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37화 잦 동정과 처녀
성화 봉송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손아귀 에 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한 빛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희 끄무
레한 감탄이 영롱이고 있단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으나.
그러한 감정의 채도가 선명해지면 질수록, 내 마음에 드리운수치심의 그
늘은 점점이 짙어져만 갈뿐이었다.
"우와… •."
대낮임에도 주변의 명도를 한 단계 더 위로 끌어올린 눈부신 광채에 주위
에서 진심 어린 감탄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마도구 '순결의 두각,이 발하는 빛의 밝기는 사용자의 순결성에 비례한다.
일평생을 남자와 연을 갖지 않은 어느 신앙심 싶은 수도녀가 순결의 두각
을 사용해,태 양이 외 면한 도시 에 다시금 빛을 도래 케 했다는 전승은, 새 내
기 성직자들에게 순결함의 중요성을 가르칠 때마다 빼먹지 않고서 등장하
는 좋은 예시일 정도니까.
그리고 그러한 상징성은 이 마도구가 고결함을 입증하는 성물에서 첫 경
험의 유무를 판별하는 불순한 물건으로 그 용도가 탈바꿈된 지금에 이르러
서도여전했다.
단, 그 대상이 여성인 경우만 한해서.
웨 이터. 방금 소리 내서 웃은 놈에게 허릿심 이 들어간 펀치 한 방을.
동정과 처녀의 가치는 절대 같지 않다.
단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자물쇠와 그 무엇 하나 열지 못하는 열쇠의 값어
치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여성의 순결함은 찬양받아 마땅한 업적이나, 남성의 순결성은 이렇게 비
웃음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인생의 오점이라 불러도 손색없기에 .
이 제도 곳곳 암암리에 서성이고 있는 나이 꽉 찬숫총각들이 순결의 두각
근처엔 얼씬조차도 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렇기에.
건장한성인 남성이 순결의 두각을 손에 올려둔채,눈이 절로찌푸려질 만
큼의 빛을 만천하에 흩뿌리고 있다는 건.
세 상 사람들에 게 '저 숫총각입 니 다!,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낯부끄러운 행위 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내 가 빛을 내뿜기 시 작한 이후, 작은 오해로부터 비롯된 모멸과 혐오의 목
소리 가 모두 사그라들었단 건 호재 라면 호재 긴 했다만.
그 빈자리에 연민과 동정의 감정이 가득 담긴 탄식이 올을히 피어오르고
있었기 에 마음이 착잡하긴 매한가지 였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지금 내 얼굴이 어떤 꼴인지 능히 짐작할수 있
었다.
필시, 수치심에 벌겋게 익어버린 사과 같은꼴이 되어있을 테지.
"자, 이걸로 제 결백은증명된 거죠? 아피스?"
"어,어어… •.그,그치만… •.어어?"
손에 들고 있던 순결의 두각을부서진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서,
스스로 생 각해봐도 다소 까칠해진 어투로 아피스에 게 말을 건넸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끔뻑끔뻑 눈을 감았다 뜨고만 있는 아피스 어벙진 모
습은,늘또렷하고다부졌던 내 기억 속의 아피스와보기 좋은대비를 이루고
있어 상당히 유쾌한 구경거린 했다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죽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잠시 먼 길로
떠나간 그녀의 의식을 제자리에 되돌려보기로 해봤다.
"에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순결의 두각을 아피스를 향해 살포시 던졌다.
미래에 부인될 사람외엔 절대 내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내 치부를 만
천하에 웅변케 한 설욕을 조금이 나마 되 갚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아피 스에 말에 따르면, 그녀는 지 난 400년 동안 감히 헤 아릴 수조차 없는
남자들과 그야말로 질릴 만큼 관계를 맺어온, 이른바 마성의 엘프라고 했었
기에.
순결의 두각이 아피스에 손에 들려지면 빛이 나오긴커녕, 불결을 감지한
마도구가검게 물들어 버릴 게 분명할테니.내가해놓고도상당히 적절한복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 번 망신 좀 당해봐라.
"어, 어어 자, 잠깐!,,
그렇게 순결의 두각이 아피스의 손 위로 무사히 안착한 그 직후, 거센 섬
광이 번뜩였다.
내가 발한 보잘것없는 빛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성스러운 빛
줄기 가 망막을 헝클었고.
그 명도는 지금 이 자리에 잠시 태양이 도래했다고 해도 마땅한 반박을 쉽
게 꺼내놓기 힘들 것이란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찬연함
을 끌어 안고 있었다.
"와우… •."
태어나서 단 한 번 보기도 힘든, 진귀한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그 주변의
이목이 모두 그 극광을 향해, 아피스를 향해 홀연히 이끌렸다.
경박스러운 휘파람을 부는 이도 있었고, 두 손을 모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리 고 있는 사람도 드문드문 보였으며 .
점주 양반에 이르러선, 믿기 힘든 현실을 직면한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가로지르며, 무심결에 손뼉까지 쳐대고 있었다.
그 거룩한 침묵은 수도원에 아침 예배 시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파캉!
또렷한 파열음과 함께 순결의 두각에 균열이 두 동강이 났고, 그 직후, 가
게 내에 오로라처럼 나부끼던 빛의 무리가고명한죽음을 맞이했다.
