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55화〉재회
"꾸물대지 좀 말고 빨리 써 !,,
"아,재촉하지 말아봐요••••."
파티에 돌아와 달라는 아피스의 뜻.
용사님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뜻.
두 의 견의 합의 점을 찾는 과정 중에서 결국 우리 가 택한 절충안은, 내 가
파티를 탈퇴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를 용사님에게 서면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용사님이 납득해만 준다면, 이대로 미련 없이 헤어지는 것으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용사님과 직접 대면하여 다시금 이 야기를 나눠보는
것으로.
원체 운이 없는지라,승패가불확실한내기는 쳐다도보지 않는것이 내 신
조였으나.
도망치지 마라.
아피스의 그 통렬한 꾸짖음이 내 판단력을 무디 게 만든 탓이 었을까.
결국 난, 아피스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근데 저건 또왜 저러고 있어?,,
아피스가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무슨 아이템을 게워낸 몹처럼, 몸에 걸치고 있던 소지품을 아무렇
게나흩뿌려 놓은 채, 바닥에 홀연히 드러누워 있는 수녀님이 자리해 있었다.
라노벨 사제 가 왔다 간 이후론 쭉 저 상태 였다.
마음 아픈 광경이긴 했다만, 지금의 내가 수녀님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그녀를 창가 자리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 말곤 달리 없었다.
저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보에 대한 고초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만 하
니까.
"주신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彆 •••."
희끔히 귀를 적시는 수녀님의 구슬픈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외 면하고 있는
건 상당히 고역 이긴 했지만.
"아피스.저럴 땐 그냥말없이 내버려 두는게 • • • • ."
그렇게.
수녀님 쪽으로 잠깐 분산된 내 주의를 다시금 눈앞에 편지지 쪽으로 이동
시키려 할무렵.
바로 그때였다.
온몸의 피 가 꽁꽁 얼어붙어 버린 듯한 오한이 의식을 훑고 지 나갔고.
쿠궁!
그 직후, 세상천지가 뒤흔들린 듯한 사나운 진동을 체감한 내 몸이 바닥을
향해 급격하게 기울었다.
"긋!,,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손으로 의자를 붙든 덕분에 몸이 고꾸라지는 불상
사는 면할 수 있었지 만.
유례없는 위 기의식으로 점철된 내 상념 속엔, 내 몸이 건사하다는 미려한
안도감이 움틀 공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피스!"
"알고 있어!,,
내가아피스의 이름을호명했을 땐,그녀는 이미 엘프족특유의 길쭉한귀
를 쫑긋거리며, 창밖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 날렵한 몸놀림은 천적을 코앞에 둔 고양잇과 동물들을 보고 있는 듯했
다.
먼발치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손은 자신의 활과 화살에 빈틈없
이 올려져 있는 모양새로부터.
그녀 또한 나처럼 극도의 긴장상태에 돌입해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
할수있었다.
"니미럴… •."
나보다 한발 앞서 바깥 상황을 파악한 아피스가 별안간 욕을 짓씹었고.
뒤늦게 상황을 확인한 나도 욕만 안 했다 뿐이 지, 아피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미니어처로 만들어낸 거대한도시 모형.
그 가운데 자리에 검은 크레파스로 빽빽이 칠해놓은 빌딩 하나를 아무렇
게나 쑤셔 박아 놓은 듯한 이질적 인 광경이 시 야를 덮쳤다.
그 자태는, 눈 부신 태 양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던 어둑한 밤이 , 유전 속의
석유가 솟구쳐 올라오듯, 광활한 하늘을 향해 거무죽죽한 손을 우람이 내 리
뻗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이를테면.
그림 자가 태 양을 삼켜버 리 려 하는 것처럼 .
■■수녀님. 지금 당장 이 주변 지역을 통제해주시고, 외근 나간 고위 사
제분들도 서둘러 호출해주세요."
"무슨,무슨일이 일어난 거죠…?,,
평소와 사뭇 다른 내 진중한 어투로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넌지시 파악한
것일까.
뒤숭숭한 마음을 서둘러 다잡은 수녀님이 불안의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로 내게 물음을 던졌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게서 전해 들은 그녀의 표정 이 경 악으로 물들기까
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던전이 열린 것같습니다••••.
fI
碢碢碢
무수한 인파로 혼잡해진 거리를 뜀 박질로 비 집으며 도달한 장소는, 불과
조금 전 창밖으로 시인했던 장소.
천지를 뒤흔든 충격의 진원지이자, 난데없이 출몰한 검은 기둥이 터를 자
리 잡은 바로 그곳이었다.
"용사! 다우나! 빅팀 !"
가쁜 호흡을 정돈할 경황조차 없다는 듯이, 돌연 아피스가, 절박함이 넘실
거리는 얼굴로 동료들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했고.
그 간곡한목소리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켜 버린 검고 거대한 기둥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저 건물은분명, 이 근방에선 제법 유명한 여행객용
숙소가 자리하던 곳이었을 터.
머 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가정 이 구체화 되 어 갈수록, 내 얼굴색도 점차 사
색으로 물들어갔다.
