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45화〉아저씨
!..
.......
그날 이후, 난 다시 아이들의 뒤를 봐주게 됐지만, 더 이상 내게 편지는
오지 않게 됐다.
편지가 올 수 있을 턱이 없긴 했다. 내 가 얼굴과 이름을 바꿨으니까.
정확히는 당시 알고 지내던 믿을 만한 지인에게 명목상의 후견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적잖이, 아니, 상당히 아니꼽다는 눈치였지만, 마음이 약했던 그는 결국 무
릎까지 꿇은 내 간곡한 부탁을 차마 외 면하지 못했다.
"고마워요. 선배."
"누가네 선배야.,,
지금도 선배랑은 가끔 연락을 주고받곤 한다.
대화의 절반은 와이프 때문에 못 살겠단 넋두리고, 나머지 절반이 애들 때
문에 죽겠다는 푸념 이긴 했다만.
연락이 계속 오는 걸 보면 아직 살아는 있는 걸 테지.
"하지 마.,,
..뭐를요?..
"아무튼하지 마.,,
잘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알 것만 같았던 선배와의 그 기묘한 문답은 지금
도 종종뇌리에 떠오르곤했다.
이전과 달리, 후원금을 버는 일은 상당히 고달파졌다.
그 당시 내 주위 엔, 더 이상 빨대를 꽂을 수 있을 만한 골빈 귀족 자제들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저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수일에 한 번 사용하는 게 고작인 기도
론 견습 사제 노릇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기에.
제정신 박힌 사제라면 천억 금을 줘도 마다할 모험가 일을 부업으로
시작하게 된 것도그런 이유에서였다.
유유자적한 삶을 찬미하는 내 적성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긴 했지만, 생
명을 저 당으로 잡힌 직종이 다 보니 , 벌어들이 는 수입 만큼은 꽤 짭짤했으니
까.
진귀한 마물을 생포해낸다거나, 희귀한 소재를 채취하게 되는 날엔, 그날
하루는 고기 에 와인을 곁들이는 사치 가 허용되 기도 했다.
가챠를 이래서 하는 거구나 싶었다.
물론 그것들도 어디까지 나, 수십 번의 시 행착오와 죽을 고비를 넘 어온 덕
에 가능한 일이긴 했다.
처음 얼마간은 칼자루를 손에 쥔 것만으로도 벌벌거리기 일쑤였고, 같은
의뢰를 받은 어깨 형님들등뒤에 숨어,수일에 한번씩 리필되는 인간포션
취 급을 받아야 했으니 까.
"야! 빨간약! 꾸물대지 말고빨리 걸어!,,
"헤 엑 • • • • . 헤엑 • • • • . 네에 에 - • • 彆
빨간약. 당시의 내 별명 되시겠다.
그리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었지만,그 당시의 내 특징을 정확히 집어낸
말이란 생 각이 들어, 막 화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간혹 화가 나려다가도, 어깨 형님들의 그 우락부락한 근육을 보면 자동으
로 분노 조절이 되기도 했고.
그렇게.
아카데미까지 때려치우고서, 견습 사제로서의 수행과 모험가 일을 병행
해가며, 아이들에게 돈을 송금해오길 어언 수년.
어느 날 갑자기 선배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날아들어 왔다.
「야. 너희 꼬맹이들. 모험가일시작했단다.」
뼈 빠지게 일해 대학까지 보내 놓은 자식새끼들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
라며, 느닷없이 오토바이 타고서 개지랄을 할때의 부모의 심정을 간접 체
험하게 된 순간이 었다.
碢碢碢
11처음 뵙 겠습니 다. 모험가 일을 겸 업하고 있는 중견 사제. 레 이지스 로
우빌이 라고 합니 다.,,
''저 야말로 처음 뵙 겠습니 다! 저는 먼 훗날 위 대한 용사가 될 세 기의 재목!
트리아나 아비가일이라고 합니다! 아! 그리고 이쪽은 제 동생 빅팀 !,,
-••••■■
"하하! 죄송합니다! 원체 과묵한 아인지라!"
11하하. • • •."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파르르 떨려 대는 입가를 정돈하며 미소 짓는 건 여
간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과의 재회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상정하지 않은 만남이었고, 상정하고 싶지도 않은 만남이었으니까.
될 수 있으면 앞으로 내게 남은 평생 동안, 두 번 다시 얼굴도 마주치고 싶
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내 심경이었다.
저 자신의 흑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은 별종은 이 세상천지를 이 잡
듯이 뒤져봐도 없을 테니까.
그럼 에도, 내 가 염치 없는 고개와 무거운 걸음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다름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 아이들만큼은 고단함과는 무연한 안락한 삶을 살길 바랐으
니까.
유복하진 못하더라도, 행복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을 느릿느릿 걸어 나가
는, 그런 시시콜콜한 삶을 살아주었으면 했으니까.
