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52화 (52/90)

秦 52화〉흑역사 (2)

계 기 는 무척 이 나 사소한 것이 었다.

한 달에 한 번, 후원금을 받기 위해 억지로 쓰던 근황 보고 편지.

읽고 쓰는 법 따위 알 턱이 없었던 터라, 고아원 원장이 사전에 써둔 글을

삐뚤빼뚤이 따라 적는 게 고작이었던, 그 넌덜머리 나는 작업에 염증을 느끼

고 있을 무렵.

책상다리 위에서 연필을 쥔 채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던 내가 어지간히도

재밌어 보였는지.

평소였다면, 그런 내 꼴을 먼발치에서 지켜만보고 있었을 고아원 원장이

대뜸 내게 이런 말을 건넸었다.

후원 인을 골탕 먹 여보고 싶진 않느냐고.

의중을 짐작기 힘든 원장의 그 생뚱맞은 제의에 내가 의구심을 표할 겨를

도 없이, 그는 장난기 다분한 미소와함께 말을 이어 나갔다.

동화책을 사달라고 적어 보내 보자.

무심코 코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동화책.

역대 용사들의 일대기.혹은,그것과 연관된 다양한전설들이 기술된 저서

의총칭.

염한 종이나 저급한 마물 가죽에 기술하는 것이 교황청에 의해 엄격히 금

기시된 그황금의 역사는, 제도의 긍지이자, 인류의 자랑이라고 일컬어도손

색없었다.

때문에.

동화책이 터무니없이 비싼물건이라는 사실은, 이 제도 내에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도 알고 있을 법한, 이른바, 상식 중에서도 상식 같은 것이었

다.

종이도, 마물 가죽도 쓸 수 없으니, 필연적으로 양피지를 사용해야만하는

데.

양피지는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새끼 양을 수십 마리 도륙해야만 하는

사치품의 왕 같은 물건이 었는지라.

그러 한 사미 한 공정 으로부터 탄생 한 동화책의 가격은 두말할 것도 없었

다.

희소한 역사가 기록된 동화책은 집 한 채 값에 거래되 기도 한다니까.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치는 인종이라한들, 생판모르는 남에게 선뜻 건네주

기엔 부담스러운 선물.

확실히, 타인에게 자신의 부를과시하는 데 환장인 인물을 골탕 먹이는 데

엔 제격인 물건이긴 했다.

심보가 꼬인 사람이 아니 라면 발안하지도, 승낙하지도 않을 제 안.

하지만,당시의 나는심보가꼬일 대로꼬인 천치 같은아이였던지라.

결국, 원장의 농간 대로 연필을 꼬적이고야 말았다.

생 일 선물을 갖고 싶다고 했던가. 아니, 생 에 마지막 소원 이라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당돌한제안에 인상을 구기고 있을게 분명한그를상상하며 낄낄거리

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내게로 선물이 하나도착했다.

동화책이었다.

비 싼 양피 지 에 큼지 막하고 아기 자기 한 글귀 가 수놓아진 채, 드문드문 그

림도그려진 진짜배기 동화책.

삼류 음유시인들로부터 넌지시 전해 듣기만 해오던 영웅의 이야기가, 책

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내 망막에 가득들어찼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던 건, 하늘높이 검을 치켜들고 있는 장엄한사내.

아직 글을 읽을 줄은 몰랐지만, 그가소위 용사라불리는 인물이며.

이 책이 용사의 모험을 서술하는 책 이라는 건, 나 같은 바보라도 알 수 있

는 사실이었다.

"세,세상에 • • • • . 진짜보냈네 그놈• • • • . 헛! 야, 꼬맹이! 다음번엔 다이아!

다이아반지 써달라고보내보자! 어때!,,

호들갑스럽게 내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 대는 원장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

지도 않았다.

당시 내 시야는 동화책의 표지.그 위에 덩그러니 놓인 짤막한쪽지에 단

단히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Happy Birthday]

태 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생 일 축언. 축하 선물이 었다.

하나뿐인 혈육인 동생한테조차도, 생일날 선물을 받아본 경험은 전무했

다.

