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69화〉담배
자고로 번듯한 성 인이라면, 미성년자 앞에서만큼은 반드시 삼가야만 하
는행동이 더러 있을 것이다.
부부라면 부부싸움. 교사라면 도가 지 나친 체벌. 대학생 이 라면 과도한 음
주가 이에 해당하겠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금기시해야 하는 행위를 누가 내게
질문한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이리 답할터였다.
흡연이라고.
"딱한개비만이에요…
…."
"네!,,
착잡한 심 정으로 떠듬떠듬 담뱃잎을 말고 있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초리
로 바라보고 있는 용사님 .
저 순진무구한눈망울에 우악스러운 기대감이 한 아름 내리 담겨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 세계의 기준에서 보면 어엿한성인일지 모르나.
아직 이전 세계의 가치관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 내 기준에선, 소녀라고
불러 마땅한 나이대인 용사님 앞에서.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폈는지도 가물가물한 담배를 손수 제조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용사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다른 걸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 彆 •
"그, 그런! 약조하셨잖습니까!"
"아니, 제가담배 피는모습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러세요.곰곰이 잘
생각해 봐요. 용사님한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 오늘 저녁,
이 근방의 극장에서 다함께 연극이라도보러 가는 건 어때요?,,
"그러는 게! 그러는 게 어딨습니까! 부당합니다! 부당한 처사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건 연극이 아니라, 신부님 이 담배를 입 에 무신 모습이 란 말입 니 다
! 더군다나 단둘이서가 아니라 다 함께라니! 논할 가치조차도 없습니다!,,
낙망 어린 애달픈 목소리가 연신 내 마음을 들쑤셔 댔다.
줬다 뺐는 게 얼마나 극악무도한 소행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 만.
내 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일선이 라는 게 있었기 에 . 그녀를 회 유하고자 하는
시도를 쉬 이 단념할 순 없는 노릇이 었다.
내게 몸의 자유를 허하는 걸 대가로 용사님이 내게 요구한 건, 내가 흡연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용사님이 이러한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긴 했다.
내가소싯적에 골초였다는 사실을 용사님에게 고백했던 그날이후.
혹시, 그 당시의 사진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어떤 종류의 담배를 피웠던
것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찰거머리처럼 내게 달라붙어 끝이 보이지 않는 질문 공세를 던져대던 용
사님은, 머지 않아, 내 게 흡연하는 모습을 직접 피로해 달라고 졸라대 기에 이
르렀다.
아무래도, 내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걸 본 사람은, 적어도 이곳 수도원
에선 단 한 명도 없으리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해버린
모양인 것 같다만.
사태가이 지경이 될 것이라곤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로선,그저 머리가 아
플 따름이었다.
”제 마음을 이렇게 달아오르게 만들어놓고서 그걸 책임져주지 않으시다
니 ! 너무 잔인하십니다! 저를 가지고 노신 겁니까! 신부님 !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놀아났다는 겁니까!,,
"제가졌습니다.해드릴 테니.제발목소리 좀줄여 주세요.,,
고의성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갑절은 더 악질적인 용사님의 우
렁찬 협박은 내 결연한 의 지를 무너뜨리 기 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 우람한외압에 보기 좋게 굴복해버린 지금의 내겐, 눈앞의 담
배 키트를 조용히 집어 드는 것 말곤, 달리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아, 이 퀴퀴하면서도 가벼운 감각.도대체 몇 년 만인지.
”제가 예전에 쓰던 브랜드의 수제 담배 키트는 또 어디서 공수해 오신 건
가요• • • •. 이거 한참전에 단종되서 지금은구하기 힘든 걸 텐데 • • …."
”제 수발 역을 도맡은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리니 ! 하루 만에 공수해주
셨습니다!"
"아…•."
제도 최강의 존재가 해맑게 건넨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졸지에 스테
반제반니가되어야만 했던 시종인들의 노고를치하하기 위해 잠시 묵념했
다.
"나 참. ....
"오오! 과연!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군요!,,
사제복을 입은 채로 미성년자 앞에서 담배를 제조하고 있자니, 가뜩이나
숙취 때문에 어지러운 머리가 더더욱 지끈거렸다.
끼리릭.
롤러에 필터와 담뱃잎을 올려놓고, 그 바로 아래에 종이를 집어넣어 그걸
둥글게 말았다.
요 몇 년간, 담배를 입에 물긴커녕, 그 연기 냄새를 맡아본 적조차 없었건
만.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능숙히 담배를 완성해가고 있는 손가락
을 보니, 아무래도 내 몸은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걸 계기로 이다음에 담배 같은 거 시작하고그러시면 절대 안됩니다.
아시겠죠?"
"염려 붙들어 매시기 바랍니다! 저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담배를 피우고
계신 신부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지! 담배 그 자체가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지독하기 짝이 없는 걸 왜 입에 물지 못해 안달난사람들이 즐비한것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셔도될 거예요. 저는 내세울 만한 게 본
인 한숨 크기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거 라도 주위 에 자랑하고픈 마음에 뻑 뻑
피워대는 게 담배라고 보거든요."
"흠? 잘은 모르겠지 만, 날이 추운 날 무심코 입김을 불어보고 싶어지는 것
과비슷한 이치인 겁니까?,,
"하하, 정확히 보셨어요."
