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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화 (2/215)

<2화>빙의 2회차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 분이들 때가.

쉽 게 잠을 이룰 수 없으리 라 직 감한 백 우진은 창가에 들이 치 는 밝은 달빛 을보며 잠시 산책에 나서기로했다.

“좋구나.”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고 휘황찬란한 달빛이 앞길을 비추는 것이 이대 로 걷다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 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이 닿는 대로 걸어간 학관 구석에는 운치 있는 연못과 정자 그리고 한 쌍 의 남녀였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환한 달빛 덕분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 렵지 않았다.

“남궁수…, 연매?”

백우진은 눈앞의 광경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연 매, 유화연은 백우진과 약혼을 맺은 사이 였다.

“대체 연매가왜…?”

약혼자가 변변치 못한 탓에 그녀를 꾀 어내려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언제 나 차가운 시선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접점이라곤 1도 없는 남궁수와 야밤 에 운치 있는 정자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백우진은 얼마되지 않는 내공을 끌어 모아 자신의 귀에 둘렀다. 멀찍이 떨 어져 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 매.”

“……!”

남궁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백우진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유화연에게 연 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인 자신밖 에 없었다.

“ 가가.”

«□] ” 눳….

유화연의 대 답은 더욱 충격적이 었다.

오직 자신을 부르던 ‘가가’라는표현을 거리낌 없이 남궁수를 향해 표현하 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내 품으로 올 때도 되 지 않았어 ?”

남궁수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다 제 품에 안았다.

유화연 또한 싫지 않은 듯, 가볍게 앙탈을 부리더니 이내 잠잠하게 안겨 얼 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가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우리 유씨세가와 섬서백가의 가주님들 사 이가 돈독하셔요.”

유화연은 남궁수의 품에서 살포시 벗어나 얇고 가녀린 손을 뻗어 사내답게 생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런 가주님들끼리 맺은혼약을 깨려면…,그만한이유가 있어야겠죠?”

남궁수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멀어져 가는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 었다.

“그래. 내가 신룡이 되면 그 이유로충분하겠지.”

신룡 (神龍).

정무학관의 1학년들 중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별호. 그것은 1학년들 중 최 강이 라는 뜻과 더불어 정 파 무림을 이끌어 갈 동량으로 손꼽힌다는 뜻 이기도 했다.

“가가께서 신룡이 되시리라는 건 믿어의심치 않아요. 다만….”

살갑게 웃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한 얼굴로 붙잡힌 제 손을 빼 내며 말을 이었다.

“다 잡은 물고기처 럼 보이 긴 싫어서요. 후후….”

그녀는 남자를 미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남궁 수는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도 그녀의 요염한 미소를 보며 재차 의지를 다졌 다.

“그럼 밤산책은 이만하도록해요.”

“후후, 조금만 기 다려. 연 매를 내 품에 안을 날도 머지 않았으니.”

“기대할게요, 호호.”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이 이쪽으로 향하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백우 진은 황급히 수풀 사이로 숨어 두 손으로 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내가뭘 본거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좀처럼 믿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좌절하고, 절망할 때마다 품으로 안아 다독여주던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미래를 약속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

...

“아아….”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제 방으로 돌아온 백우진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본모든 것들이 하룻밤의 꿈이길 바라며.

:k * *

잠에 서 깨어 나도 달라지 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차가운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우진.”

가벼운 임무를 마치고 학관으로 복귀하는 도중,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해온 소꿉친구인 신예화가 그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 있어? 임무 때도 통 집중을 못하는 것 같던데.”

며칠이 지 났음에도 백우진의 머 릿속에는 남궁수와 유화연이 나누던 대화 가 끊임없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가벼운 임무에서도 실수를 연발한 탓에 신예화가 모든 부담을 감당해야만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소꿉친구라면 괜찮을까 싶어 모두 털어놓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닫았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순간 그녀와의 사이 가 부서 질 것만 같았기 에.

“저어, 그럼 말이 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무슨 부탁?”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이번에 …, 무혁 오라버니께서 복귀하시잖아?”

백무혁.

백우진의 형이자섬서백가의 장남.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동생과는 달 리 이미 절정 중입을 넘어 조만간상입경에 다다를 것이라무관을 넘어 정파 무림의 기대를 받는 기재.

