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39화 잦 거짓말쟁이
아피스는 가슴 깊이 안도했다.
다시금 재회한 그의 모습이 자신의 기억 속 비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변화라는 개념 자체와 척이라도 진 듯한 엘프완 달리, 인족은 찰나의 시간
만으로, 사소한 계기만으로, 금세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기 일쑤니까.
어쩔 땐, 이루고자했던 비원이 좌절되어.
어쩔 땐, 지키고자했던 무언가를 지키지 못해서.
끽해야수십 년 정도면 머릿속에서 흐릿해질 사소한 연고.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연고를 떨쳐내지 못해, 어긋난 길로 나아가고, 스스
로를 잃어버리 기도 하는 단명족의 추태를 아피 스는 고향을 뛰 쳐 나온 지 난
백 년 동안 숱하게 보아왔다.
다행히 다시금 재회한 그는 조금도 변치 않았다.
문제를 직면하면 일단 도망부터 치고 보는 나약한 천성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있으면 절로 마음이 누그러지는
평온한 분위기도.
어느 무엇 하나 감색되지 않았고, 빛바래지 않았기에.
아피스는 그가 자신들의 곁에 다시 돌아와 주리라고, 흔연했던 지난 시간
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피스."
모른다.
아피스는 이 사내 가 도무지 누구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손가락을 갖다 대 면 살가죽이 뜯겨 나갈 것만 같은 차가운 미소. 서늘한 숨
결.
아피스가 여 태 껏 보고 듣고 느껴 왔던 그와 부합하는 퍼즐 조각을 단 하나
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질적인 자태 .
옛 동료의 행세를 하고 있는 듯한 이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불과 조금 전까지 자신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인물이란 걸, 아피스
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전 용사 파티에 복귀할 생각이 없어요.,,
불쾌했다. 거북했다. 못마땅했다.
제의를 거절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부유스름한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에.
실로 입꼬리를 억지로 잡아당겨 만들어낸 듯한 인공적인 조소가 지금 당
장이 라도, 이젠 되 돌릴 수 없다고, 이 미 모든 게 다 끝나버 렸다고 달싹일 것
만 같았기에.
"더욱이 전 앞으로 제게 남은 평생 동안, 두 번 다신, 용사님의 얼굴은보고
싶지 않아요."
누구야.
년대체 누구야.
바로 코앞에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가진 인물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아피스
는 자기 자신한테 끊임 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 밑에서 도사리고 있는 괴물의 존재를 차마확인하지 못하는 겁 많은
어린아이처럼.
그저 무서워서.그저 두려워서.
자욱한 안개 가 드리 워 진 듯한 사내 의 희 끔한 눈동자를 아피 스는 마주 볼
수조차 없었다.
碢碢碢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말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아피스가 그의 멱살을 붙들었다.
유리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성애처럼, 폐부에 빼곡히 전착한 차디찬 한
기 가 고른 호흡을 훼방 놓고 있었지만.
!.
.......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피스는 허세를 부렸다.
"그딴 걸 물어보고 있는 게 아니 잖아! 나랑 다우나 빅팀 ! 그리고 용사가 지
금까지 얼마나! 얼마나 널 애타게 찾아헤매고 있었는지 네가 알기나해!? 오
죽했으면 지금 이곳에 !"
"지금 이곳에 모두 와 계신 거죠?,,
11 彆 彆 •• !I11
어째서일까.
멱살을, 말의 숨통을,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분명 이쪽일 텐데.
어째서 태연히 말을 이어 나가고 있는 건 이 사내이며, 토막 난 말의 파편
을 주워 담고 있는 건 자신인 걸까.
아피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알고 있었어?,,
”모르는 게 이상하죠. '애들, 데리고 다 같이 수도원에 방문했다고 제게
친히 알려주신 건 아피스였으니까요. 그리고 애초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
에 모두와 재회하게 되리란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기를 쓰고 도
망가봐야, 여러분 모두를 따돌릴 수 있을 린 만무할 테니까요."
처음 사내와 마주쳤을 때, 용사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건 그럴 겨를이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사내와못다한이야기를 나누고, 그와의 대화에서 정겨운 바람결
을 느낀 지금의 아피스에 겐, 이곳에 용사를 포함한 모두가 와있다는 사실은
대화의 대미를 장식할 일종의 여흥.
그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즐거운 서프라이즈 정도로 여기고 있었기에, 아
피스는 지금 이때까지 용사에 대한화두를 아끼고 있었다.
"대략한 달 전부터 던전 공략이 더뎌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날 이후,
곧 이런 날이 오겠거니 하고서, 저 나름대로 각오는하고 있었어요.용사님이
혼자 절 찾아오시든, 여러분 중 하나가 절 찾아오시든, 모두가 함께 절 찾아
오시든요.마을서점에서 대뜸마주치게 된 건 아무리 그래도 예상밖이었지
만••••."
사내 가 멋쩍 게 웃어 보였다.
하지 만 그 유들유들한 웃음에 서 아피 스는 뭐 라 형용할 수 없는 으스스한
전운을 체 감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무심코 튀어나온 딸꾹질.
