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49화 잦 붉은 캥거루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잠옷 차림의 수상한 여인. 벨테인은 지
금 깊은 고뇌 에 빠져 있었다.
레이지스의 행방에 대한걸 영원토록 감출수 있으리라곤속단하지 않았
으나, 이렇게나 빨리 탄로 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도대체 어디서 어떤 실책을 범했는지조차도 판가름할 수 없었다.
그들은, 힘도 지혜도, 자신 같은 범인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초월적인
존재들이기에.
필경, 먼발치에서 벨테인과 사제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포착해냈을 때처
럼, 그들만이 지 닌 모종의 특수한 수단을 사용했으리 라고, 어 림 짐 작하는 것
이 고작이었다.
그실상은, 때마침 서점에 들린 두사람이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뿐이었지
만.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진, 네 똘마니한테 들은 정보로 대강 파악했어. 네
가 우릴 속여 먹이려 든 건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눈감아줄 테니까. 지금 당장,
그 녀석 여기로호출해 와.,
자신의 측근인 마리안느수녀로 인해, 내부 상황이 완전히 새어 나가게 된
건 뼈 아픈 사고였으나, 이는 별수 없는 일이 었다.
신궁. 아피스.
수백에 달하는 마물 무리를 산 하나 떨어진 거리에서 활과 화살만으로 모
조리 일소해냈다고 일컬어지는, 그 흉흉한 인물 앞에서 기밀을 함구해낸다
는 건, 어지 간한 수호사제 들도 버 거워 할 역경 일 테 니까.
아직 성 인식도 치르지 않은 앳된 소녀 인 마리 안느에게 기밀을 발설한 죄
를 물을 수 있을 만큼, 벨테인의 심성은 모질지 못했다.
오히 려 저 화산과도 같은 위 압감을 앞에 두고서,태 연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저 사내 쪽이 비정상인 것이리라.
어쩌면 좋지.
벨테인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사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다 한들, 지금의 국면을 타파할 방도가 있을 리
만무하단 건, 벨테인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레이지스 사제의 직속 선배였던 인물.하렌 사제.
그를 추문해 얻어낸 정보들을 토대로 레이지스와 용사 파티와의 대략적
인 관계도를 파악해낸 뒤.
레이지스가 전속 수호 사제 역을 그만두고 싶단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용
사 파티에게 당신의 위치를 발설해버리겠단 식의 비열한 협박으로 유지해온
관계.
그 지질지질한 갑을 관계만이 벨테인이 레이지스를 성녀의 곁에 묶어둘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슬이 었으니까.
때문에,그의 신변이 용사파티에 발각되어버린 이상, 벨테인에겐 더 이상
레이지스를 얽어맬 수단은 남아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일, 그의 신변이 이대로 용사 파티에게 다시금 넘어가 버리기라도 한다
면.
근래 들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던 성녀의 정신 상태가 다시금 악화될지
도모르는 일.
하지만.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피스 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지금의
성녀님에게서 레이지스 사제님을 일정 기간 이상 떨어뜨려 놓을 순 없습니다
! 1년, 아니! 반년, 아니, 석 달만이라도 좋으니! 당분간 레이지스님의 신변을
저희 쪽에 양도해주실순없으신•••.'
양도?,
그심장에 화살이 내리꽂히는듯한 우악스러운 살의는 벨테인의 체내에
뿌리를 내린 채, 지금 이때까지도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대고 있
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난 여기 그 녀석을 가지러 온 게 아니라, 설득
하려고 온 거야. 맡겨 놓은 물건을 찾으려고 온 게 아니라, 잠시 뜻이 틀어진
동료를 회유하려고 온 거라고. 너희 인족은 늘 그런 식이지. 상대가 자기보다
아래 것이란 생각이 들면, 무슨 물건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하대하려 들어.
자기 가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 야. 역겹게.,
'아,아피스님… •:
■네가우리들을 속이고, 용사를울린 건, 부아가치미지만, 한번 정돈 넘어
가줄순 있어. 용사도 다짜고짜 칼로 널 베어 넘기려 한 것도 잘못이라면 잘
못이 니까. 하지 만, 입 장상 참아 주는 것에도 한계 가 있단 건 잘 알아둬. 만일,
네 입 에 서 또다시 내 동료를 물건 취 급하는 경 망한 발언 이 새 어 나왔다간, 머
리에 꼭지가돈 내가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 지 모를 테니까. 알아들었어?,
'그, 그게••••.'
