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43화 (43/90)

秦 43화〉하한선

아카데미 재학시절,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끌려갔던 어느 허름한수도원.

그곳에서 내가 수발을 도맡았던 퇴 역군인 맹인 아재가 입버릇처 럼 하던

말이 있었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을지 언정, 자신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고 걸을 수 있다

세 상엔 그것조차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도 더 러 있으니 , 자신

은 아직 행복한 사람이노라고.

대충흘려들으려 해도귀에 딱지가 앉게 말해대던 탓에 어떤 대목에서 언

성이 올라가는지 까지도 생생히 기억이 날 지경이 었다.

수녀님들은 그 아재를 요새 보기 드문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

물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었고, 동기들도 매사에 비관적인 내 성정을 꼬집

을 때마다, 그 아재의 일화를 인용하곤 할 만큼.

그 수도원에 서 아재의 긍정적인 성망은 나름 유명한 편이 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그아재가남들이 말하는 것만큼 밝고 진취적인 사람

인 것 같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간호인들의 눈을 피해 빼돌린 술을 매일 밤꽐라가될 때까지 퍼마시고는,

애먼 나를 붙잡고서.

이 세상에 자신보다 불행한 인간이 얼마나 더 있는지에 대한 넋두리를 쉼

없이 늘어놓던 아재의 그추레한몰골은 절망의 수렁에 빠진 인간의 전형이

었으니까.

박해받는 이종족부터 시작해서, 몸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에 이르기까지.

마치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 손에 닿는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붙잡으려 하

는것처럼.

그들이 야말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들이라고, 동정의 시

선을 받아 마땅한 이들은 자신이 아닌 바로 그들이 라고.

앞이 보이지 않는눈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열 띤 웅변을 늘어놓던 아재로

부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절박한 상념을 느꼈던 걸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하

고 있다.

비록 잠깐스쳐 지나가는 짧은 인연에 불과했지만, 그 맹인 아재가 내 인

생 수기에 남기고 간 글귀는 제법 큼지 막했다.

난 그 아재 로부터 배웠으니 까.

자신보다 불행한 누군가가 있다는 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가장 밑바닥이 아니 라고, 그 하한선을 체감하고 안심할 수 있다는 건.

스스로의 한심 함을 외 면할 수 있게 끔 해 주는 좋은 도피 처 가 되 기 도 한다

는걸.

그 무렵부터 였다. 내 가 어느 이름 모를 고아원 에 정 기 적 인 후원을 하기 시

작했던 건.

타인을 굽어살피는 자애의 마음이 갑작스레 샘솟아서는 당연히 아니었고

, 길고양이에게 밥을 건네주는측은지심에 보다 가까웠다.

내 발치 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존재를 의 기 양양이 내 려 다보고픈 알

량한 선민의 식으로부터 비롯된 행동.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치기 어린 생각이 아닐 수 없었고, 기억에서

지워 버 릴 수만 있다면 말끔히 지워 버 리 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 일 뿐이 지 만.

꿈과 희 망을 한 아름 끌어 안고서 입학한 아카데 미 에 서 미 천한 신분 때문

에 그 무엇 하나 이루어내지 못하고, 그저 허송세월만보내고 있었던 당시의

나는 자존감에 목말라 있었고, 그 알량한 우월감으로라도 목을 축이고 싶었

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게 그들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 두 남매.

동생 쪽은 지병 때문에, 누나쪽은 거친 기질 때문에 마땅한후견인을 찾지

못한 상태 라 들었고.

누나 쪽에서 동생과 함께가 아니라면, 그 어떤 후견인도 받지 않겠다고 버

티고 있는 통에 고아원의 골칫덩 이로 여겨지고 있다는 건 꽤 흥미롭게 느껴

졌었다.

머리를 감싸쥔 채 골머리를 앓고 있을 고아원장의 낯짝이 눈에 훤했다.

나도 이 번 생 은 고아원 에 서 나고 자랐었으니 까. 그 곤궁하고 곤란한 상황

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계 절 별로 입을 옷과 각종 일용품. 식 기와 의 자에 매 일 먹을 식재 . 교육에

쓸 교재 와 잡다한 의 약품들에 이 르기 까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그들의 대의는 참으로 훌륭한 것일

지 모르나, 아쉽게도 대의는 돈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에, 고아원 에는 그런 대의 에 돈을 쥐 여주는 후견인의 존재 가 필수

불가결인 것이다.

