 열망이
녹아들어 있다는 게 선연히 체감되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그 붉은 갈대의 틈 매무새에서 먹잇감을 주시하는 맹수의 안광처
럼, 표독히 번뜩이고 있는 그 금색 눈동자는, 내 머릿속에 각인된 가장 강렬
한 추상 중하나였기에.
그 추상의 근원에 자리한 그녀를 몰라본다는 것만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었다.
"아, 아피스?"
"어?"
아! 합!,,
쾅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서, 서점 문도 같이 틀어막았다.
나는 그녀를 알아봤지만, 그녀는 나를 못 알아봤을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 서양 영화에서 봤던, 바닥에 떨어진 음식도 書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는 어느 기적같은 이론처럼.
고작 1초.
기껏해야 1초남짓한 시간눈이 마주친 것뿐이기에.
그러한 불확실한 정황 하나만 보고서, 내 가 그녀와 마주치고 말았다고, 그
녀 가 날 알아봤다고 확신한다는 건 다소.
"야:,
"열어."
와문이 말한다. 완전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