“괜찮다면 무혁 오라버니와 자리를 주선해주지 않을래?”

언제나 당찬 표정을 하고 있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눈을 피하고 있었다.

“너,설마….”

“마, 맞아. 나사실…, 무혁 오라버니를 좋아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왜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소꿉친구였지만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그녀에게도 좋은 남자가 생길 거라고 생각 한적이 단한번도 없었다.

‘대체 왜….’

그때와 같았다. 남궁수와 유화연의 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불쾌하게 가슴 이 두근거렸다.

“그, 그랬구나.”

머릿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중했던 사람들이 자꾸만 하나둘씩 떠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우진은 말라갔다.

무언가를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걱정해주는 이는 없었다. 유화연은 점차 거리를 두려는 듯 멀어 져 갔고, 신예 화는 오랜 임 무를 마치 고 학관으로 복귀 한 백 무혁과 본격 적 으 로 인연을 쌓으려는 듯 그의 곁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따금씩 다른 이들이 그를 걱정하기도 했으나 조금씩 인연이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할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혼자가된 백우진은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무에 나섰다. 정해진 수행 점수 를 채우기 위해 강제로 배당된 임무였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삼류 무인이 두목으로 있는 작은 산채를 정리하고 오면 되는 최하급의 임무였으니 .

“크크, 이딴 새끼가그 대단한 정무학관의 생도라니.”

“혹시 사칭 아닐까요?”

“그러게. 크하하핫!”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수행에도 힘쓰지 못한 백우진은 그들의 수를 감당하 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후욱, 후우….”

도끼에 베인 옆구리에서 강렬한통증이 느껴졌다.

‘대체 왜 ….’

죽음이 엄습하자 또 다시 왜,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왜 다들 떠나가는가.

용기가 없어 지금까지 참아왔던 그 질문을 그들에게 던지고 싶었다.

‘살아야 한다.’

백우진은 등을 돌려 도망치 기 시 작했다.

“저,저 자식 도망치는데요?”

“당장 붙잡아!”

옆구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참아가며 산속을 이리저리 헤치고 나 아갔다.

‘젠장, 젠장!’

부족한 내공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한참을 숲속을 떠돌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빽빽한 나무 사이에 가려 진작은 공터였다.

“크윽….”

가까스로 산적들을 따돌리는 데 엔 성공한 듯했지만 상황은 최 악이 었다.

피를 씻어내기 위해 작은 개울에 몸을 던진 탓에 온몸이 젖어 있었고, 옆구 리 에 선 다시금 피 가 새 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나온 탓에 불을 피울 화섭자며, 상처에 바를 금창 약도 없는 상황.

-느1 ”

아아….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이곳까지 도망쳐 왔지만 아무래도 끝인 듯했다.

:k * *

“어이구, 씨펄.”

주선(酒仙)이 커 다란 망태 기를 매고 하계 에 다다른 것은 백우진의 숨이 거의 끊어져갈 즈음이었다.

난데없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사내의 모습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주 선은 이 내 고개를 가로저 었다.

“글렀네, 글렀어.”

이 미 숨이 끊어진 상태 였다.

조금 더 빨리 내 려왔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살 운명이 라면 그것과 관계 없이 살았을 테 니 죽을 운명이 라 죽었 을뿐.

“어디 보자….”

그가 이곳에 내려온 이유는 단 하나, 술을 빚기 위해 필요한 약초들을 뽑 아가기 위해서였다.

“천리안으로보았을땐분명 이 근처였…,으응?”

수풀 속을 뒤 지 며 나아가고 있을 때 였다.

주선은 황급히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시체를 살폈다.

“아니, 이게 무슨…?”

숨이 끊어 졌던 시 체 로부터 미 약한 심 장박동과 숨소리 가 느껴 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일세.”

창백하다못해 차갑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주선은그로부터 알수 없는 운명의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다.

“허,참.”

선계에 오른 신선은하계의 그 어떤 인간과도 인연을 맺을 수도, 맺어서도 안될 터인데.

“쿨럭!

사내의 입에서 피가쏟아지자 주선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단 살려놓고 봐야겠구먼.”

주선의 손이 바삐 움직 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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