다행히 한창 아카데미에 재학중이던 당시의 내겐 재정적인 여유가충분

하다못해 넘쳐흘렀다.

작은고아원의 아이 두 명 먹여 살릴 정도의 푼돈은, 내 앞뒤 양옆에서 뺀

질거리는 귀족 자제분들에게 알랑방귀 몇 번 좀 뀌어주면 거저 들어오는 금

액이었으니까.

내게 강자에게 아첨하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분명 그즈음이었

다.

후견인 이 되 겠다는 의 사를 처음 서 면으로 전달했을 때, 내 가 고아원 에 요

구한 사항은 단 두 가지 였다.

첫째, 내 정체를 아이들에게 결코 알리지 말것.

둘째, 매달아이들에게 본인들의 사진과근황을 보고하는 편지를 내게 보

내게끔할것.

그 이야기를 처음 서면으로 보고했을 때, 그러한 내 요구가 상당히 미심쩍

게 여겨지고 있다는 걸, 그들의 답서에서 여실히 느끼긴 했다만.

골칫덩이를 해치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들은

머지않아 내 요구를흔쾌히 승낙했다.

정체를 숨겼던 건 단순히 그게 더 재밌으리란 생각에 그런 것뿐이 었고.

편지와 사진을 요구한 이유는 그들이 나로 인해, 내 도움으로 인해, 내 덕

분에, 나날이 삶이 윤택해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픈 마음에서였

다.

그렇게 학교 앞에서 500원짜리 병아리 두 마리를 사오는 감각으로, 나는

그들의 후견인이 됐다.

처음으로 받은 아이들의 사진과 편지는 하기 싫다는 의지가 팍팍 풍겨와

서 무심코소리 내서 웃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잔뜩 찡그린 얼굴 하며, 삐뚤빼뚤한 글씨 하며, 그 백공천창 같은 편지를

처음 받았을 땐, 당분간은 심심하지 않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들떴었다.

그렇게 약 뀉년간, 난 그들에게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했고, 매 달 편지와

사진을 송달 받았다.

아니, 꾸준히는 아니었다.

이 따금 내 심 기 가 안 좋은 날엔 당초에 약속한 금액 에 일부만 송금한다거

나, 송금 날짜를 늦추거나 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반응을 간사히 즐

기 기도 했었으니까.

순수한 호의 가 아닌, 사소한 호기심과 같잖은 연민으로부터 비롯된 관계

였기에.

내게 있어 그들은, 내 열등감을 가라앉혀주는 가여운 약자. 무료함을 달래

주는 수조 속의 물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누이쪽이 11살, 동생쪽이 이제 막 幏살이 될 무렵.

허 접한 문장력과 난필은 여 전했지 만, 반항적 이 었던 문체 는 눈에 띄 게 고

분고분해져 있었고, 동봉된 사진엔 언제부턴가 늘 웃음꽃이 만발해 있게 됐

다.

편지에 답장을 건네주시진 않는 것이냐고, 이름이 궁금하다고, 내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고, 자신들의 생일날 한 번 찾아와 주시면 안 되느냐고.

한 달에 한 번만 보내도 족하다는 편지를 수일 간격으로 보내오는 건, 다

소 당혹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허나 당시의 나는, 내 부박한 인생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를목전에 둔 터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아니, 그리할의

지조차도 없었다.

그 무렵부터 내게 성력이 발현되기 시작했으니까.

비록, 그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의 영역이었지만, 내 잠재력을 진단한 사제

의 말에 의하면.

못해도 하루에 10회 정도는 성력을 발휘할수 있을 것이며.

몸이 성 력에 익숙해지 는 기 간 동안, 질나쁜 저주와 엮 이 지 만 않는다면, 그

횟수에 못지않은 종류의 기적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도 말했

었다.

쾌재를 부르짖었다.

여태까지의 받아온 차별과 혐오의 시선들이 한 순간에 경애와 시기로 그

색이 반전된 짜릿함에 도취되어.

더 이상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치솟아오르는

그 황홀한 우월 감에 매 료되 어 .

머지않아 난, 내게 필요 없어진 부품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근래들어 부쩍 성가시다고 느끼게 된 소품 하나가 차차 시

야에 들어왔다.

