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장. 운명(3)
인어는 달빛 아래에서 살아간다.
캄캄한 바다에서도 빛을 잃지 않기 위해 인어들은 반드시 달빛이 필요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인어는 달빛을 받지 못하면 물속에서 살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검은 사냥개들에 의해 영원한 어둠에 잠겼다.
뭍으로 올라오는 그 순간을 노리는 사냥개들 때문에 물 밖 세상은 더 이상 욕심내지 못하고 물속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우리를 그렇게 만든 그 개자식이 있었다.
“으윽!”
단숨에 제압당해 끌려온 곳은 광장과 한참 떨어진 성벽 밖 외부 숲속이었다.
레온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검은 투구를 뒤집어쓴 자에게 쭉 목숨을 위협받았다.
‘…사냥개가 분명해.’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 투구로 얼굴을 가렸다.
걸어오는 동안 이곳저곳에 여린 살이 검에 베였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검 아래 생명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조금도 망설임 없는 거친 손길은 분명 사냥개의 것과 같았다.
“쥐새끼처럼 숨어들기엔 너무 고귀한 분이 아니던가, 레온?”
사냥개가 거칠게 등을 떠밀었다.
물기 가득한 흙바닥 위에 나뒹군 레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끌려오기 전 머리를 얻어맞아 이미 눈앞이 흐릿했다.
“…너야말로 날 함부로 대하기엔 이곳을 찾은 목적이 분명할 텐데.”
레온이 입가를 닦았다. 새하얀 손등 위에 아직 굳지 못한 피가 묻어났다.
“내 탄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으로 온 주제에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고.”
태양의 절기엔 어둠마저 어둡지 못하다. 숲속 한가운데서도 검은 투구의 사냥개가 정확히 보였다.
레온이 형형한 푸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당장 그 목을 뒤틀어 사냥당하는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여길 빠져나가야 돼.’
살아야 했다.
지금 죽어버리면 검은 사냥개들을 놓치고 말 것이다. 하다못해 이건 기억하고 있는 미래마저 변하게 되는 일이었다.
시간을 번다면 오래지 않아 침묵의 기사단이 폰네시 곳곳을 수색할 가능성이 컸다.
메리가 여태 돌아오지 않는 공자를 걱정하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뭐?”
“네가 여기서 죽는다면 그 누구도 내가 한 짓인지 모를 텐데.”
다만, 사냥개는 동참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가 손에 쥔 검을 제대로 내뻗었다.
녀석에겐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목적이 분명했다.
“너… 애초에 나를 죽이러 왔나?”
이야기를 엿들어서 죽이려는 게 아니다. 저놈은 처음부터 날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알고 있다니 성가시지 않겠군.”
그는 암살자였다. 폰네시의 후계자를 죽이기 위해 데로니스에서 보낸 암살자.
레온은 점점 다가오는 사냥개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한 걸음 멀어질수록 몇 배나 가까워지는 놈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 아무도 네가 날 죽인 건 모르겠지.”
시간을 벌어야 돼.
“하지만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그 죗값은 반드시 데로니스가 치르게 될 거야.”
이곳은 폰네시다. 그리고 지금 이 동북부 드넓은 땅에 적군인 데로니스가 와 있었다.
“너희가 이 땅에 발을 들인 순간 내 죽음은 어차피 데로니스의 책임이 될 텐데.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중요한 건 누가 죽였느냐가 아니다. 개개인 한 사람이 책임을 지기엔 이 목숨 하나에 엮인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사냥개의 검이 턱 끝에 맞닿았다. 오히려 레온이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턱 밑을 깊게 가르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검날이 점차 거두어졌다.
“이 전쟁이 데로니스와 폰네시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폰네시에겐 타세트의 항해단이 있다. 그들과 함께라면 데로니스를 깨부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바다에 영영 파묻히고 싶지 않다면 썩 꺼져.”
검은 투구 안에 비친 녀석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바다라….”
잠시 두 눈을 크게 뜬 사냥개가 이내 크게 웃어댔다.
거목 사이에 울려 퍼지는 그 웃음소리가 레온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 너도 네 어미의 피를 이어 받았다 이건가?”
사냥개가 곧장 거두었던 검으로 레온의 목을 짓눌렀다.
날카로운 날에 점차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거 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자, 사냥개가 그런 레온의 뺨을 거칠게 내려쳤다.
힘에 못 이겨 흙바닥에 쓰러지자 그가 거대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근데 말이야. 그 잘난 네 어미가 결국 어떻게 됐지? 영면소에 가서 물어볼까, 레온?”
“…으윽!”
“라피스를 빼앗기고 어떻게 됐는지 정말 몰라서 까부는 거냐고.”
지금, 뭐라고.
레온이 사냥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피부를 파고드는 그 절박한 손길에도 녀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라피스를… 빼앗겨?’
짓누르는 힘에 질식하기 직전, 레온이 사냥개를 올려다봤다.
얼핏 비치는 눈동자엔 핏발 섞인 분노가 서려 있었다.
“궁금한가?”
대답해줄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검은 투구의 사냥개가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일리아를 만나면 직접 물어라.”
새카만 단검이 지체 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대로 심장에 깊게 박힌 단검이 주변을 모두 레온의 피로 물들였다.
“물론 내가 갈라놓은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암살자가 그대로 숲속을 빠져나갔다.
눈도 감지 못한 레온만을 홀로 내버려둔 채.
***
라피스는 인어의 영혼 조각.
인어의 완생을 통해 만들어진 라피스는 바다에 조각조각 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활력을 주었다.
다만 완생하지 못한, 강제로 생명이 끊어진 인어의 라피스는 축복일 수 없었다.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손에 넣어봤자 독이 될 뿐이다.
