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64화 > 방가방가 햄토리
"지금 제정신입니까!?,,
별안간 터져 나온 벨테인의 노성이 아피스를 향했다.
'■레이지스 사제님이 미등록 던전에 홀로 돌입하게 그냥 놔두시다니요!
사제님에게 그럴만한 역량이 없단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은! 아피스님!
다름 아닌 당신이지 않습니까!,
그 절절한 탄원에 범상치 않은 상념이 내리 담겨 있다는 건 명명백백해 보
였다.
하지만, 그 난색 어린 목소리로부터 등을 진 채 저 자신의 장비를 담담히
손질하고 있는 아피스는, 그러한 문책 에 대꾸할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 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사제님을 구출할 방도를 모색해야만 합니
다! 아피스님! 이 제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던전을 공략해낸 당신이라면! 용
사 파티의 일원이신 당신이라면! 모종의 비책을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
"아피스님!!!,,
불과 조금 전까지 미치도록 두려워하던 인물을 향해 내지른 것이라곤, 도
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의 표독한태도였다.
그녀의 그러한 태도의 변화가 어떠한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진, 그녀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재해에 휘말린 것이니까.
자신의 관할하의 인물을 죽게 내버려 둘 낼 순 없는 노릇이 었으니 까.
그는 성녀의 정신을 안정화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존재니까.
적당한 구실을 가져다 붙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었지 만.
벨테인의 자의식은, 그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명명하는 걸 무의식적으
로금하고 있었다.
"아피 스님 은 레 이 지 스 사제 님 이 걱 정되 지도 않으신 겁 니 까!,,
얼핏, 원망처럼도 들리는 애달픈 질책.
그 직후, 검은 기둥을 지그시 바라보며, 고요히 침묵을 지키고만 있던 아피
스가 처음으로 무거운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석은 올 거야.,,
그 파문 없는 호수를 보고 있는 듯한 차분한 어조로부턴, 여태껏 그녀가
두르고 있던 격정적인 인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그 녀석은 얼간이긴 해도, 머저리는 아니거든. 믿는 구석 없이 저런 무모
한 짓거리를 자행할 만큼의 배짱도 없어. 지 몸을 첫 손주 다루듯 애지중지해
대는 나약해빠진 놈이니까.,,
"그게…•대체 무슨…•."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으면, 조만간 몸 멀쩡히 살아 돌아올 거야. 그 녀석
은.
II
"그걸! 그걸 어떻게 장담하실 수 있죠!?,,
"안 오면 내 손에 죽을 테니까.,,
I
말 같지도 않은 궤변. 공염불. 헛소리였다.
그 기본적 인 정 합성조차도 갖추지 못한 해괴 한 논리 는, 매 사를 합리 적 인
소견으로 바라보는 벨테인에게 있어, 그 의도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말이었
다.
그렇기에.
저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한벨테인이 별안간 거친 짜증을 짓씹게 되는 건
별수 없는 일이 었다.
”알았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더 이상 아피스님에겐 도움을 바라지 않겠
습니다! 결례를 끼쳐드려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드물게 목청껏 역정을 낸 벨테인이 아피스로부터 신경질적으로 등을 돌렸
고.
그 다소는 무례하다고 느껴도 이상하지 않을 거동에도, 아피스의 시선은
여전히 검은 기둥 쪽을 향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
교황청에 재직 중인 다른수호사제들애게 도움을요청하기 위해.
수도원이 있는 방향 쪽으로 다급히 비틀린 벨테인의 걸음이, 포악한 맹수
를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레 멈칫거렸다.
"어, 어어?"
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 음절의 긴장된 호흡.
하지 만, 그 불안한 울림 에 경 악의 감정 이 가득 스며들어 있다는 건 의 심 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벨테인이 한차례 눈을 비볐다.
자신이 잘못본것일 수도 있으니까.그래야만했으니까.
