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42화 (42/90)

秦 42화〉길치

누가 그러더라.

길치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른길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자신이 올바른 길

로 나아갈 리 없다는 불신과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이 너무 큰 탓에 결

국 그 길을 이탈하게 되고.

잘못된 길.그저 나한테 편한 길을 생각 없이 걷고 있을 때,되려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이 라고.

"푸흡."

내 메마른 입술에서 경망한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풍문이 퍽 우습기도 했고, 지금의 내 처지를 가장완벽히 표상하는 말이

란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난 이보다 더 나은 길이 널리고 널렸음에도, 그저 내 마음이 편하다

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땅히 마주 봐야하는 것을 비겁이 외면한 채, 눈을 감

고 도망친다는 최 악의 선택을 했으니까.

오른쪽 손등이 욱신거렸다.

별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내 죄책감이 자리한 장소니까.

남들이 보는 앞에선 단 한 번도 벗은 적 없는 오른손의 장갑을 걷어 올린

뒤, 손등위에 도드라진 못나디못난흉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중지와 약지의 뼈대를 우악스럽게 가로지른 사나운 검흔.

이 녀석 때문에 설친 밤잠은 가히 셀 수조차 없었다.

이 따금 손등 위로 치솟는 둔한 통증 때문이 아니 라, 그 통증이 시 망스레

퍼 올리는 잊어버리고싶은과거.

가뜩이나 실패투성이인 내 인생의 오점 중에서도 가장 먼저 뿌리 뽑아야

할그 잡풀 같은 후회는 내게 평온한밤을 좀처럼 허용해 주질 않았다.

그것과 비견한다면, 살가죽이 꿰뚫리고 뼈가 어긋나는 통증 같은 건, 별 대

수롭지도 않은 것이었다.

몸의 아픔은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이따금 누군가

한테 하소연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몸에 새겨진 흉의 틈 매무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탄의 녹은 시간이 갈수

록 사그라들긴커녕, 점차그 크기를 불려 나갈 뿐.

그 남루하기 그지없는 과거를 다른 이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

였기에.

난 오늘도 과오를 마주 볼 용기의 불씨를 내 의지로 꺼드리고서, 두꺼운

장갑으로 그 추악한 낙인을 뒤 덮은 채 외 면했다.

"그래도몸건강히 잘지내고있는지 정돈물어볼걸그랬나彆 •••."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건강을 염려한다는 건, 연예인의 생계 걱정을 하

는 것보다도 쓰잘머 리 없는 일 이 었으니 까.

내 가 탈주를 다짐 한 시 기 만 놓고 보더 라도, 그녀의 육체 는 깎아지 른 절벽

에서 떨어져도, 용의 거체에 내리깔려도, 얕은 찰과상하나 찾아보기도 힘든,

이른바, 금강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였기에.

괜한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다소 일머리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긴 했다만. 그건 내가 있으나

없으나별로 달라질 게 없는 요소이니, 머릿속에서 제쳐버린 지 오래였다.

더 군다나 지 금의 그녀 에 겐 그러 한 미 세 한 흠 따윈 메 꾸고도 남을 만큼 믿

음직스러운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나 같은 것과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견실하고 든든한 버팀목들.

힘을 보태주긴 고사하고, 몸을 기댈 어깨조차도 빌려줄 수 없을 만큼 나약

한 내가, 언제까지고 그 자리를 뻔뻔스레 꿰차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 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녹이다.벗겨내야만하는 녹.

관절에 눌어붙는 방해물이자, 머지 않은 미래에 조직을 붕괴시 켜버릴 게

분명한 치명적인 녹.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다.

아니, 함께 있어선 안된다.

"이걸로. .... 이걸로된 거야. •..."

처음 마주친 사람이 아피스라 다행 이 었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져놓긴 했지만, 그녀의 그 태양처럼 눈부신 얼굴을 정

면에서 마주 볼 용기를 끄집어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테니.

배려심이 깊은 아피스라면,필시 내 말에 담긴 의중을헤아려 줄테고,동

료를 잃어 상심에 빠진 그녀를 잘 다독여 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더욱이 그녀들은 적잖이 닮아있기까지 하니까.

내 가 그녀들을 보며 , 이 따금 사이좋은 자매 를 보는 것 같단 감상을 입 에

올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피스는 상당히 어이없다는 눈치를 보였지만.

솔직히 그럴 만하긴 했다.

청렴결백 이라는 글자를 사람의 형태로 빗어낸 듯한 그녀가, 평소의 언동

과 그 행실부터 가 불건전한 아피 스와 닮아있다니 .

네 눈깔은 삐어 있냐는 아피스의 거친 반박에 겸 연쩍은 미소로 웃어넘겼던

기억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생생했다.

하지만 아피스가 과연 알까.

과거에 내가 만났던 그녀가, 말투와 행실, 특유의 그 거센 기 질까지도 아피

스와 판박이 였다는 사실을.

그녀와 처음 대 면했던 그 순간은 도저히 잊으려 야 잊을 수가 없었다.

선연한 살의가 내리 담긴 욕설과 함께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이 내 목에 날

붙이를 꽂아 넣으려 던 그 짐승 같은 자태 는, 머 리 가 아니 라 피 막에 직 접 새 겨

진 기억이었으니까.