‘근데 공작 부인이 어떻게 라피스를 가지고 있던 거지?’
검은 사냥개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라피스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오직 그들만이 라피스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아무도 모르니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하지만.
‘어째서.’
일리아에게 라피스가 있었다. 빼앗기기 전 그녀가 어떻게 라피스를 손에 넣었던 걸까.
‘설마… 그 사람도?’
그 순간 고통이 밀려들었다.
심장부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컥컥, 기침을 내뱉으며 레온이 번쩍 두 눈을 떴다.
“나, …살았어?”
어두운 숲속에서 가쁜 숨을 들이마셨다.
꿈이 아니다. 손으로 더듬자 심장에 내리꽂힌 단검이 생생히 느껴졌다.
“…말도 안 돼.”
레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피를 울컥 토해내는 심장이 꿈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다시 눈을 떴는지 모르겠다. 되살아났다. 아니 애초에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어떻게 살아 있으며, 사냥개가 언급한 일리아의 라피스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잠깐, 라피스라면.”
레온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완생이 마무리되기 전 이곳에서 눈을 떴다.
물거품에 사로잡혀 영영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서 다시 깨어난 것이다.
“설마… 이 몸에 라피스가 있는 건가?”
인어의 영혼이 이 몸에 들어왔으니, 그 결정체인 라피스가 몸을 지키고 있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레브가 되살아난 거야. 내 영혼이 몸에 들어오는 바람에.
“…….”
레온은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해 난장판이 된 숲속을 둘러봤다.
어둠이 내려앉았고, 찬기가 맴돌았으며 레온의 정신은 아득했다.
검은 사냥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마 죽음을 확신하고 이곳을 빠져나간 듯했다.
‘그래, 이건 기회야.’
검은 사냥개들이 데로니스 세력에 숨어들었다.
그들 전부가 사냥개인지, 아니면 일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폰네시와 정반대의 세력이 수천 년의 증오를 담은 적군이란 것만은 확실했다.
“이대로 넋 놓고 죽을 날만 기다릴 순 없어.”
이제 후계식 날 살해당하기를 고대하고 있을 순 없다.
라피스를 훔쳐내는 검은 사냥개들을 철저히 찾아내 그들 모두를 죽여야 한다.
“미래가 바뀌어도 상관없어. 이대로라면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도 돼.”
내가 모조리 죽여버리면 되니까.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는다.
레온이 휘청거리며 제 심장에 박힌 단검부터 뽑아냈다.
“우선.”
이 검을 숨기는 일부터 해야겠다.
***
다음 날.
폰네시 궁성이 발칵 뒤집혔다.
“제가… 제가 정말 제명에 살 수가 없어요, 도련님!”
메리가 굵직한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레온의 차디찬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숲속에서 실종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됐는지 모른다. 온몸은 얼음장 같고, 핏기 잃은 안색은 은백색 머리칼과 똑같았다.
“도련님… 흐윽….”
“…시끄러워.”
“도련님! 깨어나신 거예요?”
“안 죽었으니까 조용히 좀 해.”
“제가 얼마나 놀랐다고요!”
으윽.
레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메리가 황급히 따뜻한 물 한잔을 내밀었다.
“정말… 대사제가 몸을 돌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도련님?”
늘 그렇듯 대사제는 레온의 곁에 조금도 다가오지 못했다.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 이번 실종사건 역시 메리의 지극한 병간호로 이겨내야 했다.
“됐어. 그냥 조금 싸움이 붙었던 것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마.”
어젯밤 단검을 숨기고 난 후 레온은 그대로 포도주를 온몸에 들이부었다.
취객과 싸움이 붙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높은 곳에서 굴러대는 객기도 참지 않았다.
어깨 한쪽과 발목이 아작 났고, 나무 파편에 긁힌 상처가 심했지만, 단검이 심장에 박혔던 사람치곤 너무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정말 싸운 놈을 찾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상처가 너무 심해요.”
“그냥 술김에 말싸움이 붙었던 것뿐이거든? 날 멍청이로 소문 낼 셈이야, 메리?”
“그러니까요! 어쩜 그리 조심성이 없으세요? 영지민들과 싸움이라뇨!”
레온이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마음 약해진 메리가 레온을 어르고 달랬다.
“아무래도 가슴 쪽 상처가 심해요. 대사제께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됐어. 별일도 아닌 걸로 호들갑 좀 떨지 마.”
“하지만 제 미천한 식견으로 도련님이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전혀 알 수 없는걸요!”
메리가 울부짖었다. 쓰러져 있는 동안 쉬지 않고 눈물을 쏟았다는 것 정도는 퉁퉁 부어오른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레온이 잘 올라가지 않는 팔로 그런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
“제발 아프지 마세요. 흑… 도련님마저 잃으면 전 살 수 없어요.”
레온이 늙은 유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더 이상 입씨름할 기운도 없었다.
“…좀 쉬어야겠어.”
“따뜻한 물을 더 가져올게요, 도련님.”
일어나려던 레온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라피스가 온몸 구석구석을 돌며 상처를 낫게 하는 게 느껴졌다.
이번엔 운 좋게 살아났을지 몰라도 분명 끝은 온다. 게다가 제가 살아 있단 소식이 전해지면 그 검은 사냥개들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메리, 내가 일어나면 아버지를 좀 불러줘.”
이제 마음 편히 놀고먹다 죽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가만히 앉아 당하고 있길 기대하던 이전과는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날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온몸을 다해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적어도 그 녀석들을 모조리 죽이기 전까지는 눈감을 수 없을 테니.
“우선… 쉬세요, 도련님.”
메리가 두툼한 손을 뻗어 레온의 은백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레온은 또다시 깊은 꿈속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