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70화〉저항
용사님이 담배에 손을 못 대게끔, 수중의 담배를 단숨에 빨아낸 것까진
좋았으나.
이는, 오랜 기간 흡연과 담을 쌓아온 내 깨끗한 폐에 가해지는 부담을 조
금도 생각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기에.
그 직후 한동안은 연이은 기침으로 헐떡 거리는 숨을 고르게 정돈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힘에 겨웠다.
"콜록! 콜록!"
"시, 신부님! 괜찮으십니까!,,
누군가가 불에 달군 날카로운 쇠 꼬챙 이를 내 목구멍 에 쑤셔 넣고서 , 그걸
쉼 없이 휘저어 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망각의 늪에 가라앉혀 놨던 화생방의 악몽이 바닷물 위의 부표처럼 두둥
실 뇌리에 떠오르려 했지만.
되새기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는 기억이 었기에. 머지않아 다시 가라앉혀
두기로 했다.
"죄송합니다.신부님.제가괜한말을해서.....아무리제가잠시 어떻게
됐나봅니다....."
"코, 콜록! 아뇨! 괜찮! 쿨럭 ! 크, 크흠! 괘, 괜찮아요.,,
용사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지막이 화답하며, 절반 정도 타오른 담배
끝자락에 켜켜이 얽혀있던 담뱃재를 가볍게 털어냈다.
"재떨이 여기 있습니다!,,
"오, 가, 감사합니다.,,
바닥에 대충 떨어뜨려 놓을 심산이었던 담뱃재는 용사님이 부리나케
내게 건넨 재떨이 위에 정확히 안착했다.
앳된 여성에게 담배 시중을 받는 사제복 입은 성인.
그 모양새부터가 영 아니올시다 싶은 그림이 담배 연기에 결코 뒤지지 않
는 매캐한풍랑을 내 상념 속에 휘몰아치게끔하고 있었지만.
내 눈을 바라보는 용사님의 눈빛이 너무나도 초롱초롱했기에.
그 순진무구한 호의를 나는 차마 마다하지 못했다.
"용사님.이제 아셨죠?흡연은백해무익한행위라는걸요彆 彆 ••."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 넣은 채, 약지로 이마를 긁적이며 께느
른한 말을 읊조렸다.
불과조금 전에 담배를물마시듯원샷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던지
라, 그 문맥 이 지닌 설득력은 한없이 0에 수렴하고 있었지만.
원래 흡연가란 족속들은 하루에 서너 갑씩 연초를 태워대며, 비흡연가들
에겐 금연을 권고하는 모순의 덩어리 같은 존재들인지라.
그렇게까지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긴 했다.
너네는 이런 거 피지 마라.
나는 이런말절대안할줄 알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흡연가인 모양이 었다.
"네 !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침대 위 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을 하늘 높이 번쩍 치켜든 용사
님이 내 말에 화답했다.
그 빠릿빠릿한 모습은 선생님 께 질문거리 가 있는 우등생을 보고 있는 것
만 같아, 무심코 흐뭇한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한창 훈계를 하고 있는 도중, 웃음으로 분위 기를 흐리는 건 조금 아닌 것
같았기에. 엄숙한 기침으로 흐름을 바로잡았다.
"크, 크흠! 공기 가 좀 탁하네요. 창문 좀 열까요? 용사님 ?"
"헛! 네! 제가 열어두겠습니다!,,
사제복 목 단추를 몇 개 풀어헤친 뒤, 그 일대에 손가락을 두 개 집어넣는
것으로 숨통을 확보했다.
■■후우.... ;■
내 뱉은 숨에 흐리 터분한 불순물이 스며 있는 듯한 이 꺼 림 칙한 감각.
몸에도 나쁘고 기분도 언짢아지는 이걸, 소싯적에 나는 뭐 가 좋다고 그리
입 에 물고 다녔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었다.
아니,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론 모른 척하고 싶다는 게 보다
마땅한 표현 이 리 라.
그래, 내게도 있었다.
한 손에 담배를 쥐고서 창가에 걸터앉은 채,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아득
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저 자신이 조금 멋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단단히 미쳐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불킥은 고사하고, 칼로 이불을 난도질해도 모자
랄 판국인 흑역사였지 만.
