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46화 잦 물과 루비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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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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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의 성결한 목소리가 의식을 다그치자, 잠시 과거를 관망하고 있던
시야가 현실 쪽으로 다시금 비틀렸다.
"서, 성녀님?,,
"우으응!,,
툭툭.
성녀님에게 밥을 떠먹여 드리던 그 자세 그대로 얼어있던 내 몸에 성녀님
의 솜털같이 주먹이 연달아 날아들어 왔다.
비록, 몸에 가해진 충격 자체는 두부도 못 으깰 것 같은 빈약한 위세 이긴
했으나.
매사에 무심한 성녀님 이 이 정도로 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성
녀님의 기분이 뾰로통해졌다는 걸 의미하고 있기에.
무뎌져 있던 감각을 황급히 각성시켜, 자세를 바로잡았다.
"죄송해요. 성녀님.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 •彆 ••."
"흥!"
다행히 , 입 술이 조금 삐져 나왔을 뿐이 지 , 내 말에 따박따박 대 꾸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까지 심 각한 수준으로 토라진 건 아닌 모양인 듯했
다.
허나, 방심은 금물.
화가 난 여성을 목전에 두고서 긴장을 늦추는 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
러지의 가장자리에서 눈을 감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이따금 남녀의 관계성을 물과 기름으로 비유하는 이들이 있던데.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 다.
남녀의 관계는 물과 기름이 아닌, 물과 루비듐에 가깝다.
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을 뿐, 이렇다 할 피해가 발생하진 않으니까.
하지만,물과루비듐이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학창 시 절 과학 시 간에 졸지 만 않았더 라도, 물과 루비듐이 만났을 때, 그
주변 일대를 우습게 쓸어버릴 대폭발이 일어난다는 건 쉬 이 알 수 있을 터.
참고로, 남자쪽이 물이고, 여자쪽이 루비듐이다.
적 어도 내 가 느낀 바는 그렇다.
"미안. 웰나. 오빠가 잘못했어.,,
어느새 몸에 밴 오빠노릇을 하며, 성녀님의 머리를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띠동갑 차이 나는 여성에게 기생오라비처럼 아양을 떨어대는 게 자괴감
이 든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젠, 자괴 감은커녕, 일말의 위화감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이런 면구스러운 상황에까지 적응
해버리면, 그냥동물이라고봐도 무방한게 아닐까.
스스로의 부박한꼴이 우습기 그지없어, 이따금 새어 나오려는 너털한웃
음을 깨물고 있어야 할 지경이 었다.
바로 그때였다.
성녀님이 자신의 머리를쓰다듬고 있던 내 손을 붙든 건.
"웨, 웰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또 시작인 걸까. 하고서.
아무리 내가 성녀님을 달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해낸 상태라곤 하나,
그럴 때마다 진이 빠지고, 기력이 쇠하긴 매한가지였으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예기치 못했던 만남과 그 만남이 명멸시킨 과거의 녹으
로 인해, 마음에 빈 공간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지친다.쉬고싶다.침대에 몸을뉜 채,눈을 감고서 고요히 잠들고싶다.
뇌리에 달라붙은 무겁고 끈적한 상념들 탓에 들어있는 게 없는 속이 매스
꺼워질정도였다.
허나, 그 순간.
"아야. • • • 아야彆 • ••?"
자신의 머리를쓰다듬고 있던 내 오른손을 자신의 뺨에 옮겨 갖다 댄 성녀
님이 어슴푸레한 말을 내게 건넸다.
"웰나....?"
"아야?
fI
아야.
저 말이 '아파?,라는의미라는건,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성녀님과의 지난시간을 허투루 보내온게 아니었으니까.
수심이 옅게 깃든나긋한목소리.걱정의 기색이 미비하게 어른거리는진
홍색 눈망울.
말에 책 임을 질 수 있을 정도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답
할 터였지만.
성녀님이 날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 직감과 경험이 서사하고 있는 바는 그러했다.
"무슨 소리야. 웰나. 내가 아프긴 왜아파....."
