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44화 잦 죄수
무언가에 홀린 듯 몽롱했던 의식은 날카로운 금속의 침입에 의해 너무
나도 간단히 또렷해 지고 말았다.
.
...
.
.....
"너 누구야! 내 동생한테 지금무슨 짓을 한 거야!"
어둠에 충분히 길들여진 망막 안 편에 내 손등을 꿰뚫은 범인의 인상착의
가 켜켜이 스며들었다.
비 쩍 마른 몸. 구멍 이 숭숭 뚫린 옷. 퀴퀴한 냄새.
멀리서만 봤을 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그 참담한 실상들은, 손등을 관통
한 칼날보다도 표독히 날을 곤두세우며, 연신 내 심장을 들쑤셔 댔다.
"말해두는데! 이곳엔 돈 될 만한 건 백날뒤져봤자 아무것도 안 나와! 거기
다가 나랑 내 동생은 저주랑 역병 때문에 함부로 손 대면 그쪽만 손해일걸!?
그러니까죽기 싫으면 이곳에서 당장꺼져!,,
살기등등한 말투완 달리, 칼자루를 움켜쥔 그 작은 손은 사시나무가 떨리
듯, 덜덜 떨려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앙상한 손에 얽힌 날붙이가 몸을 뒤채며, 칼날이 자
리 잡은 환부를 헤집어 놓고 있었지 만.
몸의 절반이 문드러진 이들 앞에서, 고작해야손바닥에 구멍이 뚫린 정도
로 엄살을 부릴 순 없는 노릇이 었기에.
부잡스럽게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기를 쓰고 깨물어 삼켰다.
이윽고, 피범벅이 되어 미끌거리는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그녀의 어
깻죽지를붙들어, 일단그움직임을 제지해 보려 했으나.
"히익! 이, 이거 놔! 놔! 놓으라고! 내, 내 몸에! 내 몸에 손대지 마! 주, 죽여
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별안간 터져 나온 눈물 어린 분통에 의식이 소란해,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
가고 말았다.
그렇게, 패닉에 빠진 그녀를 목전에 두고서, 현 상황에 대한 자세한 자
초지종 토로할 용기를 차마 끄집 어 내 지 못하고 있던 내 가.
'저는수상한사람이 아닙니다, 라는구차한변명으로나마, 그녀를 안심시
켜 보려 한, 바로 그때부터 였다.
"쿠, 쿨럭!
fI
뭐뭐야.....
II
내가내 입에서 검붉은피가울컥울컥 새어 나오고있다는사실을뒤늦게
깨닫게 된 건.
사실, 소년에게 기도를 행할 때부터 이미 그 조짐은보이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환자의 몸에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기도를 행할 수조차 없었
고, 기도에 신성력을 엮어내는 방식도 참으로 엉성하기 그지없었던 터라.
말이 기도일 뿐이 지. 사실상, 내 몸에 깃든 신성력을 있는 대로 끄집 어내 ,
대상에게 때려 박는것이 당시의 내가할수있는최선의 치료였다.
때문에, 저주가 내뿜는 독기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수단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고.
소년의 몸에서 쫓아낸 저주의 찌꺼기들이 신성력이 빠져나가무방비 상태
가 된 내 몸을 새로운 거처로 눈여겨보고 있음에도 그저 내어줄 수밖에 없었
다.
끔찍했다.
누군가가 혈관에 끈적한 진흙을 주사해 놓기라도 한 것 같았으니까.
이 빨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검은 살덩 이 가 내 장 위 치를 뒤 바꿔 버 릴 기 세
로 전신을 꿈트럭거리고 있는 듯한 격통엔.
괜한 짓을 했다고, 꼴사나운 후회를 짓씹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기도를 멈출 순 없었다.
그늘 아랫목에서도 그 어둑함이 선히 보이는 거무죽죽한 얼룩이 얼굴의
절반을 좀먹고 있음에도.
제구실을 하고 있는 눈은 피로와 병마의 기색이 역력해, 게슴츠레하게 뜨
여진 게 전부인 오른쪽눈뿐임에도.