그 수치스러운 과거를 끊어내고픈 거센 열망 덕분에 자제력 이 바닥을 기
는 내가금연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어두운 역사를 지워버리고픈 인간은 때론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
하기도 한다는 걸 내가 처음 깨닫게 된 것도, 아마 그 무렵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훗."
그렇게, 그 부박한 여정에 작별을 고하듯, 흐릿한 조소와 함께 마지막 한
모금을 태 우려 할 무렵 이 었다.
"용사님?"
닫혀있는 창문 손잡이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고개만 내 쪽으로 부자연
스럽게 비틀려 있는 용사님과 별안간 눈이 마주쳤다.
그 기 이한 자세는 목 관절만 옆으로 돌려놓은 인형을 보고 있는 듯했지 만.
최고 순도의 사파이어가 길가의 돌멩이처럼 보일 정도의 찬연함을 발하
는 그 은혜로운 벽안 속에, 모종의 거대한 열망이 깃들어 있다는 건 명명백백
해보였기에.
지금의 그녀를 무감정한 인형이라고 지칭하는 건 다소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었다.
성큼성큼.
바로 그때, 고기 냄새에 이끌린 늑대를 연상케 하는 위협적인 걸음걸이로
용사님이 내 쪽으로 차근히 거리를좁혀왔다.
■■용사. 彆 ..니... .?"
무심 결에 흘러나온 외 마디 에 도 일 언반구의 대 구조차 없이 , 머 지 않아 용
사님은 양손으로 내 양팔을붙잡아, 내 몸을 침대 위에 거칠게 눕혀버렸다.
풀썩.
그 일련의 움직 임은 슬로우 모션 화면을 보고 있기 라도 한 듯, 무척 이 나 굼
뜨고 느릿느릿했지 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용사님이 내게 해를 가할 리 없다는 만용이 내 위
기의식을 해이하게 만들어버린 탓이었을까.
정신을차렸을때 이미 내 몸은, 내 허리 위에 올라타, 내 양팔을침대 위에
단단히 고정해버린 용사님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서로의 호흡이 맞닿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진 덕분에. 폭우가 내리치고 있
는 호수처럼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는 그 푸른 망막이 무엇을 쫓고 있는지
명확히 알수 있었다.
땀에 젖은 내 얼굴.
쇄골이 훤히 드러난내 목 둔덕.
밀어 올려진 상의 틈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단단한 살결.
눈동자에 내리 담긴 경치가 난잡하게 뒤바뀌고 있는 용사님의 그 모습은,
채널 변경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댔을 때의 티비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11 헛! 죄, 죄송! 죄송합니다! 신부님! 저, 저도 저도 모르게 그만! 지, 지금
당장 비키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뒤늦게 제정신이 되돌아온듯한용사님이 동요의 기색이 역력한 말을 짓
씹으며, 별안간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 만 어찌 된 영문인지 , 내 몸을 죄 어오는 힘은 약해지 기는커녕, 오히 려
점점 강해져만 가고 있었다.
"어? 지, 지금! 지금 비키도록하겠습니다! 어, 어라? 어라라?,,
내 몸에서 내려오기 위함인지, 이따금용사님이 내 허리 위에서 저 자신의
몸을 토끼 처 럼 깡총거 렸지 만.
용사님의 두 팔은 그런 몸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여전히 내 양 손목
에 딱 달라붙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끼익끼익.
연이 어 새 어 나오는 가쁜 호흡이 낡은 침 대 가 몸을 뒤 채는 음험한 소리와
뒤섞이자, 머릿속에서 해선 안 되는 상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떠올라 가히 죽
을 맛이었다.
"용사님! 억지로 떨어지려고 안하셔도 괜찮으니까! 일단, 몸을! 몸을 가만
히 좀 내버려 두세요!,,
"죄, 죄송! 죄송합니다!,,
만약, 자기 몸을 조종하는 리모컨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용사
님과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움텄다.