'알아들었냐고.,
'네! 아, 알겠습니다••••.
I
'좋아. 그럼 군소리 말고 빨리 그 녀석이나 호출해 와. 그리고, 어차피 여기
널리고 널린 게 성직자일 텐데. 그 녀석을 대신할놈이 하나 없단 게 말이나
돼? 게으름 피우지 말고 잘 찾아보든가. 그쪽 사정은 잘 몰라도, 이쪽은 그
녀석 없으면 안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예상했던 대로, 용사 파티에 있어서 그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 그들은 레
이지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피스가 레 이 지스를 회 유할 수단은, 그녀의 차림 새와 몸에 서 은은히
풍겨 오는 고급 향수 냄새만 맡아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인계.
다른 건 몰라도, 순결을 지 키는 분야에서 만큼은 성직 자의 귀 감이 라고도
말할수 있을레이지스가,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는광경은 쉽사리 상상이 가
질 않았으나.
일말의 불안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아피스의 저 기세등등한 태도가 벨테
인의 판단력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년을 동고동락해온 전우니까.
동료의 이성 취향 정도는 얼추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
다.
아니, 어쩌면 미인계 자체는 상대방의 경계심을 누그러뜨기 위한초석에
불과하고, 진정한 비책은 따로 준비되 어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
"우으••••."
새빨개진 얼굴을 무심코 양손으로 가린 벨테인이 었으나, 그 두 손도 얼
굴과 마찬가지로 붉어진 상태였기에. 부질없는 행위에 불과했다.
교복에 양 갈래머리라.
꽤 예사롭지 않은 취 향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아카데미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아
카데미의 상징과도 같은교복에 절절한 미련을 품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자연
스러운 수순일지 도 모른다고, 벨테 인은 생 각했다.
이대로라면, 성녀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떠받쳐 줄 수 있는 유일한 버
팀목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였다.
번민에 빠진 벨테인의 두뇌에 희끔한 전류 하나가 명멸했다.
그렇다면, 방법은단 하나뿐.
"꾸, 꿀꺽."
별안간 침음성을 자아낸 벨테인이 모종의 결단을 끝마쳤다.
그 창연한 눈동자 속엔 굳건한 결의 가 일렁 이고 있었다.
불에 달군 인두로 자신의 얼굴을 지져버렸을 때조차도, 이 정도로 마음이
비장해지진 않았으리라.
"웰나를 위해서라면••••!"
이윽고, 그녀의 다부진 발걸음이 어딘가를 향해 갔다.
碢碢碢
자고로 친누이 란 존재는 고등어 에 비유할 수 있단 누군가의 말이 불현듯
뇌리에 떠올랐다.
집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친 고등어가 나오면 '아, 저게 왜 저깄어, 란생각
이 들고 말뿐인 것처럼.
누이 의 용모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 라도. 그 누이 가 화장과 장신구를
두루두루 두르고 있다고 하더 라도.
고등어가 쏠배감펭으로 변모하는 게 전부일 뿐이란 말이, 어째서인지 지
금 이 순간, 내 상념 안쪽에서 절절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건어때!,,
-••••■■
내 양손을 한 손으로 붙잡아 내 머리 위에 단단히 고정해둔 아피스가, 자
신의 웃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뜯으며 내게 씩씩히 말을 건넸다.
자기 몸으로 내 몸을 뒤덮어버리 려는 듯한 기세였다.
맞닿은 피부 너머로 전해져오는 뜨거운 체온. 오직 여체만이 향유하는 게
허락된 향긋한 살내 음. 얼굴을 간질이는 가느다란 머 리 카락에 이르기까지 .
그 모든 것들이 관능적이며 매혹적이 었다.
그야말로 남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조형물의 집합인 게 아닐
까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샘솟을 정도로.
여기에 엘프 특유의 신비로운 외견까지 더해지기까지 하니, 가히 화룡점
정이었다.
늘 생각해온 거긴 하지만, 아피스는 내가 여태껏 보아온 모든 엘프 여성
중, 아니, 내가 여태껏 보아온 모든 여성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
웠다.
''지금은 어때! 막 불끈불끈한 기분이 들고 그래!? 아랫도리에 힘 솟아
났어 ? 교미 하고 싶은 욕구 생겼어?"
