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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문가의 지표자-35화 (35/133)

35화

7장. 북풍이 불어오면(10)

“공자님은 어디에 계시지?”

워렌이 높은 외벽 감옥을 지키고 있던 센느군 병사 둘에게 물었다.

페르탈린군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워렌은 금지된 숲속을 통해 이곳에 왔다.

돌로 쌓아올린 탑 꼭대기까지 맨손으로 올라온 그를 보며 두 병사는 마치 귀신을 본 듯 놀랐다.

“그, 글쎄 저희도 모른다니까요.”

“찾기가 간절한 건 저희가 더 그럴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워렌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너 발자국 위협하니 금세 벽과 등이 맞닿았다.

병사들이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공자에게 해코지를 했나?”

늦을세라 병사들이 서둘러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맨손, 맨몸으로 장비 하나 없이 이 외벽까지 기어오른 놈이다.

대관절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하나 미친 인간이라는 건 분명했다.

“이것도 저것도 모른다니, 네놈들이 알 만한 것 딱 한 가지만 더 묻겠다.”

흡사 이것마저 모른다면 목을 꺾어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병사들이 아직 붙어 있는 목을 더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스 토바, 그 개자식은 어디에 있지?”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히스 토바가 말한 이 외벽 감옥에 레온은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더 이상 사릴 시간이 없었다.

히스 토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찾을 수 없다면 찾아오도록 명할 단 한 사람만 위협하면 된다.

“그, 그게….”

“…저, 저기.”

병사들이 대답을 하다 말고 워렌의 뒤편을 가리켰다.

기다렸단 듯이 등 뒤에서 날갯짓 소리가 이어졌다.

워렌이 쥐고 있던 병사들의 멱살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전서조.”

흰 발톱이 유난히 크고 두꺼운 센느의 전서조 아르고였다.

아르고가 뻥 뚫린 외벽 바깥에서 정지 비행을 하며 워렌을 기다렸다.

발목에 묶인 서신을 어서 채가길 기다리며 우렁찬 울음소리를 뿜어냈다.

“서, 서신이 온 모양입니다.”

“저희가 읽어볼까요?”

워렌이 팔을 뻗었다. 전서조 아르고가 그 위에 올라타 젖은 깃털을 털어냈다.

북부의 흰발톱흑눈새는 그 어떤 종보다 뛰어나고 영리한 지능을 가진 존재였다.

서신의 주인이 아니라면 이토록 경계심 없이 다가올 리가 없었다.

“…….”

워렌이 두 병사의 물음을 무시하고 아르고의 발목에서 서신을 펼쳤다. 급박하게 휘갈긴 필체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뭐, 뭐라 쓰여 있습니까요?”

“저희에게 온 게 아닙니까?”

“아니다.”

워렌이 서신을 단박에 구겨버렸다. 내용을 읽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병사들이 쩝, 입맛을 다셨다.

워렌이 곧장 아르고를 날려 보내고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왔을 때와 달리 계단을 통해 내려갈 셈이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두 병사가 오들오들 떨면서 물었으나, 워렌은 끝까지 귀찮게 물어대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공자를 구하러 간다.”

“예?! 어디로요?!”

“그걸 알려주겠나, 이 멍청이!”

“아니, 물어볼 수는 있잖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워렌이 서신 속 내용을 떠올렸다.

브라운이 보낸, 공자의 위치가 적힌 내용을.

“이봐.”

성큼성큼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뛰어 내려간 워렌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몰라 뒤따라 내려온 병사들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예?”

“살고 싶다면 영주성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

“지금부터 전쟁이 일어날 테니.”

위협만 오가는 전쟁이 아니다. 그 푸른 눈동자에서 진심을 읽은 병사들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워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순식간에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

재스퍼가 일러준 대로 지하 감옥 앞에 도착한 브라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가신 거야?”

브라운이 철창 가까이로 달려갔다. 그곳엔 기괴하게 벌어진 철창 틈이 있었다.

설마 공자께서?

잠시 상상하던 브라운이 고개를 휘저었다.

그럴 리 없다. 무거운 병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우리 병약 공자께서 그랬을 리는 없었다.

“그럼 워렌 경이 먼저 온 건가?”

“아닌데, 난.”

등 뒤에서 반가운 인기척이 들렸다. 브라운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투구를 벗어내는 금발머리의 워렌이 보였다. 브라운은 너무 반가워 달려가 그를 껴안을 뻔했다.

“방금 전 그건 무슨 소리야. 공자께선 어디 계시지?”

그가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가운 마음은 이쪽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브라운도 잠시 붕 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로 비어 있는 철창 안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공자는 이곳에 없었다.

“사라지셨습니다.”

“분명 여기 계시다고 하지 않았나, 부집사?”

“예, 페르탈린군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으니 재스퍼 경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을 겁니다.”

워렌은 브라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페르탈린군과 재스퍼 경이라.

그가 말하는 재스퍼가 북부대검을 말하는 거라면 설명이 좀 필요했다.

바로 서 있던 워렌이 삐딱하게 브라운을 보고 섰다. 어디 한번 설명해 보라는 그 태도에 브라운이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거예요? 저를? 이 디카르테를?”

“디카르테고 아니고는 상관없어. 어째서 적군의 정보를 신뢰하는 거지, 부집사?”

“워렌 경은 세상을 일차원적으로만 바라보니까 그렇게 흐름을 못 읽는 거예요. 이것 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지.”