다급히 눈가로 향한 손이 한 차례 시 야를 뭉뚱그린 그 찰나의 순간, 자신
앞에 예고 없이 도래한 그 신기루 같은 인영이 사라져 있기를, 벨테인은 간절
히 바라고 또 바랬다.
허나, 벨테인의 그 덧없는 비원은, 손을 치워낸 이후, 그녀의 시야가 켜켜
이 밝혀 지는 것과 동시 에 산산이 비 산하고야 말았다.
아련히 품었던 기대는 구체화되지 못했고, 한사코 부정하고팠던 현실은
희끄무레한 망막에도 선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웅성웅성.
거센 감탄과 경 악으로 얼룩진 행 인들의 목소리 가 가뜩이 나 번잡한 벨테
인의 마음을 재차휘저어 댔다.
틀림없었다. 그녀였다.
더 이상의 현실도피는 용납되 지 않았다.
저 숭고한 자태를. 고결한 기품을. 거룩한풍모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인 벨테인이 몰라볼 리는 없
었으니까.
"어, 어째서…•!"
모골이 송연함을 감춰 낼 수 없는 자태로, 벨테인이 저 자신의 전방을 향
해 흉급한 물음을 던졌다.
그목소리엔 책망의 기색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알현실에서 단 한 발짝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 사가 새 겨 질 정도로 폐 쇄 적 인 성 미 를 자랑하는 그녀 가.
제 발로 이곳까지 찾아왔을 린 없을 것이기에.
그녀의 바로 뒤에 선 채,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는 참으로 낯익은 사내.
지금의 참사를 불러일으킨 가장유력한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을 향해, 벨
테인이 원망 어린 눈초리를 쏘아붙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수순이었다.
"로벨 사제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정합한허가도 없이 저분을 알현
실 바깥으로 함부로 출외시키시다니요! 하물며 이곳은 던전의 도처란 말입
니다! 이 정도 수준의 불경이라면! 아무리 로벨 사제님이라고 해도! 종교재
판을 생 략하고서, 그 즉시 목이 날아가도 이 상하지 않다는 걸 모르시는 건가
요!"
"죄, 죄 송합니 다. 수녀님! 하, 하지 만!,,
벨테인의 거센 다그침에 어깨를 움찔거린 로벨이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성량으로 반론을 읊조리려 하고 있었다.
그 부박한 몰골은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고양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퍽 가엽게 보이기도 했으나.
그러한 애처롭기 그지없는 거동조차도, 지금의 벨테인에겐 화를 돋우는
장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자고 성녀님을 이곳까지 모시고 온 겁니까!"
언어의 예리함이 존재한다면, 그 날카로움은 기요틴에 필적할 것이 분명
했다.
그 증거로, 벨테인의 힐난을 정면에서 듣고 있는 로벨 사제의 표정은, 사형
을 선고 받은 죄수의 얼굴처 럼, 시시 각각 창백해 지고 있었으니 까.
”죄 , 죄 송합니 다! 수녀 님 ! 저도 저의 이 러 한 행위 가 결코 용서 받지 못할
불경한 행위라는 건 당연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 하지만彆 • • •. 서,
성녀님 •.... 성녀님이 ••••!"
'■구차한 변명 듣기 싫습니다! 저지른 불경에 대한 감형을 바라신다면! 지
금 당장 성녀님을 알현실로 다시 모시고 가도록 하• •• •."
화살비와 같은 말을 늘어놓던 벨테인이 돌연 말문을 멈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 표정 자체는 언제나처럼 덤덤하고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먹 이를 한계 까지 입 에 욱여넣은 햄스터처럼 , 한껏 부풀어 오른 그 볼따구
니 만 놓고 보더 라도, 성 녀의 지 금 심 기 가 무지 막지 하게 불편한 상태 라는 건
일목요연해 보였으니까.
'흐응!"
"서, 성녀님?,,
바로 그때였다.
성큼성큼, 눈앞의 검은 기둥 쪽으로 씩씩거리는 발걸음으로 전진해나가
는성녀.