조금 지친 듯한 기색으로 성녀님의 말에 회답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기미가 없잖아 있었지만, 화사한 미소로 성녀님의
걱정을 허물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흐응!"
■윽!..
그런 내 구색뿐인 미소가상당히 못마땅했던 것인지, 느닷없이 성녀님이
내 복부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그 직후, 내 허리를 거세게 끌어안은 성녀님의 양 팔로부터, 어쩐지 기시감
이 느껴지는 새하얀 힘이 거칠게 파동했고.
"자, 잠깐만! 웰나!"
풀썩.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행히 감각이 소실된 부위는 무릎 아랫부분뿐이었던데다, 성녀님의 돌
발 행동도 상정해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었기에.
몸이 휘청이는 와중에도,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성녀님의 몸이 다치지
않게끔대처하는 건,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 몸을 침대 삼아, 그녀를 받아내 기만 하면 됐으니까.
"웨, 웰나…•.내가 '그거,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彆."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성력을 악용하는 행위는 옳지 못한 것이라고, 성녀
님께 단단히 못 박아둔 게 바로 엊그제였던지라.
아무래 도, 이 전보다 더 호된 경고. 따끔한 주의 를 줄 필요성 이 있다고 여 긴
내 가, 미간을 찡그리며 , 이제 막, 그녀를 혼낼 채비를 끝마칠 무렵 이 었다.
스윽.
내뱉은 말을 끝맺음할 겨를도 없이. 모종의 감정이 움틀 유예조차 없이.
성녀님이 내 얼굴을끌어안고서,조용히 품에 안았다.
■성녀.. ..니... •?"
무심결에 존댓말이 튀어나올 만큼, 그 일련의 거동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
온 거룩함은, 명백하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마치,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육신과 영혼이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한 몽롱함.
이 전에도 경험해본 바가 있었지 만, 그때와는 무언가가 남달랐다.
이전의 것이 강욕과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흉흉한 무언가였다면, 지금의
이건, 심려와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상냥한무언가.
별안간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이 가 작은 요람 안에서 어머니의 품으로 옮
겨갈때,서서히 그울음을그쳐가듯.
모든 이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 테지만, 그 실체는 흐릿한, 뭐라 형용
할 수 없는 편안함이 의식을 어르고 달랬다.
■■••••■'
■■••••■'
말없이, 성녀님이 내 머리를쓰다듬기 시작했다.
악몽 때문에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아이의 곁에서 등허리를 토닥여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평온한 밤을 지켜주는 자상한 어머니처럼.
평상시와 역활 관계가완전히 뒤바뀐 지금의 이 어이없는 상황에 몸과
정신이 죄다 얼어버린 탓일까.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뿌리쳐낼 수 있을 터였다.
마땅히 그래야만하고, 실제로그리 해왔었기에.
그럼에도 내 나태한육신이 그녀를 쉽사리 밀쳐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따듯했으니까.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을 때, 나를 보듬어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을,
그 아늑한온기를 냉정히 떨쳐 버릴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지 못했다.
”서, 성녀님. 그만 하세요. 이제 됐어요. 저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요? 그러
니까, 이만놔주세요••••."
꽈악.
긁어모은 이성으로 어렵사리 엮어낸 말도 그 미려한 힘에 의해 너무나도
간단히 풀어헤쳐졌다.
목구멍에 얹혀 있던 상념이 갑작스레 치솟아 오르며, 입 밖으로 빠져나오
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듯했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쉼 없이 오
므렸다 피며, 끝끝내 그 곡읍을 깨물어냈다.
안그래도 나이 어린 소녀에게 다소곳이 끌어안겨 있는 지금의 내 이 흉한
몰골이, 여기서 더 꼴사나워진다는 건 안될 말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야. .... 하지 마..... 하지 마아.... 彆
내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벼대는 성녀님께서 절절한 감정이 내리 담긴 애
원을 내게로 흩트렸다.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지면, 일단 입술부터 들이밀고보던, 평상시의 그무
대뽀 같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구멍 난 봉제 인형을 한땀한땀 바느질하듯, 살을 맞대고, 손을 포개며, 내
게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려 하는 듯한 그 자애로운 모습에선 성모의 인영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황급히 그녀의 품 안에 내 얼굴을 묻었다.