이쪽을 올곧이 주시하고 있는 그 찬연한 눈동자가 나의 죄를 문책하고 있
다는 건 명명백백했기에.
궁색한변명에 불과한 너절한기도일지라도, 이어 나가야만했다.
"후으....."
"히익 ! 놔! 이거 놔! 놓으라고! 노, 놓으란 말이야!"
아쉬운 대로, 내 오른손에 자리한 칼날을 징검다리 삼아, 그녀에게 신성 력
을 불어넣었다.
그동안 내 몸 여 기저 기 에 내 리꽂히는 울분 어린 주먹과 눈두덩 이 주변을
마구잡이로 헝클어 대는 손톱은 퍽 매섭긴 했으나, 그닥 개의치 않다고 느꼈
다.
그에 준하는 보상은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받았으니 까.
"어, 어어? 내 팔이? 어어?,,
그녀의 잠겨 있던 목소리에서 생기가돋아나기 시작한바로그 순간, 빛을
잃어버렸던 내 마음에 처음으로희망이 움텄다.
이를테면, 자욱한 먹구름을 비집은 월광이 제 갈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을 친
절히 인도해주는 것과 같이.
신성력 이 스며 들어간 팔 부위를 시작으로, 그녀의 몸을 군데군데 좀먹고
있던 검은 얼룩들이 점점이 사그라들어가는 그 경이로운광경은, 내겐 하나
의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또어디…•.아픈곳은 없니….?,,
"....어?"
밤의 장막이 죄인의 얼굴을 숨겨주길 바라며, 고개를숙인 채 그녀에게 말
을건넸다.
이따금 내 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채도 낮은 액체들이 손등의 핏물이
었는지, 눈가의 눈물이 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었다.
단지, 불규칙 적으로 귓 가를 자극하는 그 나지 막한 소음이 , 죄 책 감에 타들
어 가버릴 것만상념을 잇달아 적셔준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기에.
"네, 네에….?
"••••다행이다.,,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자기 몸을 이곳저곳 더듬어 대고 있는 소녀의 말
끔한 거동을 봤을 땐, 가슴 깊이 안도했다.
만회해 냈다고, 너무 늦지 않게 바로잡았다고 여겼었으니까.
바보같이,머저리같이 , 당시 엔 진심으로 그리 여겼으니 까.
"자, 잠깐!,,
그렇기에.
날 붙잡으려 하는 듯한 그 간절한 목소리를 미련없이 뿌리쳐 낼 수 있었다.
내 가 마땅히 마주 봐야 하는 것들로부터 또다시 무책 임하게 등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비 겁한 선택 이 훗날 어떠 한 재 앙을 불러 일으키 게 될 지 알지 못한 채로.
碢碢碢
정신을 차렸을 땐 날은 이 미 밝아 있었고, 넝마가 된 내 몸은 그 당시 에 내
가 거주하고 있던 집 앞에 무슨 마네킹처럼 떡하니 전시되어 있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한 상태 가 되 어도, 자기 집 엔 제대로 찾아 들어갔다는
취객들의 일화가 떠올라 별안간코웃음이 새어 나왔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선배의 시뻘건 얼굴이 여러 차례 머릿속을 스쳐 지나
갔고.
내 행색을 살피려고 온 다른 사제들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하
얗게 질려버렸다는 희끔한 기억이 몽롱한 의식 안 편에서 유영하고 있었으
나.
몸 이곳저곳에서 욱신거리는 눅눅한 통증과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한시 라도 빨리 해 결하고픈 마음에.
일단, 문고리부터 붙들었다.
I
허나, 바로 그때.
손등 위로 솟구친 선연한통증이 흐릿했던 의식에 전류를 가했고.
오른손에 대충 휘감아진 새하얀 붕대가 검붉은 핏물로 붉게 물들어가는
광경이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파노라마 같은 기억을 망막에 덧씌웠다.
너의 신성력은 저주에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더 이상회생할수 없는지경
까지 영락하고 말았다.
손등에 새겨진 검상은 저주와 역병이 함께 스며있어, 우리들의 실력으론
치료해낼수 없다.