그 표독한 엄니가 내 목에 닿지 못했던 건, 반사적으로휘두른 내 오른손

이 우연히 그 궤적을 가로막았던 덕분.

순전히 운. 그날을 기점으로 내 삶은 그 운 덕분에 영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내 인생이 불운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이유도, 아마 평생 쓸 운을

거기서 다써버렸기 때문일 테지.

'지금 당장 내 동생한테서 그 더러운손떼! 이 찢어 죽일 새끼야!,

내 몸에 채 반도 되 지 않은 왜소한 체구의 아이 가 발한 살의 에 꼴답잖게

몸을 떨고 말았었다.

솔직히 내 가 그런 말을 들어도 쌀만한, 이른바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긴

했었다.

야심한밤. 아이들의 침실에 몰래 침입하여, 잠들어 있는소년의 몸을 더듬

고 있는 인간이 정상적인 인종일 린 없으니까.

산타클로스가 주택침 입으로 여태껏 고소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놓고 간다는 최소한의 대의명분 덕분이지.

그게 아니 었으면, 그 양반도 지금쯤 양손에 털 달린 쇠 고랑 차고서 , 사식

으로 쿠키 랑 우유 좀 넣어달라고 항소문 쓰고 있을 게 분명했다.

후회로 점철된 과거지만, 당시에 나는 그것이 최선이 라고 여겼다.

가난한 고아원에서 병마와 저주를 걸머진 아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

게 되 는지 는 숱하고 보아왔으니 까.

신이 인족에게 신성의 힘을 하사한 건, 필경 그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구

원하기 위함일 테니까.

지금도 그 선택 자체는 틀리 지 않았다고 생 각한다.

다만, 결단을 내리는 게 너무나도 늦었었다.

양손에 가득 끌어안고 있던 하잘것없던 것들이 아깝고 소중하기 이를 데

없어서.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다는 그 간단한 선택

지를고르지 못해, 끊임없이 망설이고주저했다.

그 한심 한 머뭇거 림 이 불러 일으킨 결과가 이 것이 었다.

오른손에 구멍이 뚫려버린 만무방. 구원자도 방관자도 되 지 못한, 이도 저

도 아닌 한낱 반푼이 .

그래서 난, 그날의 미 련한 나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을곧은 눈동자를 마주

보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려웠다.

수년 뒤 그녀와 다시금 재회했을 때, 외모와 분위 기 가 대격변한 그녀를 단

번에 알아본 것 또한, 그녀의 눈동자가 그날의 찬연함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었기에.

어두컴컴한 기억의 해저 속에 가라앉혀둔 그날의 과오를 낱낱이 조명해

낼 수 있을 만큼의 그 숭고한 빛이 지금 당장이라도 날 문책하고 힐난할 것

만 같았기에.

그 얼굴을 두번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빛을 등졌다. 등을 돌렸다. 도망쳤다.

"후우....."

상념에 얹힌 불온한 생 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게끔, 감정에 천을 하나

덮었다.

은은한 미소와 차분한 호흡. 급조한 것치곤 나름 괜찮은 가면이 만들어졌

다는 걸 확인한뒤, 무거운 짐이 얹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축, 처져있던 등

허리를 반듯하게 곧추세웠다.

그 직후, 문을 열었다.

"성녀님. 저 왔어요.,,

"아아!"

누가베개를 집어 던지기라도한것처럼, 살포시 내 하복부에 안착한 깃털

같은 존재감이 내 입실을 반겼다.

손에 들고 있던 식판을 재빨리 머리 위로 올린 덕분에 모처럼 준비한 식사

가 쏟아지는 불상사는 성공적으로 저지해낼 수 있었고.

성녀님이 내 하복부 쪽에 날아들어 올 것이란 걸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사전에 예측하고 있었던 덕에.

충돌 직후의 미려한휘청임도, 몸의 균형을 잃어버릴 정도까진 미치지 못

했다.

싫어하는 음식이 나오는 날엔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밥상을 엎으려는 드

는 것이 요근래 성녀님에게 스며든못된 버릇중 하나였다.

성녀님의 정신 연령이 소꿉놀이도 할수 있을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

룬 건 호재긴 했으나, 이런 영약한 꾀 가 많아진 건 확실한 악재 였다.

”성녀님. 똑같은 수에 제가 두 번이나 넘어갈 거라 생각하신 거라면 크나

큰오산입니다!"

■흥! 흥!,,

여전히 얼굴쪽엔 일말의 미동도보이지 않으나.

제 자리에서 통통,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계획

이 실패한 게 적잖이 분한 모양이 다.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성녀님. 싫어하는 것도 꾹 참고 골고

루 먹는 착한 아이만 상을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으응! 으으응!"

!.

.....

......

말대꾸!?

아이의 일탈을 본 부모들이 왜 가슴을 치며 통탄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애들 키워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단 건 필시 이 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 彆 .

"하,하하. •..."

'으응?

ff

웃기는 소리. 참으로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이라곤 하나, 성녀님의 보호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스스로의

치행에 절로웃음이 나왔다.

아니, 찰나가 아니 었다. 여태까지도 그러한 인식 이 부끄러운 것이 라고 생

각하지 않았을 뿐이 지, 종종 그것과 유사한 상념을 품곤 했으니까.

그저 부끄럽고, 가당찮을 따름이 었다.

언젠 가 이 곳에 서도 도망칠 궁리 를 하고 있는 주제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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