모 만화에서 등장하는 전투력 측정기 가 연산 능력 초과로 순식간에 폭
발하는 광경이 절로 떠오르는,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광경.
■말도 안 돼! 스카우터 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어!,
그렇게, 언제 들어도 귀에 착착 감기는 불후의 명대사가 머릿속에서 자동
으로 재생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히, 히흑…彆!"
빛이 숨을 거둔 자리에서 제일 먼저 존재를움튼 건, 울음기를 잔뜩 머금은
가냘픈 목소리 였다.
이윽고, 거센 빛줄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지라, 게슴츠레하게만 뜨여 있
던 시야를 활짝 펼쳐보니.
어쩌면 본인의 머리색보다도 붉어졌는지도 모를 홍당무 같은 얼굴을 한
아피스가,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안쓰러운 기색으로 파
르르 입술을 떨어대고 있었다.
마도구가 부서졌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인식 저해의 후드가 그녀의 붉어
진 귀를 눈으로 시인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살짝 위로 말아 올려져 있었으나,
지금의 아피스에겐 그러한 변화를 눈치챌 여유는 없어 보였다.
붙잡을 것이 없어 한참을 허공 위에서 방황하던 가녀린 두 손은 결국 그녀
의 새하얀 허벅지 위에 안착했고, 그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순차적으로 떨어
지는 물방울은 그녀의 요동치는 감정 상태를 여실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뭐야! 이제 보니 여자쪽은 엘프였네! 이야〜! 숫처녀 엘프를실물로보게
될 줄이야! 이것 참오래 살고볼 일이구먼!,,
자신을 우러르는 주위에 성원에 치열을 한차례 빠득거린 아피스가 고개
를 푹 숙였다.
아무리 엘프족이 장수한다곤 한들, 그들도 생 리적인 욕구를 지 닌 존재 이
니만큼, 그들의 첫 경험 시기는 인족과그렇게까지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
라고 한다.
빠르면 20살. 못해도 50살 내에는 첫 경험을 끝마치는 것이 도시로 상
경한 신세대 엘프들의 정조 관념이라고 언뜻 들어본 바도 있었기에.
그러한풍문의 사실 여부를 다우나가아피스에게 질문했을 때, 그녀가의
기양양한 목소리로 그것을 긍정하던 광경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였다.
'다, 당연하지! 나는 지 난 400년 동안 하도 많이 남자를 따먹 어 봐서 ! 내 가
마음만 먹으면 손만 갖다 대는 것만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
다고!'
'알겠으니까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말게 • • • •. 나원 참, 불순하긴 ••••.'
■오오! 대단합니 다! 아피스! 손만 갖다 대도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다니!
그 기술! 부디 저에게도 전수해 주십시오! 근데 따먹는다는 건 무슨 의미입
니까!,
당시에는 그 말이 거짓일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었다.
아피스의 태도가 거짓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라 하기 엔 너무나도 당당했
던 것도 있었고, 그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용모
가 아름다운 편이 기도 했으니까.
■■어••••;■
지금 이 시국에,우와! 아피스 처녀였군요! 저도 동정인데 !, 같은 허튼소리
를 지껄였다간,그 말이 내 마지막말이 될 확률이 다분했기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며,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방
도를 모색하기 위해 다분히 애를 써봤다.
순결의 두각을 이용해, 내가 동정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때아닌 남창 누명
을 벗겨내는 것까진 완벽했는데 .
안 해도 될 헛짓거리를 통해 또 하나의 창의적인 죽을 고비를 만들어낸 나
자신에게 자조섞인 감탄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 거기 앉아 계신 어여쁜 엘프 아가씨. 혹여 시간되 신다면, 오늘 밤
저와 함께 오붓한 만남 한 번을 가져보지 않으시 렵니까?"
"••••뭐?,,
휘황찬란하기 만 하지 실속은 없는 갑옷을 겹겹이 착의 한, 기껏해 야 중견
모험 가 정도로 추정되 는 한 사내 가 앞머 리를 요란하게 쓸어 넘 기 며 , 아피스
에게 대뜸 추파를 던져 댔다.
지금의 아피스에 게 함부로 다가가는 건, 다이 너 마이트가 가득 담긴 상자
에 손을 쑤셔 넣는 미친 행위나 다름없다고, 내가 언질을 줄 새도 없이, 그는
너무나도 부주의하게 아피스를 향해 거리를 좁혀갔다.
이윽고.
"여기 계신 사내분과 도대체 어떤 다툼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으나, 만남으
로 인해 생긴 상처는 또 다른 만남으로 치유하는 것이 상책 이지요. 더군다나
당신 같은 고결한 여성분의 순결을 의심하여 대뜸 순결의 두각을 손에 쥐게
하다니. 같은 남자로서 절대 용서 못 할彆 彆 ••.
"벼락이여.. • •
II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불과수초 안에 이 가게 내의 모든 것들이
잿더미 가 될 것임을 나만이 , 나 혼자만이 직감한 불길한 공간 속에 서.
저 우매한 남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아피스를 향하는 그의 손을
다급히 붙잡은뒤,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무작정 읊조렸다.
.
"내, 내 여자한테서 손 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