그 경악스러운 거동에 기겁을 한벨테인이, 그 당찬진격 저지해내기 위해
다급히 몸을 날렸으나.
"성녀님一!,,
참으로 애석하게도, 뻗어나간 벨테인의 팔이 성녀에게 닿은 건.
성녀의 새하얀손이 검은 기둥에 맞닿은, 바로그 직후였다.
碢碢碢
그래. 이쯤되면 인정해야겠지.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라며, 스스로의 인간성을 자조할 만큼의 유별난 삶을 살아오진 않았고.
생애 단한점의 후회도없다.
라며, 하늘을 향해 떵떵 거릴 만큼 명예로운 삶을 살아오지도 못했지만.
자신이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탄한 삶 정도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그런 안일한 판단을 내렸던 나 자신의 어 리숙함을 정정해 야만 한다는 걸.
"그다음은요! 그다음은요!"
”이 , 이 따금 머 리 카락을 정돈할 때 드러 나는 • • • • . 새 , 새하얀 목덜미 라든
가. • • • j
"그다음은요! 그다음은요!"
'■더, 더요? 어, 으음. 아! 그, 그래! 그, 근육이 적당히 붙은 다, 다부진 각선
미가참매력적인 것 같다고! 새,생각했습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은요!"
"예 ? 어, 그, 그게 • • • • . 어, 음, 보, 복근? 이, 이 따금 배 가 드러날 때마다 보
이는 희미한복근이 참으로 과, 관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오! 과연 그렇군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지 않을까.
원체 지은 죄 가 많은 삶이 었는지 라, 곱게 죽을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생 각지
않았지만.
아직 몸이 살아 숨 쉬는 상태로 지옥을 사전 답사하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못했는데.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싶었다.
"요, 용사님 ••••.이쯤되면 충분하지 않을까彆 •••요… 彆 ?"
”어? 더, 더는 없는 것입니까 • •••? 신부님이 제게 느끼는 성적인 매력은
겨우그정도가짓수밖엔 되지 않는겁니까• • 彆?"
'■아, 아뇨! 사실 아직도 많이 있어요! 으, 음! 아, 그, 그게 ! 어음, 書분 정도
생각을 시 간을 좀 주실 수 있나요? 용사님 ?"
"핫! 물론이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 저좀 살려주세요.
아니, 차라리 죽여주세요.
내 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 인이 라는 건 충분히 자각하고 있지 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조카뻘 되는 일면식 있는 소녀를 향해.
그 인물이 얼마나 성적으로 매력적인지에 대한 말을 쉼 없이 늘어놓는다
는건.
한낱 필멸자에게 부과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이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고통과 비애만이 가득 들어찬 상념 속에 누군가를 향한 건지도 불분명한
구조 요청이 아련히 울려 퍼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
"헛!,,
쩌적. 쩌저적.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던전의 붕괴 가 갑작스레 가속화 됐다.
이를테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모래성에 누군가가 물을 부어 넣은 듯
한인위적인느낌.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 이질적인 감각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낯익음
을느끼고 있었다.
데자뷰인가.
아니, 아니다.
그 정체까지는 확언할 순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단언할 순 있었다.
난 이 감각을 이전에도 분명히 경험해본 바가분명히 있다.
"서,성녀님•…?"
직감이 아닌, 육감.
내 가 말해놓고도 내 가 놀랐을 만큼, 의식적인 무언가로 분류할 수 있는 게
아닌, 몸에 스며있는무형의 본능이 내게 무언가를 경종하고 있었다.
바로, 그 직후였다.
붕괴되고 있던 던전이 거센 바람 앞에 흩어지는 안개처럼, 그 형체를 천천
히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현실과 어긋나 있던 공간도 그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본래의 형상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을 무렵.
"우응!
II
볼을 성난햄스터처럼 부풀린 성녀님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갑작스레 우
리들 앞에 홀연히 그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