고아원에서 나고 자란 대다수의 아이들이 직업에 특별한 귀천이 필요치
않은 모험가 생업에 뛰어들게 되는 건, 이 제도에선 그리 흔한 일도 아니긴
했다만.
목숨을 배당으로 내놓는 이 직업의 험난함을 지난수년간 뼈저리게 체감
해온 나로선, 참으로 이 기 적 이 게도, 이 아이들만큼은 그러한 잔혹한 굴레 에
서 벗어나 주었으면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내 가 누구인진 모르는 눈치 였다.
얼추 그럴 것이라곤 예상하고 있긴 했다.
본디 , 유년 시 절의 기 억 이 란 건 자욱한 안개처럼, 흐릿하고 모호한 것이 니
까.
더군다나, 그날의 만남은 한 치의 빛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었
기에.
아이들이 내가 그때 당시의 괴한이라는 걸 알아볼 확률은 한없이 0에 수
렴했다.
'■여러분들의 후견인이신 하렌 사제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은 그 하렌 사제님의 요청으로 인해, 아비 가일 자매님과 빅팀 자매님의 장래
에 대한 상담을 하러 온 것입니다만. 두 분 모두 모험가를 지망하고 계신다면
서요?,,
"네! 그렇습니다!,,
-••••■■
"빅팀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네… •."
두손으로 책상을 거세게 내려치며, 또랑또랑 목을 울리는 그녀의 거동에
한 차례 의식 이 소란했다.
햇살을 머금어 물든 듯한 금발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와, 그녀의 움직임에
발맞춰 나풀거리 며, 그 안에 깃든 활기찬 기운을 짐작게 했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최 고순도의 플로라이 트를 가볍
게 능가하는 광채를 내게 과시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일 지경이었다.
살집 이 붙은 몸. 다부진 팔다리 . 그 흔한 잡티 하나 없는 새 하얀 피부.
꼿꼿이 허리를 편 채, 정면을 마주 보고 선 그 늠름한 자태에선, 그 시절의
부박함은 잔재 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활기 차다 못해 , 다소 방정 맞게도 보이 는 성 격의 변모는 그 당시 엔 별 대 수
롭지 않게 여겼었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자신의 개성을 도드라지게끔 하려는 낯부끄러운
시도는 누구나 거쳐 가는 길이 니까.
시 간이 라는 건 사람을 이 렇게 나 성장시 키고, 변화시 키는 게로구나.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무심코 아이들의 발돋움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
을 흘리고 말았었다.
더군다나빅팀에 이르러선, 내 절반도 안되던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졌을 정도였으니까.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노라고.
가슴 깊은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온 거센 감격에 잠시 목이 메였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렇기에.
전 반대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뜯어말리고 싶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일은 언제 목이 떨어져 나갈지도모르는위험한생업입
니다. 야생 동물을 수렵하는 것과는 그 차원부터 가 달라요."
주책맞고, 주제넘은 행위란 건 자각하고 있었으나, 그러한 망설임도 내 의
중을 빛바래게 하진 못했다.
”마물들은 교활하고 영 악하며, 간혹, 저희 가 생 각지도 못한 뛰 어난 지혜
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오로지 인간을 죽이 기만을 위한 지혜를요. 어쩔 땐,
죽는 게 차라리 나으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례로,제가예전에 알고지내던 동료들만하더라도사지가.... •."
여태껏 겪어온 현실과 어쩌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를 닥치는 대로 뒤섞
어 만든 흉흉한 괴 담으로 겁을 주었다.
하지만.
”과연! 경험자시로군요! 뼈와 살이 되는 조언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저는 언젠가 용사가될 재목이니까요! 그러
한 고난과 역경 ! 두렵 지 않습니 다! 오히 려 제 경험과 양식으로 삼아 보이 겠
습니다!,,
"아, 네 •…
치기 어린 근자감으로 중무장한 아비가일은 내 말을 듣고 겁을 먹긴커녕,
오히려 뜨거운의욕을 불태워 댔고.
빅팀은 그런 누이의 폭주를 말릴 의향도, 그럴 의욕도 없어 보였다.
■■하아彆 彆 • •.알겠습니다彆 • • •.그러면 하다못해, 여러분의 모험에 한동안
저를동행시켜 주세요.,,
"헛! 동료가되어주시는겁니까! 감사합니다!"
"동료가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자매님들의 안전을고려한판단에 입
각한행동입니다. 저는 하렌 사제님께 이루 말할수 없는 은혜를 입은 몸이니
. 하렌 사제님의 수양 자식 이 나 다름없는 분들을 두 눈 뻔히 뜨고 사지로
내몬다면, 주신께서 저를 벌하실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모험에 같이 가주신다는 거죠!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저기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서 말귀를 잘 못 알아먹는다는 소리 듣곤 하
지 않으시는지요?,,
"헉! 어떻게 ! 그걸!"