그 성스러운 광명 앞에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로 일그러질 것만 같은 내 부
박한 얼굴 따위를 내보일 순 없었기에.
다리에 감각은 이미 한참 전에 되돌아왔음에도, 나는 아직도몸을 일으킨
다는 그 간단한 파훼법을 실행하지 못해, 그 자리에 얽매여 있었다.
두근두근.
귓전에 들려오는 미려한 심음을 자장가 삼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난수년간, 누군가의 보탬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여파인지, 나
를 다독이는 다른 이의 살결과 체온의 존재가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긴 했지
만.
스르르 눈이 감길 때, 몸을 기댈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저 편안하고, 안락
했기 때문이 었을까.
"잘자아. 彆 彆 ..코오. 彆..."
모든 걸 잊어버린 채, 태평히 잠에 들수 있었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과 사명도.
내 영혼에 새겨진 과오와낙인과죄도.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었다.
碢碢碢
"내가미쳤지…•.미쳤어… •."
복도를 누비는 내내, 내 양손은 내 얼굴 위에 얹어진 채, 어디로도 오가지
못했다.
이마저도 상당히 현실과 타협한 처세긴 했다.
마음 같아선 이 주변에서 가장 단단한 벽에 머리라도 들이박고 싶은 심정
이었으니까.
11아무리 하루종일 이런저런 일에 치여 피로한 상태였다고 해도 그렇
지 .... 彆. 성녀님한테 끌어안긴 채로 알현실에서 해 뜰 때까지 퍼질러 자다니
••• •.경거망동한것도정도가있지••••.
II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알현실에서 자고 일어나는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
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성녀님의 가호를 견디지 못한 정신이 원치 않게 끊어지
면서 일어난 사고. 이른바, 불가항력이 었다.
하지만, 어제의 경우엔 그러한 상황을 회피할 수단과 기회가 널리고 널려
있었음에도, 나는 내 의지에 입거해, 나를보듬어 안는 성녀님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
"이 개만도 못한 놈. 변태 새끼. 쓰레기. 역겨운변질자. 성직자의 수치.,,
제자리 에 풀썩 쭈그려 앉아, 스스로를 힐난하는 말을 끊임 없이 늘어놔 봐
도, 어제의 그 어리석은 선택을 행한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은 좀처럼 사그라
들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성녀님의 품에 끌어안긴 채, 그걸 뿌리쳐낼 기색조차도 내보이지 않고서,
상념 속의 죄 책 감이 녹아 없어 지 는 듯한 그 황홀한 감각을 난 내 의 지로 만
끽했으니까.
올해 16살이 된 소녀의 품에 안겨 음흉히 잠을 청한 29살의 아재비.
그 죄목을 듣기 만 해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아나는 이 질 나쁜 범죄 자를 세
상에 풀어놓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아니 라고 본다.
수녀님 이 보낸 다급한 호출도, 필시 , 내 가 저 지른 그 추악한 죄 악에 대 한
합당한징계를 내리기 위함일 테지.
언젠가 봤던 조폭 영화에서 잘못을 저지른 끄나풀이 손가락을 자르지 못
해 안달 나 있던 이유를 인제야 알 것만 같았다.
11죽자 . ..... 죽어 ••••."
각오를 다지 자, 마음과 걸음이 한결 편해 졌다.
"후우....."
그렇게 처형실에 들어가는 죄수의 마음으로, 수녀님이 날호출한 접객실
의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그러자, 보인 것은.
"수녀님?,,
"오, 오오오오셨슙니까..... 레, 레이 짓슈 수호사제님 ••••."
양손을 다소곳이 무릎위에 올려놓은채,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연신 벌벌
떨어대고 있는 수녀님.
그리고, 그 수녀님의 바로 옆자리에서 그녀와 어깨동무를 한 채, 이쪽을 죽
일 듯이 노려다 보고 있는 참으로 낯 익은 인물.
"야. 왜이제 오냐?"
"아, 아피스가 여긴 어쩐 일로 彆 • ••?"
이게 대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