내 옆구리에 딱 달라붙은 오동통한 허벅지로부터 손난로를 연상케 하는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콧잔등을 간질이는 여체 특유의 달콤한 체향은 마치 내 안에 자리한 원초
적인 무언가를 고의적으로 도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I
'후우••••.
II
입 안에 감도는 담배 연기를 짓씹으며, 한 차례 마음을 비워냈다.
견습 사제 시절 피나는 노력으로 터득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비법. 더욱이,
성녀님의 성희롱에 시달린 지난고행이 빛을 발한순간이었다.
"용사님••••.괜찮으세요 ••••?"
"죄 , 죄송, 죄송합니 다. 신부님. 신부님 이 담배를 입에 물며 뇌쇄적인 숨을
내쉬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난 이후, 갑자기!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됐습니다!,,
••••예?,,
"그렇군요! 지금 깨달았습니다! 신부님이 여태껏 흡연을 봉인하셨던 이유
는! 신부님의 마성적인 매력으로부터 순진한 아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
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로군요! 역시!,,
"••••"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의 본능이 머리의 판단보다 앞서 나가는 용사님이 이따금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건 잊을 만하면 보아오긴 했다만.
이렇게, 논리의 근간부터가 부실한 비약투성이의 궤변을 당당히 늘어놓
는 건 무척 이 나 드문 일 이 었으니 까.
그러고 보니, 내 행방을 찾는 수배지에 내가 순진한 아녀자들을 유혹하고
다닌다는 얼토당토않은 유언비 어를 적 어놓은 게 다름아닌 이 사람이 였지.
"걱정 붙들어 매시기 바랍니다! 신부님 ! 이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제 비상
한 머리가 지금 막 생각해냈으니까요! 자! 제 몸의 안위 같은 건 상관 마시고
! 마음껏 몸부림쳐 저를 떨쳐내시길 바랍니다! 제가 저의 음험한욕망을 다
분히 억누르고 있는! 바로 지금이 기회입니다!,,
"용사님 • 彆 • •.용사님이 제 몸을 이렇게 꽉붙들고있는데,제가 어떻게 움
직여요. • ..."
"으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지금 들이고 있는 힘은 평상시의 반의반도
쓰지 않는 미약한 힘이기에! 신부님이 전력을 다하신다면 충분히 떨쳐내실
수 있을겁니다!,,
”거기서 반이 더 줄어도 못 벗어난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 용사님. 제
가힘으로 용사님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 ••? 장난그만하시고 빨리 비켜주
세요. 혼자서 못 하시겠으면 바깥에서 망보는 빅팀 이라도 불러주시든가요
• • • • 11
,,예?,,
내 꼴사나운항복선언이 상당히 의아하다는듯,돌연 용사님이 고개를 갸
우뚱거렸다.
"그럼. . . •.그럼 이게 정녕,신부님의 전력이란말입니까. •••?',
"네.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 조촐한 게 저의 전력이랍니 다. 불과 조금 전에
제 허리 붙들고 보채셨을 때, 못 느끼셨어요?"
"저, 저는! 신부님이 제가부리는 억지에 어울려주시는줄로만 알고!,,
"아••••;■
아무래도 용사님은 지금 이때까지 내 역량을 잘못 판가름 하고 있는 모양
인듯했다.
어쩐지, 여태껏 함께해온 훈련의 강도가 심상치 않더라니.
필경, 내가 연약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 일 줄은 꿈에도 몰
랐던걸 테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태산만 한 용이 개미가 뭘 얼마나 들어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걸 판가
름하는 건, 판독하기도 힘들고, 구태여 판독할 필요도 없는 쓰잘머리 없는 행
위일 테니까.
"아, 안됩니다. 신부님. 지금당장저항••••.저항하셔야합니다彆 •••."
"그러니까, 이게 제 최선이라고 몇번이나• • • •.요, 용사님•彆 ••?"
꽈악.
바로 그 직후였다.
내 손목을움켜쥐고 있던 용사님의 힘이 한차례 그크기를 부풀렸고.
먹잇감을 얽어매는 거미줄을 연상케 하는 검질긴 호흡이 내 목 둔덕에 살
스럽게 내려앉았다.
용사 (굓) 트리아나아비가일. 18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