어차피 내가 그 애들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나도 딱 그 나이대쯤에 고아원을 독립했었으니까.

이제 클 만큼 컸으니까.

나는 할 만큼 했으니 까.

그런 역겨운 변명을 대의명분 삼아, 질려버린 장난감을 내다 버리듯, 나는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무심히 끊어버렸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 내가교황청으로

부터 정식 사제 자격을 당당히 인정받았을 무렵엔.

내 머릿속에 그들에 대한 기억은 이미 그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만큼

흐릿해진 지 오래 였다.

별수 없는 일이 었다.

당시의 내 게 그들은 딱 그 정도밖엔 되 지 않은 존재들이 었으니 까.

그렇기에.

사제 수업의 일환으로들리게 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어쩐지 익숙한 이름

의 고아원에 살고 있는 한 남매 가 저주와 역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딱한 이

야기를 듣게 됐을 때조차도, 겉으로만 안타까운 내색을 하고 말았을 뿐.

그두사람의 얼굴을 직접 보기 직전의 직전까지, 끝내 난그들의 이름을

떠올려내지 못했었다.

아니 , 꼬질꼬질한 옷과 검 게 얼룩진 몸과 꾀 죄 죄 한 머 리 카락. 몸의 반신이

저주와 역병으로 썩 어들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쇠 약해진

그들을 내 가 알던 그들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 였는지도 모르겠다.

"저주가진행된 상태를보아하니, 저건 이미 글렀어. 1급 성직자들 정도면

별문제 없이 치유해낼 수 있을 테지만, 우리 같은 새내기가섣불리 손대면 성

력만 깎아나가고 말 걸? 우리 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저 아이들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게 다야. 아마, 앞으로 사흘 내지 닷새 정도면 ••••."

인근 마을을 차례로 순회하며, 새내기 때, 함부로 치료를 시도해선 안 되

는 병자의 종류를 내게 조목조목 일러주던 선배의 목소리가 점점히 먹먹해

져갔다.

선배가 나쁜 본보기라며 가리킨 그 남매는 마을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동생을 누나가 양팔을 내뻗으며

온몸으로 지켜내고 있었다.

자신도 얼굴의 왼편과 반신이 역병과 저주로 인해 검게 물들어 있음에도.

"꺼져! 저리 가! 저리 가라고!이 역병신들아!,,

"이 개자식들! 내가한번만 더 내 동생 괴롭혔다간 가만 안둔다고 경고했

지!,,

"우와! 부모한테도! 후견인한테도 버림받은 모질이가 말도 할 줄 아네! 아

유! 신기해라〜!,,

'■누가두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거야! 그 입 안 다물어!? 아저씨는 잠시 급

한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하고 있을 뿐이야! 편지도 매일매일 보냈어! 곧

나랑 내 동생 치료해줄 사제님들 데리고서 이곳에 와주실 거라고!"

"누,누나아… ••

fI

그로부터의 기억은상당히 애매하다.

하지만, 당시에 나와같이 있었던 선배의 말을들어보니, 빛이 깃들지 않은

듯한 탁한 눈동자를 한 채 , 자신은 버 림받지 않았다고 눈물 어린 항변을 고

래고래 내지르고 있던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며.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에 일말의 대꾸도하지 않고서, 터덜터

덜한 발걸음으로 한발 앞서 숙소를 향해 갔었다고 한다.

그 당시 날 걱정해준 선배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난, 야심한 밤에 그 아이들이 격리된 방 안으로 몰

래 숨어들어,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몸에 손을 얹은 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열심히 기도를 읊조리고 있었으니까.

죄 책 감 때문이 었을까. 아니 면, 나라면 별 탈 없이 해 낼 수 있으리 라는 자신

감 때문이었을까.

사람의 마음엔 답안지가 없으니, 그날의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허나, 내 가 손을 갖다 댄 그 순간, 아이의 체온이 차가운 땅바닥보다도

서늘했다는 것과 기도에 열중하고 있어도모자랄 판국에 '미안하다, 라는 말

을 고장 난 인형처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는 건, 지금도 꿈에 나오곤

할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소년의 치유가 거의 다끝나갈 무렵.

"지금 당장 내 동생한테서 그 더러운 손 떼! 이 찢어 죽일 새끼야!,,

이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 을곧은 눈망울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한

내 비겁한선택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떠올려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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