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먼치킨 칼잡이-86화 (86/90)

秦 86화 잦 축복받지 못하는 결혼식 (2)

"고마워 ! 덕분에 살았어! 총각!,,

"벼, 별말씀을요…•."

아무리 반쯤 끌려온 것이라곤 해도,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언

제까지고 죽상 쓰고 있을 순 없었기에 , 안간힘을 다해 입꼬리를 늘렸다.

피치 못할사정이 생겨 불참한목사님을 대신해, 자기 딸아이의 결혼식 주

례를 맡아달라는 아주머니의 뜬금없는 부탁.

처음엔 물론 거절하려고 했었다.

아무리 단골 가게 아주머니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성녀님을 동반한 상

태로 인파가북적이는 장소에 부주의하게 발을 들일 순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식장에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성녀님의 성화

를 나 혼자만의 힘 으로 막아내 기 엔 역 부족이 었다.

물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저항을 해봤지만, 거리 한복판에서

인식 저해 후드를훌러덩 벗어던지려 한성녀님의 초강수 앞에선 결국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지금의 내 겐 부탁받은 주례를 속전속결로 끝마치고 난 뒤 , 한시 라

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 말곤 마땅한선택지가 존재치 않았다.

'■걱정하지 마! 총각이 주례 서주는 동안, 총각 딸은 내가 잘 보고 있을 테

니까!,,

"딸아니라니까요. 彆 彆 •."

"아니긴 뭘 아니 야! 머리색부터 가 아주 그냥 총각을 쏙 빼닮았구먼 ! 총각

도 아주 사람이 못 됐다! 이렇게 귀 여운 딸내미 가 있었으면 진작 말을 좀

하지 ! 애 엄마는 누구야!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11하아. • • •."

성녀님을 무릎에 앉혀 놓은 채 끝없는 질문 공세로 날 괴롭히는 아주머니

가 오늘따라 유독 야속하게 느껴 졌고.

그런 내 모습을 연극 관람하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성녀님은 평소

보다 두 배는 더 얄밉게 보였다.

"자,그럼 오늘의 메인 게스트인 신랑신부께서 드디어 입장하십니다!"

바로 그때였다.

신랑 측의 지 인으로 추정되는 청년이 별안간 우렁차게 목을 울렸고, 그 맞

은 편에서 말끔한 차림의 두 남녀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자, 사사로운 잡담뿐

이 던 교회 가 순식 간에 떠 들썩 해 졌다.

불과 20명 남짓한 인원이었지만, 두 남녀의 행복한 미래를 염원하는 이들

의 마음이 한데 모인 이곳은 거대한 예식장이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소란스

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 총각! 빨리! 빨리!,,

애먼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땐 언제고, 다급히 내 등을 때리며 재촉하

는 아주머니를 뒤로한 채 떠듬떠듬 주례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제도의 결혼 절차는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미래를 약속한 뒤, 반지를 교환하고, 서로 입을 맞

추면, 그들의 앞날을 신의 대리인인 성직자가 신성력을 흩뿌리며 축복해주

는것이 사실상끝.

하지만 성직자의 축복을 받지 못한, 이른바 신의 눈 밖에 나버리게 된 부

부는 너 나 할 것 없이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풍조가 일파만파 퍼져있을 만

큼, 그러한 관례를 향한 제도 국민들의 믿음은 다소 지나치게 맹목적인 면이

없잖아 있었다.

때문에 제도의 수도 인근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겐 혼례를 올릴 때 설사 빚

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덕망 높은 성직자를 기용하려는 경향이 유

독 강했다.

당장 입에 풀칠할 돈도 없는 상인 부부가 무리해서 고위 성직자를

고용하려 했다가, 머지않아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는 참극이 이따금 신문에

도 게재되 기도 했고.

부부 사이가 틀어졌을 때, 그 원인을 식을 올렸을 당시 축복을 내린 성직자

의 덕망이 부족했던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성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력을 갖춘 부유층들에게나 해

당되는 사항.

제도 국민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들에겐 그러한 관례를 따라갈

이유도 그럴 여유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성직자의 구색만 갖춘주례자를초빙하고, 수십 명 정도의

지인들만불러 조촐하게 치르는 게 제도의 서민층들의 일반적인 결혼식 풍

경이었다.

크흠!,,

주례석에 올라선 뒤, 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신랑 신부와 한 차례 눈인

사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사제 수행 때 질리도록 외운 주례문을 내가 이제 막 읊으려 할 무

렵이었다.

"그럼 우선 혼인 서 약과 서 약 선언문부터 ••••."

"그런 것 됐고! 일단 키스부터 합시다!,,

옳소! 옳소!,,

”• • • •”

예정된 절차에 갑작스레 반기를든 객원들의 거센 성원에 잠시 말문이 막

혔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 었다.

절차에 목을 매는 게 일상인 귀족들의 결혼식과는 달리, 그러한 구구절

절한 관례를 달갑지 않아 하는 서민들의 결혼식은 예정된 수순대로 진행되

는 경우가오히려 더 드물었으니까.