별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나조차도, 내 생일이 언제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배고픈 하루가 있고, 덜 배고픈 하루가 있을 뿐.

가지지 못한우리에게 어떠한하루를특별히 할 여유나, 의욕이 있을 리 만

무하기도 했고.

자신의 탄생을 축복하고, 긍정할 여력 같은 건 옛 저녁에 사그라든 지 오

래였기에.

꼬옥.

값비싼 물건을 함부로 다뤄 선 안 되 건만.

무심코 힘을 줘 동화책을 끌어안고 말았다는 걸,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하

고 있다.

이건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결국, 그날은 내 생일이 됐다.

내 사소한 장난과 그 장난에 속아 넘 어 간 누군가의 착각으로 인해, 내 가

이 세상에 태어난날이 정해지고만것이다.

편지의 내용에 따라 비싼 선물이 동봉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고아원

원장의 간사한 제 안에 응하는 건 상당히 고까운 일이 었지만.

다행히, 그런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난, 그날의 기점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었으니까.

"용사… •."

그것이 바로 내 두 번째 기억.

碢碢碢

자고로 변화란, 늘 극적 이 지 만은 않다.

"야! 빅팀! 이거랑 이거! 어떤 게 더 어울릴 것 같아!?"

나자신이 변했다는사실을 체감하기 시작했던 건,월례 행사가 되어버린

가족사진 촬영이 어느덧 뀉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어떤 옷을 입고 찍어야좋을지, 어떤 포즈를취하면 좋을지, 심히 고민하고

있던 나를, 고까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남동생을 마주 보게 된 순간이

었다.

"대충 아무거나입으면 되잖아.저번에 입었던 거 .... 彆."

”안 돼 ! 지 난달에 입 었던 옷을 두 번이 나 입고 있으면, 아저 씨 가 우릴 어

떻게 보겠어 ! 한 달 동안 똑같은 옷만 입고 있는 지저분한 애들이라고 오해

하실 거 아니야! 빅팀 너도 지난달에 똑같은 입었던 옷 대충 걸칠 생각 말고

신중히 골라!,,

"에엑....."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마석 필름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씻을 때도 물로만 씻을 생각하지 말고, 비누로 구석구석 꼼꼼히

문질러! 머리에 향유도 바르고!,,

'사진 찍는데 향유는왜 발라••••.

II

"말대답하지 말고! 하란데로해!,,

촬영하는 날은 언제나 전쟁 이 었다.

근래 들어 부쩍 건방져진 탓에, 무슨 일을 시킬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내

는 빅팀을 어르고 달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니까.

생활에 부족함이 없어진 탓이었을까.

어느덧 빅팀에겐 확고한취미와 취향이 생겼다.

선호하는 놀이가 생겼고, 편식하는 음식이 생겼다.

빅팀이 공놀이를 선호하고, 생선을 거북해한다는 걸 깨닫게 됐을 땐, 적잖

이 놀랐었다.

빅 팀 은 하루의 태 반을 잠으로만 보내 던 아이 였으니 까.

뭐 든 가리 지 않고 주는 대 로 넙죽넙 죽 받아먹 던 기 특한 동생 이 었으니 까.

하지 만 어째서 일까.

날이 갈수록 철이 없어지는동생의 그또래 아이다운모습이, 그리 싫지만

은 않게 느껴졌었다.

”언제는 마음 주지 말라더니. 이젠 완전히 아저씨 없으면 못 살수준이네

• • • • 11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

이런 시건방진 말본새는 지금도상당히 아니꼽긴 하지만.

■■자, 작전 ! 그래 ! 이것도 다 작전이 라고! 그 쪽한테 우리 가 마음을 허락한

다고여기게 만든 다음, 더 많은돈을 송금하게끔 유도하는 작전!"

”그런 것치곤좀 많이 진심인 것 같던데 • 彆 • •.요전에는 내가편지에 뭘 썼

는지까지도 사전에 검사하고 그랬잖아 彆 •••."