본래의 의중과는 하등 상관없이, 몸에 밴 습관이 이따금 스며 나올 뿐인
상투적인 모습.
그 직후, 아피스는 이 나약한 사내를 생애 처음으로 두렵다고 느꼈다.
"彆 彆 '• 어째서.1,
"네?,,
"어째서 용사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건데 • • …."
아피스가 용기를 쥐어짜 그에게 질문했다.
이 에 사내는 집 열쇠를 어디 에 다 두었는지를 떠 올리는 사람처럼 , 두 눈을
두어 차례 태평스레 감았다 뜨고서, 나지막이 회 답할 뿐이 었다.
"죽기 싫으니까요."
"••••뭐?,,
바로 그때였다.
사내의 멱살을 붙들고 있던 아피스의 손아귀로부터 형태 없는 거센 힘이
거세게 파동했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 뭐라고!?,,
"크,커헉!주,죽기…. 싫으니까요••••."
사내의 두 다리가 하늘 위로 체공했다.
아피스가 그의 목을 한 손으로 붙든 채, 그의 몸을 통째로 들어 올리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숨구멍이 틀어막히는 와중에도, 하얗게 질려가는 그의 얼굴이 산
소 부족을 절실히 호소하고 있음에도, 사내는 얼굴에 띄워 놓은 은은한 미소
를 조금도 잃지 않은 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
다.
"짓!,,
"푸하!,,
머 지 않아 아피 스가 손을 놓았고, 그 직후, 구차하게 바닥에 나뒹 굴게 된
사내 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는 듯, 거칠
게 숨을 헐떡 였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건 사내 였고,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건 분명 아피스였
다.
하지만, 감정에 여유를 갖춘 건 사내 쪽이었고,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아피스쪽이었다.
"편지에도 적어냈잖아요. 더 이상은 여러분들의 모험을 따라갈 수가 없다
고요. 저로선 역부족이라고요.,,
"너 그거 진심으로하는소리야. •••?"
"당연히진심....."
"진심으로 하는 소리 냐고一!!"
아피스의 절절한 고성에 사내가 처음으로 여유를 잃고 입술을 파들거렸
다.
아피스가 화가 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 었다.
설령, 그의 입에서 나온 이유가 천하의 궁상맞은 이유라 할지라도.
속물적 이고, 꼴사나우며 , 만인이 손가락질할 정도로 구차하기 그지 없는
이유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아피스는 그의 의중을 가슴 깊이 이해할 생각도
하고 있었고, 그의 선택을 존중할 의 향도 다분했다.
그를 찾아 헤매던 지금까지의 여정이 그가 가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눈물 어린 이별로 그 막을 장식하게 될지도 모르리라고, 굳은 각오를 하고 있
기까지 했다.
하지 만 그는 거짓을 고하고 있었다.
본래의 의중을 숨긴 채 , 생판 남을 대하기 라도 하는 것처 럼.
너는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알 자격도 없다는 듯이, 마음에 굳건한 울타
리를 치고 있는 그의 태도에 부아가 치민 것이 었다.
'■내가 여기서 네 녀석 다리를 부러뜨리고 강제로 용사한테 끌고 간다고
하면 어떡할건대?,,
"제발그러지 말아달라고,아피스한테 애걸복걸빌수밖에 없겠죠彆 •••."
"하! 그것도 부탁이냐?"
"애원이죠. 제 주제에 어떻게 아피스에게 그런 부탁을 할수 있겠어요.,,
그렇게 살벌한 침묵이 그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기를 한참.
결국, 아피스가 최후를 무기를 꺼내들어 보기까지 했으나.
"용사 앞에 가서도그것과똑같은 말을 지껄일수 있어?,,
"그럼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또박또박 발음할 수 있고말고요. 용사님의
얼굴 같은 건 이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요.,,
"••••너!,,
이 보다 확고할 수 없는 거절 의 사였다.
심장을 화살로 꿰뚫린 듯한 충격 안 편에서 을을히 피어오른 감정의 이름
은필시 배신감이었으리라.
그는 아피스에게 저 자신의 본심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피를 나누진 않았음에도, 그
보다 더 진한 교감을 나눈 가족이 라고까지 생 각했는데.
"• • • •흐윽! 개, 개자식!,,
결국, 먼저 백기를들고서 그 자리를 뜬 건 아피스였다.
애당초, 그를 말로서 설득한다는 건 가망 없는 행위였고, 지금의 그를 용
사 앞에 대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미안해요..... 아피스....."
거짓말쟁 이의 구색뿐인 사죄 가 연신 등을 두들겨 댔으나, 아피스는 그 구
차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외 면하기로 했다.
지금의 비참한 심정을 조금이 라도 되 갚아주고 싶었으니까. 지금의 그에
게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앙갚음은 오로지 그뿐이 었으니까.
그렇게 해가저물어, 달이 게슴츠레 눈을 뜰무렵에 이르러서도, 아피스는
저 자신의 상념에 휘몰아친 감정을 전부 삭이지 못했다.
"나왔어…•.요, 용사…•.-
"아피스! 신부님을 찾으셨다는 게 정말입니까!,,
이제는 그녀가 거짓말쟁이가될 차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