슬쩍 관객석으로 시선을 흘기니, 날 초빙해온 아주머니도 그러한 객원들

의 성원을 만류하기는커녕, 꾸물대지 말고 냉큼 하라며 그들의 말에 격하게

동조하고 있었다.

주변인들의 짓궂은 성원에 조금은 난처해할 법도 한데, 못 말리겠다는 듯

이 멋쩍게 웃어 보이고 마는 부부도 내심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인

걸로 보였다.

"푸하하."

작은교회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웃음의 너울.

귀족들의 엄숙한 결혼식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 특유의 정겨운 분위 기는

성가신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만의 전유물일 테지.

솔직히 나도 이쪽이 더 성미에 맞았다.

그렇기 에 머 릿속에 떠 오르는 복잡한 주도문과 늘 몸에 두르고 있던 체 면

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런저런 복잡한 절차는 모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 다!"

"오오!"

주례석 책상을 힘차게 붙잡은 내 가 별안간 언성을 높이자, 안 그래도

부산스러웠던 분위 기 가 한층 더 달아올랐다.

"어떠신가요! 신부!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네! 사랑합니다!,,

"신랑쪽은 어떠신가요? 신부를 사랑하십니까?"

"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그럼 냉큼 반지 교환하고! 입술부터 박읍시다!,,

"크하하! 저 사제 양반이 뭘 좀 아는 친구네!"

익숙하지 않은 고성이 가뜩이나 기아 상태인 내 체력을 급격히 소진시

키고 있었지만, 이편이 결혼식을 보다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란 건 분명

해 보였기에, 단전에 끌어모은 힘을 계속해서 입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한껏 달아오른 객원들의 열기를 추진력 삼은 결혼식이 반지 교환

과 풋풋한 입맞춤을 거쳐, 기분 좋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 무렵이었다.

"오빠."

추운 겨울날 꽁꽁 싸맨 두꺼운 옷자락에 서슴없이 들어오는 차가운 손 같

은 목소리 가 예고 없이 내 심장을 움켜쥐 었다.

내 입으론 수없이 자처했었으나, 그녀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

던호칭.

그 낯익으면서도 낯선 울림이 들려온 방향 쪽으로 내 고개 가 서서히 비틀

려 갔고, 그 서늘한 숨결이 내 바로 코앞에서 나부끼고 있다는 걸 내가

깨닫게 된 건.

불과 조금 전까지 귓가를 들쑤시던 주변 소음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서서

히 그쳐가듯, 점차 잠잠해지고 있음을 뒤늦게 체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서,성녀님•…?"

그녀의 정체를 은폐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해버린 채, 우둔히 그 고명

한 명칭을 호명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별안간 잔치를 벌이고 있는 객원들은 그런 충

격적인 사실이 내 입에서 짓씹여졌음에도, 이쪽을 쳐다보긴 보긴커녕, 이곳

에 흥을 돋우는 데만 심취해 있었다.

마치 내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을, 아니, 나와성녀님의 존재 그자체를 인식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저벅저벅.

이윽고, 내게로 거리를좁혀오는 성녀님이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인식

저해 로브를 천천히 벗었다.

내게서 뺏어간반지함을 손에 쥔 채 입가에 만면의 미소까지 겸비한그모

습은도저히 나와 같은세계를 살아가는 이의 것이라곤 도저히 생각할수 없

는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끌어안고 있었다.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산들바람에 아주 살짝 흔들린 그 새하얀 머리

카락.

그 끝자락은 청 아한 하늘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 언젠가용사님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물들어버렸던 바로 그때처

럼.

싱긋.

그녀가.성녀님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 직후, 퀴퀴한 먼지로 뒤덮여 있던 옛 기억 하나가물에 푼 한 방울의 물

감처럼 갑작스레 뇌리에 번졌다.

왜일까.

왜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걸까.

나는 저 단아한 미소를 일전에 본 기억이 있었다는걸.

나와 그녀는 과거에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는걸.

하나의 사건으로서 성립될 만큼 극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망

각의 늪에 무성의하게 내던져 놓아도될 만큼 볼품없는 기억은 결코 아니었

을텐데.

하지만 그러한 내 의구심은 온전히 끝맺음 되지 못했다.

내 입술 마디에 내려앉은부드러운 감촉이 내 몸에서 영혼을 뿌리 뽑아버

렸기 때문이었다.

"서, 성녀님! 아, 안됐! 으급!,,

반론을 거론하려 한 내 입술을 틀어막은 건 다른 누군가의 여리여리한 입

술이었다.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한 감촉.

그 아찔한황홀경 속으로 켜켜이 가라앉아가던 내 의식이 재점등된 건.

콰앙

의식 바깥쪽에서 들려온 심상치 않은 폭음과.

"신부님一!,,

나를 부르짖는 용사님의 다급한 목소리 가 죽어 가는 이의 단말마처 럼 울

려 퍼진 이후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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