힘줄이 완전히 끊어져 버린 중지와 약지엔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게 될 것
이다.
더욱이, 네 몸은 더 이상 신성력을 발현해낼 수 있는 몸이 아니다.
넌 더 이상.
"제대로된 성직자라고 할수없다.... •.였던가彆 •••."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 그저 우두커니 선 채로, 선배가 내게 건넨 말들을
녹음기처 럼 되뇌 고 있을 무렵 이 었다.
"편지 배달왔습니다〜,,
해 맑은 누군가의 목소리 가 내 흐리 멍 덩 한 눈동자에 미 약한 빛을 깃들게
했다.
힐긋, 등 뒤로 향한 내 시선이 자리한 곳엔, 커다란 가방을 분주히 뒤적이
고 있는, 매주 보던 낯익은 우체부 청년이 서 있었다.
"이야〜 이번 주도잔뜩왔네요.이 꼬질꼬질한 편지뭉치들彆 • • •.어쩌실래
요? 늘그랬던 저희 쪽에서 처분해드릴까요? 아니면 •• 彆 彆."
"아뇨. 그냥 주세요."
"예? 히, 히익!"
내 처참한 몰골을 뒤늦게 확인한 우체부의 입에서 별안간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가소스라치게 놀라며 떨어뜨린 물품쪽에 온 신경
이 쏠려 있었던 탓에.
가방에 들어있던 편지뭉치들을 우수수 떨어뜨리며, 부리나케 달아나는
그의 뒷모습에 시선을 할애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시, 실례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바닥에 무성의하게 널브러진 편지들.
그중에도 유난히 낯익고, 꼬질꼬질한 편지들을 엄선하여, 주섬주섬 주워
입에 물었다.
오른손은 저주로 인해 군데군데 검게 물들어,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왼손을 분주히 움직 여 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북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하나의 산을 이룰 만큼의 편지.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입으로 뜯어내, 편지의 내용을 천천히 살폈다.
'아저씨. 제 동생이 아파요.,
'사제님을 부르는 게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잘 알고, 아저씨도 요새 많이
바쁘시 단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러 니 까, 앞으로 제 가 남은 평생 동안 받을 생
일 선물이랑크리스마스 선물 전부! 전부 다! 아저씨한테 다드릴 테니까! 사
제님들한테 제 동생 한번만봐달라고하시면 안될까요?,
■만약 아저씨가 제 동생 낫게 해주시면요. 저 앞으로 나쁜 말 절대 안 할게
요. 함부로 누굴 때리지도 않을 거고, 반찬투정도 하지 않을 게요. 모두에게
친절하고, 용감하고,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않는 동화 속의 용사님 같은 사
람이 될 테니까.그러니까… •.'
꼬깃
편지 지 가 지 저분한 이유를 대 강 알 것 같았다.
이 희뿌연한글씨는 아마,싸구려 잉크를물에 섞어서 이렇게 된 것일 테지.
편지지 자체도 누군가가 쓰다 버린 것을 주워온 모양인지, 쓰레기장 특유
의 퀴퀴한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그렇기에 요 몇 달 간, 이러한 편지뭉치들이 내게 송달될 때마다, 나는 장
래에 고위 사제가될 것이 분명해진 나를 시기한누군가가, 나를골탕 먹일
심산으로 이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뜯어낸 편지는고이 접어 품 안에 넣었다.
나머지 편지들은 뜯지 않은 채로, 작은 줄로 묶어, 서랍 안에 고이 넣어 놓
았다.
편지엔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 이 아프다는 이 야기뿐이었다.
그녀 자신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단 한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비가일. .. •.빅팀. . • •.아비가일. . • •.빅• • • • 팀... •.아비. ... 가일
• •• • 1-11
믹.. .. 聘... 彆 11
한때, 머릿속에서 흐릿해졌던 아이들의 이름을 고요히 읊조리며 가슴에
새겼다.
그날로부터 내 인생은, 죄스러운 상념을 떠올려 낸 날과 떠올려낸 죄 악을
곱씹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쾌쾌한 먹구름이 자욱했던 내 마음과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