"아피스! 그게 정말이에요!? 파티원 모두가 여기 묵고 있었다는 게!"
차분히 자초지종을 물어보려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입에서 짓씹인
말의 색채는, 날선 감정들이 가득스민 격양된 어투였다.
사, 사제님 •••.
함께 온 수녀님 이 그런 내 모습이 두렵다는 듯 몸을 움찔거렸지 만, 아
랑곳하지 않고서 말을 이어 나가려 할 무렵이 었다.
"꺄악!
II
"저길 좀 봐! 저 검은 것 주변에 아직 사람이 있어!,,
"빨리 누가 가서 성직자를좀불러와봐!"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관중들이 한데 모여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곳엔 체구가 작은 누군가를 감싸 안은 채 쓰러져 있는 거구의 사내가 처
연히 나뒹굴고 있었다.
"빅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조형물.
그도처에 몸져누운 누군가를 향해 다가간다는 위험천만한행위.
아주 약간의 망설임이 스민다 한들 그 누구도 문책하지 못할 상황임에도.
나와 아피스의 거동에선 그러한 번민은 티끌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제님!,,
내 무모한 행실을 만류하려 한 수녀님의 손길을 박절히 뿌리치며, 혼절해
있는 동료의 곁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빅팀! 야! 너 괜찮아!? 너 이거•••!"
"비켜요! 아피스!,,
다행히 그의 숨은 아직 붙어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보다 한발 앞서 빅팀의 상태를 확인한 아피스가초조히 숨을 헐
떡이는 모양새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모종의 조치 가 필요한 심 각한 상태 라는 건, 구태 여 그의 몸을 확인해
보지 않더 라도 알 수 있는 사실 이 었다.
"빅팀! 정신이 들어요?,,
"으으••••;
"이, 이건••••!"
빅팀이 끌어안고 있던 인물은 실신한 상태인 다우나였다.
그가 저 검은 기둥과 연관된 무언가로부터, 다우나를 지키려 했다는 건 일
목요연해 보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기에.
일의 순리 같은 사소한문제는 잠시 접어두어 마땅했다.
"서, 서둘러! 서둘러!,,
"주신이시여.저는 당신의 손가락. 한낱 어린양. 당신의 권능 아래 이 땅의
모든 것에게 안식을 안겨줄지니. 그 영광은 모두 당신에게 바치겠나이다.,,
다급히 나를 보채 는 아피 스를 뒤 로한 채 , 신속히 기 도를 읊조리 기 시 작했
다.
...
......
...
빅팀과 다우나. 두 사람의 몸엔 검은 반점들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고, 그
정체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저주.
그것도 상당히 고농도의 저주.
만독불침의 경지에 다다른 누이만큼은 아니지만, 빅팀도 온갖 독과 저주
에 강한 내성을 지닌 일류 탱커일진대.
그런 그가 이렇게 사경을 헤맬 만큼의 저주라니.
기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건만.
저주의 주체를 잠시 상상해본 것만으로도 눈치 없이 서늘해지는 간담이
참으로 야속하기 그지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위독한 상태인 빅팀과 달리, 다우나의 몸에 스민 저주
는 그렇게 까지 심 각한 수준은 아니 었다.
필경, 빅팀이 몸을 날려 그녀를 지켜낸 덕분임이리라.
때아닌 호재 였다.
평범한 상처라면 또 몰라도, 몸에 침투한 질병이나 저주는, 한 번의 여러
사람을 동시에 치유해내기 버거우니까.
다우나도 빅 팀만큼 심각한 상태면 어쩌 나 했었는데.
다우나의 저주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빅팀의 저주를 치유하면서, 다우나
의 저주를 함께 치료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어, 어때나을수 있을거 같아?,,
"말시키지 마요. 지금한창집중중이니까."
그렇게, 아피스의 재촉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한창 기도에
매 진하고 있을 무렵.
지 당한 의 문 하나가 내 뇌 리를 스쳤다.
오늘분의 기도는 분명, 아피스의 부러진 손을 치료할때, 이미 사용했었던
것같은••••.
..으윽!..
"비, 빅팀!,,
"빅팀! 괜찮으세….,,
바로 그때였다.
머릿속의 의문이 채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검은 얼룩에 뒤덮인 빅팀이 미
간을 찡그리며, 고통의 기색이 역력한 신음을 게웠고.
기억 속의 언젠가를 상기시키는 그 낯 익은 광경이 망각의 늪에 묻어두었
던 무거운 과거 한구절을 내 망막에 들이밀었다.
■너 누구야! 내 동생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기도는 고사하고, 한순간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비전이 미간을 꿰뚫고
지나갔으나.
머리를좌우로흔들어 대며, 내 상념에 뒤엉킨 억센 잡념을 거칠게 떨쳐냈
다.
"누, 누나가… •.
fI
"비, 빅팀! 너 괜찮아!? 정신이 좀들어!?,,
"빅팀 ! 말 안 해도 돼요! 아니, 말하지 마세요!,,
그 순간, 정신을 되찾은 빅팀이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누나….누나가아직 안에 있어….,,
그 직후였다.
황망한 내 시선이 검은 기둥 쪽을 향하게 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