"오오! 과연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신부님! 신부님이 담배 피시는모
습은 그 성녀님조차도 보신적 없다는 말! 그게 정녕 사실입니까!,,
■■네 ..... 그렇긴 하죠.... 彆 ? 애초에 사제복을 입게 된 날 이후론 이렇게
담배를 손에 쥐어본 적조차도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처음이군요! 제가! 제가바로신부님의 처음!헤,헤헤• 彆 - •."
혼기 놓친 아재비 가 담배 말고 있는 광경이 뭐 라 그리 재 밌다는 건지.
나로선 도저히 알 재간이 없는 이유로잔뜩 신이 난용사님이, 자신의 흥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따금 상반신을 깡총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할짝.
깔끔하게 말아 올려진 종이 의 끄트머 리 를 내 가 침으로 마감하자.
끼익하고서, 낡은 침대에 사람의 체중이 과하게 실렸을 때의 그특유의 잔
망스러운 잡음이 한 차례 귓가를 스쳐 지나갔고.
꿀꺽.
그 직후, 종이를 피고 접는 소리 만이 아련히 울려 퍼지 던 방 안에 , 난데 없이
떨어진 음험한 침음이 적막을 구가하고 있던 내 의식에 한톨의 불순물을 첨
가하기에 이르렀다.
"용사님?"
그 소리의 주체를 무심코 쫓은 내 시선이 포착한 건, 무르익은 단풍처럼 시
뻘게진 용사님의 얼굴이었다.
"아, 아으…•."
그 굽이 치는 파도처 럼 쉼 없이 흔들리 는 벽 안은 내 가 침을 발라 마감해놓
은 담배 쪽에 단단히 고정되 어 있었다.
'■아, 죄송해요. 용사님. 조금 지저분했죠? 이게 습관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동그랗게 말아놓은 담배를 접합하는데는 침만 한 게 없었다.
보통은 물풀 정도의 연한 접착제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라곤 하나, 담배
의 좋지 못한 냄새 가 밸 수 있기도 하고, 또 적잖이 귀찮기도 했기에.
나는 수제 담배를 말 때마다, 늘 이렇게 침을 발라 마감하곤 했다.
종이에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내 얼굴이 다른 이의 눈엔 상당히 꼴사납게
비치리란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너무 오랜만에 담배를 말아본 탓이었는지, 순간적으로 이 자리에 용사님
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I
1시,신부님 彆 彆 •••
II
..네?..
”시,실례가 안 된다면, 그 담배. 제가 딱 한 번만 입에 물어봐도 괜찮겠습
니까?,,
,,예?,,
그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은 당돌한 제 안은 내 상념 속에서 순식 간에 거대
한 폭풍으로 그 크기를 부풀려 나갔다.
'■안 돼요! 될 리가 없잖습니까! 담배 피우는 걸 보여주기로 한 것도, 그냥
보기만하신다길래, 많이 양보해서 허락해 드린 거잖아요!,,
”그, 그걸 좀 어떻게 ! 하, 한 번만!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냥 이로 살
짝 깨물어보기만 하겠습니 다!,,
"안돼요! 저도 이것만큼은 양보해 드릴 수 없습니다! 용사님이 담배를 입
에 무는 건,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용납못해 드려요!"
"그럼 하다못해! 끄, 끄트머 리 만! 끄트머 리 만 살짝 핥아보는 것도 어 떻 게
안됩니까!?,,
"용사님!!!"
그 간절함은 사막에서 조난 당한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
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좋습니다! 이로 물고! 혀로 핥는 것까진 바
라지도 않겠습니 다! 그 표면의 냄새를 한번 맡아보는 것 정도만 허락해주신
다면! 장차! 사회에 환원하기로했던 저의 전 재산을! 모두! 신부님께 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요, 용사님. 진정하세요!,,
"모자란다면 빅팀 것도 드리겠습니다!"
"!?"
쿠구궁!
바로 그때, 문 바깥에서 큼지막한 무언가가 바닥에 나자빠진 듯한 소음이
들려왔지만.
지금의 내겐, 그러한 쓰잘머리 없는 요소에 의식을 할애할 심적 여력은 남
아있지 않았다.
내 가 흡연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던 용사님 이, 나로선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담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현재 내 머릿속엔, 그녀로부터 이 담배를 떨어뜨려 놓아야한다는 숭고한
사명감 이외엔, 그 어떠한 감정의 미동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상대는 그 용사님. 힘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지금의 이 대치 구도가 성사되고 있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용사님 이
내게서 강제로 담배를 빼앗아 가는 행위를 주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
다.
하지만, 그러한 망설임 이 얼마나 더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는 일.
한시라도 빨리 결단을 끝마쳐내야만 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치익. 치익.
"아, 아아!!,,
신속히 성냥 불에 불을 붙인 뒤 , 급하게 입 에 문 담배 끝자락에 그 불길을
옮겨 담았다.
고작해 야 담뱃불에 불을 붙인 것뿐이 지 만.
지금 내 상념 속에서 일렁이는 달성감은, 신에게서 불을 찬탈했을 당시에
프로메테우스가 느꼈을 감격에 버금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흐읍!"
상당히 오랜만에, 그것도 굉장히 조급하게 폐부에 욱여넣은 담배연기는
무척이나독했다.
목이 익어버렸다고, 폐가그을려 버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
"콜록! 콜록!
때문에.
부박스러운 기침만을 연이어 반복하고 있던 당시의 나는 차마 알지 못했
다.
나와 용사님 이 나눴던 대화의 단편을 누군가가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