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36화〉오해
"••••이렇게된겁니다.,,
복잡한 일의 순리를 간결하게 풀어 설명하는 건, 한손으로도능히 헤아릴
수 있을만큼 적디 적은 내 몇 안되는특기들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자신 있
는 특기 라도 말할 수 있겠다.
파티의 명성이 아직 유망주 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던 시절, 임무 달성 보고
서를 작성하는 건 항상 내 몫이었을 정도니까.
사실 나 말곤 마땅한 적 임 자가 없었다.
용사님이 저술하는 글은, 무조건 ■나는 오늘, 로 시작해서 '너무 즐거웠다'
로 마무리되는 저주를 걸머지고 있었고.
아피스의 문장력은 나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동화책으로 공용어
를 배운 탓인지, 일의 정황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다우나에 이르러선, 제도 시민의 평균적인 지식수준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고 난삽한 표현들이 너무 많아, 한 번은 그녀가 써낸 보고서
가 미확인된 금서의 일부로 취급받는 웃지 못할 헤프닝 이 벌어지기도 했었
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옛 전공을 살려, 그간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시간순서
대로,최대한 알기 쉽게, 약간의 유머까지 첨가해, 아피스에게 설명했다.
난데 없이 성녀님의 전속으로 발탁되 게 된 것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이유
로 그녀 가 내 게 지 대한 호감을 표하고 있단 것까지.
내가의도치 않게 죽은 사제 하나를되살리게 된 이후로, 성녀님이 내 몸
에 신비스러운 문양을 새 겨 넣는 묘한 버릇이 생 겼다는 사실까지도 미주알
고주알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되돌아온 아피스의 화답.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래.솔직히 나도 말하고 있는도중부터 이렇게 될 것 같긴 했다.
碢碢碢
이야기를 나눌 장소로써 인근의 지하식당을 고른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신의 위용 어린 모험담을 다른 이에게 떨치지 못해 안달이 난모험가들
이 주야장천 상주하고 있는 이곳은 대낮에도 떠들썩하니까.
물건을 때려 부순다거 나, 고성을 내 지르는 것과 같은 큰 소동만 일으키 지
않는다면, 사람두 사람분의 대화를 묻어두는 것 정돈 손쉬울 테지.
"바른대로 말하라고 했잖아!,,
콰앙
고성을 내지르며 테 이블 발길질로 때려 부순 아피스가 대뜸 큰 소동을 일
으켰다.
"말을 꾸며낼 거면 좀 제대로꾸며보든가! 뭐? 성녀의 전속수호사제!? 죽
은 사람을 되살려 !? 지나가던 고블린이 비웃겠다!,,
■■아피스 彆.... 목소리 좀 낮춰주시면 안될까요 彆.... 사람들이 보니까
... . • 11
아피스가 언성을 높이며 나를 거세게 다그친 직후, 묘한 웅성거림 이 귓전
을 두들겨 댔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가게 안의 시선이 우리 두 사람을
향해 모두 수렴되고 있는 듯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진짠데.
나도 뱉어 놓고 아차 싶긴 했다만. 내가 아피스에게 구전한 자초지종엔 약
간의 익살이 스며있을지언정, 거짓은단한톨도 가미되지 않았다.
거짓이 들통났을 땐, 뒤늦게 라도 진실을 고하면 당초의 사태 정도는 모
면할수 있다만. 털어놓은 진실이 모두 거짓으로 치부 당하고 있을 땐 도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렇게 찰나의 순간 상념에 잠긴 사고가, 소득 없는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
을 무렵.
아피스가부서진 책상다리에 거칠게 발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가 재직하고 있다는그 수도원! 애들 데리고 이미 다 가봤어! 그곳 명부
에 네 이름은 단 한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
하고 오는 길이라고! 그리고 네가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를 수녀랑 대낮 대
로변을 목줄 차고 돌아다닌 것도 다 알아! 다 알고 여기까지 온 거라고!,,
-.…예?"
그 순간, 우주가 잠시 꺼졌다.
이를테면, 귀가 입수한 정보를 뇌가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기분.
기존에 자리하고 있던 지식과 새로이 입수한 지식이 온전히 맞물리지 못
한 채, 혼선을 일으키고 있었다.
"명부에 제 이름이 없다고요? 아니,그보다 아피스가어떻게 그걸 ••••?"
어렵사리 입 밖으로 꺼내놓은의문.그조차도 내 양어깨를 거세게 붙든 아
피스의 행동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야! 말해! 말해 봐! 말해 보라고! 내가! 우리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돼!
? 그 정도밖에 안되는존재였냐고!?,,
"자, 잠깐! 잠깐만요! 아피스!"
아피스가 내 몸을 거칠게 쥐고 흔들었다. 그 우악스러운 힘 안 편에 절절한
감정이 스며 있다는 건 일목요연해 보였다.
그리고 그 직후, 주위가 갑작스레 시끄러워졌다.