그래서,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이들의 모험을 따라나섰다.
첫 모험에서 그 희망찬 마음이 부디 꺾 여나가길 바라며.
내 가 처음으로 마물 토벌을 나선 날엔 한동안 밥도 못 먹 었을 만큼의 트라
우마가 생 겼었으니 까.
고아원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온 아이들도 당시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급은 낮지 만, 생 김 새 랑 비 명 이 요란한 마물들이 즐비한 소굴로 그들을 유
인해, 현실을 깨우쳐줄 요량이 었다.
혹여나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몸을 던져서라도 이들을 지켜내면 될 테니
까.
당시의 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중견 모험가이 기도 했고.
그 무렵부터, 하루에 한 번 정돈 별 탈 없이 기도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은
신성력 이 회복되 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피갹—-
"해치웠습니다!,,
"아, 아비가일 자매님! 어깨에 ! 어깨에 마물 내장이 아직 그대로 매달려 있
잖습니까! 우읍, 우욱!"
요즘 아이들은 내가생각했던 것보다 겁이 많이 없었다.
피와 내장이 낙엽처럼 나부끼는 그 흉흉한 광경을 바라보며, 꼴사납게 속
을 게워내기 바빴던 나완달리.
아이 들은 스케 치 북에 크레 파스로 그림을 그리 기 라도 하는 것처 럼, 새하
얗던 검에 마물의 피와 지방을 즐겁다는 듯이 덧칠해나가고 있었다.
참으로 크나큰 오산이 었다.
그리고 그 크나큰 오산으로부터 비롯된 여정이 1년, 趁년, 륽년에 다다라갈
무렵.
고난과 역경을 통해 힘과 지혜를 쌓아 올리고, 뜻이 맞는 동료들을 포섭하
여, 나름 무시 못 할 규모와 힘을 갖추게 된 우리들은, 어느샌가 다른 이들로
부터 '용사파티,라고 불리게 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바람결에 불과했던 그 말이 왕실의 공인으로 인해, 하나
의 사실로서 인정받기에 이르러지자.
"신부님 • • • •.드리고• • • • 드리고싶은말씀이 있습니다彆 •••."
기억 속의 언젠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야심했던 어느 날 밤.
다른 동료들이 술에 취해 곯아떨 어진 탓에 단둘만이 남게 된 고요한 방
안에서 용사님이 내게 대뜸 말을 건넸다.
"용사님. 제 가 지금 속이 안 좋아서 혹여나 書차 가자는 이 야기라면 다음에
••• 彆 • 11
나도 만만찮게 취 한 상태 였던지 라, 이 야기를 나누기 에 앞서 일단 물을 마
셔두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바로 그 순간.
와락.
무언가가 나를 등 뒤 에서부터 끌어 안았다.
"•…용사님?"
이윽고, 그 어스레 한 침묵이 취 기로 휘 청 이 던 내 자의 식을 잠깐이 나마 바
로잡아줄 무렵.
"••••아, 아저씨.,,
그 뇌를 관통하는 듯한 호명에 머릿속이 한순간에 백지가 되 어버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내 몸을 뒤 에서부터 끌어안고 있던 다부진 팔이 내
오른손등을 붙들었다.
"아저 • • … 흐윽 ' • • • 씨 ••• 彆
인제야 만났다는 듯이.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아,저 •• • • 아저! 으윽! 아저, 아저 • • . • 윽! 씨 • •• •.-
밤의 적막 속에 선연히 울리는 곡읍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이, 내 오
른손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미려한 떨림으로부터 , 그녀가 내 등을 붙잡은 채
흐느끼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쉬 이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 만, 무슨 말을 건네 야 할지 , 어 떠 한 표정을 지 어 야 하는지 조차도 알
수없었다.
당시의 나는 지금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으니 까.
"흐윽! 그읏! 아저, 아, 아저씨이! 흑! 아저 씨이 ••••."
내 대 답을 기 다리고 있는 듯한 울음이 등을 꼬집고, 옷을 적셔 대고 있음
에도, 나는 비겁한 침묵을 고수할수밖에 없었다.
귀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주변의 모든소리가 먹먹해졌으며, 피부 위에 얇
은 비늘이 덧씌워지기 라도 것처럼 시야가불투명해지고, 감각이 무뎌지고 있
었다.
털썩.
결국, 그녀가 울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나는 그녀에 게 아무런 것도 되돌려
주지 못했다.
목소리도, 손짓도, 그 눈물에 젖어 있을 게 분명한 눈동자를 마주 봐주는
것조차도.
■■••••■'
그렇게 그날 밤 난.
그들 곁을 떠났다.
아니.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