"야! 그건 네가 편지에다가 내가 아저씨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는 등, 이름

을 궁금해 한다는 등, 쓸데 없는 말을 써 놓으니 까 그런 거지! 아니 라니 까! 내

가진짜로 아저씨한테 넘어갔다면! 아저씨가 나한테 선물한동화책을 내가

팔아치웠겠어!?,,

"알았어. 알았다고."

거짓말이었다.

당시의 난 이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간이며 쓸개며 다 내어줄

태세를 갖춘 지 오래 였으니까.

태 어나서 처음 겪 어 본, 먹고 살 걱정을 하질 않아도 되 는 안락한 공간.

매사에 여유가 없던 나와 내 동생이, 별 시답잖은 이유로 다툴 수 있을 만

큼, 마음에 여유가 스미는 안온한 나날.

그러한 시간이 누군가의 배려와 관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은 달콤하고, 중독적 이 었으니 까.

선물 받은 동화책을 팔아버린 것 자체는 사실이긴 했으나.

그런 언제 도둑맞을지 모르는비싼 물건을 제대로 된 방어 설비 하나 없는

공간에 방치해 둘 순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억만금을

준다 한들 넘 겨주지 않을 생 각이 었다.

고아원에 사는 어느 힘 없는 남매가 소유하고 있다는 값비싼 동화책 한권

한탕을 노리는 불한당들에 게 있어, 이보다 군침 도는 먹잇감이 과연 또 있

을까.

그렇기에, 별수 없이 원장에게 책을 넘겨 팔게 된 날은,동생 몰래 소리 높

여 엉엉 울기까지 했었다.

”야,근데 이거 아카데미도서관소유라고적혀있는데••••.괜찮은거맞

아•••우?,,

"애들이 낙서한 거겠지. 신경 쓰지 마.,,

내게서 책을 넘겨받은 어른들이 서로주고받은 대화가들리지도 않을 만

큼, 그야말로 꺼이꺼이 울어댔다.

그렇기에.

동화책에 서 몰래 뜯어낸 삽화 한 장. 생 일 축하 메시 지 가 담긴 짤막한 메

모하나.

그 작은 버 팀목을 위 안 삼아, 그날의 기 쁨을 끊임 없이 되 새 기고, 간직 해

왔다.

성직자란 작자들이 어째서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신이란 작자를 맹목적으

로 믿고 따르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이 었다.

당시의 내게 있어 아저씨는 내가 마음을 기대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기둥.

내 영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만나러 오진 못하시더라도, 편지에 답장 정돈 해주셔도 좋을 텐데 • • • . 수

줍음이 많으신 건가•••."

사실, 그의 정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도 알 방도가

없었지만.

듬직한 아버지 가 있었으면 했던 내 평소 생각이 은연중에 반영이 라도 된

것인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난그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었다.

매달 찍는 가족사진에 언젠가 아저씨도 함께 찍여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쑥쓰러운 생 각도 종종 하곤 했다.

친부모는 우리를 미련 없이 버렸지만, 아저씨는 우리 남매를 결코 버리지

않으리 라 여 겼으니 까.

"야! 빅팀 ! 누나가 꼼꼼히 씻으라고 말했지!"

"응? 누나가 말한대로 비누까지 써서 꼼꼼히 씻었는데?,,

"거짓말하지 마! 목에 묻은검은 얼룩이 그대로남아있잖아! 나원!"

"어라? 이상하다....?"

머지않아, 빅팀이 원인 불명의 병과 저주에 걸리게 됐고.

빅팀을 간호하던 나도 그 검은 마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내노라 하는 의 인들조차도 우리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지

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저씨에 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몇 차례나

보내 봤지만.

늘그래왔듯이, 편지에 답장은오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였다.

우리에게 매달 송금되 던 후원이 갑작스레 끊기게 된 건.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약에 써도 모자랄 돈을 모조리 종이

와 잉크에 투자해, 더더욱 많은 양의 편지를 아저씨에게 써 보네 봤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언제나처럼. 평소대로.

아저씨는우리에게 아무런 말도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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