“불필요한 말이라면 듣고 싶지 않아. 그런 것보다 난 공자님의 안위가 더 중요하니까.”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아니, 지금 물어본 사람이 누군데.”

워렌과 맞붙으면 침착함을 잃기 십상이다.

브라운이 심호흡을 내쉬는 동안 워렌이 유심히 브라운을 살폈다. 아주 시선이 뜨거워 죽겠다. 잡아먹겠네, 잡아먹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삐딱하게 서 있던 워렌이 가까이 다가왔다.

매서운 눈빛에 움찔한 브라운이 한두 발짝 물러설 때였다.

“부집사, 지금 피 흘리나?”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접근인가. 워렌이 진지한 눈빛으로 아직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브라운을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비실거려서 칼이라도 맞았을까 걱정했더니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다.

“그럼 이 피는 대체….”

워렌이 입을 다물었다.

브라운은 그제야 제가 밟고 서 있는 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철창 안부터 워렌이 서 있는 감옥 입구까지 진득한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워렌 경, 제 말 잘 들으세요.”

브라운이 그간 레온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설명했다.

다가올 히스 토바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 무엇보다 레온을 찾는 게 급선무란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친 몸이니 어디 멀리 가시진 못했을 거예요. 주변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난 이쪽으로 가지.”

“아뇨, 우린 되도록 같이 붙어 있는 게 좋겠어요.”

워렌이 찝찝한 표정으로 브라운을 바라봤다. 역시 일차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다웠다.

“제가 공자님을 발견하게 됐을 경우를 가정해서요. 기껏 만났는데 지킬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에요.”

“아, 확실히 그건 그렇군.”

“인정하시니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두 사람의 합의가 원만히 끝났다.

워렌과 브라운이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따라 감옥 밖으로 나설 때였다.

어둠 속에서 낯선 인영이 확 튀어나왔다.

“아악!”

웬 나무 몽둥이가 브라운의 머리를 내려치기 직전, 워렌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몽둥이를 산산조각 냈다.

“어머나.”

익숙한 목소리에 잔뜩 졸아 있던 브라운이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건 미셸과 덴이었다.

워렌은 미셸이 휘두른 몽둥이를 내던지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설명이 필요했다.

“이럴 수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미셸이 지금까지 머리를 깬 병사들이 족히 다섯은 될 거거든!”

“어머, 무슨 그런 소리를? 내가 언제 그랬다고?”

“여기까지 날 호위한 건 너잖아, 미셸. 덕분에 안전하게 레온을 찾아올 수 있었는걸?”

“두 분, 남매 싸움은 그만하시고. 여긴 어쩐 일이세요? 대피소에서 안전하게 몸을 피하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브라운의 물음에 미셸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센느군에게 들키고 말았어요. 모두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는걸요.”

“어머니와 메리를 피신시키고 우리라도 레온을 찾기 위해 나선 거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영주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까딱 잘못했다간 무언가가 터질 것처럼 긴장감이 돋아 있었다.

덴은 미셸과 함께 레온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죄인을 가둬두는 곳이라면 이 좁은 영주성에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두 사람도 레온을 찾는 덴 실패한 것 같네.”

감옥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로 존재했다.

지하를 통해 외부로 나가거나, 곧장 위로 올라가 영주성으로 진입하느냐에 따라 길이 갈렸다.

브라운이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덴과 미셸에게 부탁했다.

“아가씨께서 전투력이 있는 모양이니, 두 분께서는 계속 영주성 내를 수색해 주세요. 저희는 지하로 나가 바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확실히 이곳은 우리가 제일 잘 아니까.”

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셸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몸을 배배 꼬다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근데 방금 전 제 몽둥이를 누구누구 씨가 깨부순 바람에 전 전투력이 없는걸요. 그러니까 그냥 저도 브라운 부집사님과….”

“여기.”

“…아니, 이런….”

워렌이 재빨리 공작가의 단검을 꺼내주었다. 미셸이 홱, 그를 째려봤다. 무기를 쥐어 줬는데 왜 째려보는지 모르겠다.

덴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미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자! 그럼 서두르자. 레온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예, 몸조심하세요.”

“그래, 브라운. 만일 레온을 찾는다면 곧장 3층에 위치한 미셸의 침실로 가! 그곳에 어머니와 메리가 있어.”

덴이 동생을 억지로 잡아끌고 서둘러 계단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사라질 때까지 미셸의 원망 섞인 눈빛 공격을 받은 워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서가는 브라운을 뒤따랐다.

“더 이상 피가 이어지지 않는 걸 보니 지혈은 잘된 모양이에요.”

핏자국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레온의 흔적이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지만 다행이었다.

브라운이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지하 계단을 밟으며 생각에 잠긴 워렌을 돌아봤다.

그는 조금 전부터 말이 없었다.

“우린 결국 공자님을 되찾을 거예요.”

그건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브라운의 목소리에 워렌이 고개를 들었다.

찬기가 올라오는 지하 복도 양옆에 토바가를 위한 영면소가 마련돼 있었다.

워렌이 그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히스 토바는 내가 죽이겠어.”

과연 그렇게 해서 얻는 위안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운은 제멋대로 남의 신념을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공자님께서 양보하신다면요.”

“그건 그렇군.”

“자, 그럼 이제 가봅시다.”

이 길 끝엔 반드시 레온이 있어야 한다. 그게 달려가는 두 사람을 살리는 길일 테니까.

브라운이 어두컴컴한 지하 속으로 사라졌다.

금발 머리의 기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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