입 만 다물고 있으면.
"저기. 아피스••••."
"쉬, 쉿!"
자기 가 물어봐 놓고, 내 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마다, 검 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틀어막는 아피스의 거동은 상당히 기기묘묘했다.
이후, 그 검지를 내 입술, 목, 가슴, 배 순으로, 무슨 피아노 건반을 훑고
지나가듯 미끄러뜨리는 손놀림은 살짝 두렵기까지 했다.
"후훗!
II
입꼬리 만 살짝 올라간 어색 한 미소를 지 어 보이 며 , 날 의 기 양양이 내 려 다
보는 아피스.
어둠 속 맹수의 안광을 보는 듯한 그 표독한 눈동자는 분명히 내 쪽을 주
시하고 있긴 했으나.
이따금 자신의 손바닥 쪽을 힐끔거리고 있는 모양새로 미루어 볼 때, 그녀
가 자신의 손에 무언가를 써놓았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그 다음은彆 • • • . 어 … • . 크, 크흠! 누, 누나라고 불러봐!"
누나 저한테 왜 이러세요.
보고 있는 내 쪽이 창피해질 정도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가뜩이나 난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민망한 광경도 그냥 넘겨버릴 만큼,
공감능력이 뛰어난사람인데 말이다.
말을 하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수치심과 망설임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
오는 아피스의 그 민망한 모습은, 관절 부위부위 마다 이물질이 꽂혀 있는 고
장 난 로봇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 이래도 안 넘어올 줄이야. 꼴에 성직 자라 이거지 !,,
"••••"
이따금 몸을 움직여보려고 시도는 해 봤으나.
자신의 둔부로 내 복부를 짓누르고 있는 이른바 마운팅 자세. 한 손만으로
도 내 양손을 힘 안 들이고 제 압할 수 있을 만큼, 그 자릿수부터 가 남다른 완
력.
이 두 가지 방해 요소 때문에 탈출은 묘연해 보였다.
"으음, 이럴때는… •."
이윽고, 마치 컨닝 페이퍼에 눈을 흘기는수험생처럼, 자신의 손바닥을 몇
초간 뚫어지게 응시하던 아피스가 다시금 행동을 개시했다.
"흥!"
상의 위편이 풀어 헤쳐져 맨 속살이 희끔이 보이는 상태로, 자신의 가슴 아
래편을 한 손으로 떠 받친 아피 스.
그녀가해맑게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파티에 돌아온다고하면! 이거 만지게 해줄게! 아니! 마음대로하게 해줄
게!,,
남자라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매혹적인 제안이긴 했다.
!.
.......
...
이 세상천지를 샅샅이 뒤져본다 한들, ■아, 나오늘은 가슴 만질 기분이 아
니 야, 라고 말하는 남자만큼은 찾아낼 수 없을 테 니까.
그만큼, 여성의 몸에 맺힌 두 개의 살덩이가 가진 마성은 어마무시한 것이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위 상은 오로지 남성 만을 끌어 당기 는 중력을 보유한, 하나의 행 성 이 라
고 봐도 무방할 테 니 까.
더욱이, 그러한 탐스러운 과실을 보유한 여성의 액면가가 남들 보다 뛰어
난 편이라면, 그 중력가속도는 살인적인 위력이라는 표현도 전혀 아깝지
않으리라.
하지만, 참으로 기적적 이게도.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음심 이란 이름의 구름은 그 티끌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맑게 개 있었다.
간만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 덕일까.
아니면, 아피스의 말투가유혹이라는 단어와는 크게 동떨어진, 이를테면'
우리 집에 개쩌는 장난감 있는데 한 번 보러 올래 ?, 라고 말하는 남자아이를
연상케 하는 천진난만함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나조차도 내 마음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가슴에 술렁이고 있는 심경이 지인 여성한테 덮쳐져서 흥
분된다기보단, 근육질의 붉은 캥거루한테 습격받아 당혹스럽다는 것에 보
다 가깝다는 것만큼은 확언할 수 있었다.
"좋아.....그다음은....."
"하아. .••.아피스. 장난은 그만하고....."
바로 그때였다.
아피스가 내 바지 지퍼를 콱하고 움켜쥔 건.
"웃옷을 벗고••••.바지를벗긴다••••."
잠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