"안 사람한텐 번드르르한 직장 다닌다고 떵 떵 거려놓고, 실상은 다른 여자
랑 놀아나기 바빳던 건가彆 • • •. 더군다나성녀의 전속이라니, 거짓말을 쳐도
좀 정도껏 쳤어야지 • • ••. 남자 쪽이 천하의 개 만도 못한 놈이로구먼 ••••.,'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젊은 나이에 애도 있는 것 같은데 ••••.
쯧쯧.안됐구먼.나원 참• • • •.애들은무슨죄야••••."
"쓰읍 • •••. 인물은 멀쩡해 보이는데 ••••."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가당찮은 의혹들이 내 뒤통수를 들쑤셔댔다.
아피스는 두꺼운 후두로, 그것도 인식 저해 마법까지 달린 마도 물품으로
몸을 둘러싸매고 있는지라,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쏠리게 되는 건 별수 없는
일이긴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 와중에 뭐 !? 남창? 남창이라고!? "
"아피스!!!"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보려 했지만, 내 어중간한 완력으론 역부족
이었다.
"어머! 남창! 남창이래! 미쳤나봐! 미쳤나봐!,,
"으휴… •.저 금수만도못한놈… 彆."
"어디 가게래? 남자도받나?,,
모험가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로 북적거렸던 가게가 아피스의 호령을 필두
로 새벽녘의 영화관처럼 점점이 고요해져 갔다.
사우나의 대형 티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지매들이 막장 드라마를
한마음 한뜻으로 시청하고 있는 것처럼, 연신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와 아피
스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를 예의주시하는 가게 내의 시선들엔 피부가 따
끔거릴 지경이었다.
가게 주인 양반이랑웨이터들도 업무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몸은 이쪽으
로 쏠려 있는 걸 보아하니, 그들도 우리 의 이 야기 가 흥미롭긴 매 한가지 인 것
으로 보였다.
사방이 적이로구나.
"아피스! 일단 자리 ! 자리부터 옮기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아니! 더는 못 기다려 ! 이번에 야말로 한치에 거짓 없이! 사실대로 전부 다
이야기해! 그러기 전까지 난 여기서 단 한 발짝도 안움직일 거야!,,
"아피스!!!"
내 팔을굳세게 움켜쥔 채 놓지 않는 아피스의 팔이 무거운쇠사슬수갑으
로 보일 만큼 마음이 요동쳐 댔다.
”애당초! 넌 항상 그 모양이었어! 항상 자기 생각만 하지! 네가 편지 한 통
만 툭 남겨두고서 우리 곁을 떠 난 이후로! 그 녀석 이 도대체 얼마나 절박한
심 정 으로! 얼 마나 필사적 으로 널 찾아 헤 멪 는지 나 알기 나 해 ! ? 알기 나 하냐
고!,,
"아피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무조건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일단, 밖에
나가서! 밖에 나가서 마저 이야기하죠!,,
"나쁜••••나쁜새끼….
아피스가 내 멱살을 부여 잡았다.
이윽고, 아피스의 거칠기 그지없던 목소리가 입 밖으로 쏟아지는 울화에
젖어 파들파들한 물기를 머금어가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도 눅눅한 혐오감과 적의로 거무죽죽이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와. .••.애 딸린 아빠라는새끼가 야반도주. 彆 彆 •."
"쓰레기.,,
"인간 말종.,,
오해입니다. 여러분.
아무래 도 장소를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고른 모양이 었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갑작스레 수녀님이 몸져누워 팔자에도 없던 잔심부름을 하게 되질 않나,
곤경에 처한행인을 도와줬더니 옷이 찢겨버리질 않나, 가급적 마주치고 싶
지 않은 옛 동료와 느닷없이 맞닥뜨려 남창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 질
않나.
급기야는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끈 인간 말종 쓰레기 가장 취급을 받게 되다
니.
이거야원. 술이라도 안 마시면 못 버틸 ••••.
어? 술?
바로 그 순간, 내 뇌리에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기
발한계책 하나가낙뢰처럼 명멸했다.
"웨이터! 실례지만 이 가게! 혹시,수도원 산포도주를취급하고 있습니까!
?"
......
"예 ? 앗! 예 ! 주, 주문하시게요?,,
"야! 말돌리지 마!,,
다급히 손을 들어 웨 이 터를 호출한 뒤 , 그에 게서 계 책 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 하나를 빠르게 확인했다.
만일, 이 가게가우리 수도원에서 발품 하는 포도주. 일명 ■처녀주,를 취급
하고 있는 가게라면, 이 가게엔 처녀주를 납품받는 곳이라면 하나씩은 꼭
구비하고 있을 '그것,이 존재할확률 또한 지대할 것이었기에.
"저기, 점장님! 죄송하지만 '순결의 두각,을좀빌릴 수 있을까요!,,
순결의 두각. 숙련된 마도구 장인이 유니콘의 뿔을 한땀 한땀 깎아 만든,
인간의 순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도구.
하지 만 그 마도구를 정식 명칭으로 호명하는 건 나 같은 성직 자들뿐. 성질
이 거칠기로 유명한 제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도구를 입에 착착 감기는
어떠한 속칭으로 부르고 있다.
"저기 • • • • . 아다 판독기는 갑자기 왜 ••• 彆 ?"
지금 써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